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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6일 새벽에 혼자 자고 있는데 아들이 들어와 깨운다. 학교에 있는 도서관이 5시에 개방을 한다며 일찍 가겠다는 것인데 오늘 기말고사 영어시험도 있어 함께 나섰다가 돌아왔다. 식사를 마친 아침에 딸이 학교에 가고 10시경 체육관으로 나가면서는 아내를 태워 독서지도를 받는 광화문 동아일보사에 내려주었다. 오늘 아들의 학교 1학년 수업을 담당한 과목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점심이 있으니 아마 중간에 나와야 할 것이다. 운동을 마치고 바로 학원으로 가서 논술교실 아파트 광고문구를 작성하고 인상한 수강료 안내문 등을 만든 후에 밖에서 점심을 먹었다. 엊그제 보낸 송년회 초청장을 받았는지 오후에는 격려의 전화가 많이 왔고 나도 큰일을 해낸 것처럼 마음이 가벼웠다. 주소가 분명하지 않아 미처 보내지 못한 사람들 다시 확인하여 발송하고 미성회관 예약금까지 행사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펄펄 날리는 눈 속을 달려 아파트 근처에 도착하여 삼겹살과 찐빵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머리가 아프다는 아내는 소파에 누워 있고 저녁을 먹는 중에 PC방에서 왔다는 아들은 찐빵만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17일 새벽에 일어나니 어제 늦게까지 TV를 본 아내와 딸이 거실에서 잠을 자고 있다. 아직도 밖은 컴컴하고 뉴스에서는 눈이 내린다는 예보를 하는 사이 아들은 어제처럼 학교까지 동행을 요청한다. 두터운 잠바에 모자까지 쓰고 아파트 아래로 내려오니 눈이 펑펑 내리고 미끄러운 도로에 운전마저 어려울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는 중에 아내의 핸드폰으로 이번 기말고사 성적을 알리는 딸의 문자가 왔다. 반에서 1등 전교에서는 5등이라니 아내는 환호까지 올리며 좋아하고 나도 딸이 대학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기쁜 마음이었다. 축하한다는 내용과 수고했다는 문자를 함께 보냈고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오늘도 날이 추워 몸이 이불로 향했지만 오전에 습관처럼 체육관으로 나가서 땀을 흘리며 보냈다. 나이가 들면 눈빛을 포함한 건강이 경쟁력일 수 있는데 인생은 결국 누가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가 하는 게임이다. 오후에 다음 주 시험을 보는 수강생들 때문에 논술교실로 나갔고 3시가 지나서는 아내가 올라와 이어서 자신의 수업을 했다. 오늘 구파발을 넘어 일영 초원의집에서 시험이 끝났다고 아들의 학급이 고기파티를 한다니 수업을 마친 아내도 학부모 참석으로 출발했다. 오후에 기말고사 1등한 딸이 들어와 기쁨으로 덥석 안아주었고 수업을 마치고는 저녁을 사주려고 아파트 건너편 숯불갈비 식당으로 나갔다. 10시에 일영에 나갔던 아내와 아들이 희희낙락 돌아왔고 오늘은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이 서로 다른 곳에서 고기를 먹은 날이다.
18일 신문을 보며 아침을 열었고 학교에 가는 아들과 딸은 토요일이라고 가벼운 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어제에 비하여 기온이 올라 그다지 춥지는 않았고 주말이 오히려 바쁜 나는 식사 후 바로 집을 나서 학원에 나갔다. 오전에 고3 모의고사 해설을 하다가 1시에 밖으로 나가 식사를 했고 다시 돌아와 오후 시간을 보내다 논술교실로 이동했다. 오늘은 내년에 고등학교를 시작할 예비고1 개강을 하는 날인데 기본과정 수업을 하고 간식으로 상가 1층에서 만두를 사 먹었다. 저녁에 집으로 내려왔다가 향우회와 별개로 고향 제월리 모임이 있는 이태원 입구 삼각지 식당에 들어서니 선후배들이 많이 모였다. 과거에 고향은 130여 호가 넘어 부량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서울에 올라와 살고 있다. 먹고 살기 바빴던 가난한 동네라서 배려하는 마음이 인색한 편이었고 배움과도 거리가 먼 주민들이 많아 다른 마을에서 꺼리는 정도가 유독 심했다. 11시까지 흥겹게 보내다가 집으로 왔는데 5일 후에는 부량면 송년회가 또 있어 바쁜 12월을 보내는 중이다.
