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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 그 시린 반세기 사연들
강병철(소설가)
아득한 시국 70년대
70년대가 있었다. 4.19혁명이 이듬해 군사 정변으로 무너지면서 18년 내내 그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던 세월이 실제로 있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비포장도로로 승용차가 들어오면 조신하게 인사하는 예법도 배웠다. 장발족 청년의 머리카락이 거리에서 가위질로 뚝뚝 잘리거나 지나가던 아가씨 미니스커트 아래 허벅지를 줄자로 측정하던 스크린 풍경도 떠오른다. 그랬다. 신민당사로 농성 현장을 옮긴 YH 여공들의 몸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던 생존권 절규를 떠올릴 때마다 지금까지 아,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지기도 하던 ‘슬픈 우리 젊은 날’이 실제로 있었다. ‘3선개헌’에서 ‘10월유신’으로 이어지면서 체육관에서 치르는 통치자 선거에도 익숙해지던 시국이다.
민초들의 저항도 만만치는 않았다. 『창작과 비평』과 『사상계』가 있었고 평화시장의 전태일과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101인 선언’이 있었다. 『전환시대의 논리』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참 발라 넘기며 두근두근 깨어 있음을 확인했던가. 황석영의 『장길산』이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문장들을 외우고 또 외우며 골목길 찾아 씨앗 뿌리던 리얼하고 아픈 젊음의 기억들이다. 게오르규 『25시』의 ‘잠수함 속의 토끼’를 떠올리며 가장 예민한 시대의 감각대를 자처했으니 그게 작가의 심장박동이다.
무크지 시대 그리고 지역의 진보문학
79년 그해 늦가을, 18년 집권자가 부하의 총에 맞으면서 그렇게 기나긴 압제의 밤이 지나고 ‘서울의 봄’이 깜짝 올 뻔도 했다. 여야 ‘3김 씨’가 직선제를 합의하고 대학생들의 병영집체훈련 거부 운동이 펼쳐지면서 수십만 청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민주화 시대가 화들짝 열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신군부의 80년 ‘광주 학살’은 민초들에게 치욕의 절망을 안겨주었다. 숙정작업과 삼청교육대로 공포 분위기를 만들면서 여야 정치인들을 무차별로 연행 투옥 감금시키더니 문화·출판계에도 혹독한 찬바람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 같은 양대 계간지를 폐간시키며 모든 출판문화에 자물쇠를 걸었다.
젊은 문인들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혹독한 탄압의 틈새를 비집으면서 소위 무크지 시대의 판을 벌인 것이다. 『실천문학』을 비롯하여 서울·광주의 『오월시』, 청주·대구의 『분단시대』 그리고 『시와 경제』, 『민의』, 『우리 시대의 문학』, 『마산문화』, 『지평』 등이 고개를 내미는 가운데 대전 지역에서도 『삶의문학』이 태동된다.
충남의 『삶의문학』은 그 당시 숭전대 대전캠퍼스 스터디 동아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그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김현승, 이가림, 김종철, 조재훈 등 진보적 스승들의 가르침도 한몫했다고 후일담으로 전한다. 그 『삶의문학』과 문학동아리 몇 개가 뿌리내리며 한국작가회의 대전지회와 충남지회로 무성한 가지를 뻗은 것이다.
『민중교육』紙 사태
신군부 정권은 대학가의 소요를 막기 위해 85년 그해에 학원안정법 제정을 시도한다. 그 분위기 조성의 일환으로 『민중교육』紙 사태를 일으켰으니 그게 초유의 ‘교원 필화’ 사건이다. 무크지 『민중교육』은 서울의 『오월시』 동인과 대전의 『삶의문학』 동인이 힘을 합쳐서 만든 부정기종합지이다. 교육잡지를 창간하려던 『오월시』 동인들이 마침 ‘문학과 교육’의 특집을 기획하던 『삶의문학』 동인들과 의견이 일치되면서 투합된 잡지이다. 그 무크지에 소위 좌경사상의 족쇄를 씌우며 철퇴를 가한 것이다. 85년 그해 여름 〈민중교육, 당신의 자녀를 노리고 있다〉라는 TV 매체 연속 방영으로 교사 문인들에게 사슬을 씌운다.
