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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의 견성(見性)》
(이번에 일주일 정도 중국에 들어가서 잘 보내고 왔습니다.😃🙏🏻
예전에는 불교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는데요?
와..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까 중국 사람들 마음에 대부분이 불교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예전에는 중국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다니면 별로 반응이 그렇고 그랬는데요.
이번에는 다니면서 불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반응들이 엄청났다는 것인데요.
대화를 나누는 수준도 꽤 높았었고 무엇보다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답니다.
예전에 중국 절들을 가보면 불자들이 향불이나 흔들고 부적이나 붙이는 줄로만 저는 알았었는데요?
다 그런 것은 아니었더라고요.
아무튼 만약에 이 사람들이 수행 길로 들어선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어마어마한 효과를 거둘 거라고 저는 확신하면서 돌아왔는데요.
왜냐하면 중국 사람들은 꾸준히 하는 것 하나만큼은 끝내주거든요.
한족들 얘기로는 99년 7월 파룬궁 사건 이후 수행문화가 해외로 나가거나 지하로 숨어들었다고들 그러더라고요.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설명드리면
중국에는 지금도 지하 종교란 것이 있답니다.
북한도 그렇고요.
공산당의 종교 탄합으로 인해 지하로 숨어든 것이지요.
제 경우는 어려서부터 교회 활동을 꽤 적극적으로 했었던 경우라 중국에서도 전도사들과 함께 깊숙한 곳까지 관여를 했던 경우인데요.
길림에 한 지역에서는 여러 번 지하 예배당에 참석했던 적도 있었고요.
물론 걸리면 사업이고 뭐고 바로 추방입니다.
중국에서는 자국인들을 대상으로 그 어떠한 종교활동도 해서는 안 되거든요.
한인 교회 안에도 항상 사복 차림으로 예배 때마다 공안들이 앉아있고요.
그만큼 저도 전도를 위해 애를 썼던 사람이라는 것인데요.
그것도 제 경우는 [고신파]라 해서 기독교 안에서도 골수 중에 골수들만 모여있었던 쪽이라 비록 전도사는 아니더라도 사명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 중 하나였는데요.
말이 나온 김에 이런 얘기는 처음 합니다만..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불교 쪽 사람들은 기독교 쪽 사람들 쫓아오려면 발가락도 못 쫓아온답니다.
자기들끼리 싸움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평생 교회에 다녔어도 단 한 번도 말다툼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늘 재미있고 즐거웠지요.
그러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교회에 가게 되는 것이고요.
거기서도 늘 휠링이 되어 돌아오니까요.
교회는 분위기 자체가 이런 분위기가 아니거든요.
교회는 일반 신도들의 힘이 아주 막강하답니다.
목사도 마음에 안 들면 갈아치우니까요.
그러나 불교는 정 반대이고요.
그러니 안에서 섞는 것입니다.
깨닫지도 못한 출가자들이 무슨 지혜가 있고 지식이 있겠어요?
지혜는 경험에서 오는 것인데요.
그러니 경영을 그따위로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불교도 신도들이 모든 경영을 운영해야 한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물론 다는 아니지만 이쪽 사람들은 툭하면 서로 파당을 지어서 다투고 시기하고 비방들을 해대고 있으니 새로운 불자들이 같이하기 힘든 구조라는 것인데요.
아무리 마음공부가 어떻고 지혜가 어떻고 하면 뭐 하겠습니까?
기본적인 마음 상태가 아닌 것을요?
기독교는 전혀 그렇지가 않거든요.
단합이 얼마나 잘 되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목숨까지 걸고 해외로 나가고 있고요.
아무튼 저는 그 당시에 특히 북한 지하 종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지금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고요.
다만 그때는 교회 쪽 북한 지하 종교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불교 쪽인 것만 다를 뿐인데요.
왜냐하면 북한에도 분명히 지하 불교가 있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혼자서 연구 중에 있고요.
그래서 이번에 중국에 들어간 김에 예전에 함게 했던 전도사들에게 불교 쪽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고 온 것인데요.
