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대(신양균)님의 교우 단상: ‘법전’을 든 정의의 여신! ◈
정의를 상징하는 여신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개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혹은 디케)를 떠올릴 것입니다.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지요. 저울은 공정을, 칼은 엄격한 법의 집행을 의미하며, 눈을 가린 것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사사로운 것들 혹은 선입견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런데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안에 자리 잡은 정의의 여신상은 조금 다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지만, 다른 손에는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고, 눈도 가리지 않았으며, 옷은 서양식 드레스가 아니라 한복입니다. 이 여신상이 상징하는 정의는 무엇일까요?
어느 나라에서나 정의의 내용이 항상 똑같지만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 정의의 여신이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은 그럴듯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판단하는 법관이 공정 혹은 형평의 원리에 따라 법전에 적힌 대로 판단한다면, 굳이 눈을 가려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지 않거나 사실적 측면을 외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로마식의 정의나 형평이란 “각자에게 그의 것”을 이라는 철저한 합리주의, 수리적 배분을 의미하기에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공의(체테크)와는 꽤 거리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공의는 가난하고 억압당한 자, 고아나 과부 등에 대한 신적 연민이나 배려를 바탕으로 깔고 있으므로 세상에서 보기에는 오히려 불공평(역차별?)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합리주의와 이성을 강조하는 서양의 정의 관념이 올곧이 자리 잡으려면 정의의 여신은 개인의 사정이나 지위 등에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있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여신상처럼 눈을 뜬 정의의 여신은 사회적 약자나 구체적 사정에 눈을 돌려 정의와 형평을 조금 인간적으로 기울게 하는 장점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칼을 든 여신이 칼을 버리고 법전을 들었다! 칼은 저울을 통해 정해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 여신상이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고 해서 그리 달라질 일은 없는 듯합니다. 법전 가운데 칼과 같은 단호한 힘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공직선거법에는 당선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하면 10월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상 800만 원 이하의 벌금(가중하면 8월 이상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항 1천만 이하의 벌금, 감경하면 70만 원 이상 300만 원 이하 벌금)을 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이번 이재명 대표 사건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것은 범행의 죄책과 범정이 상당히 무겁다고 하여 가중된 형이 선고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100만 원 이상의 벌금이 선고되면 당선되더라도 무효가 되는 효력을 가지는 것이 그 예입니다(그리고 피선거권이 10년 동안 상실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법전은 판사가 법의 내용을 선언하는 텍스트이고, 그 텍스트는 판사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입법자가 만든다는 것입니다.
판사는 입법자의 의사를 고려해서 텍스트의 내용을 구체적 사실에 맞게 해석하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치는 것이지요. 판사가 이런 역할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법전을 해석한다면, 몽테스키외가 말한 ‘법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 책에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하는 삼권분립론에 따르면, 입법과 사법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입법자가 만든 텍스트의 내용을 판사가 멋대로 해석해서 법을 ‘창조’하려 한다면, 이는 사법권의 남용이라고 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판사는 법전을 해석할 뿐이지 새로운 법을 창조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번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에 대한 제1심판결에서 피고인의 행위가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하는가는 공표한 사실이 허위이고, 그 사실을 피고인이 알았는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지, 피고인이 그 사실을 허위라고 인식한 것이 상당한가 하는 상당성 판단에 따라 정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상당성 판단이라는 판사의 주관과 경험이 해석에 스며들어 법 창조의 길을 열어놓는 결과로 되기 때문이지요. 혹시 시간이 있으시면 재판부의 판결문을 한 번 천천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법전을 든 정의의 여신이 법전에 대한 판사의 해석 권한을 넓게 허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