서울의 유상덕 교사, 김진경, 윤재철 시인과 실천문학사 송기원 편집장이 국가보안법으로 투옥되었고 고광헌, 이철국, 심성보, 심입섭, 홍선웅 등의 교사들이 파면을 당했다. 충남에서도 유도혁, 조재도, 송대헌, 강병철, 전무용, 전인순, 황재학 교사가 학교를 쫓겨나는 사태가 터졌다. 교사와 교수들이 좌담과 집필에 공동 참여했는데 유독 교사들에게만 서슬 퍼런 칼을 휘두른 사태이다.
충청지역의 경우 학생들의 글을 모집하거나 원고를 전달한 교사들에게까지 올가미를 씌웠으니 어리둥절한 일이다. 85년 8월 ㅈ신문의 해직 사유에 적힌 필자 강병철의 단편소설 「비늘눈」의 경우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립 학교에 취업하려다가 금품 요구에 회의를 품고 임용을 포기함’이라고 적혀있다. 이 소설적 구성이 ‘허위사실 유포이며 나라를 혼란케 하는 선동행위가 되어 적을 이롭게 했다’고 담당 경찰이 알려주었다.
탄압이 심할수록 저항이 격렬해지는 것일까, 충청지역 해직교사들의 숫자가 불어나면서 최교진을 중심으로 대전 은행동 빈들교회 지하에 <민주교육실천협의회> 사무실을 차린 채 교육운동과 문화운동을 병행하게 되면서 오히려 활기를 돋우게 되었다. 『삶의문학』 필두로 『화요문학』 『새날』 『큰시』 『허리와 어깨』 『충남교사문학회』 『젊은시』 『좌도시』 『흙빛문학』등 지역의 젊은 문인들이 모여서 진보 문학 단체 결성의 수순을 밟던 즈음이다.
그 후 87년, 대통령 직선제를 반대하는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으로 못을 박으며 독재를 연장하려 했다. 교수와 종교인들의 시국선언에 이어 <자유실천협의회> 문인들이 ‘4.13호헌 조치에 대한 문학인 193인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그해 6월항쟁의 물꼬를 트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당시 동아일보에서 ‘문인들의 이 성명서는 2.12 총선 이후 좌절의 역사를 극복할 참된 민주화의 길목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국민적 인식의 발로’라며 동조 발언을 보태었다.
충남 지역 문인들도 윤중호, 이은식, 조재도, 김백겸, 임우기, 박용남, 조기호, 이은봉, 강병철, 김흥수, 전무용, 이재무, 정영상, 김영호, 송대헌, 최교진, 전인순 등이 성명서에 합류하였다. 일부 현직에 있는 문인 교사들이 물리적 탄압을 받았으나 곧바로 터진 ‘6.29선언’으로 인하여 무마가 되면서 위기를 넘겼다. 동시에 충청지역에서 진보문학 단체 창립 준비로 초읽기에 접어들었다.
<대전·충남 민족문학인 협의회> 창립
1989년 3월 4일, 서울과 남도에서 진보 인사들이 중부권으로 우르르 집결하였다. 대전 YMCA 강당에서 ‘대전·충남 민족문학인협의회’ 창립대회가 열린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되던 충청지역 내의 진보 문학 모임 전체를 통합하는 출정으로 열기가 달아올랐다.
회장에 조재훈 교수, 부회장은 홍희표 시인, 김수남 소설가 그리고 이은식 소설가가 사무국장을 맡고 이강산 시인이 사무차장을 맡았다. 그날 찍은 단체 사진을 보면 김남일, 김완하, 안용산, 조기호, 전무용, 김흥수, 김종관, 강형철, 전인순, 이승철, 황재학, 김영호, 이병훈, 김형수, 김사인, 육종관, 백남천, 여인원, 김성장, 이규황, 이강산, 조재도, 이재무, 이은봉, 정인화, 윤형근, 정인우, 강병철 등 모두 푸릇한 표정으로 되살아난다. 그 1989년의 사진 속 인물들 모두 이제 초로를 지나거나 먼저 떠났으니 세월에 대한 회한으로 가슴이 싸-하다.
