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효기간
대형마트 유제품코너에서 제법 용량이 큰 우유팩을 집어 든다. 앞부분에 진열된 우유팩의 유통기한을 먼저 확인하고 길게 팔을 뻗어 가장 안쪽에 있는 우유를 꺼낸다. 맨 앞에 있던 우유보다 유통기한이 조금 더 길다. 유통기한과 유효기간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내게는 유통기한보다 유효기간이라는 말이 더 가깝게 와 닿는다.
유효기간은 마지노선이다. 만약 구입한 식품이 부패했다면 그것은 마지노선을 넘었음을 뜻한다. 유효기간을 무시한 채 먹었던 음식 때문에 낭패를 본 적이 있다. 행여 마트 직원의 실수로 유효기간이 지난 우유가 진열되고, 그것을 발견한 손님이라면 당장 그 마트에 불만을 제기할 것이다.
사람에게도 유효기간이 적용된다면 내겐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일까. 우유는 하루라도 더 유효기간이 남은 것을 취하려고 안달하지만, 정작 나라는 인간의 유효기간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직장 생활을 마감하는 시점이 6년 뒤라 나의 효용가치를 6년으로 보면 될까. 퇴직 후에도 어떤 일을 하게 되어 사회에 조금이나마 공헌한다면 나의 유효기간은 좀 더 연장되겠지만 지금으로선 딱히 이렇다 할 계획도 없고, 일을 하더라도 그리 오래 할 것 같지는 않다.
언젠가 모 생명보험회사 광고를 본 적이 있다. 마주 앉은 그저 평범해 보이는 사람에게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말한다.
"저, 이런 말씀 드리긴 뭣하지만, 이런 상태라면 1년 3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겐 이제 9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그보다 더 짧은 기간이 남았다는 통고를 받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뭐가요? 제가 무엇이 잘못되었나요?" 하며 의아한 반응을 보인다. 나도 처음엔 그 말이 앞에 앉은 환자가 불치병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들은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아니었다.
일주일 전, 건강검진센터에서는 "당신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라는 질문이 담긴 문진표를 그들에게 주었다. 문항에 따라 해당되는 내용을 체크한 사람들을 일주일 후 다시 불러 그들이 소비하는 시간의 패턴을 검토한 결과를 말해 준 것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을 게다. 무엇에 대한 시간인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터.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작성하였다는 문진표 문항을 나도 체크해 보았다. 내 나이 올해 쉰다섯이니 평균수명 85세 기준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은 30년, 앞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대략 8년 정도로 보면 되겠다. 잠자는 시간이 9년 6개월, TV나 스마트폰 보는 시간도 모아보니 4년 2개월 정도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혼자 지내는 시간을 6년 8개월로 계산해 보면 고작 1년 6개월이 남는다.
광고에 나온 사람들보다는 내게 남은 시간이 엄청 많으리라 생각했건만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렇게 남은 시간을 어디에다 쓸까. 내가 그렇게 소비한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을 광고에서는 "가족과 함께 할 시간" 이라고 했다. 그 시간이 이만큼밖에 남지 않았다니 몹시 허탈해진다.
언제부턴가 가족이라는 말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학교나 직장 때문에 각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의 생활을 하고 있기에 옛날 같았으면 늘 마주앉아 함께 밥을 먹던 식탁과 의자도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대화조차도 스마트폰의 문자로 대신한다. 가족이라지만 얼굴을 마주보고 앉을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땐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해결하며 감싸주어야 할 가족이었지만 내겐 언제나 일이 우선이었다. 그 잘난 일 때문에 아이들이 붙여 준 엄마라는 명사가 누구의 이름인지 오래전에 잊었었다. 생일상 한번 제대로 차려주지 못한 아이들은 슬픔이라는 커다란 양동이에 담겨졌다 꺼내진 스펀지처럼 젖어 언제나 축 늘어져 있었다. 큰 병을 얻어 내일 모레 수술을 앞둔 아픈 가족을 두고도 공적인 일이 우선이라며 먼 출장길에 오르기도 했다.
