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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행(萬行) 길 이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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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37) ]
20240701
서른일곱 번째 이야기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저 같은 농땡이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자주자주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의 것들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 수행이란 내 마음을 보는 거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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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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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示法界堂
編柵
洞山和尙自誡云不求名利不求榮秕麼隨緣度此生三寸氣消誰是主百 年身後漫虚名衣裳破處重重補糧食無時旋旋營一箇幻躬能幾日爲他閑 事長無明此幾句語也是出家人之日日警覺時時鞭策的道理當熟讀而翫 味之常念無常迅速生死事大開眼也如是急切着合眼也如是急切着乃至 行住坐臥一切時一切處如是急切着夫如是則何暇有許多閑雜商量侵染 紛汨乎方寸哉故古德云設有一法過於涅槃於我如夢幻況世間虛幻不實 之法更有甚麼心情與之打交涉雙林傅大士云夜夜抱佛眠朝朝還共起起 坐鎮相隨語默同居止纖毫不相離如身影相似欲識佛去處秖這語聲是此 幾句語也是出家人之日日照顧時時參究之面目當審思而曉了之當念不 識無盡寶藏在我赤肉團上緣此歷劫枉受辛苦今世若差過未知何生更得 見聞證徹乎發慶幸之心勇猛之志即於古人建化門頭努力行之或參禪也
或念佛也或持呪也乃至六波羅蜜法門也切不得分作多般道理當務以廻 光返照照了心源大要不忘靜淨二字淨是菩提靜是涅槃也然及得微了也又何嘗以支二名之以涅槃而爲節目之哉故云照盡體無依通身合大道然 則夫萬行雖是釋子日用所行而不可無智慧之照了自性所謂萬行備修唯 以無念爲宗者此也前五度之行若無智慧功力譬如失目之人行於險道豈 以其本若此其末若彼哉且也善與惡也菩提與生死也未嘗有二過去也未 來也現在也未嘗有二十方也一毫端也未嘗有二然其諸法也亦未嘗是一 —二也其孰能名之其名之者果誰乎此却是天庇山中庵下也(天在山中在忠南大田郡山內面妙覺寺)夫佛法不是異常也實非起心用力行得如運載重大木石學 習文武又不是大段驚天動地特地作用也祇是照了妄想本無性體明淨安 樂無爲無輕重無欠剩無去來無生死蓋法爾如是不是悟者得如是迷者却 不如是也當恁地做恁地保任然亦何嘗有恁地哉夫用功也豈日以名相多 多排布以後入手哉只這是敢問只這是意如何答日山河大地明暗色空日 早是名相了也答爾喚甚麼作名相問現今念起念滅生死相續當何以除却 答爾喚甚麼作起滅念日恁麼則無去也答還我話頭來夫出家人也先正其 眼目若得正也誰敢以佛法世諦之乎之說來去作道理哉然又不是恁麼壁 立懸絕翠竹黃花鶯吟燕語也敢問現今佛性在何處也惺牛大笑而起
這書未幾般文字不可草草閱過當細細尋究期於了得分明既蒙信託不 可以默慈以數語雖書着數萬卷其實綱領不過於此幸勿以些小見誅囑懸 蛇足故懸之 (35P)
ㅡ♡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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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법계당(示法界堂)
법계당에게 보이다.
(2편)
쌍림의 부대사(傅大士)가 이르기를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난다.
앉으나 서나 같이 따라다니고 말할 때나 잠자고 있을 때나 거지(居止)를 함께 한다.
털끝만큼도 서로 여의지 않음이 그림자와 같으니 부처가 가는 곳 알고저 할진대 다만 이 말소리로다." 하였다.
이 몇 귀절 말을 출가한 사람은 날마다 비추고 돌아보며 때때로 면목(面目)을 참구하여 의당 자세히 생각해서 알아야 한다.
당념(當念)에 다함없는 보배창고가 나의 육신위에 있음을 몰라서 이로 말미암아 겁(劫)을 지내면서 그릇 고통을 받았으니 금생에 잘못해서 지나쳐버리면 다시 어느 생에 보고 듣고 증득(證得) 하겠는가.
경사롭고 다행스럽다는 생각과 용맹스런 뜻을 발하여서 저 옛 사람이 세운 건화문(建化門)에서 혹은 참선을 하던지 염불을 하던지 혹은 주문을 외우며 내지 육바라밀 법문에 이르기까지 노력하여 실행하되 간절히 조심할 것은 여러 갈래로 나누지 말고 도리를 밝히는데 힘쓰기를 빛을 돌이켜 비추어서 마음근원을 비추어 요달할지어다.
