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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1일
새벽에 교재를 보는 중에 건넌방에서 딸과 잠을 자던 아내가 들어오더니 독서를 시작한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인데 평소의 모습이라 그대로 지나쳐 아침을 맞았다. 구정 연휴가 다가와 수업을 미리 하려고 식사를 마친 아침에 논술교실로 올랐다가 12시경에는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가는 중에 점심으로 김밥을 만들었다는 아내의 전화가 와서 요즘 김치가 맛이 있어 불만이 없어진 마당에 이렇게 신경을 쓰다니 감사함이 일었다. 운동을 마치고 논술교실 고2 수업으로 모의고사 지문을 해설했고 테스트 시간에는 아쉽게도 수강생들 중 아들의 점수가 가장 낮았다. 6시에 성북동 학원으로 나갔다가 9시에 돌아와 식사를 했고 아들과 딸이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어 늦게까지 거실을 지켰다.
2일 잠을 자고 일어나니 TV에서는 밤새 구정 행렬로 고속도로가 주차장을 이루었다는 뉴스를 한다. 오늘도 고향으로 가는 차량이 계속될 것이라고 하지만 볼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내일 고향에 가는 나도 일찍부터 마음이 들뜨는데 차가 막히고 피곤해도 아들 딸과 도란도란 이들의 대열에 참여할 것이다. 그 동안 시간의 어려움으로 나들이를 못했지만 내일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나설 것이고 또한 먼 거리 산소에 다녀오자고 주장한 아내가 고마웠다. 아내와 딸이 영화를 본다며 불광동에 나가고 나도 집을 나서 학원으로 가는데 명절 전이라 그런지 도심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점심을 하면서 달력을 보니 오늘이 섣달그믐 분명히 설날 하루 전이고 오후가 되면서는 지인들한테 명절 인사로 문자가 많이 왔다. 내일 고향에 가려고 바로 들어갔더니 집에서는 아내가 음료수와 과일 술까지 산소에 가져갈 것을 준비해 두었다.
3일 평소처럼 6시에 일어났다. 오늘이 설날이라 모든 가정에서 이 시간 차례를 지낼 것이기에 고속도로는 원활한 흐름을 보일 것이다. 아침식사로 가족이 김밥과 스프를 먹고 7시에 집을 나서 내부순환도로와 성산대교를 거쳐 서해안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서울을 벗어나면서 정체가 조금 되나 싶더니 톨게이트를 나서면서는 막힘이 없었고 이내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강의와 사업 등 바쁘게 생활을 하다가 모처럼 나들이를 하는 것인데 고향에 가는 길은 설레고 즐겁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서산과 광천휴게소를 거쳐 10시가 지나서 차는 군산시내로 들어섰고 바닷가를 달릴 때는 과거의 시간들이 스쳐가기도 했다. 새로 완공된 새만금 방조제를 통과해 보려고 외항부터 육지와 연결된 비응도를 거쳐 망망대해 위에 놓인 일직선 도로를 달렸다. 바다를 막아서 도로를 만들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단조로운 시설에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라 군데군데 불편함도 있었다. 방조제를 통과하여 부안으로 접어들어 변산에서 바다를 조망하고 점심은 곰소에서 젓갈백반으로 먹었는데 고향은 음식조차 행복하다. 산소에 3시경 도착하여 성묘를 하고 마을로 내려가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들어서니 마당에 감나무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늦은 오후에 청주로 향하여 7시경 아파트에 들어서니 토종닭을 삶아 둔 장모님과 말쑥한 장인어른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밤에 재규네 가족을 대신하여 동렬이 처남이 광어회를 사 와서 명절 날 저녁 진수성찬 파티가 열렸다.
4일 어제 광어회에 토종닭까지 잘 먹고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는 장인어른의 콧소리에 잠을 깼다. 집에서 아내 때문에 불편했는데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10시가 지나서 닭국으로 늦은 아침식사를 했다. 오전에 거실에서는 장인어른과 아들이 장기를 두는데 이기려고 기를 쓰는 아들과 배려하는 장인어른의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오전에 서울로 가면서 복대동 옛집을 찾아가니 도로와 건물이 새로 들어서 몇 개월 사이에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변해 버렸다. 약간의 허망함을 안고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섰고 중간에서 수원 IC를 통과하여 용인민속촌으로 갔더니 명절이라 이 곳도 사람들로 붐볐다. 입장권이 1만2천원이고 안에서도 별도로 관람권을 구입해야 했는데 이중으로 비용이 드는 문제가 있다. 10여 년 전에도 왔었는데 민속촌의 특성이 그래서인지 변한 것이 없고 더구나 오늘은 쌓였던 눈까지 녹아 분위기조차 지저분하다. 장터국밥을 먹는 중에도 국밥과 깍두기가 부족하여 종업원들이 우왕좌왕 했고 맛이나 가격까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저녁에 아들이 청주에서 본 칸막이 책상을 요청하여 공간을 차지한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더니 불만을 표출하며 밖으로 나갔다.