누구 말씀인데 하면서 당연히 알아봐 주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기독교도 지하 예배가 있는데 불교가 없을 리가 만무하잖아요?
그래서 탈북민 중에서 북한에서부터 불교였다는 분을 얼마 전에 동영상을 통해 보고 전화번호까지 입수를 해둔 상태이고요.
기회를 봐 찾아가 현재 북한 지하 불교의 상황들을 물어볼 예정에 있는데요.
왜냐고요?
이상한 불교가 자리 잡기 전에 저 혼자서라도 가서 이것을 알려주려고요.
지금껏 내 고집대로 살아왔는데 기왕이면 끝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전부 해보고 인생을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겠어요?
혹시라도 제가 살아있을 때 북한과 왕래가 가능해진다면 저는 바로 짐을 싸 들고 북한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 두는 건데요. (진실)
시간 있을 때 북한 쪽 사람들과 인맥도 넓혀 놔야 하고요.
그리고 저의 남은 모든 에너지를 그곳에 전부 다 쏟아붓고 이번 생을 마감해 보고 싶은 것이 저의 마음인데요.
제가 만약 실행에 못 옮기고 죽는다면 이 글을 보시는 그 누군가가 이 일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서 미리 해보는 이야기이기도 하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제가 그동안 살아온 방법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혼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려는 것인데요.
그래서 이번에 겸사겸사 중국도 간 것이고요.
아무튼 저는 개인적으로 부처님이 일러준 대로 예수님의 법 전파처럼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무조건 끝까지 이 길을 가다가 죽을 예정인데요.
불교인들은 모르겠지만 현재 기독교인들은 중국에서 이쪽으로 엄청난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답니다.
그런데 지금 불교는 포교는 고사하고 ..?
아무튼 그래서 저 혼자서라도 미리미리 북한 쪽 불교 자료들과 인맥들을 확보해 두면 내가 못하더라도 그 누군가가 할 때에 편할 것 아니겠어요?
사업이든 종교든 누가 먼저 들어가서 선점을 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하거든요.
기독교는 이러한 이치를 경험을 통해 이미 몸에 배어있는 것이고요.
한국 불교는 대승이라면서요?
그럼 대승답게 행동을 해야지요?
절 안에서만 대승을 부르짖으면 뭐해요?
실천력이 없는데요?
아무튼 기독교인들은 온 힘을 다해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전도 활동에 여념이 없다는 것인데요.
그러니 기독교가 저토록 부흥할 수 박에 없는 것이고요.
정말이지 저는 지금 불교 최고 어른들이라 하는 사람들을 아무리 좋게 납득(納得)을 하려고 해도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는 경우인데요?
절 밥을 그 정도로 먹었으면 제발들 좀 정신들 좀 차리고 뭐를 하나 하더라도 똑 부러지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지경인데요?
아? 그리고 이번 중국 방문에서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0 춘 0? 씨]라는 분이 그 정도로 이쪽 세계에 조예가 깊을 줄은 나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었는데요?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말을 못 했지만 이번 중국 방문의 최대 성과는 (춘0 씨)가 이쪽으로 그 정도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아는 그 순간이었고 동지를 만난 것 같은 그런 기뿐 마음이었답니다.(^^👍🏻)
(춘0 씨도) 지금쯤이면 이 글을 보고 계시겠지만 앞으로는 더욱 깊은 관계로 저와 함께 했으면 좋을 것 같고요.^^
그동안 제 경우는 불법과 인연이 닿지 않는 분들과는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최대한 멀리한 경우라 그동안 연락이 좀 뜸했었는데요.
앞으로는 (춘0 씨와) 서로 자주 정보를 공유하기로 하고 기회가 닿는다면 수행에 관심이 있는 한족들에게도 이것을 같이 공유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도 그날 이후로 중국의 옛 어른들의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오기에 한국 불자들과 같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 기왕이면 중국 본토 불자들과 같이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서인데요.
아무튼 저는 혼자서라도 끝까지 이 길을 가다가 죽을 예정에 있는데요.
그 정도로 저는 이법을 알고부터는 지금 불교에 미쳐있답니다.
