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
《 부처님이 했던 쉬운 방법?》
ㅡ
[선문염송] 중에서.. (159편) 20240415
제목 : 즉심(即心)
[마조사에게 어떤 중이 묻되 "화상은 어찌하여 마음이 곧 부처라 하십니까?" 하니, 선사가 대답호대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서이니라." 중이 다시 묻되 “울음 이 그친 뒤에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호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니라." 중이 다시 묻되 "이런 두 종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선사가 대답호대 "그에게 물건은 아니라 하리라." 중이 다시 묻되 "홀연히 그 안의 사람이 오면 어찌 하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호대 "우선 그로 하여금 대도를 알도록 하게 하리라" 하였다.]
,
(한문 원본)
即心
馬祖師因僧問和尙 爲什麼說即心即佛 師云 爲止小兒啼 僧云 啼止時如何 師云 非心非佛 僧云 除此二種人來 如何指示 師云 向伊道不是物 僧云 忽遇其中人來時如何 師云 且教伊體會大道
,
(또 다른 번역본)
【一五九】 마조가, 중이 묻되 화상은 무엇 때문에 곧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고 설하십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소아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함이다. 중이 이르되 울음을 그쳤을 땐 어떻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중이 이르되 이 두 종류를 제한 사람이 온다면 어떻게 지시하시렵니까. 스님이 이르되 그를 향해 말하되 이 물건도 아니다(不是物). 중이 이르되 홀연히 그 중의 사람(其中人)이 옴을 만났을 땐 어떻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다만 그로 하여금 대도를 체회(體會)하게 하리라.
.
.
ㅡ♡♡
.
.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7년 전 초기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런 글에 누가 관심을 가져 줄까 싶어서 집안 형님과 지인 형님 한 분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었는데요.
그러다가 주의 사람들과도 같이 보게 되었고 그중에 불자 지인들이 카페에 저의 글을 올려주면서 직접 올려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요.
생각보다 지금은 엄청 많은 분들이 동참을 해주시고 계시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인분들은 거의가 불교와는 상관이 없으신 분들이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주시고 따라 해 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보람을 느끼고 있답니다.🙏🏻
수행이라는 것이 뭐 별거겠습니까? 😄
모두가 참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이고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현명하고 지혜롭게 마음 편하게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지요.😄
아무쪼록 늘 건강하시고 무엇보다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니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꼭 성불을 이루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어서 설명하느라 글이 좀 길답니다.😅
ㅡ♡
<단어 풀이>
★ 우는 아기(小兒啼)의 뜻
여기서 말하는 소아제(小兒啼) 즉 '우는 아기'라는 뜻은 울어대는 중생들을 비유한 말이랍니다.
"밥 달라" "젖 달라" "돈 달라" "사랑 달라" 안 주면 마구 울어 대며 욕하고 증오하고 욕심에 집착에 아무튼 중생들은 허구한 날 싸우고 욕하고 울어대고 또 울어대는 모습을 '우는 아기'로 비유한 내용이랍니다.
ㅡ♡
(본문 해설)
오늘 내용은 아주 재미있고 속이 깊은 선문(禪門)이 나왔네요. ^^
오늘 내용을 단 한마디로 표현하면
"매일 어린아이처럼 울어대지 말고 빨리 본성 자리를 찾아 안정을 찾으라."
라는 뜻이랍니다. ^^
,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처럼 징징거리면서 울어대면서 살아왔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숨을 쉬는 그 순간부터 "으앙~!" 하면서 배고프다 젖 달라 하면서 울어대기 일쑤였지요.
커가면서는
"저 아이들은 저런 멋진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데 왜 내 것은 이 모양이야?"
하면서 욕심을 내고 부러워하면서 때로는 어렸을 때에는 남의 것을 훔치기도 하고 마구 징징거리면서 부모를 못살게 굴면서 울어대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친구들과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잠깐, 학급 친구들과 경쟁을 할 수 박에 없고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설사 승리를 하더라도 알게 모르게 수많은 불안과 고통으로 울고불고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대학이나 사회에 나가서는 동료나 남녀 간에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로 마음의 아픔과 즐거움을 격기도 하고요.
결혼을 하고부터는 정말이지 실질적인 경쟁 사회로 들어서게 되면서 간이고 쓸개고 자존심이고 다 뒤로하고 허겁지겁 하루하루를 의무적으로 살아가면서 자식들과 가족들 부양하느라 지지고 볶으면서 울고불고 하루하루 아무런 의미 없이 나이가 늙어가는지조차 모르고 인생을 살아가게 되지요?
물론 노력하는 것보다는 아주 적게는 락(㦡/즐거움)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입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재미없이 하루하루 의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의 인생이지요.
그러다가 어느덧 육십이 넘고 칠십이 넘어가면서 몸은 여기저기가 이상이 오면서 쑤셔오고 그다음은 은근히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애써 죽음을 외면하려고 하지요.
"나는 그래도 오래 살 거야?"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죽을 병에 걸리고 맙니다.