5일 초저녁에 딸이 등을 긁어 주어 잠이 들었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보니 아내가 새벽까지 TV를 시청하고 있다. 등을 긁어 달라면 언제나 싫다던 딸이 어제는 웬일인가 싶었는데 자라면서 아빠의 수고를 이해하는 것은 아닐는지. 새벽에 아내의 콧소리에 잠을 깼고 다시 자다가 일어나니 이제는 나 혼자 남아 있어 아마 미안함으로 딸이 있는 방으로 건너갔을 것이다. 아침에 콩나물국으로 식사를 하려는데 방에서 나오는 아들이 손을 내밀어 반가움을 표시하며 옆에 앉는다. 독서실 책상으로 불만을 터트린 어제 저녁이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여행을 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인지 알 수가 없다. 아들과 식사를 하고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갔더니 연휴를 마친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여 나도 함께 달리며 땀을 흘렸다. 1시에 집으로 돌아와 떡국을 먹었고 학원으로 나가서는 정초에 못한 일들을 처리하며 내일 수업까지 준비했다. 엊그제 나들이를 한 서해바다와 곰소항 그리고 오랜만에 들어간 고향집까지 모두가 꿈처럼 아련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밤에 집에 들어가니 수업을 마친 아내가 와 있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TV를 시청하며 보냈지만 거실은 적막한 공간이었다.
6일 늦게 자서 6시에 일어났고 책을 보다가 교회로 나섰는데 오늘은 기온이 올라 포근한 날씨에 안개만 자욱했다. 오히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날이 어두웠고 예배를 보면서는 찬송과 기도에 때와 장소가 없다는 목사님의 설교도 들었다. 어제 잠이 충분하지 않았는지 식사를 하는 국밥집에서도 졸음이 밀려왔고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논술교실에 돌아왔다. 힘들게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가 식사를 했고 이후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오후 시간이 지나버렸다. 오래 강의를 했어도 결석이나 지각이 거의 없는 나였고 이곳 논술교실 수업도 1년이 넘는 동안 늦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이다. 서둘러 올라가 수업을 하면서는 늦어도 금년 말까지 교실을 확장하여 명실상부한 국어교육원을 만든다는 계획도 세워보았다. 7시30분 수업을 한다는 아내가 올라와 집으로 내려갔더니 과외를 하는 아들과 TV를 시청하는 딸이 있다. 밤에 식사를 하고 잠을 자려는 시간에는 딸이 들어와 눕더니 내가 잠드는 사이에 아내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건너갔다.
7일 자다 깨다를 몇 번 하다가 일어나니 7시가 지났고 하지만 커튼에 가려 방안은 아직도 밤처럼 컴컴하다. 오늘부터 아들이 학교에 가는데 교내공사로 이대부고 보충수업이 늦어진 것이고 2월말까지 하다가 3월에 정규수업으로 바로 전환한다. 반 편성도 이미 마친 상태라 실질적으로 오늘부터 2학년이 시작된 셈인데 선생님과 친구들까지 오늘 처음 만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논술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4명의 이대부고 수강생들이 아들을 포함하여 모두 같은 반에 편성이 되었다. 어제 수업을 하는 중에 서로 협력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기억에 남는 2학년 시간을 보내라고 모두에게 당부를 했었다. 오전에 논술교실 보충수업이 있어 이발소에 들렀다가 곧장 올라갔고 수업을 마친 점심에는 집으로 내려가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월요일이라 일이 많아 오후에 학원으로 나갔다가 일정을 정리하며 내일 수업할 프린트를 준비했더니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영상의 기온이라 돌아오면서 운동을 가려다가 요즘 수업을 많이 한 탓으로 머리가 아파와 집으로 바로 들어갔다. 저녁에 외식을 하려고 했지만 아내의 반응이 시큰둥하여 그만두었고 대신하여 칼국수를 김치와 먹었더니 그것도 맛이 있었다.
