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향의 미국편지(3177).[문화 산책] 짜장면과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에 대해 공부하며 자료를 찾다가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검은 유혹, 맛의 디아스포라 짜장면’이라는 책이다. ‘면발로 잇고 읽는 한·중·일 문화 삼국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는 연세대 중문과 유중하 교수다.
노신을 연구하던 중 10여 년 전부터 우연히 중국 산둥 출입이 잦아지면서, 화교가 한국에 들여온 짜장면이라는 음식에 새삼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짜장면 혹은 중국 음식에 제법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공부하다보니 ‘짜장면 박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한다.
사람의 이주만이 아니고 음식이나 맛에 디아스포라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그렇다면 문화 예술에도 디아스포라의 긍정적 가능성을 적극 활용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짜장면은 디아스포라의 성공적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중국의 한 변두리 산동 지방의 음식이 한국으로 건너와 100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완벽하게 현지화에 성공하여, 지금은 하루 평균 700만 그릇이 팔리는 ‘국민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도 ‘중국음식’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외식(外食)이라는 특성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흔하지 않은 사례다.
사람이나 문화에서도 이와 같은 이동과 완벽한 뿌리내리기가 가능할까? 세계적으로 각 분야에서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쟁, 정치 분쟁, 종교 갈등, 경제적인 이유로 국경의 의미는 희미해지는데 국가간의 힘겨루기는 심화되는 현실에서, 살던 곳을 떠나 이동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많아졌다. 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700만 해외동포에 관한 책이나 연구 논문들로, 아직은 재일교포, 중국 조선족, 러시아 고려인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룬다. 미주 지역의 하와이 사탕수수밭이나 독립운동, 멕시코, 쿠바를 다룬 책도 물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초보단계인 것 같다.
이에 비해 실제로 미국이라는 타향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디아스포라라는 낱말이 영 낯설다. 그 이유는 그동안 우리를 설명하는 이민자, 교포, 동포, 재미한인, 코메리칸 등의 낱말로 만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디아스포라란 강제적, 비자발적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 쫓겨난 사람들을 뜻한다는 고정관념도 컸다. 그렇게 본다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제 발로 이주한 이민자들은 디아스포라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민자’라는 개념만으로 해석하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복잡해졌다. 근본적으로 이민이란 나라와 나라 사이의 법적인 문제라는 성격이 강하지만 디아스포라는 의식의 문제이고 긴 역사를 가진 문제다.
당장 우리 눈앞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 2세들은 이민자도 교포도 아니다. 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미국 사람이다. 그렇게 자란다. 그런데도 이민 1세들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나 한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민자라는 개념으로는 우리 2세들의 정체성 혼란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2세들이 디아스포라에 대해 관심이 높다. 물론 2세들이 생각하는 디아스포라는 우리 1세들의 그것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다인종,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디아스포라의 당면 과제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일이다. 예술분야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정체성은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아주 작고 소박한 것으로도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작은 영화 ‘미나리’가 그 가능성을 증명해주었다. 정말 고맙다.
출처:[문화 산책] 짜장면과 디아스포라 / 장소현 / 시인·극작가
08-13-21(금) 미국에서 덕향 이 게시물은 원작자의 동의없이 옮겨 쓴 것입니다. 불편하시면 말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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