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만 작가 출판기념회
안녕하세요. 강병철입니다.
저는 생김새도 허술하고 통솔력도 약한데 어찌어찌하다가 모임 자리에서 회장이라는 직함을 맡은 적이 여러 차례 있답니다. 동창회 회장 임기가 2년인데 아차, 실수로 저 혼자만 연임을 했는데 코로나가 겹치는 바람에 6년 동안 맡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제 모임 중의 하나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조동길 교수님을 ‘회장님’하고 부르는데 끄떡끄떡 졸고 있던 제가 ‘네’ 하고 대답하며 벌떡 일어난 적도 있어요.
그리고 몇 년 되었지요. 『내가 뭐 어때서』의 작가 황선만 선생님이 사무국장을 맡고 제가 <충남작가회의>의 회장 자리를 맡은 적이 있었어요. 저는 여러모로 무능하므로 그저 순수한 인품 하나로 버텨야 하는데 이 인품이라는 게 누가 받쳐줘야 가능하지 마구잡이로 흔들기 시작하면 낙엽처럼 떨어질 수도 있거든요. 돌이켜보면 소소한 비하인드 스토리이지만 그때 황선만 작가에게 몸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의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멘탈이 약해서 조금만 힘들어도 상처를 싸맨 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스타일인데 그는 늘상 웃더라구요. 일 처리를 대범하고 편안하게 하는 소위 놀랍도록 상남자 스타일이었어요. 아무튼 사업가 후배를 사무국장으로 만드니 든든하긴 했어요.
어느날 그가 말했어요. 자기는 대학 시절 이후 지금까지 ‘소설을 쓰지 않는 인생’을 생각해본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구요. 그의 무심한 고백에 저는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그가 사업가였기 때문이지요. 사업의 규모를 저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지만 크기의 여부를 떠나 지금까지 ‘사업하는 소설가’를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아무튼 지금은 그도 소설가이고 저도 소설가입니다.
일반적으로 시는 직관과 감성의 소산입니다. 흘러가는 일상의 스크린 ‘시인의 눈’으로 잡아서 원고지에 옮기는 천부적 감각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소설가는 곧 노가다입니다.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누가 더 질기냐를 따지는 엉덩이 싸움이지요.
저는 1년에 절반 정도를 작가촌에 다니는데 거기서 시인과 소설가의 스타일에서 많은 차이를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시인은 일주일에 한 편만 써도 1년에 한 권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다작이고 솔직히 그 정도 쓰면 너무 많이 쓴다고 욕을 먹을 만큼의 분량이지요. 그러니까 시인들은 책을 읽고 벌판을 걷고 술을 마시면서 머리 속에 시상을 축적하는 일상을 보내는데 소설가는 다르지요. 죽어라고 쓰고 또 써서 원고지 분량을 채워도 이게 판매가 되느냐 마느냐의 벽이 남아 있지요.
또 시인처럼 일단 써놓은 다음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내 시가 최고야’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게 소설을 일단 써놓으면 견적이 객관적으로 나오거든요.
그런데 사업가 황선만 후배가 소설을 쓰겠다는 얘기에 나름 걱정도 했답니다. 아무튼 오늘 그의 첫 작품 『내가 뭐 어때서』가 출산되었으니 그의 고백이 팩트가 되었네요. 이제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작가 중에서 그는 최초의 ‘사업하는 소설가’입니다.
보령은 망자가 되신 이문구 선생님이나 울보 김성동 선배님처럼 6.25 직후 이념의 상흔이 남은 채 글을 쓰신 선배님들의 후광이 있는 공간이지요. 그리고 사업체를 접고 전업 작가가 된 안학수 서순희 부부 작가도 있으며 일찍이 필발을 뻗친 생계형 작가인 김종광 소설가의 고향이기도 한데 이제 황선만 소설가가 그 길에 동참한 게 확실하네요. 두렵고 설레는 상황이지요.
오늘 이 자리에 서기 위해 저는 『내가 뭐 어때서』를 세 번 정도 독파했습니다. 그의 소설 서두는 그의 표정처럼 화사하고 아스라한 배경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주변의 신변잡기가 순식간에 소설적 구성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소설가들과 술자리 나누는 걸 싫어할 수 있는 게 무심히 나눈 대화들이 소설적 소재에 포함되기 때문이지요.
통로가 없는 벌판의 맹지 매매 과정의 복마전, 사진작가의 공모전 스토리, 잃어버린 관상수나 보따리를 찾기 위한 CCTV의 추적과 허망함, 코로나 시대의 자영업자의 애환과 마지막까지 놓지지 않으려는 사업의 의지, 586운동권 출신들의 사회적 클라스에 대한 에피소드, 그리고 마지막 주연배우는 학교 자모회장이라는 소소한 자리를 놓고 벌이는 긴장감들이 답답하고 유쾌하게 전개됩니다.
그리고 황선만 작가는 마지막까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슬쩍 출구를 열어놓습니다. 인생에 결론이 없듯이 소설에도 마지막 반전과 반전을 통한 결론은 그야말로 흔한 소설적 구성일 뿐 기실 인생은 결말이 없지요.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 『토지』의 마지막은 식민지의 햐방 공간이고 김성종 선생님의 『여명의 눈동자』는 주인공 여옥의 정신질환으로 자감이 되지요. 그런데 황 작가는 마지막에 또 하나의 출구를 열어놓습니다.
아, 오늘 이 자리 이후 그의 도약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너무 서두르지는 마시고요. 솔직히 말하면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작업을 일단은 누리셔도 됩니다. 천천히 축적시켜서 또 한 방을 터뜨리고 나중에는 아주 큰 걸 보여주시기를 기대하며 이쯤에서 인사를 가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