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하던 노부부가 있었다.
아침에 눈만 뜨면 남편은 아내에게 욕부터 했다.
이래도 욕, 저래도 욕이었다.
처음에는 아내도 그저 참고 넘겼다.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들까지 어머니 편에 서고,
동네 사람들까지 나서서 남편에게 한마디씩 한다.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진다.
부부가 크게 다투고 나면
동네 사람들이 아내를 불쌍히 여겨 장사를 도와준다.
장날이면 더하다.
아침부터 한바탕 소란이 나고 나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물건을 다 팔아준다.
저녁이 되면 또 다른 일이 이어진다.
지쳐 앉아 있는 아내를 대신해
동네 사람들이 물건을 집 안으로 들여다 놓는다.
그리고 밤이 되면
남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막걸리 한잔을 같이 하면서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같이 잠을 잔다.
참으로 묘한 일이다.
한쪽만 보면 반대편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부부의 다툼을
그저 지켜보았다면 어땠을까.
정 힘들다면
신고 한 번으로 끝날 일이다.
하지만 간섭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남편의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판이 더 커진다.
싸우는 이유는 당사자만이 안다.
간섭이 없으면 시간이 지나며 자연히 잦아들 수 있는 일도,
간섭이 많아질수록
더 오래, 더 크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동네 사람들이 함께 감당하게 된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말한다.
“이 동네 왜 이래?”
그 말이 쌓이면
질량 높은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가벼운 사람들만 모여드는 곳으로 변해간다.
그러고 나서야 말한다.
“옛날에는 장사가 잘됐는데…”
정말 상대를 위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간섭이 아니다.
강 건너 불을 보듯
한걸음 물러나 지켜보는 일,
그리고 그 시간에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우리의 집 역시도
다른 형태의 다툼이 생길 수 있는 환경 속에 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이면 환경이고,
들리면 준비할 때다.
출발선에 선 선수는
결승선을 바라보며
총성만 울리기를 기다린다.
간섭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문제를 더 오래 살게 할 뿐이다.
2026년 4월 26일사회 연구원 김수길
길을 물으면 정성껏 가르쳐주고
묻지않으면 지켜본다.
묻지않는것에 대하여
말을하면 간섭이된다.
간섭한 댓가는 자신이 오로시 다 감당을 해야 한다.
정법강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