크게 중요한 것은 정정(靜淨) 두 글자를 잊지 말라, 맑은 것은 보리(菩提)요 고요한 것은 열반(涅槃)이다.
그러나 사무쳐 요달 함에 있어서 또한 어찌 두 이름을 내세워 열반의 절목(節目)을 삼을 수 있으랴.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바탕이 의지할 데가 없음을 비추어 다 하면 온몸이 대도에 합한다." 하였다.
그러면 만행(萬行)이 비록 석자(釋子)의 일상생활속에 행할 바이지만 지혜로 자성(自性)을 비추어 요달함이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른바 "만행을 갖추어 닦더라도 오로지 무념(無念)으로 종 (宗)을 삼는다. "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앞의 오도(五度)의 행이 만일 지혜의 공력이 없다면 비유하건대 장님이 험한 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어찌 근본은 이러한데 그 끝은 저러한가.
또한 선과 악, 보리와 생사가 일찌기 둘이 아니며 과거와 미래 와 현재가 일찌기 둘이 아니며 십방(十方)과 한 털끝이 일찌기 둘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법이 일찌기 하나도 아니다.
하나 와 둘을 누가 능히 이름을 지었으며 이름 지은 자는 과연 누구인가.
이것은 천비산(天庇山) 중앙(中庵) 아래로다.
(天庇山中庵在忠 南大田郡山內面妙覺寺)
(36~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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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
오늘 내용은 전편에 이어 두 번째 내용인데요.^^
첫 번째 제목은 답화(答話)라는 제목이었고 지금은 시법계당(示法界堂)이라고 하는 제목 중 (2편)입니다.
내용이 너무 길어서 몇 편으로 나누어 보내드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경허선사께서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함게 보시겠습니다.😁✌🏻
전편을 못보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cafe.daum.net/119sh/_rec?boardTyp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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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및 단어 해석>
★ 쌍림의 부대사(傅大士) 라는 분은 자료를 찾아보니까 (497년 ~ 569년) 시대 사람으로 절강성(浙江省) 출신이고 16세에 혼인하여 두 아들을 두었으나, 24세에 서역(西域/인도)의 승려 숭두타(嵩頭陀)에게 감화되어 동양(東陽) 송산(松山)에 은거하여 수행하였다 합니다.
뒤에는 무제(武帝)에게 설법을 하기도 하였고 540년에 송산에 쌍림사(雙林寺)를 창건하고 머물면서 수차례에 걸쳐 대법회(大法會)를 개설하고, 대장경을 넣어 두는 윤장(輪藏)을 처음으로 제작했다고 하네요.
저서로는 어록 : 선혜대사어록(善慧大士語錄)가 있다고 함
★ 거지(居止)
주거지(住居地)를 뜻함
★ 면목(面目)
얼굴 / 체면(體面) / 상태(狀態)나 됨됨이 / 얼굴이 생긴 모양(模樣).
★ 당념(當念)
당념은 자료를 찾아보니까 한국 자료에는 글자만 있어서 중국 자료를 찾아보니까 중국 글자더라고요.
당념이란 쉽게 말해 [당연한 나의 생각] [나를 지배하는 생각] [나를 관리하는 생각] 또는 [고정 관념] 등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선문으로 하면 찰간(刹竿)이나 (깃대)라고 보시면 되고요.
★ 건화문(建化門)
법당(法幢)을 세우고 화문(化門)을 넓게 벌려 놓는 것. 자기 수행에서 나와서 다른 이를 교화함. 제2 의문(義門)이라고도 함. (불교용어 자료)
★ 정정(靜淨)
고요하고 깨끗함
★ 절목(節目)
초목의 마디와 눈이란 뜻으로
중국 사전에는
[연극 공연, 라디오 또는 TV 방송에서 프로그램은 방송되는 항목을 의미합니다.]
라고 되어있었는데요.
쉽게 말하면 수행을 할때에 한단원 한단원, 또는 한고비 한고비, 한순간 한순간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고비를 잘 넘기라"
이런 뜻이지요.
★ 만행(萬行)
만행 길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면 된답니다.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가장 기본적인것이 마음이 엄청 고요하고 평온해지는데요.