19일 어제 술을 마신 탓으로 갈증이 생겨 매실액을 마셨더니 시원은 했지만 여전히 정신이 어질한 새벽이었다. 수업준비도 필요하고 할 일이 많아서 이른 시간 무국과 여수 아주머니가 보내준 김치로 아들과 식사를 했다. 맛있게 먹고 난 아들이 갑자기 우리 김치에 대하여 불만을 표출했고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도 오늘 먹는 것과 분명 차이는 있었다. 딸이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고 하얀 티셔츠까지 입고 멋을 부리는데 스케이트 기술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학원으로 일찍 나가서 모의고사 정리와 학부모에게 전달할 2011년 수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점심이 되기 전 논술교실로 돌아왔다. 작은 공간에 오늘은 7명이 동시에 출석을 하여 교실이 꽉 찼지만 오전에 준비한 모의고사 해설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왔다. 저녁에는 아들과 중국집으로 가서 맛있게 식사를 했고 수업을 마치고 9시에 내려온 아내는 아침에 먹던 김치로 식탁을 차지했다.
20일 뉴스에 오늘 서울이 영상까지 오른다니 엊그제에 비하여 날이 많이 풀렸다. 아침에 된장국과 여수 아주머님이 보낸 생선으로 식사를 하고 1시간 자다가 일어나니 아내도 잠을 자고 있다. 얼마 전과 다르게 요즘은 옆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고 어떤 상황이든 부부는 가까이 있어야 한다. 자장면으로 점심을 하고 오후에 광화문을 지나 학원으로 가서 교재연구와 논술교실 광고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고향 송년회 모임으로 향우회장 전화가 와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해야 모임이 오래 갈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청구아파트에 강의안내서를 붙이려다 날이 저물어 내일로 미루었고 집으로 바로 왔더니 아내는 아들 야유회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날마다 엄마와 자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딸이 오늘은 아예 이불을 들고 안방으로 왔고 아들은 어인 일인지 일찍 잠이 들어있다.
21일 아내가 새벽에 거실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잠이 깼고 이후 뒹굴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 가요무대 전라남도 순천공연이 볼만했는데 주로 전라도 지방을 배경으로 한 노래로 흥을 돋운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따라 부를 때는 30년 전 어머니와 마주한 김제역의 시간이 불현듯 스쳐가기도 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제주도 졸업여행을 간다고 회비를 걷었는데 밥 사먹고 술 마시고 하다 보니 많은 금액을 내가 낭비했다. 갚을 길이 막막하여 여행하는 40명 점심과 저녁을 책임지기로 하고 기차가 통과하는 김제역으로 김밥 두 끼니 합 80인분을 어머니에게 부탁했었다. 당시 내 생각으로는 간단한 줄 알았는데 인부를 얻어 밤새 만들었다며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동네 아주머니까지 동원하여 나오셨다. 두 사람은 김밥을 들고 어머니는 음료수를 머리에 이고 오셨는데 1회용 나무도시락 안에 1인당 3줄씩 그러니까 240개의 두껍지 않은 김밥을 만든 것이다. 훗날 말씀하시기로는 대학생 아들이 자랑스러워 힘든 줄도 몰랐다고 하셨는데 철없는 시절이 두고두고 죄송하고 후회스러웠다. 기차가 김제역을 출발하면서 어머니는 고향을 떠날 때처럼 손을 흔들었고 목포행 완행열차 호남선에는 비가 더욱 거세게 내렸다. 어제 가요무대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따라 부른 것도 이 때문이었지만 지금도 술을 마시거나 흥겨울 때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김없이 부르는 노래다. 그날 동기들은 점심으로 또 목포에 내린 저녁에 두 끼니씩이나 김밥을 먹어 사용한 돈을 매울 수가 있었는데 내 상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제 일찍 잠이 든 아들이 소리 없이 학교에 가고 딸은 8시까지 과제를 한다며 컴퓨터 앞에서 독후감을 작성한다. 오전에 잠깐 쉬다가 청구아파트에 올라가 겨울방학 중에 수업할 광고를 아내와 다니며 32장이나 붙였는데 나도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자존심을 버린 지는 오래 되었다고 해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처럼 두려움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막무가내로 다닌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하고 12시경 돌아오니 아내는 강남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수업까지 저녁으로 미루면서 집을 나선다. 나도 학원으로 나가 점심을 먹었고 오후에는 송년회 점검으로 몇 명의 사람들과 통화를 했는데 사는 일이 중요한지라 역시 바쁘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22일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가 아침 식사를 하고 1시간을 더 잤다. 오늘이 음력으로 11월17일 양력으로는 12월22일 밤이 가장 길고 낮이 짧다는 동짓날이다. 크리스마스가 3일 후로 다가왔는데 눈이 온다는 소식보다 오히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다니 삭막한 성탄절이 될 것같다. 10시에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하고 학원으로 가면서는 어제 수강생 어머니가 가져온 가래떡을 먹었는데 쌀이 좋은지 옛날에 먹던 맛 그대로였다. 오후에 주 2회 강의실 1개를 사용한다는 사회과 선생과 20만 원으로 계약서를 쓰고 열쇠를 건네 주었다. 집에서 과외를 하는 중인데 이 곳에서 가르치다 사회학원을 열겠다는 것이지만 국영수와 과학을 제외하고는 그리 쉽지가 않다. 내일 향우회 송년회 준비를 확인하며 오늘도 몇 명의 선배들과 동창들까지 통화를 했고 4시부터 수업을 시작하며 오후을 보냈다. 책상 앞 스케줄 달력을 보니 수업과 모임 등으로 아직도 빽빽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나도 이런 날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저녁에 초심을 잃지 않고 절제하며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학원을 나서 불빛으로 이어진 도심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9시경 식사를 마치고 들어오지 않는 딸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직도 연신내 영어학원이라 하고 오늘은 오히려 아들이 먼저 들어왔다.
