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상량 시집 빵지순례 130 * 210 mm 112쪽
빵 냄새에 스며든 고소한 유혹/ 잘 진열된 빵에는 자꾸 손이 간다//크고 작은 타이틀과 컬러 사진까지/ 샅샅이 훑으며 맛보고 비판한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아아도 가득/ 하루에도 두어 시간 지구촌 누빈다/ 안경 밑 얼굴에 땀띠까지 달고// 종이 쓰레기 수거하는 화요일 아침/ 신문지 한 아름 안고 내려가니/ 저 위층 신사분 인사 말씀,/“아직도 종이신문 보세요?”/ “네, 아주 열심히요, 이게 밥인데요”// 언제나 첫 면에서 끝 면까지/ 맛있는 빵에서, 싫어하는 크로켓까지/ 빠짐없이 먹고 즐기고 비난하는데// 빵지가 없는 토, 일요일에는/ 폰에서 이것저것 찾아 먹는다 -「빵지순례」 전문
시인은 인터넷 시대에 살면서도 종이신문을 읽는다. 잘 편집된 기사나 사진을 마치 잘 구워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빵에 비유하여 〈읽는 행위〉를 〈먹는 행위〉로 표현한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에 눈이 가는 것을 “빵 냄새에 스며든 고소한 유혹”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문에서 국내외 뉴스를 샅샅이 훑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하루에도 두어 시간 지구촌을 누빈다”라고 한다. 신문에는 다양한 분야의 뉴스가 넘쳐서 어떤 것은 에스프레소 맛으로, 어떤 것은 아아가 되기도 한다. 다 읽은 신문뭉치를 버릴 때 시인은 신문 기사는 뉴스라기보다 밥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신문이 오지 않는 주말에는 인스타그램 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 스마트폰으로 세계와 접속하여 “폰에서 이것저것 찾아 먹는다”라고 말한다. 시인은 일용할 양식처럼 매일 신문 읽는 것을 빵지순례에 비유하여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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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옥 시집 나의 온 삶은 훨씬 짧게 130 * 226 * 10 mm 96쪽
빛들이 흩어지는 일몰에는 서러움이 몰려온다. 눈앞의 풍경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금세 오는 죽음이자 죽음의 은유다. 이렇듯 죽음에 대한 상념은 상실과 슬픔과 이별 등등을 거느리며 마음을 헐겁게 흔들어놓는다. 신체 하나에 그림자 하나가 따르듯, 죽음은 애초 인간의 출생에서부터 깃들어 있는 실체다. 이 명확함과는 반대로, ‘내 차례’의 죽음은 떠도는 풍문처럼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가릴 수도 메울 수도 없는 커다란 공백. ‘죽음’이라는 절망적 심연을 극복하기란 불가능하다. 삶이 죽음을 바꿔놓을 수 없으나,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삶은 조금쯤 달라질 수 있으리라. “나의 쓰임새는 눈뜨면서부터/ 누군가를 향해 지저귀는 것”(「다른 쓰임새」)이라는 시인으로서의 자각과 “죽음의 책무”(「책무라는 돌」)를 깨닫는 일이 죽음에 대한 끝없는 사유의 결과이듯, 안정옥의 시가 “죽음과 삶을 같은 줄기로 가지런히 세우니/ 모든 게 잘 갖추어진 줄기다 부족함이 없다”(「반 토막」)라며 바닥 모를 깊이로 깊어지듯……. - 신상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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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정옥 선생님께서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셨습니까? 감사하며 부끄럽고요, 좀 더 생각을 하고 써야 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잘 써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안정옥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