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농사시험소 아래 목화밭 들판
그대, 뻘등을 아는가
도심내륙에 몸을 푼
격량으로 지친 바다는
죽은 뻘을 겨우 업고 와
아주 옛날,
길게 눕혀
마을을 먼저 만들었고
그 위에 나중에
뻘 길이 굳기 전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아서
비오면 부드럽고
해가 뜨면 단단히 굳은
맨몸으로
발길들을 견뎌냈다.
그 마을은 위 맨 땅을
더 이상 잠식해 나가지 못했다.
하늘 아래서 내려온 산 손 앞에서
한계를 알고
스스로 멈췄기 때문이다.
건너온 항구 바람소리를
전하는 낮게 엎드린 비굴한 초가집들이
하나, 둘, 셋
자고나면 또 데려왔다.
소문듣고 알았지만
주인 닮은 가재도구들이 먼저
리어카 타고 오고,
가재도구 닮은 식구들이 뒤 따라
옹기종기
마차에서 내렸다 조심스럽게,
영혼이 없는
뻘이 스스로 굳기를 기다리지 않고
연약한 지표 위,
서로 나뉘는
아래 구역이 탄생했다.
사람들이 뻘등이라고 부르면서
생긴 마을에
비라도 내리면,
낮은 지대 뻘 길 위
까만 구두는 유독 빛을 더 발했다.
뻘등 사람들은
빛 아래 서기를 주저했고,
유난히 몸이 왜소했고,
눈이 컸음에도 자꾸 아래를 내려다 본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특히 소녀들은
뻘등에 살았던 내가 좋아했던 이마가 넓고 둥근 눈이 매우 컸던 소녀처럼.
항상, 다소곳이 행동했다.
그 동네사람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백발이 되어서도
자신있게 리발하는
동네 제일가는 기술을 보유한
리발소 할아버지부터
어린 성낭처녀까지ㅡ성냥공장 다니는 이쁜 아가씨를 우린 그냥 '성낭처녀'라 불렀다. 가끔, 웃 동네 와서 일을 도와주는 날품팔이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
김장날 일을 도와주러 오는 사람들, 하루 전에만 알리면 언제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등등. 쉽게 일을 시작하고 언제나 그만 둘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들은 하루를 천년처럼 살았던 사람들이다. 거의 매일 없다가 어쩌다 한번씩 일이 생기곤 했다.
당시 내가 거주하던 집이 리발소를 운영했던 관계로, 그리고 심부름 할 정도로 큰 아이가 나 밖에 없었으므로, 일요일 늦은 오전에도 늦게까지 나오지 않은 고참 할아버지 리발사를 깨워서 데리고 오는 일이 내게 떨어지곤했다.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도 싫은 일이었지만, 나는 할아버지 이웃에 사는 눈이 몹시 크고, 이마가 훤하게 넓은 여자애를 좋아했기 때문에 뻘등에 들어서기가 싫어서 한참을 멀리 돌아갔다ㅡ그래서 더 늦어지곤 했다. 반대편 들판을 가로질러 돌아가서 홍건한 뻘 위에 세워진 싸리문을 흔들며 크게 외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일어나셔야해요. 손님이 기다리니 빨리 오세요. 손님들이 많이 기다리니, 식사하지 말고 얼릉 오시래요." 맨 나중에 한 말은 실제 전하라는 말이 아닌데, 내가 그냥 끼워 넣은 말이다. 당시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해서.... 기분이 우울한 어떤 날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중얼거리다 돌아와서 할아버지가 도대체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고 일러 바치곤 했다. 그러면 주인은 말하곤 했다. "그 놈의 영감탱이, 이제 그만 나오라고 해야 할 것 같애. 허긴 오래 하긴 했제." 그리곤 다음 날 보면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고참 할아버지는 신참들을 달달 볶았다. 곁에 선 주인은 웃었다.
나중에 커가면서
뻘등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 사느냐에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여자애는 예외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늘의 별도 어딘가로 떨어질 수 있고, 한번 떨어지면 (별도) 그곳에서 살아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우선 살아내야 한다는 명제를 우선으로 해야 함으로.
사람들이
천 개의 섬들에서 자라
배를 타고
m 도시로 더 몰려오자
죽은 뻘들은,
죽을 힘을 다해 살아나서
산의 손 안에 있는
들판 아래까지 점차 점령해 나갔다.
들판이 있으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심는다.
땅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목화밭은 그렇게 탄생했다.
사랑이라는 핑계가 살아났다.
사람들은
더, 더, 더 위로 올라섰고
점령당한 들판은
시험소가 들어서면서
목화밭으로 변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목화밭 다래 이야기다.
다래는 목화밭으로 변하기 전 달콤하고 향기로운 맛을 가진 꿀샘으로 기억하고 있다.
목화밭, 목화밭, 다래, 그 다래여!
단 것이 부족했던 아이들은
가방을 메고 뛰쳐나가
노래를 부르며,
뻘들을 튀기며,
바람따라
씽씽 내달려,
이윽고 달콤한
푸른 빛 감도는
목화밭 솜 피기 전,
흰 살로 터지기 전 ,
아카시아가 그늘로 유혹하기 전,
그 푸른 맨살을
입으로 빤다.
