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본성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좋은 위치?》
~♡~
[ 경허집(鏡虛集) (30) ]
20240205
서른 번째 이야기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
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저 같은 농땡이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자주자주 보세요.]
[그리고 들고 있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 수행이란 내 마음을 보는 거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
(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
《경허집 본문 내용》
달마대사가 이르기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이름하여 규역(規域)이라 했고 대소승의 기본되는 뜻을 이름하여 규역이라 했고 생사열반을 이름하여 규역이라 했고 범부의 마음도 내지 않고 성문의 마음도 내지 않고 보살의 마음도 내지 않고 부처의 마음도 내지 않아야 비로소 이름하여 규역밖을 벗어났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만약 누가 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자기의 법왕을 보면 곧 해탈한다.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깨달음은 잠깐동안이거니 어찌 머리가 희도록 번거롭게 하랴. "하였으며,
육조대사가 이르기를 "앞 생각이 미혹하면 중생이요 뒷 생각을 깨달으면 부처라. "하였으며, 또 옛사람이 이르기를 "용이 뼈를 바꾸어도 그 비늘은 바꾸지 못하고 범부가 마음을 돌이켜 부처가 되어도 그 얼굴은 고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법문은 제 일 높고 제일 귀해서 백천 삼매와 한량없는 묘한 뜻이 당인의 한 생각을 떠나지 않고 있다.
P 30
~~♡~~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
아이고? 지난 편만 빼고는 오늘도 경허선사께서 불교계의 스님들을 향해 또 신랄하게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내용입니다. ^^
오늘 내용도 불교계 쪽에 계시는 분들은 싫어할 내용들이네요.
저도 이런 내용이 나오면 난감할 때가 많은데요.
왜냐하면 거짓말로 글을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을 돌려서 하자니 대중들에게 뜻이 전달되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인데요.
이번에도 댓글 폭탄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
모든 스님들이 이런 말씀이 나오기 전에 잘들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는데요.
자 그럼 오늘은 경허선사께서 어떤 가르침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지 한번 보시겠습니다. 😃🙏🏻
ㅡ
(본문 해설)
★ 달마대사가 이르기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이름하여 규역(規域)이라 했고
(이 내용은 당시의 스님들의 모습을 이야기해 놓은 것인데요.
오늘날 스님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내용이기도 하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이름하여 규역(規域)이라 했고]
라는 뜻은?
유교 용어이기도 한데요.
한마디로 말하면 스님들도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롭고, 믿음직함을 보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규역(規域)이란 '법규를 잘 지켜야 한다' 할 때에 그 [규]와
우리 구역, 우리 지역, 할 때에 그 [역]를 이르는 말인데요.
무슨 말이냐 하면 스님들이 어느 지역, 어느 구역에 있거나 기본적으로는 어진 마음과 의로운 마음과 예의 바른 마음과 지혜로운 마음으로 대중들에게 믿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스님들이 기본적인 인격과 예의와 바른 말투로 대중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경허 선사께서는 당시의 스님들의 형태를 보고 말씀하시는 거랍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그대로 오늘날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고요.
요즘 말로 하면 당시에 많은 스님들이 너무 거만하고 건방지고 싸가지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스님들이 너무 예의도 없고?
간혹 보면 대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개인에게 질문을 한 후 답을 못하면 버럭 "이것도 모르느냐" 하면서 자신은 세우고 상대는 깔아뭉개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되는데요.
특히 차담 장소에서 이런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되지요.
저와 가깝게 지내는 도반 한 분도 이런 경우를 당하셔 가지고 지금은 절 근처에도 안 가는 분이 있을 정도인데요.
이러한 문화는 매우 잘못된 절 문화랍니다.
물론 어른으로서 하시는 말씀인지는 잘 알지만 그래도 상대도 나이가 오십이 넘은 사람에게 예의 없이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그래서는 안 된답니다.
더 신기한 것은 이런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도 무슨 죄를 지었는지 이런 소리를 듣고도 쩔쩔매면서 굽신굽신 거리는 모습들인데요?
