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김화영)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
코로나 19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는 단연 동사 ‘놀다’다. 집단 감염이 두려운 인류가 돌연 생업을 중단하고 거리를 두려고 ‘놀기’ 시작했다. 공장의 기계가 멈추니 노동자가 놀고 학교가 때아닌 방학에 돌입하니 학생과 교사가 논다.
이때 '놀다'는 행동, 작업, 노동, 생산, 공부 등의 일시적 중지를 의미한다. 처음에는 고달픈 육체적·정신적 노동과 의무로부터 해방되고 쳇바퀴 도는 생활이 문득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니 낯설고 신기하다. 그러나 이 중지가 일시적일 줄 알았는데 끝없이 계속될 기미를 보이면 불안과 공포가 따른다. 주말, 휴일, 축일 등이 의미하는 '노는 날'의 즐거움이 해고, 실업, 도산의 위기로 이어지면 노는 것은 삶 자체에 대한 위협이 된다. '놀다'는 실업의 절벽에 이른다. "요즘 뭐 해?"라는 질문에 "놀아"라는 대답에는 쓸쓸함 혹은 두려움이 묻어 있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이 방역 당국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자 학교의 문을 부분적으로 연다는 당국의 발표가 났다. 어린 학생이 마이크 앞에서 대답한다. "좋아요,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건 싫지만 친구들 만나서 놀 생각을 하니 기뻐요." '놀다'의 가장 빛나는 의미는 바로 어린 학생의 이런 대답, 즉 목적 없는 '유희' 속에 있다. 혼자 놀고 혼자 즐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대개 이웃, 친구, 가족과 함께 놀고 보는 사람들 앞에서 논다. 놀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동질감, 친밀감을 낳고 나아가 공동체의 '문화'를 낳는다. 인간이 '호모 루덴스'로 승격한다. 시인, 화가, 음악가, 김연아, 손흥민, 비티에스…. 이들은 '놀다'라는 동사의 의미를 치열한 삶의 높이로 승격시키고 인생을 신명나게 한다.
그런데 어떤 젊은이가 젊음의 신명을 못 이겨 이태원의 여러 클럽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그만 힘겹게 쌓은 방역의 벽을 허물었다. 대체 우리는 ‘놀다’라는 동사의 어느 장단에 춤을 추며 놀아나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놀다’의 묘미는 긍정과 부정을 넘나들며 따로 노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