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봄 길라잡이 – 내 고향 민동골 -
노 주 형
돈오의 한 걸음에
가쁜 숨결을 토하는 대지여
물안개 자옥한 미루나무의 꿈속으로
강은 산을, 산은 강을 품어 안으며
돌아 맞물리어 입춘 우수를 지나더니
매화 벗 삼아 걸어오는, 봄빛
울 넘고 재 넘어 아지랑이
남녘 칠백리 길, 민동골 내 고향
예순 해의 꽃샘이 뭐라고 한들
귓등으로 들으며 돌아가고파라
열 몇 살 꽃잎같이 붉은 볼
두근두근 삽작에 서서
문패를 더듬으며
서성거리는 나를 만나리라
만나면 빙긋이 안아주리라
냉이 넣고 된장 푼 내음 따라
선산읍에서 십리길 힌티재 너머
사백여년 반솔 한 그루와
이제는 피붙이 살지 않는 607번지
옛 고향집에서 이름을 불리고 싶어라
* 민동골 : 선산읍 독동리 옛 지명
* 돈오(頓悟) : 한 번에 깨닫다
* 남녘 칠백리 : 인천에서 고향까지 마음의 거리
* 반솔 : 독동리 반송 천연기념물 357호
* 힌티재 : 선산읍에서 마을 어귀 들기 전의 작은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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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봄날 -
노 주 형
살다보니
그냥
마주친
하얀 별꽃의 미소와
어제는 꽃샘이 이만저만 하여도
오늘은 이렇게 옆구리가 간질간질한 것이
살아보니
또
봄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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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형
선주문학회원
가정의학과 의사
첫댓글 민동골이 독동리였군요
지난주에 가족들과 나들이차 다녀왔습니다.
천연기념물 반송이 있고 최근에는 그 지역 출신의 "노진환"님께서 추진하신 영남유교문화진흥원이 거창하게 지어져가고 있습니다.
한번 제대로 둘러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릴 정도로 독동리 마을 인근 야산 일원에 어마어마한 한옥 건물들이 지어지고 지금도 공사중입니다. 몇년전보다 또 많은 건축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유교이념을 추앙하지는 않더라도 한번쯤 관광차 다녀와봐도 좋겠습니다.
마을 앞 들판도 꽤 너르고 그 앞에 흐르는 낙동강은 넉넉한 젖줄이라 생각됩니다.
고향이시라 늘 마음은 거기에 계시겠지요?^^
박선생님 그러셨군요.
민동골 마실에도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건만
이제는 사람이 기억이 그리고 이야기들이 사라져갑니다.
마을이 옛 모습을 많이 상실했지만, 산중턱에 서서
앞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나름 들과 강과
그 사이의 동내산(알봉)과 강건너 냉산이 그만하답니다. ^^
저는 비록 고향을 떠났지만
그곳에는 우리 문학회 김낙교형댁이 계신데 혹 들러보셨는지요?
뵙는 날까지 건승하시기를 빕니다.
반갑습니다. 전 민동골 건너편 여지가 고향이고 , 올림픽 기념관체육관에서 민동골 출신 노주성 형님과 매일 만나는데 팔 촌간 이라더군요.
김선생님 저 또한 반갑습니다. 맞습니다. 그 형님과는 삼종간입니다.
원래 마을에 사실 때 참으로 가깝게 지낸 일가 형님입니다.
요즘도 열심히 운동하신다니 그저 고마운 소식입니다.
여지라는 지명(예전 여지와 통혼도 한 걸로 들었습니다.)이 반갑습니다.
과거 집안에서도 여지쪽과 통혼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여기가 정확하게는 해평쪽 어느 마실을 칭하는 지 궁금합니다. ^^ 혹 선산김씨 집성촌인지요?
여지라는 지명은 고려 태조 왕건이 백제 견훤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난 뒤 낙산리 원촌 나루를 건너며 나의 나루(餘次津).
고려의 나루(麗津)라고 명하였답니다. 독동리 강 건너 맞은 편이 낙산리 입니다. 낙산리는 강을 끼고, 조선 시대 과거를
보러 가던 길목이며 말을 관리하던 미라원이라는 여관이 있었으며 나루 절벽 위엔 지금은 흔적만이 남은 월파정이 있었고
월파정산엔 신라와 가야 고분 250여기가 있는 원촌 마을과 중리 마을과 신라 3층 석탑이 있는 제 고향 대문간 마을이 있고
냉산이라 불리는 태조산 바로 아래 병인박해를 피해 천주교인들이 이주해와서 옹기와 사기를 구우며 살았던
사기점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선산(일선)김씨들 집성촌이었지만 지금은 객지로 떠나고 몇 집만 살고있지요.
저도 주말이면 농사를 지으며 옛 번성했던 향기를 킁킁 찾고 있지요. 삼 종 형님으로부터 주형씨 집안 내력을 잘 듣고
있습니다. 형제 모두가 공부를 잘하여 출세하였단 얘기, 예전에는 8 촌 간은 한 울타리에서 살았었지요.
@김종근 여차니진에서 여지라는 말이 나온 것이군요. 이제 이해됩니다.
낙산리 고분군과 낙산리 3층 석탑은 몇 번 지인들과 함께 들렸습니다.
사기점이 낙산리 골짝 안쪽에 있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귀한 답글 고맙습니다.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