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 부치는 헌시
― 어랑촌에서 싸운 독립군을 기리며
어랑촌에서 싸운 사람들에게
김단
그해 가을, 만주의 바람은 잔뜩 여민 옷깃 속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어랑촌 산등성이에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총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골짜기를 에워싼 일본군의 공격은 거셌고, 포성은 하루가 저물도록 산허리를 흔들었습니다.
두렵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물러서면 돌아갈 나라가 없다는 것이 더 두려웠을 것입니다.
능선을 지키는 동안 거듭 밀려오는 공격은 그칠 줄 몰랐고
흩어진 총성들이 다시 모여 어랑촌의 긴 하루를 버텨 냈습니다.
그들이 목숨 걸고 되찾으려 한 것은 역사책 속 거창한 조국만이 아니라
어머니가 밥 먹으라 부르던 목소리와 우리말로 아이들이 웃는 평범한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치열했던 싸움 끝에 독립군의 자리에도 빈자리가 생겼고
누군가는 그날 어랑촌의 산과 들에 젊은 날을 남긴 채 고향집 문을 다시 열지 못했습니다.
백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들이 그토록 되찾고 싶었던 나라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살아갑니다.
생각할수록 미안합니다.
그들에게 목숨이었던 오늘을 우리는 너무 쉽게 당연한 날이라 불러 왔습니다.
어랑촌의 이름 없는 독립군들이여,
이제는 당신들의 용기만이 아니라 두려움까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웠다는 한마디로 당신들이 못다 산 젊은 날들을 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면서도 우리에게 돌아갈 나라 하나를 남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들이 못다 산 날들까지,
남겨 주신 이 나라를 오래 기억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어랑촌(漁郎村)은 당시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지금의 옌볜조선족자치주 허룽시 일대에 있던 마을입니다. 1920년 10월 22일 청산리 독립전쟁의 주요 격전지가 된 곳입니다.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어랑촌전투는 청산리 전투 가운데 규모가 크고 격렬했던 전투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독립군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싸우며 독립전쟁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두톨김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