어떤 경우는 젊은 스님이 어른에게 반말로 툭툭 던지듯이 퉁명스럽게 대하는 경우도 저는 여럿 보았는데요.
물론 안 그러시는 분들도 많이 있지요.
그것조차 없다면 그것이 어디 절이겠습니까?
제 말은 자꾸 이웃 종교를 비교해서 뭐 합니다만
제 경우는 평생을 교회에 다녔지만 단 한 명도 목사나 전도사가 신도들에게 큰 소리를 내거나 반말을 하는 경우는 단 한 분도 본 적이 없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젊은 사람들이 절에 누가 오겠습니까?
요즘은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얼마나 친절한데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 다 들어가 있는 내용들이랍니다.
더 확실한 가르침은 부처님 말씀인데요?
분명히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답니다.
"항상 법을 설할 때에는 여래의 방에서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로서 이 법을 설하라"
라고요.
그랬건만 어찌 오늘날 어른 들게서는 찾아오는 대중들에게 삼배를 청하고 거만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하대(下待)를 하면서 건방지게 불법을 설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오늘 경허선사께서 당시에 스님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특히 요즘 스님들이 주의하셔야 할 것은 지금 시대에는 예전과는 달라서 일반 재가자들이 훨씬 더 교육도 많이 받았고 사회 경험들이 풍부하기 때문에 웬만한 스님들은 이런 재가자들을 감당해 낼 수가 없다는 것인데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스님들이 사회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농사짓고 밭 갈고 하던 시절에는 그래도 글만 알아도 면서기를 시켜주던 시절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는 스님들이 대중들에게 내세울 만한 것은 불법밖에 없는데 스님들이 공부도 안 하고 수행도 안 한다면 무엇을 가지고 똑똑한 대중들을 대할 것이냐 이 말입니다?
아직 깨닫지는 못하셨어도 공부라도 해둔 것이 있어야 뭐든 있어야 그거라도 가지고 똑똑한 대중들에게 어떻게든 해 볼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나이 든 보살들에게는 통해도 요즘처럼 똑똑한 젊은 사람들에게는 통하질 않는 거랍니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일반 재가자들이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판인데요?
당연히 스님들은 모양이 빠질 수 박에 없는 거지요.
비유가 좀 그렇습니다만 제 경우는 평생을 교회에 다녔던 경우라 자연히 불교와 비교를 하게 되는데요?
교회 목사나 전도사들은 특히 천주교 신부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 줄 아십니까?
성경 책에 있는 내용들을 이 내용은 몇 장 몇 절에 또 그 내용은 몇 장 몇 절에 있다는 것을 달달 외우고 있는 경우라 신도들이 그나마 "우리 목사님" "우리 신부님" 하면서 존경을 표하지만?
우리는 몇몇 스님들만 빼고는 대부분의 스님들이 그렇지를 못한 것이 현실 아닌가요?
거기다가 사회 경험들은 더 없다 보니까 똑똑한 재가자들을 만나면 무슨 상담을 나누고 어떤 대화가 서로 통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재가자들에게 배워야 할 판인데요?
뭘 가지고 지금처럼 이런 똑똑한 대중들과 상담을 나누고 법을 가르치겠느냐 이겁니다?
오늘 내용처럼 [仁義禮智信]은 고사하고 큰 어른들부터가 기본적인 예의가 안 되어있는데요?
자꾸 기독교를 비유해서 뭐 합니다만 교회 목사나 신부님들은 대문 박에까지 나와서 신도들을 안으로 인도하고 예배가 끝나면 대문 박에까지 나와서 다음 주일에도 또 오라고 정다운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는 판인데
우리 불교의 어른들 모습은 오늘 경허선사 말씀처럼 [仁義禮智信] 즉 어질지도 못하고, 의롭지도 못하고, 예의도 바르지 않고, 지혜롭지도 못한다면 어느 젊은이가 어른들을 믿으려 할까요?
이것이 오늘 경허 선사께서 대중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씀이랍니다.)
ㅡ
★ 대소승의 기본되는 뜻을 이름하여 규역이라 했고 생사열반을 이름하여 규역이라 했고 범부의 마음도 내지 않고 성문의 마음도 내지 않고 보살의 마음도 내지 않고 부처의 마음도 내지 않아야 비로소 이름하여 규역밖을 벗어났다”고 하였다.
