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일 한솔문고에서 구입
도서관에서 몇 번 빌리려는 기회가 있었으나
이 책만큼은 사서 읽고싶어 미루고 있던 차에
대훈이가 아빠친구 재필아찌에게 받은 거금으로 엄마 책 한 권 사주겠다 하길래
아싸~ 하고 당장 서점에 가서 주저없이 고른 책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실 때 머리맡에 두었다는 책,
톨스토이, 간디, 프로스트, 예이츠, 마틴 루터 킹 등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고귀한 유산 '월든'
올 여름방학 때 드디어 그 월든과 만났다.
그러나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보낸 2년 2개월 2일 동안의 숲 속 오두막 생활을
지독히도 깊고 자세하고 세밀하고 진지하게 묘사해 놓아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지루해서 사실상
법정 스님이나 간디 등 성현들이 느낀 감동의 개미 허리 만큼도 미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2년 여 동안의 오두막 생활을 하면서 들어간 식비와 생활비 등을 통계적으로 묘사해 놓은 곳에서는 두 손 들었다.
물론 부분부분 진한 울림과 여운이 있는 곳도 있다.
특히 <독서>편에서는 밑줄을 여러군데 그었다.
- 고대 이집트나 힌두교의 철학자는 신성의 조각상에 드리워진 베일의 한구석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여전히 떨리는 옷자락은 들어올려졌고, 나는 그가 보았던 것과 같은 새로운 영광을 바라보았다.
용감하게 행한 이는 그의 안에 있는 나였고, 지금 그 광경을 되살려보는 이는 내 안에 있는 그이기 때문이다.
옷자락 위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신성이 드러난 이후로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드높일 수 있는 시간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니다. -
또 한 번 고백하건대, 아무 생각없이 읽으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읽고 또 읽고
똑 같은 곳을 두 세 번은 읽어야 비로소 행간의 의미를 알아채는 경우가 허다하다.
- 시인 미르 카마르 웃딘 마스트는 말했다. "앉은 상태로 영적인 세계를 뛰놀며
책에서 얻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한 잔의 와인에 취하는 것,
나는 그 기쁨을 심오한 이론을 들이마셨을 때 느꼈다." -
이런 글은 너무 멋진 말이다.
- 잘 읽는 것, 즉 진정한 책을 진정한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다.
진정한 책은 읽는 이에게 그 어떤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존중하는 그 어떤 운동보다 많은 힘이 들게 한다.
그것은 마치 운동선수가 겪는 것과 같은, 이 일에 관한 한 거의 평생에 걸친 꾸준한 의지와 훈련을 필요로 한다.
책은 그것이 쓰였을 때 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읽혀야 한다.
심지어 그 책에 쓰인 언어, 듣는 언어와 읽는 언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언어와 듣는 언어는 보통 일시적이고 단지 소리와 말투와 방언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야만적이어서 우리는 마치 짐승처럼 무의식중에 어머니를 통해 배우게 된다.
쓰는 언어와 읽는 언어는 성숙되고 경험을 통해 다듬어진 언어이다.
말하고 듣는 언어가 어머니의 언어라면, 읽고 쓰는 언어는 아버지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신중하게 선택된 표현들이기에 귀로 듣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가 그 표현을 말로 하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
이 대목에서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다.
읽고 쓰는 언어는 '아버지의 언어'라며 고귀하게 여기고 있고
말하는 것과 듣는 것에 대해 야만적이며 '어머니의 언어'라 하며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표현이 못마땅했다.
그것은 소로우가 이 글을 썼을 때가 1800년대 중반쯤이어서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인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아무리 소로우라도 남성우월주의 사상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라 이해했다.
-귀족들 대신에 우리 마을이 사람들의 고귀한 마을이 되게 만들자.
필요하다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강을 건너는 다리 하나를 줄이고
우리를 둘러싼 어두운 무지의 틈을 건널수 있는 아치다리를 하나라도 놓자.-
그는 독서를 '고귀하고 지적인 운동으로서의 읽음'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배우지 않고 읽지 않고 생활에만 전념하거나 오로지 생업에만 종사하고 사업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에 대해
무식하다느니 하챦다느니 하는 표현이 곳곳에서 보여지는 점,
고전 읽기를 중요시하는 그가 평범한 사람들이 즐겨 읽는 소설에 대해 지나치게 깎아내리는 점 등은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오두막 생활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전 생애에 걸쳐 3분의 1이라도 오두막 생활을 지속하면서 그의 인생으로 녹아내린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지 2년 2개월을 살면서 실험적으로 숲 속 생활을 해보면서 경험한 내용을 적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숲을 떠나 친구 에머슨의 집에 관리인으로 들어가 생활하고
측량일과 강연, 저술, 여행 등으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다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가 법정 스님과 간디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무소유 사상과 간소한 삶 그 자체였을 것이지
그의 정신 세계는 아닐 것이다.
법정 스님이나 간디에게 있는 겸손과 너그러움, 포용력 등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법정 스님의 고귀한 생각과 글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리고 아들아,
'월든'을 감히 이렇게 사정없이 비판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니 덕분에 올 여름은 뜻 깊었다.
그 유명한 '월든'을 만나게 해준 것 그 자체만으로도 너에게 감사한다.. ^ ^*
첫댓글 좋은책을 읽으셨군요 독수공방의 시간들을 독서시간으로 할애하며 뜻있는 시간들로 꽉 채워 가렵니당 아멘
독서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좋은책 알게 해 주어 고맙고 감동이야욤 나두 읽을 기회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