늦은 퇴근으로 깜깜한 골목길을 급히 지나쳐 올 때도, 고장난 가로등이 며칠이면 고쳐져 이 길이 환해질 거라는 믿음처럼, 우리 가족 모두에게 희망에 찬 밝은 미래가 펼쳐지리라 애써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하지만 그 힘들었던 시간을 보낸 대가로 받은 것은 가족 간의 거리였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 밥그릇 속에는 서늘한 침묵만이 담겨 있었다. 눈물 섞어 그 침묵을 숟가락으로 퍼 먹었지만 맛나지도 배부르지도 않았다. 내게만 적합한, 내게만 허용되던 면죄부를 들고 모두를 혹사시켰던 지난날들이 이제는 비에 젖은 수채화처럼 얼룩으로 남았다.
생의 바퀴를 굴리느라 눈 돌릴 틈도 없었던 사이, 먼저 간 가족의 납골당에는 시든 흰 국화 한 송이가 꽂혀 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덜 슬퍼질까.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와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다정한 거리에 앉아 있을 것 같은데, 다시는 열리지 않을, 다시는 들리지 않을, 다시는 잡을 수 없는 사람의 환영만이 허공에 걸려 있을 뿐이다.
마음에 품었던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시간을 무엇이라 명명해야 하나. 남아 있는 내가 매일 다시 태어나 그날 삶을 끝내듯이 살아가고 있을 뿐. 사랑니가 뽑혀나간 자리처럼 상처는 벌어진 채 아물지 않는다. 이제 아무도 그립지 않을 나이지만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은 늘 생겨났다 다시 사라지고, 그럴 때마다 내 뒷모습은 몹시도 휘청거렸을 게다.
사랑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탕진해 버린 시간들을 보상하라는 듯 압력솥은 거친 숨을 뿜어내고, 오랜만에 멀리서 오는 아이들처럼 그 아프고 푸른 시간들이 내게 다시 돌아왔다. 내게 남은 유효기간 1년 6개월. 그 시간동안 만큼은 가족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겠다.
내내 하고 싶었던 일을 미루다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버킷리스트를 만들기는 싫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저 햇볕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어쩌면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채 흘려보낸 무수한 시간이 실은 기적 같은 순간순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한 말이다. 하루하루 인생을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라는 격언에 감동받아 매일 아침 그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이같이 질문했다고 한다. 무엇이 중한지도 모르고 참으로 어리석게 살아온 지난날들. 돈과 명예, 욕망으로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바쁘게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산다는 건 어쩌면 나의 마지막 숨을 내 자식에게 이어주고 떠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떠나도 자식들이 내가 살지 못한 삶을 마저 살아간다. 아쉽지만 내게 남은 유효기간을 값지게 쓰고 가야겠다. 내가 마지막으로 떠나는 날, 누군가가 너무 슬피 울지 말았으면 한다. 삼삼오오 모여 행복했던 나와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가끔은 내 이름을 부른 뒤 멋쩍게 씽긋 웃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짙은 어둠이 또 다른 길을 데려오면, 가뭇없이 사라지는 별처럼 나 홀로 기쁜 여행길을 떠나리라.
- 심선경 -
첫댓글 유효기간 다한 후
'떠날 때 누군가 너무 슬퍼지지 않았음 좋겠다'
종종 그리 생각해 왔는데...
흠!
그 말이 위 글에 있으니 새삼 '맞어'란 생각 듭니다~^^
남겨진 누군가 너무 슬퍼지지 않도록 모두와 즐겁게 선하게 살아야 겠습니다~^^
그동안 뜸했던 시간이 길었습니다
박 선배님 무탁하시죠?
혹여 가을 산행길이시면
낙엽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이도 조심하시길요
가을,,,, 아름답게 보내시길요
그렇잖아도 후배님 궁금했어요.너무 바쁘게 사시나봐요.
오늘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 피아골 쪽으로 내려와서 ,
집에 와 컴터에 오니 반가운 후배님 소식을 보네요.
건강히 지내세요.
나이 들면서 실감하는 말이 지금까진 내용연수였는데
유효기간이라니 더 실감이 나요
나는 이젠 유효기간이 지난 건 아닌지 하는 정신이 번쩍 듭니다
우리를 만든 조물주께서만,
유효기간을 아시리라 생각이 드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