곧바로 90년대에 한반도에 마이카시대가 도래하면서 시국의 흐름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문화계 역시 선각자의 자세에서 새로운 변화에 탄력 있게 부응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후 대통령이 아홉 번이나 바뀌었으니 세월이 빛의 속도이다.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대전·충남지회’의 창립
<대전·충남민족문학인협의회>이 출범 이후 당연히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대전·충남지회>의 연계 논의가 시동을 걸게 되었다. 준비위 회합이 계절마다 공간을 바꿔가며 열렸다. 청양 장곡사나 대천 임해수련원, 공주 다예원 등에서 판을 짜고 일꾼들 배치에 골몰했다. 고문, 회장, 부회장(대전·충남 각 1인씩), 감사, 이사, 분과장(운문, 산문, 평론, 청년), 사무국장, 사무차장, 편집위원(작가마당, 미루, 시선집까지 세 종류) 임원과 시, 소설, 수필, 아동문학 회원으로 150여 명의 구성원이 만들어졌다. 마침내 1998년 5월 9일, 민족문학작가회의 대전·충남지회가 창립의 깃발을 올리게 되었다. 그 후 대전과 충남의 지회가 12년 동안 공존하게 되었으니, 회장과 사무국장 명단은 아래와 같다.
임기 | 연도 | 회장 | 사무국장 |
1대 | 1999-2000년 | 김흥수 | 한창훈 |
2대 | 2001-2002년 | 김흥수 | 최길묵 |
3대 | 2003-2004년 | 강병철 | 함순례 |
4대 | 2005-2006년 | 강병철 | 김열 |
5대 | 2006-2007년 | 김백겸 | 이정섭 |
6대 | 2007-2008년 | 김백겸 | 이정섭 |
예산 지역을 중심으로 청소년 모임이 잦아지다가 공간이 확장되었다. 2001년 이후 충북작가회의와 공동으로 고교생 문학강연회를 개최하여 홍명희, 정지용을 추모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치렀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노동해방문학』의 발행인 김사인, 시인 도종환 등이 강사로 나서면서 막걸리 뒷풀이가 더 풍성했다.
2003년에는 대천 임해수련관에서 충청지역의 중고생 200여 명이 함께 하면서 1박 2일로 청소년문학제를 실시하였다. 안전상의 이유로 밤의 외출을 금지 시켰으나 몇몇 청소년이 해변가 야경을 배경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패기 찬 소식도 나중에 들려왔다. 남북의 작가가 평양에서 100명씩 만나는 즈음이다. 그리고 2008년에 부여에서 신동엽 시인 추모 30주년으로 전국의 모든 작가들이 행사를 채운 게 대전·충남의 마지막 모임이다.
그 사이에 작가회의의 명칭이 몇 차례 바뀌었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 → 2007년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이 변경된 것이다. 2007년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꾸기 위한 치열한 토론과 찬반투표를 거쳤다. 문학적 지평이 확대되면서 단체의 성격을 민족문학이란 테두리 안에 가둘 수 없다는 게 변경의 이유이다. 또 하나, 민족이란 용어가 자칫 극우 국수주의라는 오해를 사는 점도 고려되었다.
함께 가던 문학 단체몇 개
『미루』는 2001년에 창간호를 만들었다. 작가회의 청소년 분과를 중심으로 기획한 다음 10여 년 동안 잡지 출간 작업을 했다. 발행인은 강병철이었고 책임 주간은 최은숙 시인 그리고 김병호, 이정섭, 국은정, 함술래, 김희정 작가 등이 편집과 취재를 헌신적으로 맡아주었다. 오마이뉴스 송성영 작가, 공주의 윤여관 화가, 천안에서 농사짓는 기수 엄마네 등을 찾아 발품과 삼겹살 후일담에 푹신 젖는 낭만도 있었다. 한때 연간 지원금을 1,800만 원까지 받으며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연 2회까지 발행했었다. 그 후 보수정권에서 절반으로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아예 지원이 끊기면서 발행을 중단했다.