관리만 (좀 하면) 평생 지속이 된답니다.
그런데 세상 속에 나가서도 그러냐 이겁니다?
산이나 절 안에서는 그렇다 쳐도 세상에 나가서 이리 부닥치고 저리 부닥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갈등이나 다툼이나 슬픔이나 기쁨 같은 애환(哀歡) 등에 놓였을 때에도 과연 마음이 엄청 고요하고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게 술도 먹어보고, 노름도 해보고, 막노동도 해보고, 때로는 거시기? 도 해 보고 하면서 그럴 때의 마음은 또 어떠하냐 이겁니다?
이런 곳에서도 마음이 영원히 안 끌려들어 간다면 일단은 합격이랍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만행(萬行) 길을 떠나는 거랍니다.
만(萬) 가지의 일을 절밖에 나가서 해보는 것이지요.
지금 어른들처럼 그런 것(천도재, 명패 봉안, 친견비 등)에 끌려들어 간다면 말짱 꽝이고요.
그 외에도 내 마음에서 화, 집착, 애착, 욕심, 욕망, 괴로움, 흥분, 등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본성의 즐거움이 아닌 인의적인 즐거움 등이 마음에서 일어나는지? 안 일어나는지?
일어난다면 얼마나 일어나는지?
지금 어른들처럼 그러한 것들에 내 마음이 얽매여있는지? 자유로운지?
등을 관찰하기 위해서 만행 길을 떠나는 거랍니다.
지금 어른들처럼 절 안에서도 마음이 그런 식이면 만행 길을 떠나고 말고 할 것도 없고요.
그리고 100% 안 일어나고 안 매여있다면 부처라 보시면 되고요.
그리고 몇(%)냐에 따라 성문사과(聲聞四果)나 1지 보살~10지 보살, 11지 보살 등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랍니다.
물론 어떤일이 생겼을때 중생들을 위해 또는 그와 버금가는 경우에는 화가 안 일어나더라도 일부로 화를 내는척하거나 즐거워하는척 하는 경우는 있지만
지금 어른들처럼 실제로 이런 것들이 마음에서 일어나거나 얽매여있다면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법문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마음 상태가 멍멍이 판이라면 그런 사람들은 그냥 멍멍이라는 것입니다.
★ 석자(釋子)
석가모니의 제자를 줄인 말
★ 자성(自性)
불교에서는 불성, 본성, 마음을 뜻하는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성령을 이르는 말
★ 무념(無念)
생각이 비어 있는 것,
세상 살이에서는 생각을 할 때만 하고 내려놓을 줄 아는 것,
★ 오도(五度)
육바 라밀 가운데 반야바라밀을 제외한 다섯 바라밀
1. 보시(布施)
2. 지계(持戒)
3. 인욕(忍辱)
4. 정진(精進)
5. 선정(禪定)
★ 십방(十方)
불교에서 말하는 시방세계 할때에 그 시방(十方) 인데요.
중국 발음으로는 [shí] 라고 발음을 하는데요.
중국 발음을 한글로 표현한 것이 시방(十方) 이랍니다.
시방(十方)은 그냥 우주 전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천비산(天庇山)은
(天庇山中庵在忠 南大田郡山內面妙覺寺)
라는 글자가 있는것으로 보아 남대전에 있는 천비산을 말하는 건데요.
저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자료를 찾아보니까 산 중앙 아래가 괭장히 수려한가 봅니다.
<자료 글>
천비산의 조망은 남동쪽으로 서대산이 우람하고, 북쪽으로는 계룡산이 아련하며 발아래로 유등천의 물굽이와 정생 소류지의 쪽빛 물이 인상적 이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5분쯤 내려서면 어남산 갈림길이 나오며, 북쪽으로 산허리를 두어굽이 돌아 가면 중암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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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오늘 본문 내용은 좀 긴 편인데요.
그 이유는 내용의 흐름 상 중간에 자르면 맥이 끊기기 때문에 길어도 그냥 올렸답니다.^^
내용은 길지만 경허선사가 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간단한데요.
그러면 전체 내용을 함게 살펴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여러분들이 먼저 아셔야 할 점은 오늘 내용은 깨닫기 전에 해야 할 전 공부(수행)의 내용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후 공부 내용은 위에서 말한 만행(萬行) 내용이 기본인 것이고요.
삼매나 선정도 마찬가지랍니다.