(참으로 이번 표현은 아주 멋진 한문식 표현인데요. ^^
맞는 말씀입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대승이든 소승이든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범부의 마음도 내지 않고 규역(規域) 즉 어떤 지역이나 구역에서도 규범에 걸리지 않고 생사열반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고요.
그러나 그렇지 않고 성문 즉 머리로만 배운 것을 가지고 마음을 내어 대중들을 대하거나?
또는 자신이 보살이라도 된 것처럼 대중들에게 마음을 내거나?
심지어는 지금은 나라가 망해버린 어느 어른처럼 자신이 마치 부처라도 된 것처럼 여러 사람들과 돌아다녀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자신이 규역 밖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고요.
여기서 말하는 [규역밖]이란 어떠한 법규나 장소에서도 제약을 받지 않고 당당히 거침없이 본성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인데요.
이 말씀의 뜻을 돌려서 말하면 지금의 어른들이나 출가자들이 또는 지금은 망해버린 어느 어른의 역(域/장소)만 보더라도 과연 규역(規域)에 속박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한국 불교뿐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나 불교계의 어른들을 살펴보면 깨달았다고 하는 분들이 여러 제자나 사람들을 몰고 다니면서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규역(規域)을 만들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벗어버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런 높은 자리에 취해서 규역(規域)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지금은 나라가 망해버린 어느 어른의 주변(域)을 살펴보면 주렁주렁 제자들을 매달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것은 절대로 그분들을 흉을 보거나 없이 보는 것이 아니랍니다.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의 행보(行步)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변(域)에 사람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게 되면 규역(規域)에 얽매여서 후 공부는 언제 할 수 있겠느냐? 이 말이랍니다.
그것도 실제로 깨달았다면 말이지요?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업식(業識)을 못 벗어났으니까요.
그러나 실제로 깨달았다면 그분에게는 이렇게 사람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돌아다닐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후 공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들은 상당히 의심하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하나를 보면 열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겠어요?
주변에 사람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자면?
일단은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먹여줘야지?
잠도 자야 하니까 재워줄 장소도 필요하지?
옷도 깨끗이 해서 입혀 줘야지 어디 그것뿐입니까?
이런 것들이 다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스님들이 노동을 해서 먹고 자고 입고 하는 것도 아닐 것인데요?
많은 스님들이 뭉쳐서 돌아다니게 되면 그것이 어느 지역(域)이든 규약(規約)을 받지 않겠습니까?
스님들이 몰려다니게 되면 스님들끼리도 규범(規範)과 규칙(規則)도 있어야 할 것이고요?
이런 것들이 모두 다 규(規) 자가 들어가는 규역(規域)에 속박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지역(地域)이나 어느 구역(區域)을 가더라도 다 역(域) 자가 들어가는 규역(規域)을 받게 된다는 한문식 뜻이고요.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다들 민폐만 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가지고 무슨 규역(規域)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쉽게 말해 주렁주렁 사람들을 매달고 다니자면 의식주는 물론이고 여러 가지들을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이고 그러자면 한국 어른들처럼 천도재나 명패 봉안이나 친견비 같은 수입원이 없으면 어떻게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운영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예전처럼 탁발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밖에서 구걸하거나 약팔아서 운영할 수밖에 없는데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렁주렁 사람들을 매달고 다니면 언제 후 공부를 하고 언제 규역(規域)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지금은 나라가 망해버린 어느 어른은 훨씬 더 그러할 것이고요?
지금 경허 선사의 말씀은 이러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버려야 본인들이 비로소 규역에서 벗어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요.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여러분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깨닫게 되면 세상이 돌아가는 많은 이치(理致)들을 잘 알게 되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혹시 무엇인지 아시나요?
은거(隱居)이랍니다.
(세상을 피하여 숨어서 사는 것)
실제로 깨닫게 되면 세상의 것들이 귀찮아지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더 급한 것이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본성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되기 때문에 세상과 등지고 혼자 은거하면서 나머지 후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 이쪽 세계의 흐름이랍니다.