아고? 서두가 너무 길었네요.^^
아무튼 우리 다 같이 견성성불이라는 것 한번 해보고 죽더라도 죽어봅시다.😃💪🏻🙏🏻)
~♡~
[ 경허집(鏡虛集) (39) ]
20240812
서른아홉 번째 이야기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저 같은 농땡이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자주자주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의 것들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 수행이란 내 마음을 보는 거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
(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
《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契此清心法門
夫人生一世也壯色不停如奔馬如草露如西光無常迅速之謂也似糞聚 似夢聚如怨賊如毒蛇謂其幻妄無好事也孔子曰予欲無言又云無適也無 莫也莊子日遺其玄珠罔象得之又云天地一指萬物一馬況我學佛沙門乎 當究其本心研精明妙則百千三昧無量妙義不求而自得諸佛祖豈異人哉 而今去聖時達出家人不識自家體裁悠悠泛泛過了一生吾佛正法眼藏埋 沒不明而全以虚偽邪惡習與成性而甚者返以誹謗嗚呼不可以言之矣六 祖大師云前念迷即衆生後念悟則佛為山禪師日以思無思之妙返思靈燄 之無窮思盡還源性相常住事理不二真佛如如得其光也等諸佛於一朝失 其光也順生死於萬劫如龍換骨不改其鱗凡夫廻心作佛不改其面無明實 性即佛性幻化空身即法身這箇道理租為太近開眼便刺着合眼處亦自現 成如何是佛汝即是如是等明白指導不可煩引而皆是革凡成聖之直截道 理古人之恁麼叮嚀苦口用心緊切如老婆誦習而返究博問先覺以決擇分 明悟理為懷仔細琢磨其成道也誰人無分賢愚貴賤老少男女皆有分也鸣 呼薙髮染衣當為何事眼被色牽歸餓鬼耳隨聲去入阿鼻沈醉聲色場酒墮 沒受想坑穿昏昏不覺今日也如是明日也又如是乃到臘月三十日頭痛額 裂肝腸痛切手脚抽牽懷懂如落湯螃懈痛忍如生脫龜皮神識昏迷上天入 獄也不曉得嗚呼惜哉回憶古賢於臨終也坐脫立亡容易如門開人出相似 戒禪師倚杖而化佛印長老嗎然一笑而去或停筋而逝垂足而寂倒立而滅 去數尺而亡皆以返究自性學全定慧之致也鳴呼古人豈異於人哉洞山和 向云袈裟下失人身是苦也可以箴戒如上四箇嗚呼也感恨如海誰知之書 此以贈承華上人
ㅡ♡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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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계차청심법문(契此清心法門)
(마지막 편)
위산선사가(潙山靈祐)가 이르기를
"생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묘로서 신령스런 불꽃의 끝없는 데에 돌이켜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면 성품과 모습이 항상 머무르고 현실과 이치가 둘이 아니리니 이것이 참 부처님의 여여(與與)함이니라."
하였으니 그 광명을 얻으면 모든 부처님과 동등하게 되며 하루 아침에 그 광명을 잃으면 생사에 윤회하며 만겁에 헤매게 되나니라.
고기가 용이 되어 뼈를 바꾸어도 그 비늘은 고치지 못하고 범부가 마음을 돌이켜 부처가 되도록 얼굴은 고칠 수 없다고 하였다.
밝지 못한 그대로 성품이 곧 불성(見性)이요허망한 이 몸 이대로가 법신(法身)이다.
이낱 도리는 매우 가까운데 있는데 눈을 열면 경계를 보는데 집착하고 눈을 감으면 또한 스스로 현전(現傳)하여 나타난다.
"어떤것이 부처 입니까?"
"너가 부처다,"
하니 이와 같이 명백하게 지도함에도 번거로움이 없으니 이 모두 범부를 고쳐서 성현이 되게 하는 지름길이 되는 도리이다.
어떠한 사람들인들 분이 없으리오.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귀천과 남녀노소가 모두 성불할 수 있는 분이 있도다.
