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추측입니다. 제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고려시대에는 조선시대와 같이 국가에서 역사서(실록)을 편찬하였습니다. 혹시 그 실록을 국사라는 이름으로 일연선사께서 인용하지 않으시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나라 역사를 국사라 하지 않습니까? 그당시에도 국가에서 기록하는 실록물들을 국사라고
어제 박물관에 삼국유사 강의가 있어서 갔는데 마침 제 2권 '무왕'조를 했습니다. 무왕조의 마지막 부분, 왕흥사 부분에 國史云.. 三國史云이 한꺼번에 거론되어 있어 그 차이를 질문했는데 '삼국사기가 나라에서 쓴 국사책이라 國史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신통찮은 대답만 들었습니다. 아마 문헌 사료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고려 때도 실록을 편찬했습니다. 고려 초부터 편찬했었고, 현종 때 그 앞의 실록이 소실되어 7대실록을 편찬하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그 실록이 일연이 참고한 서적인지는 좀... 그 고려실록의 내용은 이를 기초로 편찬한 <고려사>에서 다소나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첫댓글 혹시 세간에서 말하는 구 삼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추측)
구 삼국사라면 김부식의 삼국사기보다 더 빨리 나온 책이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구 삼국사에 김부식이 나올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궁금증이 더 하는 것이지요. 누가 쓴 책인지, 알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삼국사의 종류가 많았나 보네요. 제가 보기에도 삼국사기 본기도 그렇고 열전, 잡지도 대게 중국 사서를 인용한 부분이 많은데 이는 구삼국사의 내용이 거의 본기 자체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 구삼국사의 한계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지 않나 싶습니다.
김부식 기록이 있다는 것은 최소한 김부식 후대, 그리고 일연 전대에 만들어졌다는 이야긴데.... 햐, 정말 알 수 없는 게 많네요.
역시 추측입니다. 제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고려시대에는 조선시대와 같이 국가에서 역사서(실록)을 편찬하였습니다. 혹시 그 실록을 국사라는 이름으로 일연선사께서 인용하지 않으시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나라 역사를 국사라 하지 않습니까? 그당시에도 국가에서 기록하는 실록물들을 국사라고
하지않을까 추측합니다.) 즉 그당시에 기록된 실록물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고려는 승려 우대정책을 폈고, 일연선사 역시 국존이라는 위치였습니다. 그러면 왕실과 왕래가 있었을 것이고, 김부식이 송나라에 갔다왔다는 기록이나 소식을 접하였겠지요.. 그것으로 삼국유사를 썻을때 인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제 박물관에 삼국유사 강의가 있어서 갔는데 마침 제 2권 '무왕'조를 했습니다. 무왕조의 마지막 부분, 왕흥사 부분에 國史云.. 三國史云이 한꺼번에 거론되어 있어 그 차이를 질문했는데 '삼국사기가 나라에서 쓴 국사책이라 國史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신통찮은 대답만 들었습니다. 아마 문헌 사료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확실한 결론은 어려울 듯.....^^
고려시대에서도 실록을 편찬했다고 들은적이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말 그대로 고려의 이전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라고 전 생각합니다. 아마도 일연선사는 이 고려시대에 기록한 실록을 참조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고려 때도 실록을 편찬했습니다. 고려 초부터 편찬했었고, 현종 때 그 앞의 실록이 소실되어 7대실록을 편찬하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그 실록이 일연이 참고한 서적인지는 좀... 그 고려실록의 내용은 이를 기초로 편찬한 <고려사>에서 다소나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삼국유사에서 인용하는 사서들은 국사뿐만 아니라 고기도 있습니다...이 고기도 어떤 사서인지 도무지 갈피를 못잡는 것 중 하나지요.
이 국사는 김부식이 찬한 삼국사기일 것입니다. 삼국사기에 김부식이 송나라에 간 이야기까지 분명히 언급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