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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저자 : 빈센트 반 고흐
-- 출판사 : 위즈덤 하우스
-- 출간일 : 1999년 6월(한국)
-- 빈센트 반 고흐(1853 ~ 1890)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 불리는 네델란드의 인상파 화가. 불꽃같은 정열과 격렬한 필치로 눈부신 색채를 표현했으며, 서양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853년 3월 30일 네델란드의 브라반트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엄격한 칼벵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869년에서 1875년까지는 미술품 상점의 점원으로 일했고, 1877년에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실패한 후 화가의 길을 찾았다.
1881년 12월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1890년 7월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모두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37년이라는 생애 동안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늘 고독했던 고흐는 그의 후원자이자 동반자였던 네 살 터울의 동생 테오와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668통이나 되고, 그 밖에 어머니, 여동생 윌, 동료 화가 고갱, 베르나르 등에게 보낸 편지들이 남아 있다.
--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 무엇보다 우리 두 사람이 더 친해졌으면 한다. 내가 정말로 너나 식구들에게 폐만 끼치고 부담이 된다면, 그래서 나를 스스로 침입자로 여기거나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길을 방해하지 않도록 물러서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슬픔에 잠겨 절망과 씨름해야 할 것이다.
-- 제발 내가 포기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나는 꽤 성실한 편이고, 변했다 해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니까.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내가 무엇에 어울릴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어떻게 지식을 더 쌓고 이런저런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 뿐이다. 게다가 고질적인 가난 때문에 이런저런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고, 온갖 필수품이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우울해 질 수밖에 없고, 진정한 사랑과 우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또 내 영혼을 갉아 먹는 지독한 좌절감을 느낄 수 밖에. 사랑이 있어야 할 곳에 파멸만 있는 듯해서 넌더리가 난다. 이렇게 소리치고 싶다. 신이여,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
-- 모든 일이 좋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에도 오랫동안 그랬고, 미래에도 계속 그럴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못된 후에는 다시 좋아지게 될지도 모르지. 물론 그걸 계산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더 나은 변화가 온다면 나는 그걸 얻은 것으로 생각할 테고,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드디어, 그래, 결국에는 뭔가 되고야 마는구나.
-- 새장에 갇힌 새는 봄이 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단지 실행할 수 없을 뿐이다. 그게 뭘까? 잘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는 알고 있어서 혼자 중얼거린다. '다른 새들은 둥지를 틀고,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 그리고는 자기 머리를 새장 창살에 찧어댄다. 그래도 새장 문은 열리지 않고, 새는 고통으로 미쳐간다. "저런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지나가는 다른 새가 말한다. 얼마나 게으르냐고. 그러나 갇힌 새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 본의 아니게 쓸모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 그들은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정말이지 끔찍한 새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직접 손으로 작업한다는 의미에서의 '수작업'보다 더 견실한 일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네가 화가가 된다면 놀라게 될 일 가운데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물리적인 의미에서 아주 힘든 작업이라는 점이다. 정신적인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육체적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것도 매일같이.
--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어떻게 작업하는가에 달려있다. 지금처럼 계속 작업할 수만 있다면, 조용히 싸움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작은 창문 너머로 평온하고 자연스러운 풍경을 바라보고, 신념과 사랑으로 그것을 그리는 싸움 말이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그림 그리는데 방해가 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피해갈 생각이다. 그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림 이외의 어떤 것에도 주의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 나는 황야의 소나무를 보면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는 가난한 여인, 모래를 나르는 가난한 농부 같은 초라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런 소박한 것들 속에는 웅대한 바다에 맞먹는 무언가가 있다.
-- 그림 속에는 무한한 뭔가가 있다.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자기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건 정말 매혹적인 일이다. 색채들 속에는 조화나 대조가 숨어 있다. 그래서 색들이 저절로 조화를 이룰 때면 그걸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 다르게 돌아간댜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 그림이란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든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니?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 늙고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내가 어떤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들은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 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에게서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그래 그런 일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런 장면은 사람들이 가장 진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라 느껴진다. 한마디로 스스로가 자기 입을 막고 자신의 날개를 자르는 짓이지.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는 반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집시들'을 좋지 않게 생각하지만, 한번 생각해 봐라. 세상에는 '더 많은 것을 원하면서 모든 것을 잃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살다보면 촛불을 끌 수도 있겠지. 하지만 미리 소화기를 들이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 극적인 효과란 '자연의 한 구석'과 '그 자연에 더해진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게 해주는 요소다. 렘브란트의 초상화에서도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지.
