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여행기⑮ - 돌아옴
칠레 산티아고를 떠나 04:40 리마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유난히 좌석이 비좁고 불편했다. 어제 오롱고(Orongo) 15km를 걸어서 다녀온 때문인지 힘든 비행길이었다. 산티아고 공항에서 밤 8시간여를 뜬 눈으로 새운 남편과 딸은 비행시간 내내 깊은 잠을 잤다.
09:00 리마 도착(리마 시간으로 07:00임)
출국 심사를 마치고 다시 찾은 페루 리마.
안개 자욱한 리마의 이른 아침은 등교와 출근길로 북적였다.
페루 여행의 마지막 숙소(쿠스코에서 돌아와 칠레 이스터 섬으로 가기 전에 캐리어를 맡겨 놓았던,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향해 달렸다.
칠레 이스터 섬에서 산티아고를 거쳐 페루 리마까지 무박 2일. 리마에서 미국 달라스행 비행 탑승 시간까지 16시간 체류, 이어서 달라스에서 일본 나리타까지, 마지막으로 한국 인천까지 쉼 없이 이어지는 무리한 일정을 염려하여 잠깐이나마 휴식 공간을 마련한 딸의 지혜로운 센스는 여행 중 산뜻한 별식 같았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깔끔, 심플함으로 재치 있는 당부 글까지 한국인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한 숙소에서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잠깐 수면을 취한 후, 며칠 전에 다녀갔던 대형 복합쇼핑몰 라르꼬마르(Larcomar) 식당가에서 차이나 웍, 라루차, 빛깔 좋은 맥주로 요기를 하였다.
*대형 복합쇼핑몰 라르꼬마르(Larcomar) 식당가에서 차이나 웍, 라루차, 빛깔 좋은 맥주로 요기를 하다
멀지 않은 곳에 아주 부자들이 산다는 바랑코(Barranco, ‘벼랑’이라는 뜻) 마을이 있어서 싸목싸목 걸음 하는데 바랑코 (Barranco) 마을 입구부터 아주 한적하고 깨끗한 거리, 넓은 면적에 잘 정돈된 정원의 고급 주택들, 대문 앞에 보안관 차림으로 경비를 서고 있는 경비원들이 보였다. 부자 내음이 물씬한 동네였다. 아담하고 정갈스런 바랑코 (Barranco) 광장에 앉아 모더니즘과 세미 클래식한 바랑코 (Barranco)를 여유로이 즐기다가 수십m 떨어진 거리에 있는 도로 벽화로 유명한 ‘한숨 다리’를 찾아 갔다.(‘한숨 다리’는 바랑코 (Barranco) 마을 부자 처녀와 다른 동네 가난한 청년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기리기 위해 만든 다리라고 한다)
* 바랑코 (Barranco) 마을의 고급 주택들이 이어지는 거리
* 바랑코 (Barranco) 광장에서 한가함을 즐기고 있는 남편과 딸
* 바랑코 (Barranco) 마을에 있는 '한숨 다리'아래를 걷고 있는 남편과 딸
‘한숨 다리’는 다리를 건너는 동안 숨을 쉬지 않고 건너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근거 없는 풍설(風說)이라고 귓등으로 흘리면서도 배 불룩하게 들이마신 숨이 행여 콧바람에라도 새어나갈까 단숨에 건너갔다.(다리 길이가 아주 짧음)
전혀 번잡하지 않고 오밀조밀한 바랑코 (Barranco) 마을을 골목골목 돌아보며 새롭게 여행 기분에 젖어 리마 첫날 멋진 야경과 낭만을 선사해 준 케네디 공원을 다시 찾았다. 페루에서 유명한 쫄깃달콤한 츄러스와 새콤달달한 아이스크림의 감미로움은 추억 속의 한 갈피로 저장이 되고, 직장인, 관광객들이 붐비는 시내를 지나 숙소 근처 대형 복합 쇼핑몰 라르꼬마르(Larcomar)에서 페루산 맥주와 와인을 기념 삼아 한 아름 사서 들고 리마의 마지막 행보를 마무리했다.
* 페루에서 유명한 쫄깃달콤한 츄러스와 새콤달달한 아이스크림
*리마의 케네디 공원
옷가지 몇 점을 버리고 나면 훨씬 가벼워질 줄 알았던 짐덩이가 술, 소금(살리네라즈 産)으로 인해 무게가 더해진 느낌이다.
친절하고 정스런 숙소 주인의 배웅을 받고 리마 공항에 도착. 달라스행 비행기에 탑승(10/1일 23:50) → 10/2일 06:40 달라스 도착 → 10/2일 10:40 달라스 출발 → 10/3일 12:20 나리타 도착(한국 시간 14:20분) → 한국 인천공항 20:00 도착
여행을 떠날 때와는 달리 돌아오는 비행시간은 전혀 힘겹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일반석보다 조금 나은 프리미엄급 좌석에서 두 끼의 기내식을 아주 맛나게 먹고 3편의 영화까지 몰두하여 탐닉했다.(유브 갓 메일,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42. 더 보고 싶은 영화가 많은데 한국어로 번역된 영화가 많지 않음)
* 귀국길에 비행기 안에서 먹은 기내식들
내 나라 한국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설렘, 약간의 흥분까지 곁들여져 온몸에 생기가 감돌았다.