8일 자다가 눈을 뜨니 아내가 쿨쿨 자고 있고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니 나 혼자 누워 있다. 거실에 불이 환한 것을 보니 아내가 책을 읽고 있을 것인데 신문을 가지러 가면서 보니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고 독서를 하고 있다. 잘 잤냐는 말도 없이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으니 새벽이 섬뜩할 정도였고 마침 학교에 간다는 아들이 나와 일찍부터 서두른다. 오전에 광화문 정독도서관으로 딸을 태우고 가는 중에 방학과제로 나온 한자쓰기를 오늘 모두 완성하겠다고 한다. 사전에 해 놓지 않았음을 지적했더니 개학이 앞으로도 20일이나 남았다며 느긋하게 대답하는 딸이다. 10시에 체육관으로 들어가 운동을 했고 오후에 논술교실과 5시경 성북동 저녁수업까지 오늘도 바쁘게 보낸 하루다. 9시에 집으로 오면서 저녁식사를 밖에서 하려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통화중이라 대화를 못했다. 어제는 시큰둥하더니 오늘은 긴 시간 통화로 함께 하지 못하고 결국 혼자서만 닭곰탕에 소주를 마시고 집으로 들어왔다.
9일 아침에 식사를 마친 아들이 먼저 등교를 하고 딸도 임시 소집일이라며 학교에 간 뒤에 나도 체육관으로 나갔다. 날마다 운동하는 것이 고역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나로서는 오히려 즐겁고 편한 것은 이것도 복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을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용구가 오늘 고등학교 졸업이라며 학교에 다녀온 딸과 퇴계원에 도착해 있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는 시간에는 아들이 왔는데 학원에 가야 한다며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상태로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국어수업에는 지각이나 결석을 밥 먹듯 하더니 오늘은 학원이 늦었다고 묻는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아무튼 종잡을 수 없는 아들이다. 대학로를 거쳐 학원에 도착해서는 전화선 연결공사를 하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2월 하순에 산행을 하기로 일정도 잡았다. 수업을 마친 저녁에 신설동으로 가서 새로운 임차예정인과 권리금과 보증금 문제를 논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10일 일찍 잤다가 2시에 일어나 터키와 한국과의 축구경기를 시청했더니 5시가 지났다. 새벽을 보내고 아침에 식사를 하는 중에 TV에서는 젊은 강사가 돈을 버는 비결이라고 열심히 강의를 한다. 내가 다닌 대학교 동문이라 흥미를 가지고 보기는 했어도 전체적으로 이론에 치우쳐 내용이 와 닿지는 않았다. 아침에 눈이 올 것처럼 흐리고 오늘 졸업하는 동명여중을 비롯하여 수강생들 모두에게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낮에 고속터미널 주변으로 갔다가 방배동 근처 단골집에서 친구와 홍어탕으로 점심을 먹고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평일이지만 시내의 학교가 대부분 졸업을 하는 날이라 거리에는 꽃을 든 학생과 차량들로 가득하다. 열흘이나 연락이 없는 영식이는 금전문제로 나한테까지도 어려울 것인데 다시 생각해도 친구 간에는 거래가 없어야 된다는 점이다. 잘 되면 좋을 수 있다고 해도 반대일 경우에는 금전은 물론 친구까지 잃는다는 옛말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밤 11시에 집으로 들어가니 내 상황과 다르게 아내와 딸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TV에 매달려 있다.
11일 새벽에 아내가 바쁘게 움직이고 학교에 가는 아들과 딸이 7시가 지나 등교를 한다.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했더니 시작할 때 환자와 같았던 모습이 반듯해져 나도 스스로 놀라웠다. 젊은 시절 다짐한 대로 나는 언제나 나를 사랑하고 마음이나 육체가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체육관을 나와 차를 세차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콩나물국과 갈치 계란조림 등으로 점심을 한 후에 학원으로 출발했다. 내려오면서 아들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게 되었는데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대학도 들어가고 성실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염원했다. 학원에는 지난달에 강의실까지 얻어 수업한 사회선생이 방문을 해서 영어를 준비하라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오후에 논술교실로 이동하여 예비고1 수업을 하면서 졸업을 축하하는 의미로 탕수육과 볶음밥 자장면 등을 수강생들에게 사 주었다. 9시에 집으로 내려가 저녁을 먹었고 TV를 보는 중에 수업을 마친 아내와 아들이 차가운 얼굴로 들어왔다.