『맥락과 비평』은 주로 대학 강단에 소속된 평론 분과 단체이다. 박수연, 김현정, 오연희, 김화선, 남기택, 한상철, 김정숙, 오홍진, 박현이, 홍운기 등을 주축으로 주로 기관지 발간과 심포지엄을 열었다. 1998년의 「라깡과 한국문학」을 필두로 해마다 지역 문학에 필요한 새 주제를 슬로건으로 걸었다. 「신동엽」, 「소수자문학과 지역문학」, 「한국문학의 식민성과 탈식민성」, 「여성과 문학」, 「대전충남문학의 정체성」 등 지역과 소수자를 위한 주제로 열기가 달아올랐다.
『대전·충남 시선집』은 여타 장르에 비해 숫자가 많은 시인들의 열정을 수렴하는 성과물이다. 2004년 『새로운 문신』 이후 『군살 없는 암소의 발목처럼(2005년)』, 『저 붉은 꿍꿍이들(2006년)』, 『깃털 푸른 새(2007년)』, 『그의 본능은 푸른 빛이다(2008년)』, 『청동거울이 뜨는 가을(2009년)』 등을 발간하고 낭송회를 개최했다. 2007년에는 전국 민족문학인대회 시선집으로 『분꽃이 입을 열어』를 특별히 펴낸 바 있다.
『허리와 어깨』는 그 당시 장년층에 속하는 시인들을 중심으로 펴낸 시 전문지이다. 이은봉이 중심이 되었으며 김백겸, 권선옥, 김흥수, 강신용, 백남천 등이 함께 했다. 『내 마음의 푸른 개울가』, 『길 떠나는 상처』, 『구르는 바퀴는 행복하다』, 『길은 항상 당나귀를 타고』, 『세월의 등불을 켜고』 등을 연이어 발행하다가 반연간지 『시와 인식』으로 확장시킨 바 있다. 『시와 인식』에는 김명원, 김순선, 양애경, 김미영 등이 합류했다.
충남작가회의 독립과 『작가마루』
2008년 이후 대전과 충남 지역의 분리 작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다. 그동안 대전문화재단을 통해서만 지원을 받았는데 충남에서도 문화재단이 설립이 되면서 행정적 분리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작가들의 주소 80% 이상이 지역문화재단의 해당 공간에 소재해야 지원이 가능한 조건도 이유가 된다. 계룡시를 제외한 전 지역이 충남으로 분리되었고 충남작가회의의 기관지 이름은 『작가마루』로 결정된다.
반연간지로 출발한 『작가마루』는 그동안의 『작가마당』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로 제16호부터 시작되었다. 물리적 공간이 넓은 점을 고려해 지역별로 작가들을 톺아보는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생명, 지역성 등을 고려한 원로 작가들을 선정해 특집을 마련했으며 특별히 신인들의 글과 삶을 조명하는 지면도 따로 마련해주었다.
운영은 고문과 회장단 그리고 사무국, 편집진과 이사회로 구분했다. 지역과 장르의 소통을 꾀하면서 소설가 김종광, 화가 김환영, 시인 김수열 등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었다. 회원은 2024년 3월 현재 75명으로 파악되며 희곡과 동화를 포함한 회원들의 장르가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이와 별개로 이정록 시인이 운영하는 결성향교에서도 매달 초청 연사를 불러 강연을 나눈다. 문화재를 지키고 시대에 맞게 활용하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2018년에 다시 대전작가회의와 공동으로 <신동엽 시인 추모 30주년> 행사를 치르게 되었으니 또 10년 세월이 빛의 속도로 흐른 셈이다. 2020년 공주시 우금치 고개를 거점으로 한 동학농민전쟁 시화전도 개최되었으며 이후 공주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하여 거리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천안에서는 이기영 문학제 모임을 준비하는 중이며 2022년 늦가을에는 태안 민예총과 함께 채광석 시인의 추모 문학제가 있었다.