보름 전 이륙하여 보름만에 무사히 착륙한 인천 공항. 그저 반갑고 감사했다.
공항 출입구에 우뚝 서서 우릴 반기는 훤칠한 아들이 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생사의 갈림길에서 귀환한 것도 아니건만 내 나라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개무량했다고나할까.
제 갈 길 찾아 총총히 사라져가는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걸으며 제일 그리웠던 한국의 냄새, 김치찌개를 먹으러 갔다. (작년 유럽 여행시 들렀던 공항 근처의 식당)
돼지고기 뚝뚝 썰어 넣고 새콤한 묵은지로 보글보글 끓여낸 김치찌개를 바닥내고 나니 속이 어찌나 개운하든지.(우리의 귀국을 위해 밥을 짓고 된장찌개를 끓여 놓은 아들에게 미안했지만 우리 식구와 함께 맛있는 김치찌개를 맛보고 싶었다)
* 인천 공항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네 식구가 함께 먹은 김치찌개
아들의 차로 서울집에 귀가하여 육질 좋은 소고기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를 안주 삼아 페루의 술 피스코 사워(Pisco Sour)로 목을 축이며 그 머나먼 곳, 페루, 리마, 쿠스코, 마추픽츄, 이스터 섬 모아이, 쪽빛 태평양을 그 밤 내내 건너고 또 건너고…….
남미라는 거대한 대문을 열어 아빠, 엄마, 누나까지 뚜벅뚜벅 걷게 해준 아들. 글 속에서의 영감으로 6개월 여 준비 끝에 한 걸음 한 걸음 새 세상을 만나고, 어느 곳에서든 얼핏얼핏 투영되는 아들과 내통을 하면서 우리는 통째로 하나가 되었다.
우리 가족 네 사람의 소통과 공감의 깊이와 넓이를 한층 깊고 넓게 만들어 준 귀하디귀한 선물, 남미 여행. 소중한 기회였다.
15일 동안의 길지 않은 여행이 어느 값진 책 한 권 읽은 후의 감동에 비할까?
다음날, 새벽 같이 일어나 광주에 내려가는 부모를 끝까지 챙겨 보살펴주는 딸의 변함없는 속 깊은 배려, 극진한 정성은 엄마인 내게 늘 깊은 울림으로 간직된다.
15일 전, 늦여름 더위 기승 때문에 반 팔 행장으로 떠났던 길이 선선한 가을 초입이 되어 서창들녘이 누렇게 물들어 있다.
내게 다시금 다가오는 그리움, 낯익음, 익숙함, 편안함이 여유로워 좋다.
그래서 여행이란 결국 돌아옴일까.
+ 후기
돌이켜 보니, 남미 페루 여행은 내게 너무 크고 벅찬 여행이었다.
더 넓고 깊게 보고자 해도 볼 수가 없었고, 보고 느낀 만큼만이라도 표현해보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였지만 안타깝게도 늘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그러나, 내 생애 ‘첫’이라는 새로운 공간과 시간 앞에 나를 던져 내 삶의 외연을 조금 더 확장시켰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15일 간의 페루 여행.
허보다는 실한, 부요한 인생이 되길 바라는 삶의 도정에 오롯이 스며들어 긴긴 시간 동안 나의 길벗이 되리라.
감사하기는 여행 준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여행에 관한 모든 것을 거의 혼자 도맡다시피한 딸의 노고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새겨두고, 또한 딸에게도 전하고 싶다.
그리고 15편의 장문 여행기를 타이핑하고 사진 선택하여 카페에 글을 올려준 남편의 수고에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재치, 현장감 있는 글 솜씨로 용기 없는 엄마를 먼 페루 여행길에 오르게 한 아들에게도 온 마음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끝까지 쓸 수 있는 배경이 되어준 하하님들의 관심과 애정에도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여기까지 나를 지키고 인도한 나 자신과 모든 것들에 대하여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깊이 새기며 간직하고 싶다.
* 그리움으로 남은 페루 와카치나(Huacachina) 사막의 석양 무렵
첫댓글 15일간의. 평생을 두고두고 잊지못할 가족여행..문화,자연,현지를 대표하는 음식들,역사 유적들,신비한 이야기들을 사진과 현장감 으로 하하님들과 함께하신 강두희 님 감사합니다.멋져요.. 가족간의 도움,배려,사랑은 여행의 가장 큰 보람이겠지요.
사랑스러우신 사모님!
보이는 모습 그대로, 글도 사진도 사모님 모습과 어쩜 그리 닮았을까요.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모습은 더더욱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자녀분들도 참 훌륭하고요. (한편으론 제마음이 착잡해지기도 합니다.;;)
그동안 좋은 체험을 정성들여 올려 주셔서, 좋은 읽을거리를 선물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부럽기도 했고요^^
장장 15편의, 가슴 뭉클하고 재미난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긴 여정에 지치고 힘들어할땐 같이 힘들었고 새로운 세상의 신비로움엔 함께 들떴습니다.
덕분에 페루란 곳을 살짝 엿볼수있었고 가고싶다는 꿈도 갖을수있었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 올려준 글에 감사드리고 늦게나마 무사히 잘 다녀오심에 안도하고 박수를 보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님들의 진심어린 애정과 관심이 미흡한 제게 큰 힘이 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저 또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