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 낭송시) 2023.10.20
바람과 뿌리
ㅡ 너븐숭이에서
이민숙(시인, 한국작가회의)
노란 유채꽃 살랑이는 제주인 줄 알았다
돌과 비바람이 서로를 휘도는 어느 하루
여자는 피투성이로 죽어있고
아가는 젖을 빨고 있다
젖은 죽음의 다리를 건너 아가를 살려냈을까
총칼들은 죽음을 물들여 마을이 소개될 때 어떻게 불타올랐을까
먼 먼 피아골 골짜기에서 와
아가와 엄마 앞에 선 진희*의 통곡에
휘파람새 소리가 갑자기 엎어진다
폭풍우 더 세게 노래한다
죽음은 죽지 않고 파도친다
그 바다를 건너올 때 안개를 흐트리며
손 흔들던 애기섬**도 아직 선명한 죽음을 파도치고 있었다
제주를 휩쓸고 있는 무고한 살상에 동참할 수 없다던 여수의 청춘들
굴비두릅처럼 엮여 수장되어버린 그 청춘들이
제주를 향하는 나에게 소리치던 청람빛 깃발
너븐숭이는 나무 뿌리처럼 널브러진 죽음의 기억터
영원히 썩을 수 없는 뿌리가 있다는구나!
그 죽음이 그려준 게르니카
그 뿌리가 노래하는 핏방울의 살풀이
연달래 속살엔 붉어 잊지 못할 통한이 깃들어있다
그 4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소생이 가능하다는 듯
이방인의 절망마저 피워버리겠다고,
북촌의 너븐숭이는
빗방울로 멍울진 우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뿌리의 빛으로 썩지 않는 자유의 현현이 되라한다
젖 물려 육감적인 저 엄마의 뜨거운 4월을 살라한다
돌이켜 세워야 할 생명의 너븐숭이에 무명빛 열망 휘몰아친다
역사다 역사 아니다 인간이다 인간 아니다 죄다 죄 아니다 아가다 목숨이다
*장진희 시인
**여순사건 때 보도연맹에 연루된 민간인을 학살했던 섬(120여명으로 추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