23일 아내와 딸이 쿨쿨 잘도 자는 것과 반대로 잠이 오지 않은 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깐 잠이 들었다가 9시에 일어나 밥을 방에서 먹으려고 아내에게 부탁을 했더니 버릇이 된다고 거절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식탁으로 나와서 밥을 먹었지만 식사 후에도 물을 달랬더니 알아서 먹으라며 컵을 던지듯이 두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오전에 독서수업을 나간다기에 광화문에 아내를 내려주고 엊그제 청구에 이어 오늘은 인왕산 홍제원 한양아파트까지 논술학원 광고를 접수했다. 이어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라면으로 점심을 먹은 뒤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나가 수업을 시작했다. 5시가 되어서는 오늘 송년회 장소인 남영동 미성회관으로 나가서 40여 명의 반가운 고향 사람들을 만났다. 면 단위 모임을 생각하면 저조한 참석률이지만 오늘이 1회 모임이니 앞으로 많은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오전까지 포근했던 기온이 밤이 되면서 추워졌고 내일은 영하 12도까지 내려간다니 연말에 강한 동장군이 찾아왔다.
24일 서울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내려가 금년 들어 가장 추운 크리스마스 하루 전이다. 학교에 가는 딸을 배웅한 뒤에 식사를 마쳤더니 이번에는 아들이 늦었다고 허둥대서 차에 태우고 이대부고로 향했다. 얼마나 추운지 내뿜는 입김이 연기와 같을 정도였고 길을 걷는 사람들은 완전 중무장 차림으로 서울이 모스크바로 변했다. 오전에 평소처럼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했는데 기온이 낮다 보니 실내까지 영향을 미쳐 기구운동만 가까스로 마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교보문고에 들러 예비고2 모의고사 문제집과 예비고1 통합국어 교재를 구입하여 대학로를 지나 학원으로 들어갔다. 오후에 수업을 마치고 어제 향우회 송년회 결산까지 공고를 한 뒤에 국어교실 일정이 있어 서둘러 돌아왔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전일인데 전혀 감각이 없으니 나도 나이가 먹은 것 같고 그런가하면 시내의 분위기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저녁에 성탄 예배가 있는 교회에 가려다가 집으로 내려가 식사를 했더니 잠이 먼저 밀려와 일정을 포기했다. TV에서는 특집으로 명화 벤허를 방영하여 처음 보았던 중학교 시절의 기억을 되살렸지만 졸음으로 그것마저 시청을 하지 못했다.