깨닫기 전의 삼매나 선정은 아래 내용처럼 삼매가 잘 안되기도 하고 삼매가 잘 되다가 깨지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한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좌선을 하고 삼매가 잘 된다고 해서, 삼매가 깨지지 않는다고 해서 깨달았다고 착각하시면 안 된답니다. (이런 분들이 많음)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삼매나 선정에 들어가고 말고 할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의식만 안으로 돌리면 그 자체가 삼매이고 그 자체가 선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경허 선사 말씀대로 맑은 것은 보리(菩提)요 고요한 것은 열반(涅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내용은 본성 자리를 깨닫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내용이고요.
[마] 자 들어가는 어느 스님 표현대로 하면 그 자리에 있어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가 없답니다. ^^~
왜냐하면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성문사과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그 자체가 삼매이고 선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깨닫고 증득을 하면 삼매에 들고 말고 선정에 들고 말고 깨지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금강석(金剛石)과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이라 하는 것이고요.
그러나 깨닫기 전에는 사오정처럼 수행할 당시에는 안 깨질지는 몰라도 밖에 나오면 수시로 깨질 수 박에 없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표현대로 하면 아직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아주 완벽하게 된답니다.(진실)
앙굴마라처럼 아주 막되면 사람들도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아주 완벽하게 된답니다.(진실)
왜냐하면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마음이 완전히 금강석(金剛石)과 같은 깨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불성(성령)의 마음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깨달은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천도재나 명패 봉안이나 친견비 따위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깨질 수가 없다 하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마음 법은 사람은 달라도 깨달은 사람들끼리의 마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이기(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소리냐 하면 실제로 깨달은 사람들끼리의 마음이라면 내가 가짜가 아니면 그런 어른들이 가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은 사람들끼리의 마음은 둘이 아닌 하나이기(같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어도 마음은 하나랍니다.
왜냐하면 본성의 마음은 둘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깨달은 사람 입장에서는 금방 저 사람이 깨달았는지 아닌지 알 수가 있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마음 쓰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경허선사께서도
[어찌 두 이름을 내세워 열반의 절목(節目)을 삼을 수 있으랴.]
라고 하신 것이고 또
[하나 와 둘을 누가 능히 이름을 지었으며 이름 지은 자는 과연 누구인가.]
라고 말씀하신 거랍니다.
그래서 깨닫기 전의 사람들은 아직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어른들처럼 수시로 깨질 수 박에는 없답니다.
<참고 동영상>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om/shorts/OQ8fsQ8aVZ4?si=73T2chcTv99LtjUr
그래서 수행할 때에만 안 깨진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 사리불에게 "이것은 방편으로 임시로 만들어 놓은 성(城)이니라" 했던 것이고요.
그래서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까짓 삼매나 선정이 아니라 완전한 [니르바나] 즉 [열반]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리셔야 한답니다. (가장 중요)
부처님은 이에 대해 오직 이 길밖에는 없다고 말씀하셨답니다.
제가 왜 자꾸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기왕 좌선을 하는 김에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것도 같이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밑창이 빠지게 되어있답니다.
그렇다고 삼매나 선정에 들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삼매나 선정은 열반에 이르는 중간 과정(城)이라고 부처님께서도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답니다.
삼매나 선정에만 너무 매달리면 사오정처럼 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사오정도 좌선을 통해 삼매나 선정에 들어 있을 때에는 깨달은 손오공과 맘먹을 정도로 막강한 금강석(金剛石)이지만 때로는 손오공을 구해줄 정도로 막강하지만?
삼매나 선정에서 나오면 돼지로 묘사된 저팔계가 조금만 꼬셔도 홀딱 넘어가서 마음의 밧줄에 손발이 묶여서 마음의 그물에 매달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오정(沙悟淨)처럼 좌선만 하고 삼매에 든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沙悟淨]의 이름을?
모래(沙) 위에서 깨달음(悟)과 정(淨)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비유로 이름을 지어놓은 것이고요.
사람들이 열반을 너무 힘들어하다 보니까 오늘 경허선사 말씀처럼 먼저 이렇게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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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내용이라 설명이 좀 길었네요. ^^"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위에서 다 했기 때문에 지면 관계상 내용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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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림사의 부대사가 말하길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난다. 앉으나 서나 같이 따라다니고 말할 때나 잠자고 있을 때나 거지(居止)를 함께 한다.]
바로 이 내용이랍니다.
깨닫기 전에는 다른 방법이 없답니다.
