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6일 교주 마츠모토 치즈오 외 6인
총7인 사형집행에 이어서 오늘 26일
나머지 6인도 사형집행하여.
총13명 사형수 전원 사형집행되었네요.
△이번 사형집행된 6인들중에는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를 한 2명도 사형집행되었습니다.
사실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는 살해를 한 옴 진리교 뿐 아니라
일본경찰과 일본 방레기 기레기
(방송 쓰레기)들도
잠재적 방조자라고 봐야 하죠.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가 좌파변호사여서
(사카모토 변호사가 속한 변호사 모임이
일본 공산당등 진보 계열 지원을 받았죠)
반공꼴통 성향이 강한 일본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늦장을 부렸고.
TBS(도쿄방송)는 취재원
보호원칙을 엿바꿔먹었죠.
△오늘 사형집행장소중 하나인
센다이 구치소 앞에서 중계하는 모습.
■사카모토 츠츠미 일가족 살해사건.
(坂本堤弁護士一家殺害事件)
1980년대 그 악명 높은 옴진리교에
젊은이들이 하나씩 빠져들기 시작해
소재는커녕 생사도 불분명해지자
그 가족들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사카모토 츠츠미였다.
사카모토는 예전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
사건을 맡은 경험이 있는 변호사였다.
옴진리교 신자의 친지들로부터
의뢰를 접수한 사카모토는
옴진리교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옴진리교는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는 옴진리교 피해자
모임을 세우고
각종 인터뷰에 출연하며
옴진리교를 공격했다.
옴진리교는 대응책이랍시고
사카모토가 소속된
법률사무소인
'요코하마 법률사무소
(横浜法律事務所)'에
항의 전화와 항의문을
보내자는 운동을 하고
삐라를 뿌렸지만,
당연히 사카모토 변호사의
평판만 더 높여줄 뿐이었다.
그런 시점에서 TBS는 1989년
10월27일에 방영할 옴진리교
특집 방송을 위해
특집 방송 취재반
(사회정보국, 이하 취재반)은
26일 아침에 옴진리교를
거의 가루로 만들고 있었던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를
인터뷰했다.
같은 날 낮에 취재반은 다시
'보도국 사회부' 기자들과
함께 후지산의 옴진리교 도장을
방문해 교주 아사하라 쇼쿄
(마츠모토 치즈오)의
초능력(사기) 시연을
취재하였다.
보도국의 인터뷰를 마치고
취재반에서도
인터뷰를 하려고
하자 옴진리교측에서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취재반측은
묻지도 않았는데
사카모토 변호사의 인터뷰를
교주의 초능력 시연
장면과 함께 방영한다는 것을
먼저 밝혀 버렸고,
촬영한 영상을 방영전에
옴진리교측에 우선
보여주겠다고 제안하며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회유를 시도했다.
당일 밤 늦은 시각에
옴 진리교 간부 3명이
TBS로 찾아와 방영 전에
변호사의 인터뷰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방송을 불허하겠다며
고집을 부렸고,
결국 TBS측은 옴진리교에
인터뷰 내용을 보여주게 된다.
이때 방문자 중 하나인
하야카와 키요히데(早川紀代秀)는
비디오에 담겨있던 사카모토 변호사의
인적정보를 상세히 메모하였다.
방송국이 인터뷰를 보여주고
나서도 교단 측의 강한
항의 때문에 결국
옴진리교 특집 방송은
결방됐다.
동시 방영하고자 했으므로
당연히, 사카모토 변호사의
인터뷰도 묻히고 말았다.
1989년 10월 31일,
옴진리교의 간부 하야카와와
고문변호사
아오야마 요시노부(青山吉伸)는
사카모토의 법률사무소를
방문해 소송을 회피할 목적으로
사카모토와 교섭하려 했으나,
옴진리교의 병크로 평판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사카모토 변호사는
옴진리교 측의 논리적 허점을
하나하나 반박하고,
옴진리교 교단 전체에
고소를 먹이겠다고
본격적으로 총칼을 빼들었다.
옴진리교는 어쩔 줄을 몰랐고,
교주 마츠모토 치즈오는
사카모토를 어떻게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논의 끝에 결국 사카모토를
살해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옴진리교 신자인 한 변호사를
통해 사카모토의 주소도
손에 넣었다.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가족
참살사건은 이렇게 해서
터진 것이다.
이때 사카모토와 그의 가족,
주위의 변호사들,
옴진리교 피해대책 관계자들,
시민들이 TBS가 저지른 병크를
빨리 파악할 수만 있었더라면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가
잔인하게 참살당하는
피해는 면했을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저
안타깝고
사카모토 이후 옴진리교
피해자 대책 변호인단의
중심 인물로서 활약한
타키모토 타로(滝本太郎)
변호사도 사카모토 씨 처럼
독극물 테러를 당했는데,
타키모토 변호사가
공격을 당했을때에는
그의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그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경찰 등 사법기관과,
중앙정부, 지방정부 전체의
도움으로 일본 전국
각지로 분산 대피해서
사카모토 변호사 때
처럼 일가가 참살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9년 11월 3일,
하시모토 사토루(端本悟),
의사였던
나카가와 토모마사(中川智正),
옴진리교단의 수석 과학자
무라이 히데오(村井秀夫),
오카사키 카즈아키등
옴진리교 간부 6명은
요코하마의 한 전철역에서
사카모토가 귀가할 때
납치해 염화칼륨을 주사해
죽이려 했지만,
이 날은 일본의 공휴일로
사카모토의 사무소도
당연히 휴일이었다.