-- 아버지나 어머니가 본능적으로(의식적으로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덩치가 크고, 털이 많으며, 집 안에 지저분한 발로 드나들 게 분명한 개를 집에 두기 망설이는 것처럼 나를 집에 들이는 걸 꺼려 한다. 그래, 그 개는 모든 사람에게 걸리적거리고, 짖는 소리도 아주 큰, 불결한 짐승이다.
그래 좋다. 그러나 그 짐승은 사람의 내력이 있고 사람의 영혼이 있다. 게다가 다른 개와는 달리 아주 예민해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내가 개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 친애하는 친구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내말의 요지는 사람들이 우리의 그림을 보고 기술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술의 비밀을 잘 파악하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작업이 너무 능숙해서 소박해 보일 정도로 우리의 영리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지. 내가 이런 경지에 도달했다고는 믿지 않네
-- 사람을 바보처럼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그 위에 무엇이든 그려야 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캔버스의 백치 같은 마법에 홀린 화가들은 결국 바보가 되어버리지. 많은 화가들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텅 빈 캔버스는 "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를 두려워한다.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 강한 열의를 갖고 작업에 임했기에, 며칠 동안은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았다. 가끔은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다는 게 뭐냐. '행동하고 창조하는 것' 아니냐.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활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그 그림에 감탄하고,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일이다.........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 나는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테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느니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
-- 그러나 그 전에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아카데미의 인물화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 더 이상 고칠 곳도 없고, 실수 하나 없이 매끄럽게 그려졌지. 그러니 '그 이상 더 잘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우리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끔 이끌어주지 못한다.
-- 세레에게 전해다오. 밀레와 레르미트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라고. 그건 그들이 건조하고 분석적인 방식으로 대상을 검토한 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대상에서 받은 느낌에 따라 그렸기 때문이다.
대상을 변형하고 재구성하고 전환해서 그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 '부정확성'을 배우고 싶다. 그걸 거짓말이라 부르겠다면 그래도 좋다. 그러나 그 거짓말은 있는 그대로의 융통성 없는 진실보다 더 '진실한 거짓말'이다.
-- 나라면 "밭갈이 하는 농부에게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농부는 농부다워야 하고, 밭을 가는 사람을 밭을 가는 사람다워야 한다."고 말하겠다.
-- 움직이고 있는 농부의 동작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현대 인물화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현대 예술의 진수이고, 그리스에서도, 르네상스 시기에도, 옛 네델란드 화파도 하지 않은 것이다.
-- 가끔 내가 이미 늙고 쇠약해져버린 느낌이 든다. 그림에 이토록 열성적이지 않았더라면 누군가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성공하려면 야망을 가져야 하는데, 내겐 야망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네게 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래에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지. 열심히 그림 실력을 쌓아서 네 체면을 구기지 않고도 당당하게 내 그림들을 보여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 여동생 윌에게.: 문명화된 사람들 대부분은 우울증과 비관론이라는 병에 걸려 있다. 나도 웃고 싶은 마음을 잃고 살아온 게 몇 년인지....... 이게 내 잘못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말자. 어쨌든 나는 좋은 웃음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낀다. 그 웃음을 모파상한테서 발견했다.
-- 여동생 윌에게 : 나는 아직도 말도 안되는 연애 사건을 일으키곤 한다. 대개는 그런 사건으로 창피와 망신을 당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것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종교나 사회주의에 심취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실은 사랑에 빠졌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랑에 빠지지 못해서 종교나 이념에 깊이 몰두하게 된 것이지. 그때는 예술도 지금보다 더 성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종교나 정의나 예술이 그렇게 신성할까? 자신의 사랑과 감정을 어떤 이념을 위해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더 거룩한데, 그건 그렇다 치고, 글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해라.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리든지.
-- 여동생 윌에게 : 예술가가 되려는 생각은 나쁘지 않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억누를 수는 없지. 소망하는 것을 터뜨리기보다는 태워버리는 게 낫지 않겠니.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게 구원과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 요즘 모파상의 <피에르와 장>을 읽는 중인데, 참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 소설의 서문을 읽어보았니? 서문에는 "소설가에게는 소설을 통해 자연을 더 아름답고, 더 단순하며, 훨씬 큰 위안을 줄 수 있게 과장하고 창조할 자유가 있다"고 씌어 있다. 그 다음에 "재능은 오랜 인내로 생겨나고, 창의성은 강한 의지와 충실한 관찰을 통한 노력으로 생긴다"라는 플로베르의 말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쓰고 있다.
