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의 추억
최 옥분
이웃에 사는 권사님이 토마토를 한 소쿠리 가득 담아왔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갓 따온 것이라 싱싱했지만 약간 터진 것도 있었다. 토마토를 선별해서 냉장고에 보관하고 터진 것은 썰어서 스프를 만들기로 했다.
토마토를 깨끗하게 씻어서 네 조각으로 썰어놓았다. 냄비에 올리브기름을 두르고 마늘 한 수저 듬뿍 넣고 볶다가, 토마토를 넣어 볶았다. 조리를 하다가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음력 유월 증조모님 제사가 있었다. 여름 제사상에 차려진 낯 설은 과일, 감처럼 생겼지만 홍시도 아닌 것이 빨갛게 익어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제사를 지낸 뒤 음복을 하는데, 그 맛은 보기와 달리 아무 맛이 없었다. 큰아버지는 그 때 토마토를 과일로 알고 사셨는지, 알 수 는 없지만, 그 다음 부터는 토마토가 제사상에 오르지 않았다.
여름 방학 때 외갓집에 갔다. 외갓집에는 포도밭과 담배농사를 지어 여름에도 늘 일이 많으셨다. 하루는 큰외숙모가 백철다라이에 토마토를 가득이고 오셨다. 밭에서 붉고 푸른색이 도는 반쯤 익고 탱글탱글한 것을 사 오셨다. 작은외숙모는 먹기 좋게 썰어서 사카린을 넣고 두루두루 섞어 한 대접씩 두레상에 펼쳤다. 외할머니, 큰외숙모 작은 외삼촌 식구들과, 엄마와 동생이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달콤하고 아싹한 토마토를 맛있게 먹었다.
토마토에 대한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까 학교 뒤 텃밭에 교육용으로 토마토를 재배했다. 오이처럼 받침대를 세워서 가지를 묶어 키웠더니 파란 방울 같은 토마토가 열렸다. 호기심 많은 남학생들이 왕사탕 같은 토마토를 따먹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이 남학생을 잡아다 입에 토마토를 물려 교실마다 다니며 창피를 줬다. 어린 마음에도 그 벌칙은 너무 가혹하게 느껴줬다. 그 시절에는 가난해서 밥을 굶는 집도 있었다. 배가고파서 따먹었는지 호기심에 따먹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생각 해봐도 그 방법은 좋게 생각되지 않는다. 따먹은 것은 잘못이지만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컷을까.
결혼 후에는 남편의 공무원 첫 발령지인 청송에서 일 년을 살았다. 임신을 했는데 토마토가 먹고 싶었다. 동네 가게에 갔더니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몇 개 담아 진열 해 놓았다. 값을 물어보니 생각 보다 비쌌다. 남편 월급이 육 만원을 겨우 넘는 돈으로 월세 만원과 저축2만원을 하고 나머지로 쌀과 식료품등을 사야하고, 한 달을 살아야하니 값 비산 토마토를 선 듯 살 수가 없었다. 청송 장 날 시장으로 갔지만 토마토는 사지 못하고, 풋사과 한소쿠리를 사왔다. 꿩 대신 닭이라더니 제대로 익지 않은 사과는 새콤하고 떨떠름하며, 풋내가 낫지만 한 참에 몇 개를 먹었다.
딸아이가 태어나 세 살쯤 되었을까 토마토를 사왔더니,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며 토마토를 달라고 한다. 한 개를 줬더니 방긋 웃었다. 앵두 같은 입술로 그 큰 토마토를 오물오물 잘도 씹어 먹었다. 태중에서 먹고 싶어 하던 토마토를 주지 못했는데 그렇게 잘 먹다니 놀랍고도 신기했다. 지금도 딸은 토마토를 잘 먹는다.
요즘은 하우스로 재배해 사철 먹을 수 있지만, 70년대는 자연재배로 많이 심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청송에서는 재배도 하지 않고 외지에서 사와서 파는 것 같았다.
이제는 자녀들도 다 자라서 새로운 둥지로 떠나고, 큰아버지와 외갓집 식구 모두가 고인이 되신지 오래지만, 스프를 만드는 동안 토마토에 얽혀진 기억들이 되살아나 잠시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토마토 스프가 걸쭉한 농도로 만들어 졌다. 간을 맞추고 불을 껐다. 양이 제법 되어 한참을 먹겠다. 텃밭을 가꾸는 인심 좋은 권사님 덕분에 마음이 풍성하다, 오늘 저녁에는 스파게티를 해먹어야겠다.
23.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