슬프다!
머리 깎고 먹물옷을 입음은 마땅히 무엇을 하려 함인가?
눈이 빛에 끄달리면 아귀의 몸을 받고 귀가 소리를 좇으면 아비지옥에 들어가며 빛과 소리에 취해 떨어지면 짐독(鴆毒/맹독)을 넣은 술에 침몰되어 망상의 함정속에 빠져 혼미하여 깨어나지 못하고 오늘도 이러하고 내일도 또 이러하다가 섣날 그믐날이 닥치면 머리와 이마가 터지는 듯하고 간장이 잘라지는 듯 손과 발을 잡아빼는 듯할 때에 그 슬프고 두려움을 끓는 물에 떨어진 게와 같으며 그 아픔을 참는 것도 마치 거북의 가죽을 산채로 벗기는 것과 같나니 정신은 혼미하여 내가 천상으로 가는지 지옥으로 가는지 상상하여 헤아릴 수가 없으니 슬프고 애석하다.
돌이켜 생각하건데 예전 성현들은 임종할 적에 앉아서 벗어버리고 서서 가되 열린 문을 나가듯이 쉽게 하였다.
계선사는 주장자를 짚고 천화하고 불인장로는 혼연히 한번 껄껄 웃고 가고 혹은 젓가락질 하다가 멈추고는 가고 발을 펴고 입적하며 거꾸로 서서 입적하니 몇 자 몸의 입적이지만 이 모두 자성을 반조하여 참구해서 정혜를 온전히 익혀 극치에 이름이로다.
슬프다 옛 사람이라고 어찌 지금 사람과 다르겠는가.
동산화상이 이르기를 "가사 아래서 사람 몸을 잃음이 제일 괴로움이라." 하였으니 가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에 슬프다 한것이 네 번이라 한됨이 바다와 같음을 누가 알겠는가.
승화상인에게 써 주노라 .
경허 서
(40~42P)
~~♡~~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오늘 제목은 계차청심법문(契此清心法門) 내용의 마지막 내용입니다. ^^
오늘 내용은 경허선사가 본성 자리를 표현한 내용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경허 선사의 글을 보면서 내심 놀라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깨달은 사람들은 깨달은 사람들 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런 표현들이 반드시 있는데요?
오늘 내용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남들 이야기가 아닌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중국식 표현이 아니라 순수한 우리 식 표현으로 말이지요.^^
그럼 어느 부분이 그런지 같이 경허선사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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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선사가 이르기를
"생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묘로서 신령스런 불꽃의 끝없는 데에 돌이켜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면 성품과 모습이 항상 머무르고 현실과 이치가 둘이 아니리니 이것이 참 부처님의 여여함이니라."]
(오늘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의 말씀인데요.
지금 이 내용은 수행자들이 본성을 찾아들어가는 과정을 묘사해 놓은 글이랍니다.
옛날식 표현이라 어러워 보여서 그렇지 요즘 말로 하면 하나도 안 어렵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인데요?
"신령스런 불꽃의 끝없는 데에 돌이켜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면 성품과 모습이 항상 머무르고 현실과 이치가 둘이 아니리니"
여기서 말하는 "신령스런 불꽃" 이란 본성(불성) 자리를 뜻하는 것이고요.
이 말은 신령스러운 본성 자리로 들어가려면 돌이켜서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인데요.
요즘 말로 하면 의식을 안으로 돌려서 끝없이 들어가면 생각은 자동으로 끊어지고 뿌리에 해당하는 근원(根源) 자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방법은?
간화선으로 하시는 분들은 화두를 보면서(看)..
위파사나로 하시는 분들은 현재 이 순간을 보면서(看/알아차리면서..)..
또는 의식이 깨어서 보면서(看/알아차리면서..)..
조사선으로 하시는 분들은 마음을 보면서(看/알아차리면서..)..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어느 순간 어느 환경에서도 각자가 하는 수행 방법으로 집중하면서 알아차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내용은 모든 수행자들에게 엄청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만이 성품과 모습이 항상 머무르고 현실과 이치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참 부처님의 여여(與與) 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의식을 안으로 돌려서 집중하면서 본성 자리를 만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도 그러하고요.
