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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순천에서 인문학 콘서트가 있는데 이야기 손님으로 박두규, 박남준 시인, 공지영 작가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냉큼 표를 구했다. 요새 대세인 ‘ ~콘서트’ 에 가보고는 싶었으나 마땅한 기회가 없었는데, 공짜 콘서트인데다가 학창시절부터 좋아하던 공지영 작가를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순천 사는 친구에게 아이들을 맡아 달라 부탁을 하고 초행길인 그곳에 무작정 가기로 했다. 오늘은 이 계획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하루라고 즐거워하며, 나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준 친구에게 무한 감사하며 순천 건강문화센터로 향했다.
지난 순천 문학 아카데미에서 박두규 시인을 몇 차례 뵈서 박두규 시인에 대해서는 나만의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고, 박남준 시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공지영 작가는.. 학창시절 ‘고등어’를 시작으로 ‘봉순이 언니’ ‘착한 여자’ ‘즐거운 나의 집’ ‘네가 무엇을 하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도가니’ 등과 최신작 ‘높고 푸른 사다리’까지 구입해서 읽었으니 뭐..이 정도면 내가 유일하게 “저 작가님 팬이에요”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작가 (신경숙 소설가도 좋아하긴 하나) 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혹시라도 싸인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싸인 받을 책 두 권까지 챙겨들고 나왔었다. 순수한 것인지 유치한 것인지 덜 자란 모습 그대로. 게다가 미처 다 못 읽은 ‘높고 푸른 사다리’를 아침까지 급하게 읽었다. 또 혹시나 질문할 기회가 있을지 몰라서...
공연은 순천금당고등학교와 순천여자고등학교 주최로 이루어진 까닭에 금당고 학생 150여명, 순천여고 학생 200여명이 주된 방청객이었고, 교사, 학부모, 순천시민, 여수시민(나)등을 포함 약 500여명의 청중이 모여 있었다.
나는 왼쪽 가장자리이긴 했으나 그래도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금당고 박종선 선생님의 사회와 금당고 2학년 김이레 군의 ‘엔터테이너’,‘레드존’ 피아노 연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 손님은 박두규 시인 이었다.
박두규 시인은 2004년 ‘생명 평화 결사대‘를 조직하고 생명평화운동을 실천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생명평화운동은 현재 자본 중심의 삶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출발하며 성찰과 수행의 문화를 세워 개인과 사회의 가치의식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삶과 새로은 문명을 지향하자는 사회적 실천운동이다.
현재 대한 민국은 세월호 사건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으로 구분되어 질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이 하나의 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을 해야만 한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물어야한다. 사고방식, 인간관계, 생활환경 등 모든 것이 자본 위주가 되어버린 우리의 삶. 친구를 사귈 때조차 저 아이가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를 먼저 따져보고 친구를 사귀는 현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이런 것들의 필연적 귀결이 바로 세월호 사건이다. 자본위주의 삶이 변하지 않는 한 세월호 사건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잘 알려진 인디언 이야기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어느 인디언이 지나가는 길에 조금 커다란 알을 하나 주웠다. 집으로 돌아와 닭장에 던져 넣었는데 얼마뒤 닭보다 조금 더 큰 새가 알을 깨고 나왔다. 그 새는 저보다 작은 닭을 어미로 알고 자랐고 마당에서 모이 쪼아먹으며 여느 닭처럼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새는 하늘을 보다가 너무나 멋지게 하늘을 나는 새를 보게 된다.
“ 엄마, 저 새는 무슨 새야?” “ 저 새는 황금 독수리라는 새 인데 우리 같은 닭들은 쳐다보지도 못할 멋진 새 란다” “아 그렇구나!”
사실 그 알은 황금 독수리의 알이었다. 어린 황금 독수리는 자신이 황금 독수리임을 꿈에도 모른채 닭처럼 자라고 죽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사실 훨씬 더 훌륭할 수 있다.
한 번 왔다가는 내 인생에서 내가 가진 생각을 발현하고, 내 생명을 발아시키는 것, 자본주의에 이끌려 가는 삶이 아니라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두 번째 이야기 손님은 박남준 시인 이었다.