25일 어제에 이어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어 오전에 하기로 한 수업을 화요일과 수요일로 미루고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여 휴일인 오늘 차를 몰고 교회로 갔더니 성탄절이라 평소보다 많은 교인들이 자리를 했다. 오늘은 성탄 헌금까지 내면서 설교를 들었고 예수의 탄생 과정을 영상으로 보았는데 마구간 동방박사가 등장하는 만화영화였다. 12시경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학원에 나갔다가 5시에는 아내와 아들 딸이 쇼핑을 한다는 신촌 현대백화점으로 이동했다. 날이 추워 태우러 간 것인데 아들은 이미 검정색 패딩과 티셔츠 그리고 밤색 바지까지 구입한 반면 딸은 구경만 하고 다니는 시간이었다. 결국 아무 것도 사지 못한 딸은 스스로가 답답한지 울기만 했고 나는 내일이라도 다시 나와 더 좋은 것을 사 주겠다고 위로했다. 송년회를 한다는 신사임당 모임에 참석하려고 홍제동으로 돌아와 아파트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니 20여명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신사임당 멤버가 7명이고 가족들까지 합한 숫자지만 아내들 모임에 끼어있는 남편들 입장에서는 자유롭거나 편할 리가 없다. 2차로 호프집에 가는 것을 안내만 하고 남영동에 나가 영식이를 만나서 케이크를 사 주고 방배동까지 태워다 주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가족과 즐거운 시간이 되라는 마음이었는데 오는 중에 영식이 부인한테 고맙다는 전화가 왔다.
26일 새벽 2시에 잠이 들었다가 7시에 일어났더니 몸이 가볍지가 않았다.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가려고 집을 나서 평소 가던 합정동 식당에서 해장국을 사 먹었는데 오늘은 그 동안과 맛이 달랐다. 2부 예배가 시작되는 9시에 들어가 친구와 인사를 나눈 후 오늘보다 내일이 더 희망이 있으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10시에 교회를 출발하여 논술교실로 돌아와 11시부터 수업을 했고 오후가 되어 집에서 점심을 먹는 중에는 아내와 딸이 어제처럼 백화점에 나간다. 딸에게 옷을 선물하려고 가지고 다녔던 30만원을 아내에게 전달하며 가급적 예쁘고 좋은 것을 사주라고 당부했다. 오후 4시에 논술교실로 올라가 수업을 하면서 히터를 작동했더니 날씨가 얼마나 쌀쌀한지 온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밤에는 술을 마신다는 영식이 전화가 왔고 하지만 오늘은 날이 추워 움직이지 않았다. 백화점에서 딸의 옷을 구입하고 저녁에 수업까지 한 아내가 10시가 되어 들어왔는데 아들은 학원에 간다며 이 시간에 반대로 집을 나선다.
27일 올 해도 마지막 한 주일을 남겨 두고 있는 시점으로 열심히 살아온 시간들이 이렇게 저물다니 아쉬움이 가득했다. 향우회 카페에 올릴 송년회 인사말을 새벽에 작성하고 아침식사를 한 뒤에는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시작했다. 12시경 학원으로 바로 가려다가 날이 추워 잠깐 집에 들어오니 장모님께서 와 계시고 퇴계원에서 따라온 용구가 인사를 한다. 용구는 삼육고등학교를 졸업할 예정인데 이번에 삼육대 약학 기초과에 최종 합격했다며 밝고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다. 대학에 들어간 기념으로 조카에게 용돈을 주려고 아내와 상의를 하려는데 이모라고 축하와 함께 처리를 벌써 해 버렸다. 오후에 눈발이 날리는 시내를 달려 학원에 들어서니 날이 어두워졌고 책상에는 금년의 일정이 아직도 촘촘하게 기록되어 있다. 물론 바쁜 것이 한가한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사나흘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 할 것이다.
28일 어제 저녁부터 눈이 조금씩 내리더니 새벽에는 폭설로 바뀌어 있고 거실에서 바라본 무악재 고개는 쌓인 눈으로 차량들이 거북이 운행을 한다. 밤새 10센티의 눈이 내렸다니 통행이 불편할 만큼 많이 온 것이고 금년 들어서 오늘이 가장 많은 적설량이다. 어제 밤부터 아내와 딸이 감기로 고생하더니 아침까지 계속 기침을 하고 모자란 잠을 채우려고 나도 안방에서 다시 누웠다. 막 잠이 들었을 무렵에 딸이 학교에 태워달란다고 아내가 전하여 망설임도 없이 일어나 옷을 입고 거실로 나갔다. 쌓인 눈 위를 엉금엉금 달려 학교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쉬는데 이번에는 장모님께서 어느 순간 청주로 내려가셨다. 인사도 못 드려 죄송한 마음이 많았고 바로 체육관에 나갔다가 점심을 먹은 후에는 논술교실로 올라가 고2 모의고사 해설을 했다. 4시에 차를 몰고 시내를 통과하여 성북동 학원에 가서 수업을 하고 세모의 야경을 감상하며 밤에 집으로 들어왔다. 거실이 추워 안방으로 밥을 가져와 식사를 하려는데 누워 있던 아내가 23일 아침처럼 상을 치우라고 소리를 높여 당황하였다. 차려서 주지는 못할망정 누워서 이래라 저래라 하다니 연말에 밥상을 들고 여기저기 옮겨 다닌 50줄이 넘은 내 꼴이 우스웠다.