왜냐하면 경허 선사 말씀대로 "생각이 다하여" 즉 "모든 생각이 끊어진 상태"에서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은 본성 자리 하나 박에 없을 테니까요.
간화선으로 예를 들면
화두를 돌이켜 생각이 다하여 즉 화두를 들고(보고) 서 계속 집중하고 또 집중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근원(마음의 뿌리/본성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성품과 모습이 항상 머무르고 현실과 이치가 둘이 아니라 하나의 여여(與與) 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수행 방법들은 마음자리를 찾아들어가는 방편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자꾸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답니다.
여기서 깨닫고 못 깨닫고의 차이점은 깨달은 사람들은 지금 경허 선사의 말씀처럼 항상 본성의 근원에서 머무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늘 마음이 여여(한가롭고 여유가 있다) 한 것이고요.
그래서 깨달은 사람들은 현실과 이치(본성)는 둘이 아니라 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해서 뭐 합니다만 현재 깨달았다고 하는 선지식인들이 천도재나 명패 봉안이나 친견비 등에 의식을 두는 것 자체가 벌써 그 마음은 하나가 아니라는 증거인 것이고요.
왜냐하면 마음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입니다.
여런러분들도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지금 경허 선사의 말씀처럼 아무려면 항상 본성의 근원에서 머무른다는 선지식인들이 어떻게 그런 둘의 마음의 짓들을 할 수 있겠는지를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선지식인이라고 떠받들고 있는 것 자체가 벌써 무명의 소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깨달은 사람들은 지금 경허선사의 말씀처럼 현실과 이치(본성)가 늘 하나이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매이지도 않을뿐더러 끌려다니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부처님의 여여 함이라는 뜻이고요.
속된 말로 여기까지만 가도 여러분들은 정말이지 좋아서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끝내줄 것입니다.😁🪷👍🏻)
그리고 또
★
[그 광명을 얻으면 모든 부처님과 동등하게 되며 하루 아침에 그 광명을 잃으면 생사에 윤회하며 만겁에 헤매게 되나니라.]
(여기서도 보십시오.
이렇게 그 광명을 얻었으면 즉 위에서 말한 내용들을 얻으면 부처님과 동등한 마음으로 바로 바뀌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처의 마음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그런 짓들을 한다고요?
만약 부처님이 불은 색동 가사를 입고 북을 치면서 천도재를 지내고 있다면 그것도 몇천만 원 식 받아 가면서 "내가 너희들을 극락세계로 인도 주겠노라.." 한다면 과연 여러분들은 그런 부처를 믿고 따르시겠습니까?
지금 경허선사의 말씀은 이렇게 지금 어른들처럼 그 광명을 잃으면 생사에 윤회하며 만겁에 또 헤매게 된다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실제로도 그러하답니다.
제 경우는 이런 사람들을 두 명 정도 본 경우인데요.
두 사람 다 출가자였답니다.
이분들은 실제로 깨달은 분들이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절 안에서도 깨달았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요?
그래서 오늘 경허선사 말씀처럼 도로 광명을 잃고 생사의 윤회에 빠지고만 케이스인데요.
왜냐하면 요새는 누가 불교 안에서 어쩌다가 깨닫는 분이 나와도 누가 거들떠 봐주기나 해야지요?
최고 어른들이라 하는 사람들은 다들 엉뚱한 곳에 의식들이 가 있어서 자기들 밥그릇 지키기에도 바쁜 사람들인데요?
최소한 불교계에서는 어쩌다가 깨닫는 스님들이 나오면 후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한 구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깨닫게 되면 경허 선사처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천도재나 명패 봉안 같은 것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기 때문에 말을 안 하려고 해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경허 선사의 말씀처럼 본성을 의지처로 삼고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 좋은 비유가 손오공(孫悟空) 내용인 것이고요.
손오공이란 손(孫) 씨라는 사람이 공(空)의 자리를 깨달은(悟) 사람을 뜻하는 것이거든요.
