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최정호)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나는 우리말을 8·15 해방으로 국민학교 6학년을 마칠 무렵에야 비로소 배우기 시작했다. 모국어를 ‘반(半)외국어’로, 혹은 제2 외국어처럼 배운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가 배운 제1 외국어는 일본어, 당시는 그걸 ‘고쿠고’(國語)로 배웠고 ‘국어 상용’이라고 해서 일본어를 항시 쓰도록 강제당했다.
해방과 더불어 갑자기 학교에서 진짜 '국어'를 공부하게 되니 어렵고 낯설기까지 했다. 그럴수록 일본말과 우리말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느꼈다.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우리말엔 3음절 낱말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우선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 마당에는 '개나리' '진달래' '봉숭아', 하늘에는 '비둘기' '까마귀' '기러기' 등등. 그뿐만 아니라 우리 노래가 '아리랑' '도라지' '양산도' 등 제목뿐 아니라 그 가락이 일본 것과 달리 3박자라는 것도 깨달았다. 1·4 후퇴 때 월남한 '가고파'의 김동진 선생을 뵙고 세계 민요 대부분이 2박자인데 한국 민요의 3박자는 예외적 사례라는 걸 확인했다.
한자에서 온 숙어 태반이 2음절인 데 비해 3음절의 우리 낱말, 3박자의 우리 민요 가락을 보면 우리 겨레는 음악적 천성을 타고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새소리와 고음을 다투는 듯한 조수미의 콜로라투라를 들을 때면 더욱 그렇다. 그 꾀꼬리 같은 목소리.
아, 꾀꼬리!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3음절 말이 또 있을까. 우구이스, 나이팅게일, 나흐티갈, 로시뇰, 우시뇰로…. 다른 어떤 나라 말보다 꾀꼬리다운 우리말의 꾀꼬리 이름! '황금 갑옷 떨쳐 입고… 제 이름을 제가 불러 이리루 가며 꾀꼬리루 저리루 가며 꾀꼬리루…'라고 남도 민요 '새타령'도 읊고 있다.
이게 곧 “바람 소리나 학 울음,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 표현할 수 있게 된”(정인지) 한글 창제 덕이다. 이 겨레의 큰 어른 세종대왕께 큰절을 올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