깨지면 안 되고
날아가도 안되니까
붙잡혀 있을 정도만의 힘으로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쥔
아기새처럼
그 작은 푸른 다래의 꿀샘은
또 얼마나 달았던지
그 속살이 터진다.
그 달콤함이 터진다.
화하게,
입 안 검은 동굴 안에서....
사람들이 귀하던 시절
산에서 내려온
넓은 목화밭엔
지키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일이 생기기 전에는....
6월, 여름 밤이 시작하면,
어린 다래들 생명 수없이 사라져도....
목화밭 그늘 아래는
어린아이들이 몸을 감추기에 딱 좋았다.
목화밭 키들이 한참 자라나는 우리와 엇비슷했기에
함께 간 친구들의 몸 웃음만 멀리 퍼졌다. 높이 솟아오른 소리들은 창공을 유혹했다.
들판엔,
멀리 바다에서 불어온
부드러운 바람이 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고,
깨뜨려지는 동굴 속 어린 다래샘들이 있었다.
우리의 삶은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흘러가는가
도대체,
어린 날의 그 가슴떨게 하던 비밀의
정원들을 관리하는 자가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왜 이리도 슬프게 하는 건가
흘러가버린 어린 날 삶은.
그 목화밭에서, 밤이 되면 터지는 다래는
시골 샘가에서 만난 앵두완 또 다른 맛이었다. 앵두가 터졌지만 다래는 스며들었다.
그래서 앵두는 입, 다래는 가슴인가 보다.
변두리 다니는 순환버스가 생기고
그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래가 터지는 소리? 자고 나면 소문이 돌았다.
목화밭 다래 단 맛을 낮에 본 아이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밤이 되자마자
남남, 여여 파트너는 없었네.
신의 섭리대로,
남과 여는 다래가 주는 또 다른 샘물의 유혹을 마시기 시작했다네.
서로 눈을 맞췄다네.
서로 입술을 댔다네.
콩닥콩닥
이전에는 혼자서 자신의 가슴을 잡았던 그 손으로
떨고 있는 상대 가슴을 움켜쥐고
나쁜 일을 함께 한다는 두려움으로
천둥과 하늘의 장마를 불러 내렸고
아직 푸른 빛이 남아 있는 풀잎을 태울
그건,
어찌할 수 없는
크는 애들의 밤의 몸부림이었다.
여전히,
지금도,
어른들은 믿지 못하지만,
키스의 밤이 지속될수록
거절의 신호도 단호해져 갔다.
허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차차, 힘의 방향이 바꿔져갔다.
여자애들이 훨씬 잘 지켜나갔다.
사회적 규칙을, 질서를
보름달이라도 뜨는 날에는
그들은 부드럽다가도 너무 엄격하게 변했다.
교복 단추끈을 흐믈흐믈 해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동안
치마 주름 줄은 더욱 날카로워져만 갔다.
어린 욕망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했다.
단 맛을 잃지 않은 푸른 다래는
환한 흰색의 양탄자를 아직 뿌리지 않았으나
천천히 반짝이는 별빛을 지상으로 끌어내려서 여름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물어뜯는 모기들의 빈번한 공격이었다.
모기들의 여름은, 너무 뜨거워
욕망의 분수를 잠들게 했고,
이어서, 찾아온 겨울의 흰 눈발은
목화밭 어둠을 환하게 비췄다.
도덕적 보름달이 내려다 보는 것처럼
거짓된 욕망을 삭제하는 것은
그래서, 차라리, 그 배경, 분위기이다.
욕망 앞에 선
의지는 바람 앞의 등불이기에.
우리는 그런 진실을 어른들에게서 배우지 않고 각자의 경험으로 터득해 나갔다. 어른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흰천지 되기 전
그 어린 다래의 단 샘물이여,
그 깊은 여린 슬픔이여,
나의 어렸던 다래여!
슬픔의 감정에
난, 목이 매인다.
아무도 모르게
시간도 흘러,
공간도 달라져,
이렇게,
어른이 끝나 가는데도....
*뻘등은 항구 도시 중에서 원래 지대가 낮아 바닷물이 유입되며 생긴, 뻘이 굳어진 지표 위 세워진 도시 변두리 뻘 동네 마을을 폄하하는 뜻으로 사용했다.
첫댓글 한동안 머물다 갑니다
고운 시 많이 보여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어린 기억으로 "다래"라고 불렀던, 목화의 열매가 아닌 목화 전신이지요
시 속의 언어들이 어쩌면 같은 연대기를 살았던 사람들만 공유하는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거억을 더듬어 미소짓는 아침
고맙습니다.
그래요, 목화의 전 단계 샘물은 다래였네요.ㅎ
감사합니다.
기억은 다른 기억을 불러오는 특징을 가졌지요..
*기억 속으로 다래를 보내주셔서 글을 많이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꾸벅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