손오공의 머리띠인 금고아(金箍兒)는 깨달은 사람들의 양심을 뜻하는 것이고요.
깨달은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만 부정한 짓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게 되면 바로 손오공 머리띠처럼 양심이 조여 온답니다.
그리고 그 양심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요. (진실)
그리고 손오공처럼 그런 가짜들을 보거나 무당들을 보면 쳐부수는 일들을 하게 되고요.
왜냐하면 진짜로 깨달았다면 부처님의 법에 어긋나는 짓들은 눈뜨고 보질 못하거든요.
그래서 출가자들이 이 땅에서 깨닫게 되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답니다.
하나는 그냥 현재 어른들과 잘 타협해서 죽은 사람들 제사나 지내 주면서 생사윤회의 골짜기에 다시 빠져들던지?
아니면 경허선사처럼 파계를 하고 나머지 공부를 하던지?
출가자들 중에 누가 하나 깨닫는 사람들이 나와도 두 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현재 한국 불교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계속해서 어른들과 부닥칠 것이고 결국은 쫓겨날 것이니까요.
나는 입이 하나고 저쪽은 입이 천 개인데 아무리 깨달았어도 그런 악귀들의 입(욕)들을 어떻게 다 감당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경허선사의 용기에 대 찬사를 보내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경허선사 당시에는 조선 말기였기 때문에 지금보다도 훨씬 더 밖에 생활이 척박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알고 지내던 두 분도 안타까워하는 것이고요.
어쩌겠어요? 평생 절 안에서만 생활하다가 갑자기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자니 부담이 갈 수 박에요?
그러나 저 같았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절 쪽으로 오줌이나 실컷 내 갈기고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경허 선사처럼 그런 곳에서 탈출하고 생사의 윤회를 벗는 길을 택했을 것인데요.
그러나 이 두 분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아무튼 지금 경허선사의 말씀은 이렇게 되면 하루아침에 그 광명을 잃고 생사에 윤회에 다시 휩싸여서 만겁에 다시 헤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귀한 마음을 얻어 놓고도 이까짓 이 육체의 목줄 때문에 돈 몇 푼 때문에 천도재다 뭐다 해서 마음을 그쪽에 빼앗겨서 자신을 다시 망치고 있으니 당연히 안타깝고 가련한 마음이 드는 것인데요.
특히 깨달은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깨달았고 해서 막 자기 능력 밖에 것들에 뭔가를 펼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세상에는 옛날과 달라서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밥만 먹여줘도 얼씨구나 했지만 지금은 어디 그런가요?
공양간 허드렛일만 시키려 해도 돈, 때가 되면 목탁치고 염불하면서 예불 드릴 스님만 구하려 해도 돈, 천지가 돈 들어갈 일만 있는데 무슨 돈이 있어서 깨달았다고 하는 출가자가 이런 것을 다 감당하겠습니까?
이것이 가능하려면 돈 대줄 스폰서가 옆에 붙어서 ..
"스님? 스님은 깨달은 분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대접 박에 못 받으시면서 이런 절에서 이러고 계셔요? 제가 선원을 하나 차려드릴 것이니 밖에 나가서 중생제도를 하는 것이 차라리 어떻겠어요?"
참으로 깨달은 사람 입장에서는 달콤한 제안이겠지요?^^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요?
수행하러 오는 재가자들이 일반 학원처럼 한 달에 몇십만 원씩 착착 보시를 해주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한가요?
그러니 당연히 천도재 같은 곳에 손을 댈 수박 없는 것이고 한번 손을 대면 그런 곳에 스스로 매여서 오늘 경허선사가 하신 말씀처럼 기껏 힘들게 깨닫고도 그 광명을 잃어서 생사에 윤회에서 또다시 헤매게 되는 거랍니다.(진실)
이들은 방편으로 하는 것이라 말을 하고 있지만 개똥같은 소리 하지 말라 하십시오?