이렇게 암이든 그 외에 노환으로 오는 병이든 당사자는 죽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러면 한동안은 죽음을 생각하면서 엄청난 공포와 함게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또 마음으로 울어댑니다.
"나는 죽기 싫어.."
하면서 말이지요.
이러한 현상들을 죽음 직전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이 있고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속으로는 울고불고 난리가 나는 겁니다.
"난 죽기 싫어..! 난 죽기 싫어..!"
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대부분은 처음에는 두려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앞에 두고는 마음이 완전히 꺾여서 담담하게 죽음을 인정하고 맞이하게 됩니다.
※ 참고 : 이때가 중요함.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은 지금 이 글을 잘 기억해 두셨다가 죽음을 앞두고 내 마음이 꺾였을 때 이때가 마지막이라 생각하시고 내 마음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버리고 가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이번 생에서의 아쉬움이나 걱정, 근심, 특히 원한 등은 가지고 가시면 안 된답니다.
그러면 비록 죽는 순간이지만 오늘 마조 대사의 말씀처럼 울던 아이도 바로 대도를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마음이 꺾이게 되면 본인은 확실히 느끼게 됨)
ㅡ
그럼 오늘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
하루는 어떤 중이 마조를 찾아와 묻기를?
★
[화상은 어찌하여 마음이 곧 부처라 하십니까?] 하니 마조의 대답이?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서이니라.]
라고 했다는 것인데요?
이는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깨닫기 전의 중생들을 비유로 한 말씀이랍니다.
우는 아기 즉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함"이라는 뜻이지요.
ㅡ
그랬더니 다시 중이 묻기를?
★
[울음이 그친 뒤에 어떠합니까?]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깨다고 난 뒤에는 어떠합니까?]라는 뜻이랍니다.
쉽게 말하면 [깨닫고 나서의 마음은 어떠합니까?]라는 뜻이지요.
그랬더니 마조 선사의 대답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니라.]라고 말씀을 했다는 것인데요?
이 답변이 정답이랍니다.
"그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이지요.
공(空)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마음이 완전히 공(空)으로 바뀌게 된답니다. (진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여여한 것이고 평온한 것이고 여유가 있는 것이고 덤으로 지혜나 여러 가지 신통력도 생기게 되는 거랍니다.
그렇다고 "수리 수리마하 수리 금 나와라 뚝딱~" 그러면 금이 막 나오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요.^^
금보다도 더 귀한 그런 능력이 생기게 된답니다.
(참고 : 사실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인데요. 육체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마조 선사 말씀은 그 자리는 공(空)이기 때문에 부처도 중생도 없다는 뜻이랍니다. ^^👍🏻
실제로 깨닫고 보면 그 자리는 마음도 부처도 아무것도 없답니다.
육체의 입장에서 보니까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것이지요.
육체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자리가 본성(불성/성령/마음) 자리랍니다.
육체 입장에서는 억지로 이름 붙여 마음이다 부처다 하는 것뿐이지 본성 자리는 그저 한가롭게(여여하게) 존재하고 있는 그런 것이랍니다.
마치 허공처럼 말이지요.
허공에 무슨 마음이라는 명칭이 있고 부처라는 명칭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깨닫기 전에 구분을 하기 위한 하나의 분별인 것뿐이지요.
그래서 지금 마조 선사께서도 깨닫고 나면 그 자리는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 하신 거랍니다.
ㅡ
그랬더니 다시 중이 묻기를?
★
[이런 두 종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두 종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 즉 깨닫지 못한 사람이 오면 어찌하느냐? 이런 말이랍니다.
요즘 말로 하면 [수행자 중에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 오면 어찌 가르치시겠습니까?]라는 뜻이랍니다.
그랬더니 마조 선사의 대답이 [그에게 물건은 아니라 하리라]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물건이 아닌? 형상이 없는 공(空)의 자리를 찾으란 뜻입니다.
(참고 : 의식이 깨어서 보거나,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ㅡ
그랬더니 다시 중이 마조 선사에게 묻기를?
★
[홀연히 그 안의 사람이 오면 어찌 하겠습니까?]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반대로 [깨달은 사람이 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뜻이랍니다.
요즘 말로 하면 "깨달은 사람이 오면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라는 뜻입니다
그랬더니 마조 선사의 대답이 아주 걸작입니다.? ^^
[우선 그로 하여금 대도를 알도록 하게 하리라]라고 그랬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우선 깨닫게 되면 대승의 방법을 일러주겠다"라는 뜻이랍니다.
(사성제)로 말하면 도성제(道聖諦)를 알려주겠다는 뜻이지요.👍🏻
ㅡ
(보충 설명)
깨닫기 전에 있는 분들은 의식이 깨어 있는 바로 그 자리를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알아차리고 있는 그 자리를 보십시오.
그리고 마조 선사의 말씀 중 "깨달은 사람이 오면은 대도를 알도록 하게 하리라"라는 말씀 안에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답니다.
왜냐하면 수행자들이 깨닫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가르쳐 줄 사람도 없고요.
