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다(김원)
건축가 김원
평생 직업이 집을 짓는 일이다 보니 ‘짓다’라는 말의 뜻을 가끔 되새긴다. ‘짓다’는 집을 지을 때뿐만 아니라 ‘밥을 짓다’ ‘옷을 짓다’처럼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의식주를 모두 형상화하는 동작을 말해주는 중요한 단어이기도 하다. 우리말 사전에는 ‘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따위를 만들다’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또 하나 중요한 ‘약을 짓다’를 빼놓고 있다. 그러므로 ‘짓다’는 그냥 ‘만들다’보다는 좀 더 귀중한 것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더 나아가 '글을 짓다' '시를 짓다' '노래를 짓다'처럼 고귀한 창작 행위를 나타낸다. 그렇게 보면 집을 짓거나 밥을 짓거나 옷을 짓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창의적이고, 또한 그래야 한다. '약을 짓다'는 약방에서 여러 가루를 빻아 섞어서 종이봉지에 담아 줄 때, 또는 한약방에서 감초와 계피와 또 무슨 여러 한약재를 썰고 섞어서 종이에 싸 줄 때 "약을 지어준다"라 하고, 그렇게 지어준 약은 더 정성이 들어가 보이기에 그냥 사 먹는 약보다 특별하고 개인적이고 그래서 더 효력이 있어 보인다.
나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부엌에서 밥을 짓는 뒷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누나들이 글짓기 숙제 하는 걸 보면 참 아름답게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약을 짓고, 글을 짓는 일은 고상하고 귀중하게 보인다.
당연히 집을 짓는 일도 고상하고 귀중한 것이어야 한다. 그냥 집짓기 놀이하듯이 쌓아 올려서 될 일이 아니라 적어도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처럼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간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 한 간 맡겨두고, 강산을 들일 데 없으니 둘러보고 보리라” 하는 정도의 여유와 고뇌와 그에 따른 아름다운 결과를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
첫댓글 복을 짓다.
2024년에도 복을 많이 지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