왜냐하면 부처님은 단 한 번도 이런 방편을 쓰신 적도 없거니와 이런 짓들을 아주 경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괜히 남들에게 이 법을 전한답시고 자신의 힘에 부치는 일들을 벌여서 거기에 매몰 당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출가자가 이법을 깨달았다면 절대로 지금 시대에는 밖에까지 나와서 선원을 차리시면 안 된답니다.
특히 스폰서(재가자)가 돈을 대준다고 해서 출가자가 자신은 얼굴마담 형식으로 개업을 해서는 더욱 안 되는 것이고요.
스폰서(재가자)가 괜히 돈을 대고 출가자에게 선원이나 요양원 등을 차려주겠어요?
다들 돈 벌자고 투자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런 쪽으로는 그 누구 보다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전문가였답니다.
왜냐하면 본래 제 직업이 이런 쪽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이 법을 알고부터는 깊은 참회를 하고 이런 길을 가고는 있지만 제 입에 놀아난 사람이 저 때문에 쪽박 찬 사람들이 한둘인지 아십니까?
괜히 이런 스폰서들 때문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수입은 단장이 챙기고 하는 형식이지요?
그래서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출가자들이 천도재나 명패 봉안 같은 것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고요.
어쩌겠어요?
많은 돈을 들여서 선원이라고 차려 놨는데 수입은 없고 하기 싫어도 천도재라도 할 수 박에요?
특히 깨달았다고 소문이 난 스님이라면 재가자들이 더 몰려들 것이고?
자기 부모님들 천도재나 명패 좀 그 절에 모셔 달라고 난리가 날 것인데요?
그 대표적인 곳이 인천에 한 어느 선원인 것이고요.
그런 곳을 어떻게 선원이라 할 수 있답니까?
그런 늙은이를 최고 어른이라 떠받들고 있는 것 자체를 경허선사가 만약 보셨다면 불호령부터 떨어질 것인데요.
"아이고 우리 어머니 극락 좀 가게 해주세요.."
하는 모습들을 보셨다면 말이지요.
저는 처음에 그곳에 최고 어른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가 기겁을 하고 대실망만 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어떻게 선사의 모습이겠습니까 무당의 모습 그 자체이지요.
그런 삐쩍 바른 늙은이가 선에 대해서 라디오나 불교 방송에서 법문을 했다는 그 자체가 역겹고 추한 모습인 것을요.
저는 지금 이들은 절대로 비방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방해 봐야 뭐가 이득이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벌 때처럼 제 개인 메일로 가진 욕들이 올라오는데요.
댓글로 욕을 하면 자기 쪽 도반들도 보게 되니까요.
오히려 평생을 같이한 기독교 쪽 친구들이 저를 염려하고 있답니다.
왜 너 같은 놈이 그런 소리를 들어가면서 거기서 그러고 있느냐고요.
그러니 저라고 이런 말을 하고 싶겠습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주된 이유는?
현재 이런 사람들로 인해 그나마 경허 선사가 이룩해 놓은 한국 수행문화가 폭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천도재만 지내주고 명패 봉안만 절에 하면 극락왕생을 한다는데 누가 힘들게 수행을 하겠어요?
그래서 이런 늙은이들이 불종자를 끊고 있는 사람들이라 하는 것이고요.
요즘은 어느 비구니가 운영하는 요양원에서는 하다가 하다가 티베트 승려들이나 남방 쪽 승려들까지 끌어들여서 기도네 뭐네 염불이네 하면서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인데요.
생각해 보십시오?
한 달 임금이 15만 원 안팎의 나라에서 온 스님들에게 일반 염불하는 스님들 월급 반만 주어도 얼씨구나 할 것 아니겠어요?
남방 불교나 티베트 승려들이 기도나 염불이나 천도재들을 지내 주면 소비자(불자)들도 뭔가 있어 보일 것이고요?)
그리고 또
★
[고기가 용이 되어 뼈를 바꾸어도 그 비늘은 고치지 못하고 범부가 마음을 돌이켜 부처가 되도록 얼굴은 고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니 경허 선사도 이런 소리를 하고 계시는 거랍니다.
"아무리 고기가 용이 되어 뼈를 바꾸어도 그 비늘은 고치지는 못한다"라고요?)
