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끼가 네 도끼냐.”
우리는 어릴 적부터 금도끼와 은도끼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다.
대부분은 정직하면 복을 받는 이야기로 배웠지만,
세월이 지나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를 겪다 보면
그 이야기 안에는
다른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먹고살려고 나무를 배는
나무꾼에게
너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도끼를 방편으로 질문을 하신다.
산신령은
나무꾼에게 한 가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너는 어떤 삶을 살 것이냐.”
쇠도끼 하나 들고 산에서 나무하며 살아가는 삶도 살아갈 수는 있다.
먹고사는 일은 된다.
하지만 세상을 배우지 못하면 결국 삶은 늘 제자리다.
매일 나무를 지고
저잣거리에 내려가면
유혹에 흔들리고,귀한 인연을 만나도
스쳐 지나가며,
힘들게 모은 것마저 허무하게 잃어버리고
다시 산으로 돌아온다.
왜 그런가.
사람을 만나도 배우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산신령은 그래서 은도끼와 금도끼를 함께 가져온다.
그 도끼를 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저 도끼를 가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라”는 뜻이다.
세상에는 먼저 살아본 사람들이 있다.
경험으로 부딪히고,실패하며,사람과 세상을 연구한 이들이 있다.
은도끼와 금도끼는 물건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의 안목과 경험을 상징한다.
처음에는 누구나 쇠도끼로 시작한다.
그러나 배우려는 사람은
은도끼를 가진 인연을 만나고,
또 더 큰 안목을 가진 사람과 인연이 이어진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배우려는 만큼의 인연을 만나게 된다.
반대로 평생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면
산에서 나무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된다.
세상을 살아도 인연을 모르게 되고,
사람을 모르니 늘 화가 나고,무슨 일이 생겨도 남 탓만 하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들을 줄 아는 귀다.
사회에 나가면 내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 어른이다.
그 말을 듣고 연구하면 길이 열리고,
듣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평생 간직해야 할 것은
존중과 겸손이다.
겸손은
상대가 알아듣게 설명하는 일이고,
존중은
상대의 말이 서툴러 보여도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다.
그 자세가 있으면 누구를 만나도 배우게 되고,
배우는 사람은 결국
혼자가 되지 않는다.
산신령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있는지 모른다.
“너는 아직도 쇠도끼만 붙들고 살 것이냐,
아니면 사람과 세상을 배우며 살아갈 것이냐.”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6년 5월 22일사회 연구원 김수길
사람들이 입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진화를 한다.
환경은 다르게 변한다
조선은 지식이 없는 사회라
산신령이라는 방편을 쓰는일이고.
오늘
대한민국은 지식인들이라
이해되게 설명을 하고 의논하고 부탁을 하면
들어주는 시대가 다르다.
내가 아는것에
상대가 아는것이 들어와야
새로움이 보인다.
오늘 만나는
저 인연의 말은
어떤 신보다 더 질량이 높기 때문이다.
정법강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