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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존재에 대해서는 처음 번역되었던 1990년대 중반에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시대 후기의 문학 작품들을 주로 연구하고 있던 터라, 이 책을 서둘러 읽어보겠다는 생각이 얺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근 조선시대 사대부 문학 작품들을 꼼꼼하게 훑어보던 중, 관련 논문들에서 이 책이 거론되거나 인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저자가 한국사를 전공하는 외국인이기에, 비교적 객관적이고 쉬운 문체로 양반에 대한 실증적이고 사회적인 의미에 대해서 잘 다루고 있다고 여겨졌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양반은 지체나 신분이 높거나 문벌이 좋은, 상류 계급에 속한 사람을 일컫는 용어였다. 최근 역사와 문학 분야에서는 양반을 서울에 거주하는 재경사족과 지방에 거주하던 재지사족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아마도 그러한 용어가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이 책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2014년에 출판사를 옮겨 다시 출간되었는데, 실제 책의 연구사적 가치는 199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 평가해야 한다고 하겠다.
‘우리가 몰랐던 양반의 실체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말하고 있듯이, 일반 사람들은 지금도 양반을 조선시대 신분을 지칭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조선의 5백년 역사 속에서 양반의 처지와 사회적 역할은 고정된 것이 아니었으며, 특히 신분 변동이 활발했던 조선 후기에 이르면 개별 양반들의 사회적 처지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서론에서 ‘현대에 살아 있는 유교적 전통’을 논하는 것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유달리 유학적 가치가 지금도 관습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예컨대 자신의 조상을 높이고 따지는 행위 역시 ‘양반 가문의 후손’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8장에 걸쳐 양반의 실체와 사회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1장에서는 ‘양반 ?주자학의 담당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양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2장에서는 권벌이라는 인물을 시조로 하고 있는 안동 권씨의 사례를 통해, 이른바 재지사족이라고도 하는 ‘재지양반층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면서 실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안동 권씨 가문의 사례는 활용되고 있으며, 그밖에 지방에 거주하던 양반들의 다양한 기록들을 근거로 ‘양반의 실체를 밝혀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3장에서는 일종의 재산 상속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분재기를 통해 ’재지 양반층의 경제 기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고 균등하게 상속되던 재산이 조선 후기로 가면서 장남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장에서는 ‘개발의 시대’란 제목으로, 농업의 발달로 농지를 개간하고 다양한 농사법에 관심을 기울였던 측면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표현이 단적으로 말해주듯, 조선시대는 그야말로 농업이 중심이 되던 사회였다. 다양한 농업서적의 출간과 재지양반층들이 농지 확보를 위해 어떤 활동을 벌였던가에 대해서도 다양한 자료가 제시되고 있다. 5장에서는 오희문이라는 양반이 쓴 일기를 통해서 ‘양반의 일상생활’에 대해서 논하고 있으며, 그들이 지방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양상에 대해서는 6장의 ‘양반 지배 체제의 성립’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조선 중기 이래 같은 가문의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던 ‘동족집락(집성촌)’의 성립에 대해서 추적을 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렇듯 집성촌을 이루며 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7장의 ‘재지양반층의 보수화와 동족 결합의 강화’라는 항목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내내 양반이 되기 위한 향리와 민중들의 노력을 8장의 ‘양반 지향 사회의 성립’이란 제목으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박지원의 <양반전>이란 소설을 통해서 잘 알려져 있듯이, 조선 후기에는 양반의 족보를 사고파는 것이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이 책에서도 특정 지역의 호적으로 통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조선 전기에는 인구 중에서 소수에 불과하던 양반이 조선 후기에 급격하게 늘어나는 현상을 바로 ‘양반 지향’이라는 인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이후에도 신분제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양반 의식’은 사람들의 인식에 잔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통과 근대’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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