29일 어제 저녁 아내와 딸이 안방에서 자기에 오늘은 딸이 자는 방에서 내가 잤는데 우풍이 심하여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물며 커튼까지 이 겨울에 흰색이라니 감각과 섬세함이 없는 아내가 야속했고 무관심한 나도 딸한테 미안했다. 늦게까지 뒤척이다가 새벽에 안방으로 옮겨가 그나마 몇 시간을 자고 일어났더니 아내와 딸은 그때까지도 자고 있다. 방학 때 늦잠 자는 아들이나 딸 때문에 스트레스가 언제나 많았는데 올 겨울방학도 잠과의 전쟁이 시작된 듯하다. 늦게 일어나면 오전 시간이 비효율적이고 그것보다 긴 시간 수면을 하는 것은 건강에 도움도 안 되고 시간만 낭비하는 셈이다. 아침에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러 체육관에 갔다가 점심쯤 돌아와 오후에는 논술교실에서 모의고사 수업을 했다. 저녁쯤에 고등학교 동창이 식당을 개업한다기에 4호선 지하철을 타고 인덕원을 지나 범계역까지 갔더니 친구들이 먼저 와 있다. 공부도 잘했지만 성격이 좋은 정이식 친구인데 전공과는 무관하게 생태탕 집을 열었고 가게의 규모도 생각보다 넓었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즐거운 식사를 하고 11시에는 모두가 여의도로 이동하여 낭만이 있는 포장마차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여의도의 새벽은 아직도 대낮처럼 밝았고 집으로 오는 한강에는 함박눈이 앞이 보이지 않게 내렸다.
30일 잠을 3시간 잤는데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고 밤새 내린 눈으로 건너편 아파트 지붕이 하얗다. 7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31일까지 마감인 대공원 관람권을 딸에게 주었더니 내일 친구랑 함께 가겠다고 한다. 논을 소작하는 문제로 고향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춥고 눈이 많이 내려 충무로에서 학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후에 반포 형수님 소작에 대하여 고향 성무아저씨와 의견을 나누고 조카 효정이에게 결과를 통보하려는데 전화가 되지 않았다. 형수께서 말레이시아에 있기 때문에 큰조카에게 연락을 한 것인데 아무튼 시골에 있는 형수의 논은 현재 2필(약2400평)이다. 2010년을 하루 남겨서 그런지 지인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왔고 저녁에 식사를 하려고 화교인이 운영하는 맛있다는 중국집으로 나갔다. 하지만 허름한 식당에서 먹었던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보다 맛이 떨어지는 수준이라 돈만 지불하고 나온 느낌이었다. 밤에 정식이 전화가 왔는데 정신없이 다닌다고 받지를 못했고 영하 10도의 추운 날이라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31일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푹 자고 일어나 2010년 12월의 끝자락 아침을 맞이하였다. 어느 해보다 바쁘게 달리며 열심히 살았던 시간들로 하루하루가 각인이 될 만큼 치열한 시간이었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운동을 꾸준히 하여 정신이 맑았고 그러다보니 자신감과 함께 강의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금연을 하고 술을 절제하는 것은 건강과 맑은 삶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부분으로 언제나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회에 나간 지가 1년이 지나 매사 변화되어 가는 나를 느낄 수가 있는데 화를 내는 것은 지혜가 부족하다는 전도서 7장 10절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과거와 다르게 주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늘어났는데 새해에도 운동과 수업에 충실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식사를 마친 영하 10도의 아침에 대공원 티켓을 가지고 딸이 집을 나서고 아들은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업이 있다는 아내가 논술교실에 오르고 나도 체육관으로 나가 달리기와 기구운동을 하며 마지막 2010년을 보냈다. 3시부터 논술교실 수업을 시작하여 늦은 오후에 마쳤고 집으로 전화를 하니 도서관에 갔다는 아들이 벌써 돌아와 있다. 딸이 학원에서 미도착한 상태지만 가족과 연말을 보내며 2011년을 설계하리라 생각하고 케익과 고기를 사 들고 집으로 갔다. 밤이 되어 아내와 딸이 와서 함께 삼겹살 저녁을 먹었는데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는 늦은 시간에 망년회에 간다며 아들이 외출을 한다. 뜻밖의 상황이 엉뚱하기도 했지만 막무가내로 현관을 나서 어찌할 수가 없었고 찜찜한 마음에 방으로 들어가 바로 자리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