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강(임형남)
건축가 임형남
홍명희 소설 ‘임꺽정’을 읽은 적이 있다. 들은 대로 대단한 소설이었다. 흥미로운 사건 전개와 살아숨쉬는 듯 생생한 인물들로 가득했다. 그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소설에 넘실대던 우리 옛말들이었다. 얼쑹덜쑹하다, 부닐다, 바장이다, 군조롭다, 지수굿하다, 되숭대숭 등등. 그 아름다운 말들이 다시 살아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여 입으로 소리 내 천천히 읽었다.
'살강' 또한 무척 아름다운 말이다. 입에 넣고 굴리면,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졸라서 얻어낸 알사탕을 입안에 넣고 또르륵 굴리던 느낌이 살아난다. 하지만 살강은 음식 이름이 아니다. 부엌 부뚜막 위에 간략하게 나무판자로 걸친 선반이다,
그 위엔 주로 그릇이나 수저가 자리했다. 아마 밥을 푸거나 국을 떠서 담기 위해 밥그릇이나 대접을 놓고, 상을 차리기 위해 숟가락과 젓가락을 잠시 놓았으리라. '살강 아래서 수저 주웠다'는 속담은, 그리 뽐낼 일도 아닌데 공치사하는 사람에게 핀잔 줄 때 쓰는 말이란다. 물론 요즘 세상에서 그런 속담을 인용해 핀잔을 주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살강이 뭔지, 그 아래서 수저 줍는다는 게 얼마나 대수롭지 않은 일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도깨비가 까막눈이면 부적이 안 통한다던가.
살강은 요즘 없다. 부뚜막이 없어지며 살강도 없어졌다. 대신 싱크대 위 전기밥솥 옆이나 선반장 안에 식기 건조기가 들어가 있다. 사실 예전엔 살강뿐 아니라 시렁(방이나 마루 벽에 두 개의 긴 나무를 가로질러 선반처럼 만든 것)도 있고, 덕(나뭇가지 사이에 걸쳐진 시렁)도 있었다.
그뿐 아니다. 더그매, 고미, 설렁, 꿰방, 누꿉, 가막마루 등등 우리 옛집엔 그런 아름다운 말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2만여 개나 된다는 옛 건축 용어는 우리 건축 문화가 얼마나 풍요로웠는가를 보여주는 귀한 증거이다. 근대 이후 현대 건축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일본말이나 외래어가 주로 사용되는 동안 이런 아름다운 말이 떠나갔다. 말이 사라지고, 이름이 잊히는 것은 문화가 없어지고 역사가 지워지는 것이다.
첫댓글 옛날 우리집 '살강'은 대나무로 짜여져 있어서 '저범(젓가락)'이 '정제(부엌)' 바닥으로 자주 떨어져 흙투성이가 되곤했다.
'비땅(부지깽이)' 행기뽀(행주)'...
아~정겨운 사투리. 우리 옛말. 시골에서 듣던 말들을 이제 정확히 알게됩니다. 저범.정제.행기뽀.어머니가 쓰시는 말입니다. 알아듣지요. 그런데 비땅은 처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