부처님도 그러셨고, 달마대사도 그러셨고, 원효 대사도 그러셨고, 그의 스승인 대안 선사는 더 하셨고, 경허선사도 그러셨답니다.
그래서 선문에서도 보면 한 소식 한 사람들에게 "암자를 하나 내주라" 했던 것이고요.
이 말의 뜻은 암자에 혼자 들어가서 나머지 후 공부를 하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깨닫게 되면 이럴 수밖에 없답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같이 하면 내가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용처럼 규역(規域)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나 혼자 밭을 일구어서 나 혼자 음식을 해 먹더라도 나머지 도(道)를 닦는 것이고요.
이렇게 깨달은 분들은 절 밖으로 나가서 부처님처럼 탁발을 하거나 원효 스님처럼 나환자촌 같은 곳에 가서 나환자들과 같이 농사도 짓고 밭도 일구면서 또는 경허선사처럼 파계를 하고 동네 아이들 글 공부나 가르치면서 만행(萬行) 길을 스스로 헤쳐 나가면서 후 공부를 해나가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깨닫게 되면 세상을 등지고 혼자서 오로지 후 공부에만 전념을 할 수 박에 없는 것이 수행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뭐 합니다만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분들은 저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왜냐하면 멀쩡하게 살던 놈이 갑자기 혼자 나가서 이러고 있으니까요?
이분들의 눈에는?
너처럼 능력 있는 놈이 뭐하려고 이런 궁상을 떨고 있느냐 이거지요?
지금이라도 제 경우는 그동안 해 놓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 들어가면 얼마든지 내 지분 가지고 다시 일을 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이런 곳에서는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에 매여 있어야 하는데..
저녁때는 술에 절어서 지내야 하는데 무슨 수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거의 매일 2시 30분에 일어나서 30분 운동하고 3시부터 상황에 따라 4~5시까지 알람을 정해놓고 깊은 삼매에 들고 있는데 이런 것을 어떻게 회사를 다니면서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떠나는 거랍니다.
회사일보다 이것이 더 급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일을 전혀 안 해서도 안된답니다.
수행자들도 적당한 일을 찾아서 하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적당히 일을 해야 정신 건강에도 좋고 신체 건강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경허 선사도 그래서 절을 떠나셨던 것이었고 떠난 곳에서도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글공부를 가르쳤던 거랍니다.
물론 거시기 한 일 때문에 경허 선사를 뭐라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경허 선사에게는 그 또한 만행 길이요 수행 길이랍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그 어떠한 걸림도 없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
<참고 : 경허 선사가 절을 떠난 이유?>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cafe.daum.net/119sh/XASd/218?
,
진짜로 깨닫게 되면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답니다.
왜냐하면 당장 나의 본성 관리가 더 급하기 때문이랍니다.
그 이유는 이번 생이 아니면 언제 또 이 법을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이러한 세상의 것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답니다.
그래서 수많은 옛 어른들께서도 깨닫게 되면 산으로 들어가셨던 것이고요.
왜냐하면 이분들에게는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올라가 후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이득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랍니다.
지금 시대에는 산으로 갈 수 없으니 방을 하나 구해서 그곳이 토굴이라 생각하고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부처님은 이에 대해 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씀까지 하셨던 거랍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수행을 알기 전에는 수행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서 배울 수 있지만
수행을 배운 후에는 무쏘의 뿔처럼 혼자 나가서 스스로 정진을 하라는 뜻이랍니다.
괜히 사람들끼리 몰려 있어 봐야 오늘 내용처럼 규역(規域)에 속박을 받으니까요.
수행자의 길이 이런 길인데 지금 어른들은 제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면서 그것도 모자라 그런 짓들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수행은 고사하고 어른들은 물론이고 제자들까지 업식(業識)만 잔뜩 쌓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의 어른들은 대중들을 죽음의 늪으로 몰아가고 있다 하는 것이고요.
