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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우리 사회는 학연과 지연에 의한 결속력이 대단하다고 인식되고 있으며, 여전히 그 영향력은 사회의 곳곳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한 관념은 실상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도 강력하게 작용해왔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법무장관에서 물러난 이의 후보자 시절 청문회 과정에서도 그 딸의 입시와 관련된 편법의 사례가 지적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학력 성취의 문제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후보자의 딸이 이른바 ‘SKY’가 아닌 지방대에 진학하기 위해 그 자료를 활용했다면, 지금처럼 언론이나 대중들이 그것에 대해서 문제를 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내 솔직한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 학력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념들이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가 일본을 제외한 식민지에 처음으로 개설한 것이 바로 경성제국대학이다. 경성제대를 포함한 일본의 제국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우수한 인재를 보증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제국대학에 진학한 조선인 출신의 인물들은 1천여명을 상회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해방 이후 남과 북에서 정치와 교육 및 사회 전 영역에 걸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그 중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인물들도 적지 않겠으나, 대부분은 일제에 부역한 이른바 ‘친일파’의 범주에 속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단순히 ‘친일’의 문제로만 그들의 행적을 재단할 필요는 없으며, 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행적을 면밀히 탐구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라는 부제가 의미하듯, 이 책은 제국대학의 입학과 졸업생 명부 등을 꼼꼼히 따져 그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 역시 종종 문헌 연구를 하고 있는데, 실상 문헌을 따져 조사를 하는 작업은 무척이나 지난하고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분야이다. 저자 역시 10여년 동안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일제 강점기 제국대학을 거쳐 갔던 조선인들의 면모와 활동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동안의 노고가 충분히 느껴졌다. 해방 이후 국문학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일단은 적지 않은 도움을 얻었다는 것도 밝혀두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제국대학,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 장치’라는 제목의 1장으로부터 제국대학의 특징과 의미를 설명하고, 저자가 처음 관심을 기울였던 ‘조선인 교토제국대학생, 제국의 사업가가 되다’라는 2장에서는 경성방직 사장으로 활동했던 김연수의 행적에 대해 집중적으로 따져보고 있다. 3장 ‘누가 제국대학으로 유학을 갔는가’에서는 저자가 조사한 명부를 통해, 제국대학으로 유학을 갔던 인물들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대부분 부유층이었던 유학생들이었지만, 일제 당국의 지원으로 유학길에 올랐던 유학생들을 ‘관비 유학, 가난한 조센징에게 건넨 제국의 장학금’이라는 제목의 4장에서 다루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제국대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5장에서는 ‘기숙사에서 엘리트의 정체성을 익히다’라는 제목으로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또한 6장 ‘제국대학의 교수들은 누구인가’에서는 일제 당국에 순치하지만 않았던 교수들의 성향과 활약상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당시의 엘리트로 평가받았던 그들은 대부분 ‘총독부 나리가 되어 돌아온 조센징들’(7장)이었다. 물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식민지인, 과학기술을 통해 제국의 주체를 꿈꾸다’라는 8장의 제목처럼, 일본의 과학 기술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이들을 이른바 ‘친일파’라고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해방 이후 미군정을 거치는 동안, ‘민족주의자’로 자처하면서 독재정권에 결탁하여 사회적인 성공가도를 누리게 되었다.
제국대학생이라고 해도 다들 일제에 순치된 것은 아니고, ‘제국의 지식으로 제국에 저항한 사람들’(9장)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남존여비’라는 전통적인 습속을 타파하여 ‘금녀의 영역, 제국대학으로 유학 간 여성들’(10장)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1930년대 초반가지만 해도 일제에 저항하는 기류가 적지 않았지만, 일제의 전쟁 의도가 노골화된 1930년대 후반부터는 ‘식민지인들의 제국대학 동창회’(11장)를 따로 꾸릴 정도로 배타적인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교토 지역 유학생들의 움직임을 예로 들어, 이전에는 교토학우회로 유학생들의 연합모임이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교토제국대학 동창회만을 따로 꾸리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것은 ‘식민지 유학생회에서 제국의 지방 향우회로’ 인식이 전환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12장에서는 ‘제국대학 유학생들은 해방 후 무엇을 하였나’라는 제목으로 개략적으로 설명을 하고, 이후 두 개의 항목에서 ‘남한의 지식 재편을 주도하다’(13장)와 ‘북한 지식 제도를 확립한 제국대학의 졸업생들’(14장)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남과 북에서 주도적인 활약을 했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이 연구가 미처 완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앞으로의 보완 작업을 통해 ‘제국대학 유학의 역사화를 위하여’(에필로그) 연구를 지속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어쩌면 근대 이후 우리에게 각인된 학벌 의식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쉽게 해체되지는 않을 것이라 예견되지만, 적어도 그것이 지닌 문제의식만큼은 공유면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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