오로지 잘 때부터 잠에서 깰 때까지 그 정도로 각자가 하는 수행 방법(알아차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앉으나 서나 말을 할 때나 잠자고 있을 때나 거지(居止) 즉 마음의 집(주거지)을 만들어 안주(한 곳에 자리를 잡고)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좌선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제대로 앉아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제 자랑 같습니다만 제 경우는 하루 일과 중 95% 이상은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음)
자기 집에 들어앉듯이 각자가 하는 수행 방법들이 습관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알아차림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털끝만큼도 서로 여의지 않음이 그림자와 같으니 부처가 가는 곳 알고저 할진대 다만 이 말소리로다." 하였다.]
[이 몇 귀절 말을 출가한 사람은 날마다 비추고 돌아보며 때때로 면목(面目)을 참구하여 의당 자세히 생각해서 알아야 한다.]
이것도 같은 내용이고요.
★ 그리고
[당념(當念)에 다함없는 보배창고가 나의 육신위에 있음을 몰라서 이로 말미암아 겁(劫)을 지내면서 그릇 고통을 받았으니 금생에 잘못해서 지나쳐버리면 다시 어느 생에 보고 듣고 증득(證得) 하겠는가.]
이 말은 선문으로 하면 나의 마음에 뿌리박혀있는 깃대들 때문에
예를 들면 각자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안이비설신의] 통해 보고 듣고 하면서 좋고 나빴던 경험들을 통해 나도 모르게(육신 위에 즉 오온 위에)
"이것은 좋은 것" "저것은 나쁜 것"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이 소리는 좋은 소리" "저 소리는 나쁜 소리"
하는 식으로 각자의 기준들을 먼저 알아차리라 하는 것을 도성제(苦聖諦)라 하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나에게 고통(苦)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 때문에 원인이 되어 자신의 기준과 맞으면 좋아하고 안 맞으면 싫어하면서 화를 내거나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인에 해당하는, 이런 것들이 모여있다고 해서 [모일 : 집자(集)]를 써서 집성제(集聖諦)라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런한 기준들을 뽑아 없애는 것을 멸성제(滅聖諦)라 하는 것이고요.
이렇게 수행의 최종 단계는 멸제(滅諦)에 있답니다.
그래야 도제(道諦)를 원만히 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 멸제가 말처럼 쉽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알아차림을 하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부드럽게 갈아엎어지기 때문입니다.
땅 위에 뿌리내린 잡초도 땅이 딱딱하면 뽑기가 어렵듯이 마음의 것들도 땅에 해당하는 마음이 부드러워져야 마음의 것들도 뽑아내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성제(四聖諦)의 원리를 잘 알고 수행을 하면 금방 될 수 있다는 것이 대념처경(大念處經)을 통해 제자들이 기록해 두신 것이 부처님 말씀인 것이고요.
그리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금생에 잘못해서 지나쳐버리면 다시 어느 생에 보고 듣고 증득(證得) 하겠는가.]
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지금 경허선사의 말씀이랍니다.
이 법을 만나기가 어려우니 이번 기회에 해보라는 것입니다.
★ 그래서 경허선사는 지금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경사롭고 다행스럽다는 생각과 용맹스런 뜻을 발하여서 저 옛 사람이 세운 건화문(建化門)에서 혹은 참선을 하던지 염불을 하던지 혹은 주문을 외우며 내지 육바라밀 법문에 이르기까지 노력하여 실행하되 간절히 조심할 것은 여러 갈래로 나누지 말고 도리를 밝히는데 힘쓰기를 빛을 돌이켜 비추어서 마음근원을 비추어 요달할지어다.]
쉽게 말해
건화문(建化門)
즉
마음에 법당(法幢)을 세우고 건화문(建化門) 즉 수행의 문을 활짝 벌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법당(法幢)을 절 같은 곳에 두고 깨진 기와조각인 죽고 없는 부처에게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굽신 거리지 말고
누구든지 자신들의 마음에는 법당(法幢)이 있으니 즉 부처가 있으니 절에 있는 법당이 아닌 자신의 법당에 공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부처님이 있는데 어디 가서 부처님을 찾느냐 이겁니다.
지금 경허 선사 말씀처럼?
[빛을 돌이켜 비추어서 마음 근원을 비추어 요달]
하면 누구든지 부처를 알아차릴 수가 있는데 어디 가서 부처를 찾느냐는 것입니다?