만약 깨달았을 때에는 가르쳐 줄 사람이 거의 없으니 경전을 통해 의지를 하십시오.
진짜로 깨달았다면 경전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경전 내용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것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고요.
그래서 제가 권해드리고 싶은 경전이 있다면 깨달은 분들은 [법화경]과 [유마경]을 항상 소지하면서 따라 해 보십시오.
왜냐하면 이 두 경전은 깨달은 사람들을 위한 경전이라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랍니다.
깨달은 사람들은 더욱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고 그 한 물건도 없는 그 자리를 부처가 될 때까지 열심히 잘 관리를 하면서 후 공부를 이어나가야 한답니다.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해서 뭐 합니다만 지금처럼 깨달았다고 하는 어른들이 그런 천도재 같은 일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요.
왜냐하면 실제로 그들이 깨달은 분들이라면 그런 천도재 같은 짓들을 할 시간도 여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
그리고 실제로 깨달은 사람들의 마음은 공(空)이기 때문에 그런 짓들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실)
그래서 오늘 마조 선사께서도 "깨달은 사람이 오면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 하니까?
우선 그로 하여금 대도를 알도록 하게 하리라 즉 대승에 해당하는 도성제를 가르치겠다 하지 않던가요?
그래서 지금 어른들의 천도재 같은 그런 행위들은 모두가 도성제에 걸리는 행위들이라 하는 것이고요. (진실)
,
그리고 깨닫기 전에 분들은 [대념처경]을 중심으로 따라 해 보십시오.
왜냐하면 부처님이 하셨던 방법을 그대로 [대념처경]에 기록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꼭 경전 책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서 어플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서 경전 읽어주기로도 얼마든지 공부를 할 수가 있답니다.
그 대신 꼭 다른 사람들이 해설해 놓은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닌 경전 위주로 보셔야 한답니다.
어렵더라도 그렇게 하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어려움 자체가 "이뭣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근기(根機)도 수성 해지는 것이고요.
오늘 내용의 핵심은?
우리들도 우는 아이가 되지 않으려면 즉 괴로움과 고통
(苦) 속에서 살지 않으려면 대도(大道)를 성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
ㅡ♡♡
.
.
(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합니다.
ㅡ♡
오늘 내용은 저와 함게 하는 도반 분과의 카톡 내용을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이분도 카페를 통해 같이하게 된 분이신데요. ^^
정말 열심히 하시는 분 중에 한 분이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질문 내용이 좋아서 같이 공유해 보려고 하는데요. ^^
질문 내용을 들어보면 이분이 어느 정도로 수행을 하고 있고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금방 알 수가 있는데요?
이분 말씀 중에
[집착을 끊는 방법으로 의식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방법 관련 진언or염불이 저에겐 도움이 됩니다.]
라는 내용이 제 귀에 속 들어왔는데요.
이분은 아직 모르시겠지만 지금 이 내용은 보통이 넘는 그런 공력이랍니다.
왜냐하면 '깨닫고 못 깨닫고를 떠나서'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내가 지금 집착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 정도만 알아차려도 이미 절반 이상은 깨달은 거나 마찬가지라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의 가장 큰 결과물은 [내가 나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거든요?
내가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참나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이분은 앞으로 [내가 나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반성과 포살(布薩)의 마음이 스스로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알아차리다 보면 자꾸 내 마음에 일어나는 것들을 알아차리게 되고 내 뜻대로 안되는 그런 한계에 부닥치게 되고 이렇게 자신의 한계에 부닥치다 보면 정진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절반 이상은 깨달은 거나 다름없다 하는 것인데요.
물론 중간에 포기를 하시는 분들도 맗이 있지만 이분의 의지력으로 봐서는 그럴 분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인데요.
수행은 무엇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하려고 하는 의지력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쉬운 것이면 누구나 다하게요?
이러한 과정들은 다들 아시다시피 부처님도 그러셨고 경허선사는 더 그러셨고 옛 어른들 모두가 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깨달으셨답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고요.
그럼 도반님과의 대화 내용을 같이 보실까요? ^^
ㅡ
오늘 내용은 지난번 《수행의 기본 4가지 ?》를 보시고 질문을 주신 내용인데요.
못 보신 분들은 아래 내용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내용 참고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cafe.daum.net/119sh/XASd/243?
ㅡ♡
(질문)
집착을 끊는 방법으로 의식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방법 관련 진언or염불이 저에겐 도움이 됩니다. 여여하신 선배님, 건강하셔요.