이곳에는 고딕 양식의 회랑이 있는데 요즘 들어 아주 멋지다는 걸 발견했다. 그러나 그 회랑은 이해할 수 없는 중국어가 들리는 악몽처럼 차갑고 기괴한 느낌이어서, 아무리 위대한 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다른 세계의 것처럼 느껴진다. 네로가 지배하던 고대 로마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 세계에 속하지 않은 걸 다행스럽게 여긴다.
-- 사이프러스나무 옆으로, 혹은 잘 익은 밀밭 위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고 싶다. 이곳의 밤은 지독하게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그걸 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 이 세계를 가만히 보면, 선량한 신에 대해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든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그가 망쳐버린 습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이 세상은 신이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를 때, 제정신이 아닌 불행한 시기에 서둘러서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선량한 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그것은 자신의 습작을 만들기 위해 그가 많은 수고를 했다는 정도지.
--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 베르나르에게 : 회화적 관점이 아니라 종교적 관점에서 그려진 종교화들은 나를 웃길 뿐이네
-- 베르나르에게 : 철학자들과 마술가들이 많이 있었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생을 확신했고, 시간의 무한성, 죽음의 무의미함, 평온과 헌신의 필요성과 의미를 인정했지. 그는 다른 모든 예술가보다 더 위대한 예술가로서, 대리석, 점토, 물감을 경멸하면서 살아 있는 육신으로 일했고 평온하게 살았네. 신경질적이고 둔한 우리 현대인의 두뇌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이 두려움 없는 예술가는 조각을 하지도, 그림을 그리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네. 단지 자신의 말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지.
-- 베르나르에게 : 그러나 '예술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을 빼앗아가는' 이 냉혹한 행성에서 화가들이 꾸려가는 생활은 정말 초라하지. 그뿐만 아니라 실천하기 힘든 사명 때문에 허리가 부서져라 멍에를 지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 그림 그리는 일은 힘든 노동과 딱딱한 계산을 병행하는 일이다. 그래서 작업 중에는 어려운 배역을 맡고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극도로 긴장하게 되고, 단 30분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작업을 마치고 나서 긴장을 풀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술 한잔 마시거나 독한 담배를 피우면서 멍하니 취해 있는 것이다. 별로 품위 있는 행동은 아니지만.
-- 생각해 봐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진정으로 위대한 예술의 부흥기다. 구더기가 득실거리는데도 아직 공식적인 전통이 유지되면서 세상을 지배하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 이제 전통은 무능하고 나태하다. 물론 혁신적인 화가들은 여전히 외롭고 가난하며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 바로 이런 시선이 그들을 광기로 몰아 넣지. 적어도 그들의 사회 생활은 그렇다. 그런데 네가 하는 일은 바로 이 소박한 화가들이 하는 일과 정확하게 똑같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너는 그 화가들에게 돈을 대주거나 그림을 팔아줌으로써 그들이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 있으니까.
화가가 자기 그림에 너무 몰두해서 감정적으로 점점 피폐해지고 가정생활이나 다른 일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할 때, 그래서 그가 단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기 희생과 자기 부정, 그리고 상처받은 영혼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 역시 그만큼 힘든 일이다. 너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화가와 똑같은 방식으로 너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 가족이나 조국은 현실보다 상상 속에서 더 매력적인지 모른다. 우리는 가족뿐 아니라 조국에서도 떠난 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으니
-- 음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을 달래주는 어떤 것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 영원에 근접하는 남자와 여자를 그리고 싶다. 옛날 화가들은 영원의 상징으로 인물 뒤에 후광을 그리곤 했는데, 이제 우리는 광휘를 발하는 선명한 색채를 통해 영원을 표현해야 한다.
-- 모델을 구하지 못해서, 그 대신 내 얼굴을 그리기 위해 일부러 좀 좋은 거울을 샀다. 내 얼굴색을 칠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면 다른 사람도 쉽게 그릴 수 있겠지.
--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네가 보내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 이곳 사람들이 그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다소 미신적인 생각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슬프게 한다. 사실 그 말은 꽤나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빠져 있는 사람이어서, 살아가면서 다른 것을 잘 움켜쥐지 못한다는 말.
-- 어머니께 : 저는 계속 고독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도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요즘 제 그림은 조금씩 더 조화를 이루어 갑니다. 그림 그리는 일은 다른 일과는 차이가 있지요. 작년에 어디에선가 글 쓰는 일과 그림 그리는 일은 아이를 낳는 일과 같다는 글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