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 E.H. 카, 신계륜 역, 나남, 1997.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학자로서 저자(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분명하게 제시한 바 있다. 아마도 역사학자로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사건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 혁명’은 분명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흥미로운 대상이었을 터이며, 그렇기에 이 책을 내기 전에 이미 '30년 동안 연구'의 결과로서 4부작으로 이뤄진 <소비에트 러시아사>(1950)라는 방대한 저작을 출간한 바 있다. 1917년 2월의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1929년 스탈린에 의해 이른바 ‘계획경제’의 토대가 정립된 시기까지의 역사를 대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자료의 활용이 한정된 이후의 시기와 달리, 이 시기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를 ‘풍부한 그 시대의 자료들이 충분히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저자의 서문에 의하면 이 책은 1977년에 출간된 것으로 파악되는데, ‘레닌에서 스탈린까지(1917~1929)’이라는 부제가 첨부되어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역사 속에서 전환점이었다.” 저자는 혁명에 의해서 왕정 체제의 구 러시아를 전복시켰던 당시의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서술을 시작하고 있다. 이후 혁명의 주도자로서 레닌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러시아를 넘어 소련(소비에트 연방)으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던 시기의 역사를 다양한 사료를 토대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농업 중심의 국가였던 러시아의 공업화를 주도하기 위해 ‘신경제정책(NEP)’을 전개하고,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던 국가들을 포함한 연방(소련)으로의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이 소개되고 있다.
이후 레닌의 죽음(1924) 이후 트로츠키와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세력들의 권력 투쟁이 전개되었으며, 끝내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농민의 집단화’와 경제의 고도화를 위해 ‘공업화’를 주도하던 시기의 상황까지 다루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스탈린은 원시적이고 농민적인 러시아를 근대적 공업 강국으로 변화시켜 주요한 자본주의 열강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게 하는 일에 그의 에너지를 쏟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특히 스탈린 체제에서 공업화를 위해 미국의 기술이 필요했고, 수많은 기술자들이 소련의 곳곳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음을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과감하게 숙청함으로써 마침내 ‘독재 체제의 양식’으로 접어들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가 소련 체제가 해체되는 상황을 목도했다면, 그러한 과정의 전개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새롭게 주목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역사학자로서 기록(사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저자는 비교적 자료가 많이 전해지고 있어, 역사 서술에 활용이 가능했던 스탈린이 정권을 장악하는 당시까지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마지막 문장에서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그것이 자신에게 부과했던 목표와 그것이 생기게 했던 희망의 실현과는 약간 멀었”음을 지적하고, “그러나 그것은 근대의 다른 어떠한 역사적 사건보다도 훨씬 깊고 휠씬 지속적인 반향을 세계 속에 미치게 했던 원천”으로 평가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저자의 관점에 대해 서구와 소련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그만큼 객관적인 시각에서 당시의 역사를 바라보고자 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 역시 그러한 ‘비판과 공격에 대하여 개별적 반론을 취하지 않았으며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이미 소련 체제가 해체된 지 30여 년이 지난 21세기의 시점에서, 더 이상 ‘러시아 혁명’은 현재적 의의를 획득하기 힘들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20세기 역사를 대표하는 사건 가운데 하나로서, 역사학자인 저자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왔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