★ 그리고
[크게 중요한 것은 정정(靜淨) 두 글자를 잊지 말라, 맑은 것은 보리(菩提)요 고요한 것은 열반(涅槃)이다.
그러나 사무쳐 요달 함에 있어서 또한 어찌 두 이름을 내세워 열반의 절목(節目)을 삼을 수 있으랴.]
이 말은 각자의 수행 방법들을 통해 정정(靜淨) 즉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맑은 것은 보리(菩提)요 고요한 것은 열반(涅槃)]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지금 경허 선사의 이 말씀은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주 정확한 표현이랍니다.
★ 그리고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 바탕이 의지할 데가 없음을 비추어 다 하면 온몸이 대도에 합한다." 하였다.]
이 말은 이렇게 누구든지 열심히 하면 대도(大道)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그러면 만행(萬行)이 비록 석자(釋子)의 일상생활 속에 행할 바이지만 지혜로 자성(自性)을 비추어 요달함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른바 "만행을 갖추어 닦더라도 오로지 무념(無念)으로 종 (宗)을 삼는다. "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 말은 만 가지의 일을 행할 때에도 석자(釋子) 즉 석가모니의 제자로서 일상생활 속을 해 나가야 하겠지만
지혜로 자성(自性)을 비추어 즉 의식이 깨어서 나를 비추어보고 [요달] 즉 밝게 통달함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의식이 깨워서 나를(또는 마음) 관찰하는 것을 통달해 보라는 것입니다.
★ 그러면
[앞의 오도(五度)의 행이 만일 지혜의 공력이 없다면 비유하건대 장님이 험한 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어찌 근본은 이러한데 그 끝은 저러한가.]
그러면 앞의 오도(五度) 즉 1. 보시(布施) 2. 지계(持戒) 3. 인욕(忍辱) 4. 정진(精進) 5. 선정(禪定) 바라밀 등을 행할 때에
지혜의 공력이 없다면 (의식이 깨워서 나를(또는 마음) 관찰하는 것이 없다면)
비유하건대 장님이 험한 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어찌 뿌리가 엉성한데 그 끝이 좋을리 있겠느냐? 하는 이런 말씀이랍니다.
기초가 엉성한데 어떻게 대도를 성취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자꾸 제 이야기를 해서 그렇습니다만 제 경우만 해도 실제로 95% 이상은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림을 하고 있답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이렇게 알아차림의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아주 머나먼 시대에 수행자들은 몇 달 몇 년을 목숨을 걸고 알아차림 수행을 했답니다.
그때 다져진 기초가 지금도 유용한 것이고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어차피 알아차림 수행을 하는 것 기초부터 튼튼히 다지는 마음으로 알아차림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 그리고
[또한 선과 악, 보리와 생사가 일찍이 둘이 아니며 과거와 미래 와 현재가 일찌기 둘이 아니며 십방(十方)과 한 털끝이 일찌기 둘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법이 일찍이 하나도 아니다.
하나 와 둘을 누가 능히 이름을 지었으며 이름 지은 자는 과연 누구인가.
이것은 천비산(天庇山) 중앙(中庵) 아래로다.]
이 내용은 깨닫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라 깊이 설명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본성을 깨닫고 보면 십방(十方) 즉 온 우주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잘 알게 된답니다.
마치 천비산(天庇山) 중앙(中庵) 아래처럼 말이지요.
이 말의 뜻은 제아무리 아름답고 험한 산이라 해도?
우리 인생도 그렇잖아요?
우리 인생도 살다 보면 아름답고 풍요로울 때도 있지만 괴롭고 고통스러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그런 험한 골짜기와 같을 때도 많이 있잖아요?
이렇게 아름답고 풍요롭고 괴롭고 험한 골짜기였다 하더라도 결국은 골짜기 아래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는 옛날식 비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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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허 선사 가르침은 여기까지 가겠습니다.😃🙏🏻
모두들 장마와 무더위에 건강관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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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제목 :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이 다시 만난다면?
https://youtu.be/kMRjmt4gyf0?si=iHt7HA1g45EUdg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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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성불하세요 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
장마철과 무더위 모두 잘 넘기시고 꼭 성불하십시오.😁🪷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장마철과 무더위 모두 잘 넘기시고 꼭 성불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마하살_()_
감사합니다.😃🙏🏻
장마철과 무더위 모두 잘 넘기시고 꼭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