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이불루 화이부치)
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이불루 화이부치
검소하되 누추하지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궁궐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조선경국전
“새로 백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조 15년 기록에 나오는 말이었다.
“춘정월(春正月)에 작신궁실(作新宮室), 즉 궁실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뜻으로 김부식이 기록한 내용이다.
세계가 극찬하는 우리의 문화유산 '종묘’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는다. 이렇게 정돈되면서 자존감 있고 겸양하지만 멋진 말이 또 있을까?
동양에서 예는 신에게 복을 비는 의식에서 출발해 인간 중심의 규범으로 변하면서 수신(修身)예절과 치인(治人)예절로 발전했다. 수신예절은 정성스런 마음으로 자기를 갈고 닦아(愼獨) 내면의 실제적 양심을 기르는 것이었으며 치인예절은 대인간계를 원만하게 영위하여 공동생활을 조화롭게 하는 예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동양의 예절은 철저한 자기성찰을 요구했다. 예의 마음보다 밖으로 드러난 행위(격식)가 크면 허례(虛禮)라 했으며, 밖으로 드러난 행위가 마음에 미치지 못하면 실례(失禮)라 하였고, 이도저도 아니면 아예 예가 없다하여 무례(無禮)라 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중용의 도를 이야기 한 것이다. 무릇 이 시점에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우리 사회는 예로부터 겸손을 미덕으로 삼곤 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거나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傍若無人방약무인),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며(過猶不及 과유불급), 과공은 예가 아니다(過恭非禮 과공비례).[출처] 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이불루 화이부치)|작성자 moonkok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