그리고 티벳 불교 관련 '보리도등론'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쉽게 적어서 내일이나 늦어도 모래까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추가 답변)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그럼 바로 답변을 드려보겠습니다.😃🙏
(보리도등론)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시면
[인도 출신인 아띠쌰 스님의 현교와 밀교 양측의 쇠퇴해 가는 티베트불교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티베트의 법왕 장춥외의 간절한 요청에 응하여 1042년 티베트로 초청받게 된다. 티베트에 도착한 아띠쌰 스님에게 법왕 장춥외는 당시 온갖 사견(邪見)과 비행 등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 쇠퇴의 길에 들어서 있던 티베트불교를 정화하기 위한 바른 법의 등불을 밝혀 달라고 청하였는데, 그 간청에 대한 답이 바로 『보리도등론』이었다. 아띠쌰는 이 논서에서 후기 인도불교의 사상은 물론이고, 현교와 밀교 양측의 견해와 가르침을 모두 녹여내어 서로를 무시하거나 배격함 없이, 그 둘을 함께 닦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티베트불교는 ‘현밀쌍수’의 불교로 발전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티베트불교를 대표하는 수행서이자 교리의 기본서로 자리 잡고 있다.]
라고 되어 있었는데요.
위에 내용을 쉽게 요약하면?
1042년 당시에 티베트 내의 불교가 현교 즉 부처님의 가르침과 밀교의 가르침 사이에서 서로의 갈등으로 인해 쇠퇴 즉 망해가는 도중에 이를 보다 못한 티베트의 법왕 장춥외가 인도에 있는 고승 아띠쌰 스님을 간절히 모셔와 서로 싸우고 있는 티베트 승려들을 중재(仲裁) 해 주고자 나온 책이 [보리도등론] 책이라는 이야기인데요.
쉽게 말하면 당시 티베트 불교 승려들이 현교와 밀교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 것을 중간쯤에서 화해시켜 주는 의미에서 현교와 밀교를 동시에 같이 닦으라는 의미에서 [보리도등론]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밀쌍수] 즉 현교와 밀교를 동시에 수행하라는 의미로 나온 책이라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인도의 고승인 아띠쌰 스님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도(中道)를 제시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보리도등론]이라는 책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티베트 승려들이 그동안 이것을 너무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지요?
제가 왜 [문제]라는 단어를 썼느냐 하면?
모든 종교는 정교(正敎)가 있고 외교(外敎)가 있답니다.
다른 말로는 정도(正道)라 하고 외도(外道)라 하지요.
불교에서 말하는 정교(正敎)는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이 되는 것이고 정교 외에는 모두가 외도(外道)라 할 수 있답니다.
비유를 하면 학교에도 교과서가 있고 참고서가 있듯이 이것과 같답니다.
학교 공부도 교과서를 중심으로 참고서를 봐야지 시험 점수를 위해 족집게식으로 참고서를 보면 나중에는 전체 내용을 이해 못 하듯이?
불교도 경전을 중심으로 참고서로 다른 분들의 책들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족집게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그런 책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왜냐하면 정교에 속하는 경전만 보기에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정교만 해도 팔만 권이나 되는 경전들이 있는데 아랫사람들이 지은 책 들이나 수행 등을 따라 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뭐 합니다만,
제 경우는 뒤늦게 불교를 알게되다 보니까 주의에서 여러 가지 책들을 많이 권해주시는 도반 분들이 많이 계시답니다.
[육조단경]서부터 [명심보감]까지 수두룩하지요. ^^
그러나 제 경우는 원칙이 있답니다.
그 원칙이란 경전이 우선이고 시간이 남으면 다른 책들도 볼 것 같은데 아쉽게도 저는 다른 책들을 볼 시간이 부족하답니다.
왜냐하면 경전을 보고 따라 하기에도 바쁜데 다른 분들이 지은 책들까지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지요? ^^
그래서 제 경우는 지금까지 도반 분들이 선물해 준 책들은 많이 있었지만 제 경우는 딱 두 책만 빼고는 단 한 번도 남들이 쓴 책들을 본 적이 없는 경우인데요.
하나는 어느 깨달은 스님이 선물해 주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선문염송] 책이고 또 하나는 대구에 사시는 한 보살님이 선물해 주신 운허 용하 스님이 지으신 [불교사전]이 그것인데요.
제 경우는 원체 불교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불교를 접했기 때문에 올바른 사전이 필요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지금은 민감한 부분은 용하 스님이 지으신 [불교사전]을 참고하고 있답니다.
그 이유는 네이버 같은 사전에는 본성에 관계되는 단어들은 잘못된 해석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단어들 외에는 안 보고 있는데요.
제가 도반님께 권해 드리고 십은 것은 조금은 어렵더라도 정교에 해당하는 [금강경]이든 저처럼 [법화경]이든 한 가지만 물고 늘어져 보시기 바랍니다.
제 경우는 조금도 거짓이 아니고 중국에 있을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법화경을 하루에 한 번에서 한번 반 이상은 2년을 넘게 단 하루도 안 거르고 읽고 듣곤 했답니다.
내용이 너무 어렵다 보니까 나중에는 오기가 뻗쳐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언젠가는 이해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고 듣고 사전을 뒤쳐가면서 해석해 보곤 했었는데요.
이것이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그래봐야 그동안 제가 본 경전은 [법화경] [반야심경] [대념처경] [유마경]이 전부인데요.
이 네 가지의 경전이 저에게는 중심 경전이라 할 수 있답니다.