자기만 늪에 빠지면 되는데 수많은 대중들을 늪으로 몰고 가는 모습이 현재 한국 불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경전에서도 보면 코끼리가 늪에 빠진 비유들이 다 이런 모습들을 비유로 묘사해 놓은 것들이랍니다.
오늘 경허 선사께서도 이런 뜻에서 설하시고 계시는 것이고요.)
ㅡ
★ 또 이르기를 "만약 누가 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자기의 법왕을 보면 곧 해탈한다. " 하였으며,
(이 내용도 의미심장한 내용인데요.^^
아무리 죄를 많이 짓고 악마라 하더라도 본성을 깨달으면 곧 해탈을 한다는 뜻이랍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앙굴마라존자를 들 수 있고요.
쉽게 말하면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본성 자리를 깨달으면 성불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ㅡ
★ 또 이르기를 “깨달음은 잠깐동안이거니 어찌 머리가 희도록 번거롭게 하랴. "하였으며,
(이 내용 또한 아주 맞는 말씀이랍니다.
깨닫는 것은 아주 한순간이라는 뜻입니다.
불교 용어로 하면 아주 찰나(刹那)란 뜻입니다.
그런 것을 어찌 머리가 흴 때까지 번거롭게 갈 수가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간혹 법문을 들어보면 어느 어른은 두 번을 깨달았네? 세 번을 깨달았네?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이런 표현들은 아주 잘못된 표현들이랍니다.
왜냐하면 깨닫음이란 본래 성품을 보고 알게 됐다는 뜻인데 거기에 무슨 두 번이 있고 세 번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깨달음은 그냥 내가 내 얼굴을 보고 아는 것과 같은 것인데요.
거기에 무슨 두 번이 있고 세 번이 있을 수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비유를 하면?
한글을 깨우쳤으면 그다음부터는 진짜 공부를 해야지 깨달은 한글을 또 무엇을 더 깨닫겠습니까?
한글을 깨졌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또 무슨 한글을 더 깨칠 것이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법명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어른이 이런 말씀을 하시길래 저는 속으로 깜짝 놀랐는데요?
이분은 이렇게 법문을 하시더라요?
"어느 큰 어른은 어디에서 한번 확철대오를 하셨고 또 어디에서 두 번째 확철대오를 하셨고 또 어디에서 세 번째 확철대오를 하셔가지고.. 어쩌고저쩌고~~"
라고요?
이런 법문을 듣고 그때 저는 "아.. 이분도 아직 이 자리를 모르고 있구나?" 했었는데요.
그러나 이런 것은 있을 수 있답니다.
깨닫고 나서 집중해야 하는 것이 계속해서 마음을 소멸시키는 일인데요.
왜냐하면 아무리 깨닫고 증득을 했어도 아주 미세하게 남아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깨닫게 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고요.
만약에 이것도 모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아니고요.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미세한 것들을 완전히 소멸 시키는 과정을 후 공부라 하는데요.
이때는 두세 번이 아니라 몇십 번이라도 본성의 맛을 볼 수는 있겠지만 확철대오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성을 깨닫게 되면 본성의 맛을 볼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보십시오?
한글을 한번 깨달았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거기다가 또 무슨 한글을 더 깨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당연히 이 어른도 이 자리를 모르고 있구나? 한 것이고요.
그리고 다른 분들의 법문을 들어 보아도 이러한 것들을 수도 없이 발견하게 된답니다.)
ㅡ
★ 육조대사가 이르기를 "앞 생각이 미혹하면 중생이요 뒷 생각을 깨달으면 부처라. "하였으며,
(※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이 내용이랍니다.
저는 이 내용을 보고 육조 혜능은 깨달은 분이 맞구나 하고 인정을 하게 되었어요.
경허선사도 이런 대목을 콕 찍어서 올리신 것만 보더라도 분명 그 자리를 아시는 분이고요.
이런 내용은 사람들이 빨리빨리 알아듣고 따라 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운 것이랍니다?
제 경우는 "지금 보고 있는 바로 그 자리"라는 법문을 알아듣고 "그럼 눈의 경계 부분을 보라는 얘기네?"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쪽으로 의식을 돌렸더니 바로 거기서 본성 자리를 보고 느낄 수가 있었는데요.
