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속도
유난히 비가 자주 내린 어느 해 여름이었다. 북한산을 등반하다가 벼락에 맞아 네 사람이 사망했고, 또 몇 사람이 다쳤다는 긴급뉴스가 티브이 방송마다 신문마다 시끄러웠다. 연이어 벼락을 피하는 법을 설명하는 전문가들이 등장했다.
번개가 치고 난 후 천둥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들쑥날쑥하다. 빛의 속도와 소리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는 1초에 30만km이고, 소리는 1초에 340m이다. 그런 까닭에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바로 들리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번개가 친 것이니 매우 위험하다. 반면 한참 후에 천둥소리가 들리면 먼 거리에서 번개가 쳤다는 거다. 번개는 번쩍이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천둥은 공기를 흔들어 가며 소리가 되어 다가온다. 벼락을 맞는 건 뉴스에 나올 정도로 드문 일이다.
의사는 검사결과를 설명하며 친정엄마가 6개월도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날 나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았다. 소화가 안 된다고 한 달째 약을 드셨지만, 일주일 전만 해도 혼자서 교회에 다녀오셨고 전화 목소리도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검사받기 위해 병원에 가기 전날에도 비가 많이 오는데 새는 곳은 없냐고 전화 걸어 물으셨다. 나는 그때 아파트인데 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시한부 통보를 받던 날, 나는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병의 진행 상태를 의사와 상담하는 일 외에도 간병인을 구하고, 친척들에게 엄마의 병 상태를 설명하거나 문병하러 오겠다는 교회 분들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일 등 해야 할 일이 넘쳤다. 엄마 역시 갑작스러운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드셨는지 가족 외에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와 보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을 위해 처리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 나는 늘 종종걸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엄마와 함께 할 수 없으니 마음만 초조했다.
엄마는 병명을 안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급작스레 할 일이 사라진 나는 공허함에 마음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거짓말처럼 흐려졌다. 가족의 죽음은 그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인지 오히려 소소한 일상처럼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엄마의 부재를 실감한 건 지난해 아들을 장가보내면서였다. 신랑 측은 신부 쪽에 비해 크게 할 일이 없었다. 신혼집을 미리 구해놨고 집수리 및 예식장 예약하기와 청첩장 만들기, 피로연 등은 결혼당사자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늘 뭔가 중요한 걸 빠트린 것같이 나는 마음이 영 불안했다. 그게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진 않았는데, 친구에게 전화하려고 휴대전화 연락처를 검색하다가 엄마 전화번호와 딱, 마주쳤다.
“엄마 청첩장 나왔어.” “고무신 말고 그냥 구두 신을까 봐.” “피로연 음식은 뷔페로 정했어.” 나는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엄마와 나누고 싶었었나 보다. 무엇보다 ‘아들 잘 키웠네’라는 칭찬을 엄마한테 듣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생각 끝에는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진하게 따라왔다. 엄마가 평소에 혼자 결정해도 될 일을 굳이 나에게 의논하자고 전화했을 때, 그냥 알아서 하라고 급히 끊어버리곤 했던 일들이 마음을 후벼 팠다. ‘별일도 아닌데 뭘, 평소엔 알아서 잘했으면서’라고 속으로 구시렁대며 매정하게 굴었던 일도 생각났다. 엄마도 지금 나처럼 그랬겠구나. 그저 나랑 이야기하고 싶은 거였을 텐데……. 미안한 마음이 때늦은 천둥소리처럼 마음을 마구 흔들어댔다.
번개처럼 다가온 이별은 커다란 돌멩이 하나 내 마음에 심어놓았다. 슬픔은 깊은 어느 곳에 움츠리고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부서지며 소리를 내질렀다. 돌조각들이 내는 파열음에 준비가 안 된 내 마음은 진동했다. 그 슬픔은 부지불식간에 기별도 없이 번쩍였다.
비 내리는 어느 날, 엄마에게 무릎 아프지 않으냐고 전화하려다가 흠칫 놀랐다. 엄마가 좋아하던 냉면을 먹다가도, 손잡고 걸어가는 사이좋은 모녀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잠 못 든 밤 건너편 아파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지켜보다가도 나는 엄마 생각에 숨을 고른다. 슬픔의 마음은 여기까지라고 끝을 지정해주지 않았기에 그 속도를 측정할 수 없었다. 언제 어느 순간에 찾아올지 나조차 예측하기 어려웠다. 어디론가 한없이 나아가는 진행형이며, 묻힌 듯 보이나 살아 움직이는 현재형이었다.
벼락을 피하는 법처럼 슬픔을 피하는 법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힘든 일도 시간이 가면 무뎌진다고 하던데, 나의 슬픔은 도무지 줄어들 줄을 모른다.
첫댓글 살아가며 자신에게 닥치는 느닷없는 사건은 정말 벼락처럼 느껴지겠지요.
그리고 전둥소리 같이 뒤이어 따라오는 아픔과 슬픔.
보통은 세월이, 시간이 치유의 힘으로 살아가게 해주는데
작가의 '이 슬픔은 도무지 줄어들 줄 모른다'고 끝을 맺었어요.
어쩌면 그 슬픔 가운데 머물러야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계신 건 아닌가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올려주신 이혜연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