솔직히 지금 보고 있는 [선문염송] 도 옛 분들이 얼마나 잘 부처님 법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서 보고 있는 것인데요.
아직까지는 매우 훌륭했다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
뒤에 나오는 분들은 아직 모르겠고요.
선문염송은 부처님부터 제자들을 이어 뒤에 나오는 선사들 이야기를 역어놓은 책인데요.
그리고 가급적이면 저는 티베트 불교 쪽으로는 접근을 안 하시는 것을 권해드리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지금의 티베트 불교는 정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티베트 불교는 불교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그들은 스스럼없이 지금까지 해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달라이라마 제도와 너무 불교를 신비주의로 이끌고 가고 있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불교 교리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정치 쪽으로 그동안 불교를 이용해 왔다는 것이고 자신들을 신격화하는데 그들의 선배들이 이룩한 위대한 티베트 불교를 폭망하는 불교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1578년 청해(靑海)에 가서 몽골의 알탄 칸과 만나 달라이 라마의 칭호를 받은 그날 이후부터 티베트 불교는 정치화되어 갔는데요.
불교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는 정치를 하게 되면 반드시 전쟁과 역이게 되어 있고 더군다나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라는 제도가 불법과는 정 반대인 이상한 짝퉁 제도가 왕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나라까지 말아먹었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티베트 불교는 불교가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를 했기 때문에 폭망했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첫째는 불교로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왕의 역할을 했다는 것과
둘째는 불교로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밀교를 했다는 것과
셋째는 불교로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신비주의로 갔다는 것과
넷째는 불교로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신격화가 그것이랍니다.
티베트의 옛 나라 이름이 토번국인데요.
토번국은 인도나 중국도 어쩌지 못했던 좋은 근성을 가지고 있던 근기의 민족인데 그랬던 근기를 가지고 있었던 백성들의 마음을 위에 네 가지들 때문에 국민들의 마음을 병들게 만들었으니 이 죗값을 누가 다 치러야 할까요?
이 말은 절대로 티베트 불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동안 대대로 달라이 라마를 지내온 승려들과 그를 따르는 위정자들을 비판하는 것이지요.
기록에는 티베트도 훌륭한 고승들이 많았는데요.
그러나 그 뒤로는 지금까지 훌륭한 고승들을 억지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달라이라마 제도 자체가 불법과는 거리가 먼 것이고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현 달라이 라마의 태도인 것이고요.
특히 밀교는 부처님께서도 가장 멀리하셨던 수행 방법이기도 하고요.
오죽하면 밀교라 하겠습니까?
남들 앞에 내놓기가 어려운 수행 방법이라 그런 것 아니겠어요?
해서 [보리도등론]은 그냥 참고용으로 보시는 것은 좋겠으나 무엇보다 경전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보고 수행에만 정진하시면 좋겠으나 정 보시려거든 법화경이나 금강경 같은 경전을 보시길 권해드리고요.
무엇보다 수행자라면 [대념처경]은 옆에 끼고 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나머지는 뒤로하기로 하고 수행에 관계되는 질문은 언제든 주시기 바랍니다.😄👍🏻
(제 질문)
20240407
선배님의 조언에 따라 대념처경을 제 주된 수행 지침서로 삼을려고 합니다. 그 것에서 다음 문구가 의미하는 걸 제가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좀 더 정확하고 세밀하게 이해하기 위해 선배님의 고견을 여쭤봅니다.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며 ~~~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
상기 문구에서
1) 몸에서는 몸에 대해서, 감각에서는 감각에 대해서, 마음에서는 마음에 대해서, 법에서는 법에 대해서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2) 몸, 감각(느낌), 마음, 법별 각각을 관찰할 때 의식으로 깨어진 상태에서 주의깊게&세밀하게 지켜보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3) 상기 관찰 대상에서 마음은 깨달음의 관점에서 본 견성의 마음과 같습니까? 또는 다릅니까? 다르다면 그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4) 법은 무엇입니까?( 그 범위, 대상을 명확히 모르겠음)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참조하는 대념처경 pdf파일을 첨부하오니 참고하여 주셔요.
(제 답변)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쉽게 적어서 내일이나 늦어도 모래까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추가 답변)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 질문을 잘 주셨습니다. ^^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질문 중에
★
[대념처경을 제 주된 수행 지침서로 삼을려고 합니다.]
는 매우 잘 선택하신 겁니다.^^👍🏻
★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며 ~~~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
는 한문식 표현이라 좀 헷갈려 하시는 건데요.
여기서 말하는 [몸]이나 [감각]은 모두 오온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오온을 관찰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때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감각이나 반응들을 관찰해 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법]의 뜻은 본래 우주 전체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법]이라 하는데요.
이렇게 하면 너무 범위가 넓어서 설명을 다하자면 너무 길고요.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의 [법]만 따로 때어서 설명을 드리자면?
내 몸을 중심으로 밖이나 안에서 내 마음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들은 모두 [법]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예를 들면 밖에서 누가 욕을 하거나 칭찬을 하면 내 마음에 영향을 주잖아요?