솔직히 제 경우는 0.1초도 안 걸려서 바로 "어?" 했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성은 볼 수 없는 거네 어쩌고저쩌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이것은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망상이랍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얼마 전에 저의 집안 종손 큰 형님에게 써먹었던 방법이기도 한데요.^^
본성 자리로 제가 유도해 드린 적이 있었거든요.
당시에 본성 자리를 잠깐 느끼시고 깜짝 놀라시면서 지금은 계속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적이 있었답니다.
이것은 비유를 하면 목마른 소를 물가까지는 데려다줄 수는 있어도 그 물을 마시고 안 마시고는 그 소에게 달렸거든요.
아무튼 그 후 말씀이 그날은 정말이지 잠을 푹 주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
그럴 수 박에 없는 것이 본성 자리를 접하게 되면 마음이 엄청 안정이 된답니다. (진실)
요즘 여러 채 가지고 있던 부동산 문제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셨는데 계속해서 관(觀) 하셔야 내 것이 된답니다.
처음에는 자꾸 그 자리를 찾아서 보다 보면 어느새 신경을 안 쓰더라도 항상 의식이 그 자리로 가게 되어 있거든요.
뭐든지 습관들이기 나름이잖아요?
수행도 이와 같답니다.
이것을 알아차림의 확립이라 부처님은 말씀하셨고요.
저의 형님은 아직은 그 자리가 얼마나 엄청난 자리인지 모르고 계실 건데요?
그럴 수 박에요?
처음에는 아무리 봐야 아무런 반응이 없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먼 산을 보는 그런 느낌이라 재미가 없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계속해서 찾아서 보다 보면 모든 광명(光明)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이때부터는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하게 된답니다.
왜냐하면 신기하고 재미있거든요?
그러나 여기까지 오기가 모든 수행자들이 힘들어해서 그렇지요.
이 내용도 화성유품(化城喩品)에 잘 표현되어 있답니다.
왜냐하면 여기까지 오기 전까지는 수행이라는 것이 정말로 재미도 없고 내가 왜 이런 것을 하고 있는가? 하실 수 있답니다.
지혜광명(智慧/知慧光明)도 바로 그 자리에서 밝아지는 것이고요.
부처님 이마에 박힌 보석도 바로 이 자리를 뜻하는 것이랍니다.
여러분들 혹시 부처님 이마에 박힌 보석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나요?
이 내용도 처음으로 들어보시는 내용일 건데요.
그만큼 지금 사람들은 이것을 모른답니다.
방금 전 육조 혜능이 하셨던 말씀과 같은 뜻이랍니다.
이 내용은 하던 내용이 있으니 끝에 다시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주의에 몇몇 도반들에게도 본성 자리로 유도해 드린 분들도 몇몇 계시는데요.
문제는 당장 필요하지 않으니까 대부분은 안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직은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모르고 있는 거랍니다.
일반 사람들은 지금 모두가 앞만 보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오늘 내용처럼 지금 보고 있는 뒤에 또 다른 참 나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뒤에서 보고 알아차리고 있는 놈만 알아차리면 되는데 그것을 못 알아차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육체 입장에서 보면 육조 혜능 말씀처럼 바로 뒷머리 부분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의 집안 종손 형님에게도 그 당시 이런 식으로 유도를 해 드렸던 것이고요.
이것이 어떻게 말로는 더 이상 설명을 드릴 수 없는 그런 것이라 저도 설명에는 한계가 있는데요.
저는 이렇게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의 이마 정수리에 점이 하나 박혀 있잖아요?
이것도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그냥 광명(光明) 정도로만 알고 있지요?
이 말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더 깊은 뜻이 있답니다.
왜냐하면 육체 입장에서 보면 광명 자리가 바로 이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많이 알려주시고요.
왜냐하면 바로 이 자리가 본성을 가장 쉽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을 지금 보고 있는 눈과 눈 사이와 부처님 이마에 점이 박힌 부분 쪽 사이로 의식을 둬 보십시오?
인중(人中) 부분?