박남준 시인은 그랜드 피아노 옆에 서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며, 갖다 주기를 부탁했던 의자를 다시 물리고 피아노에 팔을 기댄채 서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거기서부터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인은 자신을 영광 법성포 태생인데 지금은 하동 지리산 자락에 거주한다고 소개하셨고, 지리산으로 오기 전에는 전주 모악산에서 13년 정도를 사셨다고 했다. 한국 방송작가 구성작가 공채 1기였으며, 한 때 돈도 꽤 잘 벌었으나, 돈을 쓰지 않는 삶을 꿈꾸며 산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돌싱이 아닌 모태 솔로임도 밝히셨다.
시인은 사진을 통해서 시인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들려주었는데 참으로 눈과 귀가 호강하는 시간이었다.
시인의 집. 여름 풍경(오늘 아침 사진). 지난 겨울 풍경. 시인의 농사 이야기. 모기장 처진 밭. - 이 사진에서 시인은 이 세상은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긴 해야 하나 함께 살고 싶지 않은 생명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무를 보호하기 위해 무 밭에 모기장을 쳤고, 어느 정도 무가 자랐을 때 그 모기장 울타리를 걷어냈다고 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보호를 받아야 하듯이 어린 무도 모기장의 보호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꽃의 사진을 볼 때마다 ‘와~’하는 탄성이 쏟아졌고, 시인이 손수 만든 곶감, 선물용 차, 부채..특히나 그림 같던 시인의 밥상 앞에선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나중에 질의 시간에 한 학생은 “선생님의 요리는 어디서 배우신 걸까요? 직접 터득하신 걸까요?”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시인은 특유의 울림이 있는 느린 말투로 “ 음..사실 요리법은 그 재료가 말하는 대로 만드는 겁니다. 나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너는 어떤 요리가 되고 싶으냐 물으면 저는 고춧가루는 싫고요 간장하고 마늘 조금 넣어서 무쳐주세요. 당신과 나만의 식탁은 삭막하니 꽃도 좀 놓아주세요 ” 라고 재료들이 말을 한다고 했다. 아, 정말 시인다우시다.
또 하나 기억나는 사진. 장작더미. 그 많은 장작을 이틀이면 팬다고 하셨다. 어떤 이는 한달을 어떤 이는 2주를 예상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이틀이라고 맞췄다. 장작 팰 때는 화가 날 때라고 하시며 ‘이명박이 대통령 취임할 때’ ‘ 이명박이 4대강 사업을 죽어라고 한다고 했을 때’ 그럴 때 이틀이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꽃 잎 띄운 작은 돌 수조에 여러 해 나타난 청개구리 사진을 보여 줄 땐 인간만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다. 그 밖에도 가시연꽃에서 배운 점, 금목서,은목서에 얽힌 이야기, 시인의 발꼬락에 찾아 온 나비, 그 덕에 무좀을 낫게 된 사연, 새 하얀 부추꽃 사진.. 시인의 일년을 함께 한 느낌이었다. 삶으로 보여주는 소박함, 진지함, 열정, 시인의 삶은 곧 시였다.
그래서 나는 시인의 삶, 시인의 시가 더 궁금해졌고, 집으로 돌아와 검색하다가 까페에도 가입했다.
박남준 시인의 매력은 앞으로도 차차 더 알아가야겠다. 시인이 낭송했던 ‘ 흰 부추꽃으로’ 시 한편으로 마무리해보자.
흰 부추꽃으로 / 박남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들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세 번째 이야기 손님 전에 조이플 앙상블의 공연이 있었다.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눈물을 뺐다가 춤을 추게 하기도 하고 사람을 들었다 놨다한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이들의 공연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드디어 마지막 이야기 손님.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그녀.
그녀가 등장했다. 아이들도 무척 환호했다.
사실, 첫사랑은 안 만나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 오늘 좀 느꼈다.
학생들 대상으로 한 콘서트여서 였을까..바쁘게 마감해야 할 글이 있다며 시간이 부족함에도 예전에 한 약속이었기에 내려왔다는 그녀, 또 대담형식인 줄 알고 30분간 혼자 강연해야 하는 줄은 몰랐다며 준비해 온 것이 없다고 솔직히(?) 말하는 그녀에게 난 좀 실망했다.
그녀는 이 세상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것은 ‘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없다.’
사실 난 좀 뭔가 다른 것을 기대했었다.
아이들에게 요즘의 현실과 맞물려.. 좀 더 진지한 이야기.