결국 교주의 지시에 따라
11월 4일 새벽 3시 경
사카모토의 집에 침입했다.
그들은 사카모토와 그의 아내를
구타한 뒤 염화칼륨을 주사하였다.
그의 아내는 주사로 사망했으나
사카모토는 곧바로 죽지 않아
결국 목졸라죽였다.
한 살배기 아들 역시 염화칼륨을
주사한 뒤 천으로 얼굴을
덮어 질식사시켰다.
범인들은 3명의 시신을
드럼통에 집어 넣은 뒤
세 곳의 외딴 시골 지역에
분산해서 암매장하였다.
사카모토 츠츠미는 니가타현에,
아내 사토코는 토야먀현에
, 타츠히코는 나가노현에 묻었다.
만일 시신이 발견되더라도
경찰이 이 3건의 암매장을
서로 연관짓지 못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범인 중 한 명인 무라이는
1995년 4월 23일,
언론 취재진 앞에서
재일 한국인 폭력단원 서유행
(재일교포출신 야쿠자)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재판을 받을 수 없었고.
나머지 5명은. .
주범 -
나카가와 토모마사(中川智正) -
2011년 11월 18일 사형 확정 -
2018년 7월6일 사형집행.
주범 -
하야카와 키요히데(早川紀代秀)
- 2009년 7월 17일 사형 확정
2018년 7월6일 사형집행.
주범 -
니이미 토모미츠(新実智光)
- 2010년 1월 19일 사형 확정
2018년 7월6일 사형집행.
주범
- 오카자키 카즈아키(岡﨑一明)
- 2005년 4월 7일 사형 확정 -
2018년 7월26일 사형집행.
주범
- 하시모토 사토루(端本悟)
- 2007년 10월 사형 확정
2018년 7월26일 사형집행.
일본경찰도 방조자였던것은 . .
사카모토가 소속된 요코하마
법률사무소가 자유법조단
(自由法曹団)소속이었던 것이
일본 경찰이
사건을 형식적으로만 수사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논픽션 르포인
<언더그라운드>에 실린
동료 나카무라 유지
변호사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카모토의 법률 사무소에는
좌파 자유주의적 성향의
변호사들이 많았고,
노동사건 이외 사건도 많이
처리하는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노동사건 등을
많이 처리했던 터라
'특수한' 법률사무소라는
이미지가 널리 퍼졌는데
경찰 관계자들은
일본공산당계열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특히 요코하마 법률사무소는
1986년 11월에 도쿄 마치다 시
(町田市)에서 발각된
일본 공산당 간부 도청사건,
1986년 12월에 발생한
일본 국철 노동조합
요코하마 '인재센터
' 탄압 사건
(国労横浜人活弾圧事件)으로
카나가와 현 지방경찰청과
정면으로 충돌한 이력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일본 국철 노동조합 요코하마
'인재센터' 탄압 사건은
사카모토가 직접 맡은
사건이었다.
이 알력이 가라앉은지
얼마 되지 않아
사카모토 변호사 가족
참살사건이 터진것이다.
반공주의가 강한 일본경찰
조직으로서 일본 공산당과
관계된 변호사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한마디로 좌익 계열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가 당한 살인사건이니
신경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건,
살인사건을 방관한다는
것은 도저히 경찰이 할 짓
이라고 볼 수 없는
명백한 미친 짓이었다.
게다가 피해자 중에는
고작 한 살짜리 아기도 있었는데...
본격적 수사가 다시 진행된것이
사린가스 살포 이후였으니. .
경찰이 썩었다는 것을 보여주는거죠.
1995년 사상 최악의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 등에 관여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하야시 야스오(林泰男·61) 등
옴 진리교도 전 간부 6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고
NHK가 26일 전했다.
이에 따라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지 23년 만에
옴진리교 사건 관련 사형수
13명에 대한 형 집행이 모두 이뤄졌다.
2018년 4월1일 신비한 TV서프라이즈
에서도 이 이야기가 방영되었죠.
첫댓글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싫다.233a,233b,234a,234b 네편에 걸쳐 아주 자세하게 방송하였습니다. 정말 집중해서 영화 보다 더 집중해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13명이 사형집행되면서
사건은 일단은 종결된 듯 합니다.
하지만 유가족들도 기나긴
23년간 지치고
마음이 착잡한듯 합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아키히토 일왕이 내년에
나루히토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줄것이기에
헤이세이 연호 기간에
벌어진 최대의 사건인
옴 진리교 사건을
헤이세이시대 안에
끝맺으려는듯
보입니다.
@풍문으로 들었어 최근에 일본 납북자 관련 에피소드를 했는데 에피소드 첫회에서 풍문님께서 언급하신 헤이세이시대에서 마무리 지으려 하는것 같다는 이야기도 하더군요.
요새도 알게ㅜ모르게ㅜ저런거 있을거 같아요..
일본에 아직 알레프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죠.
우리나라에도 아가동산등에서
암매장한 사건이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