아니면 오늘 육조 혜능 말씀처럼 뒷머리 쪽에서도 느낄 수 있고요.
사실은 본성 자리는 우주 전체에 한 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 육체 입장에서 보면 눈과 눈 사이와 부처님 이마에 점이 박힌 자리와 육조 혜능 말씀처럼 뒷머리 쪽에서 본성 자리를 알아차리고 느끼기 좋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의식이 가장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인중(人中) 근처이기 때문입니다.)
ㅡ
★ 또 옛사람이 이르기를 "용이 뼈를 바꾸어도 그 비늘은 바꾸지 못하고 범부가 마음을 돌이켜 부처가 되어도 그 얼굴은 고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법문은 제 일 높고 제일 귀해서 백천 삼매와 한량없는 묘한 뜻이 당인의 한 생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 말씀도 맞는 말씀이랍니다.
용의 비늘을 용린(龍鱗)이라고 하는데요.
용은 비늘이 없으면 하늘로 승천을 할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용은 구렁이가 비늘을 얻어서 변한 것이기 때문에 하늘로 승천할 수 있었던 거랍니다.
여기서는 본성을 얻어서 해탈을 하는 뜻으로 용의 비늘로 묘사한 한문식 표현이고요.
쉽게 말해
용이 뼈를 바꾸어도 그 비늘은 바꾸지 못한다는 말은?
사람이 뼈를 바꾸어도 즉 아무리 죽었다 다시 태어나더라도 비늘인 본성은 바꾸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아무리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더라도 수행을 안 하면 본성(용의 비늘)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범부가 마음을 돌이켜 부처가 되어도 그 얼굴은 고치지 않는다."
이 내용도 같은 뜻이고요.)
ㅡ
★ 그래서 이 법문은 제 일 높고 제일 귀해서 백천 삼매와 한량없는 묘한 뜻이 당인의 한 생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 말은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은 제일로 높고 귀해서 삼천번의 삼매(三昧)와 한량없는 묘한 본성의 뜻(알아차림)이 당인(當人)의 한 생각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하셨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당인(當人)이란 (당사자), (당신), 과 같은 뜻인데요.
여기서는 (우리들)이라고 해석하시면 되겠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제일로 높고 귀해서 수많은 깊은 삼매(三昧)와 한량없이 묘한 본성의 뜻(알아차림)이 우리들의 한 생각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우리들도 깨우침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뜻입니다.
,,
오늘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들 꼭 성불하십시오 😄🙏🏻
감사합니다.😃🙏🏻
♡
(부록)
여기서도 보십시오?
경허 선사도 혼자 후 공부를 위해 바람처럼 떠났다 하지 않던가요?
그래서 사람들(제자들)을 몰고 다니는 분들은 의심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본성의 자리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지금 어른들처럼 그런 짓들을 한다는 것은 경허 선사 표현대로 하면 "말할 가치도 없다"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동영상에서도 경허 선사의 이러한 마음을 표현한 것인데요.
마지막 구절이 참으로 오늘 내용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실제로 깨닫게 되면 나 홀로 수행처를 찾아가게 되지 지금 어른들처럼 화려하게 사람들과 몰려다니지 않는답니다.
한번 다 같이 감상해 보시지요.😃🙏🏻
♡
《 경허가 남긴 선시(禪詩) 중 》
온 세상 혼탁하나 나 홀로 깨어있네
우거진 수풀 아래 남은 해를 보내리라
안다는 건 약한 소견
이름만 높아져서 세상은 위태롭고 어지럽기 짝이 없네
정말 모르겠구나
어느 곳에 가서 몸을 감출까
어촌이나 주막집 어찌 숨을 곳이야 없으리오만
이름을 감출수록 그 이름 더욱 새롭게 알려질까
다만 그것을 두려워 하노라..
♡
,
제목 : 고승열전 경허대선사 11편 -'바람처럼 떠나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Ej5F90XyX6o?si=Osx-Mhohqlh5yDHn
.
.
.
♡
첫댓글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_()_
고맙습니다. 스님 😄🙏🏻
아무쪼록 하루 속히 확철대오를 빌어봅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하루 속히 확철대오를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