12일 화창한 토요일이지만 서울의 기온이 영하 7도라니 아직도 한겨울 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9시가 지나는데도 모두 자고 있어 일찍 일어난 나부터 식사를 하고 등산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일단 시내를 달려 학원으로 갔다가 내일까지 할 수업을 준비해 두고 정릉 청수장을 경유하여 북한산에 올랐다. 여기는 2,3개월 전에 온 곳으로 추위에도 변함없는 자연이 반가웠고 하지만 겨울의 산바람은 차가웠다. 산행을 시작한 지 50분 만에 보국문 능선에 도달했고 중턱에서 칼바위로 내려오는 중에 컵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아직도 눈이 쌓여 있는 산길을 걸어 낮 익은 계곡을 통과하여 등산로 입구로 내려왔더니 4시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체육관으로 들어가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오늘은 주말임에도 평소처럼 사람들이 많았다. 6시경 밖으로 나오니 날이 이미 어두워졌고 체육관 1층 마트에 들러 저녁에 먹을 고기 등을 구입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13일 새벽 6시50분에 일어나 교회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2월 중순이 되어 한 겨울과는 다르게 밖이 환하다. 교회 1부 예배에 약 100여 명의 신도들이 자리를 했고 타인을 통한 믿음이 아닌 내 스스로가 주님을 알아야 한다는 부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국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논술교실로 9시에 들어와 오늘은 문학작품과 신문사설을 중심으로 긴 시간 수업을 했다. 2시에 집으로 내려가 닭백숙으로 딸과 점심을 먹었고 잠시 쉬다가 3시에 다시 교실로 올라갔다. 수강생 3명이 지각을 하고 아들은 지난주에 이어 결석을 했는데 지식을 포함하여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더구나 오늘은 참석한 수강생들조차 수업태도가 좋지 않아 인내심을 발휘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역시 힘든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를 몇 잔 마셨더니 유달리 빨리 취했고 조용한 거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시간이 흘렀다.
14일 어제 일요일 스트레스에 국어과목 특성상 끊임없이 말을 하는 8시간 수업이 무리였는지 자고 나도 피곤하다. 아들이 일찍 학교에 갔고 해가 중천에 뜬 9시에 아내와 내가 식사를 하면서 여러 번 딸을 불렀는데 대답도 없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어제부터 강원도 강릉과 삼척지방에 1m의 폭설이 내려 큰 피해가 예상된다하고 요즘 구제역까지 조용할 틈이 없다. 10시에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학원으로 달려가 내일 수업할 모의고사와 새로운 작품까지 정리했더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치 내 생활은 잠자고 수업하는 일 이외에 아무 것도 없는 듯 했지만 그래도 일에 매진하는 이런 상황이 행복한 순간이다. 오후에 신설동 2층에서 이번 달 말까지 영업을 한다는 연락이 와서 잔금 등과 다음 세입자를 들이는 광고까지 준비했다. 7시에 교보문고 들렀다가 집에 들어왔고 저녁을 먹자마자 아내는 피곤한지 딸이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15일 나도 일찍 잤다가 아침 8시까지 누워서 보냈으니 어제 밤부터 거의 10시간 이상이 지났고 아침에는 밥맛조차 사라졌다. 바로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이른 시간에 주차장 근처에서 김밥을 사 먹었는데 새로 온 주인이 충청도 괴산 도안이 고향이라서 반가웠다. 내가 20대 초반을 보낸 곳으로 철길이나 냇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고 친구들까지 모두 아는 처지라 순간 시간이 과거로 흘렀다. 오후에 논술교실 들어와 고2 수업을 진행했는데 작년 고1 때보다 수강생 개개인의 실력이 향상된 느낌이었다. 5시경 마치고 저녁에 성북동으로 가서 다시 수업을 했고 오늘은 이쪽 수강생도 이해를 잘하여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 긴 시간 강의를 하고 있지만 시작할 때의 마음과 부단한 노력으로 언제나 변함없는 당당한 내 모습을 지켜 갈 것이다. 대치동학원에서 수익금이 들어왔는데 어려운 중에 최선을 다하는 마원장이 고맙고 한편 미안하기도 하다. 밤에 단골로 다녔던 광화문 청진동 해장국집에 들어가 조촐한 식사를 하고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