그리고 내 몸이 아프거나 심장이나 가슴이 요동을 쳐도 내 마음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요?
이런 것들을 모두가 [법]이라 하고 그 법을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찰]이 다른 말로 하면 [알아차림]이고요.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질문 내용은 이것이 끝인데요.^^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 가시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다시 질문을 해 주셔야 한답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디에서 걸려 있는지 제가 알 수 가 없답니다?
도반님과 제가 서로 만난적이 없기 때문에 도반님의 성격이나 기질 등을 알수가 없어서 더욱 그러하고요.^^
,
이렇게 끝내면 조금 서운하니 보충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그러면 법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왜 내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고?
몸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왜 내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등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ㅡ
먼저 수행을 할 때에 3가지 방법입니다.
모든 수행은 [알아차림 / 관찰]이 기본입니다.
,
1. 평시에 일을 하거나 할 때에는 의식이 깨어서 하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지혜에 관계되는 것에는 이만한 수행이 없답니다.^^👍🏻
ㅡ
그다음은
2. 마음 챙김입니다.
[마음 알아차림] [마음 관찰]이라고도 합니다.
이 방법은 평시에 마음에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좋은 것이니 그냥 내버려 두시면 됩니다.
괜히 수행을 한답시고 조용히 있는 마음을 들쑤셔 놓으면 안 됩니다.^^
(이런 분들이 많음^^)
그런데 문제는 마음에 문제가 있을 때입니다.
이럴 때에는 수행자들은 총 비상 상태를 걸어야 한답니다.
마음에는 그 어떠한 것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0.01%도 허용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오온 알아차림을 하시다 보면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수행자라면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 마음은 화가 나거나, 괴롭거나, 두렵거나, 즐겁거나,
누가 좋은 소리를 하거나 칭찬 좀 하면 금방 즐거워 하거나
누가 싫은 소리를 좀 하면 금방 화를 내는 그런것이 큰 문제랍니다.
이럴 때는 빨리 이런 내 마음을 알아 차리셔야 한답니다. (고성제)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모두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고성제]이고 고성제를 빨리 알아차려야 [집성제]든 [멸성제]든 할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말한 이러한 것들이 모두 불교에서 말하는 [법 ]에 속한답니다.
그래서 법문(法門)이라 하는 것이고요.
법(法)으로 들어가는 문(門)이라는 뜻입니다.
몸 밖에서는 마음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원인들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답니다.
예를 들면
안 좋은 것을 보거나(眼)
안 좋은 소리를 듣거나(耳)
안 좋은 냄새를 맡거나(鼻)
안 좋은 맛을 보거나(舌)
안 좋은 감촉을 느끼거나(身)
했을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들(意)
즉
마음에서 화, 괴로움, 두려움, 즐거움 등이
일어났을 때에는 이렇게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는 밖에 있는 그 대상에 절대로 의식을 두지 말고 내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오온)을 찾아서 바라보라는 것이 부처님 말씀이고 화택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원인 제공으로 인해 내 마음에 화가 났거나, 두렵거나, 마음이 급하게 쫓기고 있다면 반드시 내 몸에 해당하는 심장? 가슴? 근육(육근)? 감성? 감정? 신경? 감각? 등이 예민해져서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 있을 겁니다.
반드시 있답니다
이것을 바라보라는 것이 [조견오온]이고 이것이 대념처경에서 말하는 부처님 가르침이랍니다.^^👍🏻
알아차리고 바라보기만 해도 웬만한 것들은 없어진(소멸) 답니다.
제 경우는 웬만한 것들은 효과가 매우 좋았답니다.
그리고 아주 독하고 센 놈이 내 마음을 헤집고 있을 때에는 이것 가지고는 힘이 들 때가 있는데요.
이럴 때에는 의식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리십시오.
본인이 좋아하는 쪽으로 의식과 생각을 돌리시는 겁니다.
옛 분들은 다른 놀이 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화두나 현재 이 순간 같은 쪽으로 의식을 돌렸지만 지금은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이든 폰이든 스포츠든 영화든 드라마든 하다못해 즐거운 수다를 떠는 쪽으로 의식을 돌려보십시오.
불교 수행 쪽으로 하시고 싶으시면 화두든 현재 이 순간이든 마음이든 오온 쪽으로 의식을 돌려보시고요.
잘 되는 쪽으로 하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급한 마음의 불부터 끄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급한 불을 끄는데 소화기면 어떻고 물이면 어떻고 모래면 어떻고 이불이면 어떻고 오줌통이면 어떻습니까?
마음의 불부터 먼저 끄는 것이 우선이지요.
괜히 고상하게 앉아서 꺼지지도 않는 불을 더 큰 화(火)로 키우지 말고요.
마음에 불길이 커지면 부처님이 살아돌아오셔도 도와줄 방법이 없답니다.
수행은 내 집에 불이 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과 비슷하답니다.
