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시내 한 사립유치원에서 원아들이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하고 있다. 기사와 관련이 없는 사진)
설 자리 잃어가는 동네 사립유치원
시골 유치원 원장 “우린 강남 귀족 유치원 아냐”
‘박용진 3법’ 지방 소규모 유치원 보호도 고민해야
도내 소규모 사립유치원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유치원 정상화 3법안(일명 박용진 3법안)이 지방 소규모 사립유치원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원아 수 감소에 따른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폐원 절차를 밟고 있는 도내 사립유치원은 현재까지 총 6곳. 춘천시에서도 지난 21일 문을 닫겠다는 사립유치원이 올 들어 처음 나왔다. 모두 내년도 원아모집을 중단하겠다고 강원도교육청에 통지한 상태다.
대부분 올해 안에 폐원할 계획이었으나 내년으로 시기를 늦춘 것은 도교육청이 남아 있는 원생들이 졸업하는 내년 2월 말 이후 폐원 신청할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폐원인가신청서는 모두 보류된 상태다. 폐원 절차가 끝나면 졸업생을 제외한 모든 원아를 다른 유치원으로 분산 배치해야 한다.
저출산 시대에 원아들이 매년 줄어들면서 경영난을 겪는 상황에서 최근 추진 중인 ‘유치원 정상화 3법안’이 소규모 사립유치원들의 호흡기를 떼려 한다는 분석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를 주도한 이 법안들은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마련된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일컫는다.
이 법안들은 사립유치원의 회계프로그램 사용을 의무화하고, 유치원 설립자의 원장 겸직을 금지하며, 지원금 부정 사용에 대한 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사립유치원 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겠단 취지다. 일부 사립유치원장과 설립자들의 비리 문제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법률 개정안 제출로 이어졌다.
문제는 동네의 소규모 사립유치원들이다. 시골 유치원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교원 노동조합에도 가입하지 못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립유치원 교사들의 경제적 처우 역시 마찬가지다.
춘천에서 한 사립유치원을 운영하는 A씨는 “공교육 질을 높이겠다는 이유로 민간 유치원을 때려잡고 있다”며 “우리는 강남의 귀족 유치원이 아니다”고 분노를 토로했다. 작은 동네 유치원에서 차량 구매와 기사 월급, 주유비와 각종 세금까지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A씨는 “최소 몇 억, 많게는 몇 십억까지 은행 대출을 받아 만든 유치원이다. 설립자가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이대로라면 지방의 소규모 사립유치원들은 다 폐원하고 말 것이다. 선택지는 국가에 헐값으로 매도하거나 법인형 유치원으로 전환하는 것 아니면 폐원뿐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대로 시에서 올해 첫 폐원 방침을 발표한 사립유치원은 춘천교육지원청에 공립전환 매입요청 의사를 전달했으며 지원청은 해당 유치원의 감정가 등을 고려해 매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관계자는 “박용진 3법안과 같이 사립유치원에 유독 강경한 정부 정책이 계속된다면 소규모 유치원들의 폐원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경영상 문제가 없는데도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놀이학교로 전환하기 위해 폐원한 유치원도 생겨났다.
박용진 3법안이 통과되기까진 시간이 좀 더 걸릴 전망이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법안 심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지난 21일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만큼 섣부른 법 제정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각계 의견을 반영해 심도 있는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입법 첫 관문인 국회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원회 통과도 안돼 법안 처리는 12월로 미뤄졌다.
박용진 3법안이 근본적인 유치원 비리 근절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출발점인 것은 분명하다. 투명한 회계를 위한 회계프로그램 도입 의무화도 마찬가지다. 다만 경영난으로 비리의 여지조차 없는 소규모 시골 유치원들의 현실도 고려해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추가적인 법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송태화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