2022년부터 <충남작가상>을 운영 중이며 제1회는 안학수 작가, 2회는 박명순 평론가가 수상한 바 있다. 2024년에는 안학수 작가와 황선만 작가가 <한국작가상>에 오르면서 동력에 가속이 붙을 예감이다. 그동안 충남지회의 회장과 사무국장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기수 | 연도 | 회장 | 사무국장 |
1 | 2010-2011년 | 유용주 | 신경섭 |
2 | 2012-2013년 | 이정록 | 이경호 |
3 | 2014-2015년 | 이진수 | 전홍준 |
4 | 2016-2017년 | 유지남 | 김수화, 박경희 |
5 | 2018-2019년 | 강병철 | 황선만 |
6 | 2020-2021년 | 정완희 | 이오우 |
7 | 2022-2023년 | 김홍정 | 주선미 |
8 | 2024- | 이오우 | 이연정 |
먼저 떠난 망자들
『산 너머 남촌』의 작가이자 우리 지역 후배 작가들의 롤모델 이문구 선생님이 가장 먼저 꽂힌다. 『만다라』와 『국수』의 작가 김성동 선배님, 『부끄러움과 힘의 부재』의 채광석 시인도 아슴아슴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의 정영상, 창비의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김이구, 『본동에 내리는 비』의 윤중호 그리고 『마실 가는 길』 유지남 시인도 구천에서 함께 술잔을 부딪치고 있을까. 오마이뉴스의 톱 기자였던 송성영, 『쑥고개를 넘으며』의 이규황까지 모두 하느님이 너무 빨리 모셔가셨다. 아리고 시리다.
풀어야 할 과제
어느새 세상도 바뀌었고 문단도 고령화가 되었다. 자본주의의 약진으로 책은 산지사방에서 출간되는데 독자의 숫자는 턱없이 줄어들었다. 지하철을 타도 모두 스마트폰에만 몰입할 뿐 책을 보는 얼굴이 드물다. 충남작가회의 자체 축하 지원금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출간 작가에게 지급하던 격려금도 30만 원에서 연 1회 20만 원으로 줄였다가 2020년 이후 문예진흥기금을 수혜한 작가들에게는 그나마 또 줄여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또 하나, 젊은 작가들이 뒤를 받쳐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80년대에 스무 살 중반에 섰던 그들이 지천명(知天命)이 지나도록 실무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들의 네트워크를 찾아 동참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충남작가회의에 여성 회장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점 역시 따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마지막으로 대전과 충남, 세종의 통합과 분리의 유연성 논의가 설왕설래 중이다. 각 지역의 독립을 유지하는 동시에 하나의 틀로 묶는 행사를 시도하자는 의도이다. 원래 한 몸통이었으며 공간적으로도 가깝기 때문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출간과 각종 행사 경비가 지역문화재단의 지원금에 의지하는 상태이므로 돌파구가 묘연한 상태이다.
강병철
시집 『유년일기』 『하이에나는 썩은 고기를 찾는다』 『꽃이 눈물이다』 『호모중딩사피엔스』 『사랑해요 바보몽땅』 『다시 한판 붙자』 발간, 소설집 『비늘눈』 『초뻬이는 죽었다』 『나팔꽃』 『열네 살, 종로』 발간, 장편소설 『엄마의 장롱』 『닭니』 『꽃 피는 부지깽이』 『토메이토와 포테이토』 『해루질』 발간, 산문집 『선생님 울지 마세요』 『쓰뭉 선생의 좌충우돌기』 『선생님이 먼저 때렸는데요』 『작가의 객석』 『우리들의 일그러진 성적표』 『어머니의 밥상』 발간, 교육산문집 『넌, 아름다운 나비야』 『난, 너의 바람이고 싶어』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발간, 청소년 접지 『미루』 발행인(2001-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