예를 들어 내 집에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불은 나 외에는 그 누구도 꺼줄 수가 없습니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 가장 좋은 방법은 평시에 내 마음을 잘 관리해서 불이 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두 번째는 불길이 내 마음에 들어 오려고 할 때에 못 들어 오도록 의식의 힘으로 스톱! 정지! 그만! 하면서 미리 막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불길이 막 타오르고 있을 때입니다.
이때도 미리 알아차리고 직접 불길 속으로 들어가 불을 끄는 방법이 있겠지요.
이것도 직접 해 보시면 비교적 쉽게 된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길이 크게 번져서 감당이 안 될 때입니다.
이런 때에는 그 마음의 불길과 싸우지 마시고 다 탈 때까지 불타는 마음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타는 동안에는 피눈물을 흘리십시오.
반성하고 포살(布薩)를 하라는 것입니다.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나의 마음이 불길 속에서 타고 있구나."
"두 번 다시는 내 마음을 불길 속에서 타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하면서 반성하고 또 반성을 하십시오.
이것조차도 안 하시면 발전이 없답니다.
ㅡ
3. 삼매
삼매는 집중입니다.
방법은 각자가 하고 있는 수행 방법으로 하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 깨어서 해보십시오.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림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의 입장에서는 지혜와 선정을 한 번에 키울 수가 있답니다.
자세는 편한 쪽으로 하시면 됩니다.
좌선이든 의자든 서서 하든 편한 쪽으로 하시면 됩니다.
단 허리는 펴시고요.
서서 하는 방법은 발은 어깨너비로 벌리고 허리는 펴시고 눈은 좌선을 할 때처럼 적당한 거리의 바닥에 떨구고 좋아하시는 수인을 하신 후 알아차림에 집중을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하십시오.
방이든 산이든 공원이든 집중이 잘 되는 쪽으로 본인 만의 장소를 골라서 혼자 하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알아차림 집중을 하다가 힘이 들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는 경우에는 좀 쉬었다가 조금씩 적응을 하면서 해보십시오.
무조건 열심히만 하지 마시고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대부분들 보면 할 때에는 빡세게 몇 시간식 참으면서 하다가? 힘이 드니까 안 할 때에는 하염없이 안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그런 것인데요.
수행은 무엇보다 옛 어른들 말씀처럼 닭이 먹이를 쪼듯이 어미 닮이 알을 품듯이 꾸준히 하셔야 한답니다.
닭이 알을 품는데 힘이 들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고통스럽다고 그 알(본성)을 발로 차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이것이 훨씬 좋으니까요.
요령을 알려드린다면 위에 내용들을 잘 익혀서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수행 방법을 바꾸어 가면서 해보십시오.
일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산보를 하거나 할 때에는 의식이 깨어서 하려고 노력해 보시고,
시간이 넉넉하면 아무 의자나 앉아서 허리는 펴시고 현재 이 순간에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림을 하시든 화두를 드시든 마음을 보시든 오온(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시든 해보십시오.
보실 때 "이뭣고~" 하면서 안으로 누르는 느낌으로 하시면 훨씬 힘이 좋답니다.
ㅡ♡
그러면 질문하신 법(法)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수행은 크게 세 가지를 가지고 하는 거랍니다.
한문식 표현을 요즘 우리 말로 하면?
1. 마음 알아차림(고성제)
2. 밖에서 오는 법(法)들로 인해(원인 제공) 몸도 법에 속함으로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오온의 작용들(법)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 (간화선은 화두를 통해 알아차리는 것) (집성제 - 원인?)
3. 오온(몸에서 일어나는 작용들)을 바라보면 사라진다. (멸성제)
이렇게 하니까 좀 복잡하네요.^^
간단히 한 마디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평시에 마음 알아차림, 또는 마음 관찰을 하다가 이상이 있을 때 그 원인은 물론 밖에서 오는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내 몸(오온)에서 일어나는 작용과 현상들이다.]
입니다.
쉽게 말해 마음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내 몸(오온)을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화가 나든, 괴로움이든, 두려움이든, 즐거움이든 어느 것이든 미세한 것이라도 일어나면 제일 먼저 오온의 반응들을 알아차리셔야 합니다.
그래서 바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찾아보십시오. (오온의 작용들)
아마 모르긴 해도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심장이 뛰고 있거나 조여들고 있거나? 가슴이 뛰고 있거나 조여들고 있거나? 근육(육근)이 뛰고 있거나 조여들고 있거나? 신경이나 감성, 감정, 감각 등이 뛰고 있거나 조여들고 있거나? 할 것입니다.
내가 급하게 서둘고 있거나 쫓기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럴 때 그냥 오온(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된답니다.
오온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아도 계속해서 오온의 작용(반응)들을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깨닫기 전에 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감이 익을 때로 익으면 바람만 불어도 툭~" 하고 떨어지듯이 떨어지게 되어있답니다.
그리고 많은 수행자들이 원인(집성제)을 모르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수행자들이 법(法) 과 오온(五蘊)을 잘 모르고 있어서 어려운 것이고요.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화살을 과녁이 아니라 허공에 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좌선만 하고 화두만 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랍니다.
