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신 밥 한 그릇
장 현 심
chsim0125@naver.com
양산에 사는 친구 집엘 가려고 짐을 꾸리다가 잠시 손을 멈췄다. 당신이 죽은 후에도 자주 찾아오라며 당부하시던 친구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라서였다.
여고 1학년부터 친했던 그녀는 무남독녀였다. 친구 집엘 가면 그 어머니는
“헨스미 왔냐.”
‘현심’이란 이름을 ‘헨스미’라 부르시며 반기셨다. 그리고는 곧장 부엌으로 가셨다. 살림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는데, 뜨신 밥이 살로 간다 하시며 밥을 새로 하셨다. 밤늦게 가도, 먹었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따끈하고 찰진 밥에 곰삭은 조개젓이나 창난젓을 얹어먹으면 정말 살로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친구 어머니는 옛날 시집살이 할 때 배고프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당신의 시어머니가 밥을 안 줘서 동서와 함께 밥을 훔쳐 먹었다고 하셨다. 다 된 밥을 푸면 주걱자리가 나기 때문에 끓는 밥을 퍼서 숨겨놓았다가 식으면 드셨단다. 어느 날 끓는 밥을 푸자마자 시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오셨다. 엉겁결에 치마말기에 그것을 감추었다. 그 때 앙가슴을 데어서 오랫동안 고생을 하셨다며 가슴을 풀어 보여주셨다. 희끗희끗한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지금은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나의 여고시절만 해도 큰 손님이나 와야 새로 밥을 지었다. 식사 때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삼가야하던 시절에 어머니에게 그런 황송한 대접을 받았다.
친구가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자 어머니는 당신의 한을 풀었다며 병원에서 동네까지 먼 길을 춤을 추며 오셨다. 낙타 등의 혹처럼 손자는 할머니의 등에 업혀 자랐다. 그런데 친구의 결혼생활이 원만치 못했다. 남편과 헤어질까를 고민할 때 어머니는 한사코 반대하셨다. 남편은 없거니 여기고 자식만 보며 살라하셨다. 그래도 친구는 이혼을 했고 애지중지하던 손자는 어머니의 염려대로 사위가 데려가 버렸다.
그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손자가 가슴에 맺혀 살수가 없노라,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만나게 해달라고 두 손을 모으며 애원을 하셨다. 도움을 청하러 오셨던 것이다.
내게는 어머니의 아픔보다 친구의 행복이 우선이었다. 빨리 잊으시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손자 보기를 포기한 듯 눈물을 닦으며 헛발을 디디시는 어머니를 부축해 배웅을 해드렸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어머니를 그냥 가시게 하는 게 아니었다는 후회로 가슴이 멘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쏟은 정성에 대한 보답은 차지하고라도 우리 집에 오셨으니 따듯한 진지는 해 올렸어야 옳았다. 경황이 없었다고 해도 그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내 가슴이 어머니만큼 애절하지 못한 탓이었을 것이다.
그 후 어머니는 양산에서 새살림을 차린 딸과 함께 살았다. 남들은 남편하고 다투면 친정으로 간다지만 나는 친구의 어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갔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어머니와 한방에서 잠을 잤다. 자진해서 싸운 얘기를 하면 어머니는 정색을 하고 또박또박 엄하게 심문하듯 물으셨다.
“니 서방이 다른데다 살림을 채리고 애를 낳아놨냐?”
“아뇨.”
“예이, 미친년아, 니 서방 업어줘라.”
“노름을 해서 집안을 거덜 냈냐?”
“아뇨.”
“예이, 미친년아, 니 서방 업어 줘라.
“너를 자꾸 때리더냐?”
“아뇨.”
“예이, 미친년아, 니 서방 업어줘라.”
주먹까지 쥐어 보이며 나무라셨다. 밤새 미친년 소릴 듣고 나면 슬며시 기분이 풀려 가방을 챙겨 서울로 올라오곤 했다.
돌아가시기 두어 달 전이었다. 왜 그토록 오랫동안 오지 않느냐는 전화를 받고 짬을 내어 내려갔다. 여전히 부엌으로 나가 하얀 쌀밥을 하셨다. 내가 밥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시며 이것저것 반찬을 집어 숟갈에 얹어 놓아주셨다. 그러곤 예전처럼 말씀하셨다.
“내가 죽어도 자주 오너라. 저게 혼자라서…, 오작가작하며 살아라.”
어머님이 그리 당부하셨건만 친구와는 일 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렵다. 더구나 요즘은 친구의 건강이 좋지 않다. 이런 때야말로 뜨신 밥 먹은 값을 해야 될 텐데…. 사람 노릇, 아니 밥값을 못하고 사는 것 같아 어머니께 죄송하다. 만일 그분께서 아신다면 한 말씀 하실 것만 같다.
“예이, 이년아, 사는 게 그렇게 바쁘냐?”
밥은 그냥 밥이 아니다. 생명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밥을 먹인다는 것은 생명을 주는 일이고, 함께 밥을 먹는 다는 것은 생명을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소문난 고급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도 친구 어머니는 정성을 다해 지어주셨던 밥처럼 마음까지 뜨시게 해주는 밥은 먹어보지 못했다.
첫댓글
따슨 밥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봅니다. 우리 언니도 내가 대문에 들어서면 얼른 쌀부터 씻어 밥을 짓곤 했어요.
'밥은 그냥 밥이 아니고 생명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가슴이 찡해 옵니다.
잘 읽었습니다.
여운이 남아 페이지를 넘기지 못 하고 마냥 앉아만 있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도 따스하게 감동을 안기는 글입니다.
뜨신 밥! 우리 어머니들의 정서에 다시금 젖어듭니다.
역시 좋은 글은 인간 본연의 정을 그려낸 것이 아닌지.
글에 가식이 없는 진정성이야말로 좋은 글의 본바탕이지 싶네요
그렬려면 먼저 사람이 되야할 텐데 저 자신 멀었다 싶습니다
이 글을 오늘 이복희 선생님이 동대문도서관 동아리반 발표회에서 낭독했습니다.
"에이, 미친년아 니 서방 업어줘라" 이 대목에서 노인의 순박함이 돋보였습니다.
글의 결미가 아주 좋네요. 밥은 생명, 함께 나누는 것.
역시 재주를 부리는 글보다 사려깊은 글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