물론 ‘나를 사랑하라’라는 주제도 지금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고’ ‘ 이 세상을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아이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았으면 했는데,
이야기는 그냥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첫 째는 내 몸에 좋은 음식을 주는 것이요, 책으로 내 마음을 살찌우는 것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로 끝나고 말았다. 학생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서울에서 내려온 (난 사실 그녀가 지리산에서 사는 줄 알았는데?) 베스트 셀러 작가의 이 조언이 가슴 깊이 와 닿아 질풍노도의 이 시기에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와 자신을 새롭게 다잡을 기회로 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뭔가 많이 부족한듯한 이 느낌은 뭐지.. 뭔가 성의 없어 보이고.. 이 말 하려고 여기까지 오신걸까..싶게 만드는 가벼움은 뭐지..
내가 조언해도 저것보단 나을 수 있겠다는.. 나의 오만함을 불러일으키는..강연.
물론 짧은 시간 촉박함 속에서 많은 것을 나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짧더라도 강하게 무언가를 심어 줄 수는 있었을텐데.
공지영 작가 뿐만 아니라 오늘 인문학 콘서트에서 내가 부족하게 느꼈던 것은 ‘진지함’이었다.
이 또래 아이들이 얼마나 진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인생의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우리는 진지해야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말이다. ‘자본주의 세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자본주의’가 뭔지 알고 있을까?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의 분수령이 되어야한다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왜 잊지 말고 기억해야하는지 좀 더 친절하게 자세히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설명해주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학생들 대상의 인문학 콘서트인 만큼 돌아가는 발걸음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 사회’에 대해 좀 더 성찰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 준비의 진지함이 오늘 세 분 작가에게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세월호 사건 뿐 아니라 오늘 발의 된 의료민영화라든가 비정규직 문제 밀양 송전탑문제 등 아이들과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주제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은 어른들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아이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묻지 않는 강의 형식의 콘서트. 어쩌면 그런 것들이야말로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일텐데...이곳에서조차 가만히 앉아 들어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20년 전 나 어릴 때는 이런 기회조차 없었다 싶어 부러우면서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과 아쉬움 또한 들었다.
다음 인문학 콘서트는 좀 더 철학적이고 현실 문제를 아이들과 함께 토론해보는 자리이면 어떨까 한다.
약간의 실망감에도 불구하고 공지영작가의 싸인은 꼭 받고 싶었으나 끝나자마자 무대 뒤로 사라져 홀연히 떠나버린 그녀와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무거운 가방만 원망하며 돌아왔다.
사실 그들은 유명인, 우리 같은 일반인에겐 눈인사 한 번, 악수 한 번, 싸인 한 장이 인생의 어떤 계기가 되는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는데..그들에겐 우리의 시간에 의미를 부여해 줄 여유가 없어 보여 슬프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내가 유명해져서 강연을 다닐 날이 온다면 난 꼭 하루를 꼬박 시간 내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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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기까지 자세히 남겨주는 수진씨덕분에 저도 인문학콘써트를 다녀 온 듯합니다.. 박남준시인에게 푹 빠지신듯하고 공지영작가에겐 약간 실망한 듯합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큰 선물인 듯 다가오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듯 하네요~~
다녀온 후기가 궁금했는데 잘 읽었어요.우리 빗살은 또 한 명의 후기실력가(?)를 발굴했네요.
목 욜에 가능하면 박남준에 관해 한창훈 소설가가 쓴 얘기를 갖고 갈게요. 저도 그 글을 읽고 그 남자가 궁금해 도서관서 여러권의 책을 빌렸었지요.
기대하세요
박남준 시인의' 흰부추꽃으로' 시처럼 그런 날이었군요 후기가 감동입니다~^^
콘서트 좋은 이야기 옮겨주심 감사. 잘 읽었네요.^^
만에 하나라도~ 수진씨 강연 기대 할께요 화이팅!
문학콘서트~~ 문학청년시절의 약이기도 하고, 어느 땐.....?? 규정하기 어려운 행사지요. 수진씨의 수필 쓰기~ 즐거운 읽기!
문학콘서트..후기..수진이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즐거운 쓰기에 나는 즐거운 읽기를 하고 갑니다^^
유명하신 분들이 위쪽에 많다 보니 시간에 늘 쫓기는것 같아요. 광명에도 공지영 작가가 왔어요. 그날은 여유있게 강의하고 싸인도 해줬는데, 청소년들은 기대가 컸을거라 생각하는데 아쉽네요. 수진씨의 후기를 읽으며 많은 것을 느끼게 하네요. 꼼꼼하고 솔직하게 표현해주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