어느 수행 방법으로 하시든 [마음 관찰]과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수행을 해도 그 자리에서만 맴맴 돌 수 박에 없답니다.
지금 말씀드린 내용들을 완전히 숙지(熟知) 하도록 해보십시오.
지금 말씀드린 내용들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지금처럼 바로 질문을 주셔야 하고요.
안 그러면 제가 알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모든 내용들이 법(法)에 속한답니다.
[법(法)]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법이 마음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고?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답니다.
[법]을 이해 못 하고 있으면 화살을 쏠 때에 (활)을 모르는 것과 같고 [오온]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 (화살)을 모르는 것과 같고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과녁)을 모르는 것과 같답니다. (※ 중요)
수행에서의 법은 그냥 내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는 모든 것들이라고 생각을 하십시오.
무슨 말이냐 하면 비유를 하면 활에 해당하는 마음 밖에 있는 [법]들은 늘 내 마음을 향해 영향을 주고 있답니다.
보면 보는 대로, 들으면 듣는 대로, 느끼면 느끼는 대로 밖에 것들로 다들 마음이 끌려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마치 활이 나를 향해 겨냥하고 있으면 모든 의식들이 그쪽으로 향하게 되듯이 말이지요.
밖에서 뭔가가 나를 향해 들어오면 마음이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내 마음에 비추게 되면 몸(오온의 작용들)이 화살이 되어 내 마음을 마구 찌른 다는 비유입니다.
그래서 혜가처럼 마음이 아프다, 괴롭다, 슬프다, 하는 것이고요.
과녁에 해당하는 마음은 허공과 같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화살들이 몰려와도 박힐 수가 없는데도 말이지요?
그래서 과녁(마음)을 같이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화살이 박혀서 네 마음이 아파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몸(오온)이 아파 하는 것인지? 를 말이지요?
그래서 내 마음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먼저 파악하시고 그때 마음도 같이 비교해 보라는 것이 대념처경 속의 일부분의 이야기랍니다.
이것이 깨닫기 전에 할 일이고 깨닫고 나서 할 일들도 대념처경 속에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답니다.^^🙏🏻
너무 길게 하면 헷갈려 하실 것 같아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시면 그때 또 이어서 해 보겠습니다.
아고? 그래도 내용이 기내요? 😅
늘 건강관리 잘하시면서 수행을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
ㅡ♡
(주의)
알아차림을 할 때에는 의식이 밖이 아니라 안쪽을 알아차려야 한답니다.
예를 들면 앞에 버스가 있으면 버스를 알아차리라는 것이 아니라
- 지금 보고 있는 경계(境界)
- 현재 이 순간
- 지금 보고 있는 그 자리
- 지금 보고 있는 바로 그놈? 바로 그 자리?
모두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뜻이랍니다.
이렇게 하라는 이유는 육체 입장에서 보면 바로 그 자리가 본성이 드러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성령이 임 하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고요.
육체 입장에 보면 실제로 본성(성령)이 임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불교 용어로 하면 본성이 드러나는 것이고요.
저는 그냥 요즘 말로 "생긴다"로 표현하는 것이고요.
지혜도 바로 그 자리에서 생기고
알아차림도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생기고
육체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바로 그 자리에서 생기는 것처럼 보인답니다.
물론 본성 입장에서 보면 늘 드러나 있는 것이지만 육체 입장에서 보면 육체의 분별심 등으로 인해 본성이 가려져 있는 것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옛 분들은 이를 일러 거울을 비유해 거울에 먼지가 잔뜩 끼여서 본성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지란 번뇌 망상 분별심 집착 등을 말하는 것이고요.
이러한 것들만 없으면 본성(성령)은 자동으로 드러나(생기게) 있게 된답니다.
제가 방금 "드러나 있게~"라는 표현을 썼잖아요?
그 이유는 본성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쓴 것이랍니다.
본성은 항상 존재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수십수백수천수만 무량겁 동안 말이지요. (진실)
비유를 하면 본래 거울이 있는데 그동안 먼지와 때 등으로 얼룩져 있던 거울을 닦으면 밝은 거울이 드러나듯이 이미 존재하고 있던 본성이 누구든지 번뇌, 망상, 분별심, 집착과 같은 것만 없으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깨닫고 못 깨닫고는 둘째이고요.
문제는 깨닫지 못한 분들은 이것이 머리에서 생겨난 것인지? 본성에서 피어난 것인지?를 구분을 못하는 것이고요.
누구나 살다 보면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지 않나요?
이때 내가 지금 이 아이디어를 머리로 생각해서 떠오른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마음에서 일어난 것인지? 관찰해 보시면 금방 알 수가 있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누구나 본성(불성/성령/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진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진짜로 그런지 안 그런지 꼭 열심히 해보시라는 것입니다.😃👍🏻
.
.
ㅡ♡♡
.
.
첫댓글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
늘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관리 잘 하시고 오늘 하루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_()_
늘 감사드립니다. 스님, 😃🙏🏻
항상 건강관리 잘 하시고 오늘 하루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