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조영수)
조영수 작곡가
요즘따라 ‘쉼’이라는 한 글자가 각별히 다가온다. 그다지 부지런한 편이 아니고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서둘러 하는 성격도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쉬지 않고 끝을 보는 편이다. 학창 시절 수학에 빠져 밤새워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다 결국 풀었을 때의 쾌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고등학생 때 음악에 빠지면서 '별이 빛나는 밤에'를 비롯해 각종 라디오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대학교 2학년 때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했고, 2003년 프로 작곡가로 데뷔하고 나서는 20년 가까이 곡을 쓰고 녹음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1년에 50곡 이상 발표한 해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내게 '쉼'이란 곧 '나태'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남들보다 바쁘게, 쉬지 않고 일하는 자신을 대견하게 여겼다.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질문에도, 슬럼프는 나태함에서 오는 것이라 쉼 없이 곡을 쓰는 게 슬럼프를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대답했을 정도다.
그러다 2015 년 부모님이 크게 아프셨다. 나도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육체와 정신에 큰 고통과 스트레스가 닥쳤다. 일을 하고 싶어도 쉬어야 했고, 내가 원치 않았던 '쉼'이 저절로 나를 찾아왔다.
수년 동안 끔찍한 스트레스와 건강 악화를 겪고 또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동안 내가 몸과 마음을 얼마나 혹사해왔는지 깨달았다. 좀 쉬면서 일하라는 주위의 조언을 가볍게 흘려들은 나를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슬럼프에 대한 생각도 당연히 바뀌었다. 슬럼프란,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에게 잠시 쉬어가라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아끼며 충전하라고 보내는 일종의 신호였다. 그런 절박한 신호를 스스로 무시해왔던 것이다.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는 요즘, ‘쉼’이라는 행위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새삼 느끼는 중이다. 한국 사회는 뭐든 ‘열심히! 열심히!’ 하며 박수쳐 주고 응원하는 분위기이지만, 지금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 오히려 더 오래 잘 걸어갈 수 있는 길임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