그럼으로..
★
[밝지 못한 그대로 성품이 곧 불성(佛性)이요 허망한 이 몸 이대로가 법신(法身)이다.]
(그럼으로 비록 밝지는 못하더라도 즉 비록 깨닫지는 못했더라도 그대로의 성품이 곧 불성(佛性)이라는 것이고, 비록 목숨을 다하면 흩어 없어질 허망한 몸뚱이라도 이 몸 이대로가 법신(法身)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비록 깨닫지는 못했더라도 그대로 이 성품이 곧 불성(佛性)이니 비록 허망한 이 몸뚱이지만 이것이 곧 법신(法身)이기 때문에 다른 죄짓지 말고 이거라도 제대로 잘 쓰면서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
[이낱 도리는 매우 가까운데 있는데 눈을 열면 경계를 보는데 집착하고 눈을 감으면 또한 스스로 현전하여 나타난다.]
(이 부분도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요.
왜냐하면 지금 경허 선사 말씀은 이것은 매우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의식만 안으로 돌리면 바로 앞에 있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경허 선사 말씀처럼 일반 사람들은 눈만 뜨면 밖으로만 의식이 가 있기 때문에 그 경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밖으로만 집착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뭐를 보면 그 보는 대상에만 꽂혀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보고 있는 바로 그 자리는 못 보고 있고요. (※ 지금 이 자리가 포인트)
의식이 밖으로만 끌려간다는 뜻입니다.
밖이 아니라 안으로도 좀 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내가 나를 보는 것인데요.
그러나 우리들은 의식이 밖으로만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보거나 들으면 좋다고 끌려다니고
나쁜 것을 보거나 들으면 싫다고 끌려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눈을 뜨고 의식만 깨어서 반조(안으로)를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눈만 감아도 이 또한 스스로 본성 자리가 현전하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부분이 포인트)
눈을뜨면 보이는 대상에 끌려가니까 눈을 감아보라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보면 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느낄 수 있답니다.
눈을 떠도 느낄 수 있으면 앞으로 화두 대신 그놈만 챙기시면 되는 것이고요.
(처음에는 내가 왜 이런 걸 챙기고 있나 하겠지만 얼마가 지나면 챙기라는 뜻을 알게 된답니다.)
너무 맑고 깨끗하고 투명한 그것 말입니다.?
그리고 반조(나를 돌이켜 봐도)를 해도 또한 스스로 현전하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내용이 너무 쉽고 간단한 것이라?
"에이..? 설마?"
하시는 분들도 계실건데요.
그만큼 이것(본성)은 대단한 것이 아니랍니다.
누구나 평시에 보고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아주 평범한 것인데 그동안 지금 경허 선사 말씀처럼 밖으로만 의식을 두시고 사셨기 때문에 모르고 지냈을 뿐이랍니다.
그러나 누구나 아기 때에는 그 본성과 놀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 자리를 찾았다면 다른 것은 다 집어치우고 그 자리만 꾸준히 간(看/보다)하면서 챙기십시오.
부처님 말씀처럼 그 자리를 완전한 알아차림으로 확립해 보십시오.
그러면 앞으로 그놈이 다 알아서 할 것입니다.
나중에는 방금 경허 선사 말씀처럼 의식만 깨어있어도 그 자리에 현존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그 자리를 볼 줄 아는 사람들 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기도 하고요.
그냥 의식만 깨어서 현재 보고 있는 그 경계에서 그것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밖에 것으로 끌려가지 마시고요.(※)
혹자들은 이것을 볼 수 없는 것이네 어쩌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이 자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왜 옛 선인들이 볼 수 없는 것을 견성(見性)이라 표현했겠습니까?)
(참고 : 또 다른 표현들..)
"의식이 깨어서 보아라?"
"의식을 안으로 돌려라?"
"지금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
"지금 보고 있는 안과 밖의 경계?"
"현재 이 순간?"
등 외에도 많음^^
그리고
★
["어떤것이 부처 입니까?"
"너가 부처다,"
하니 이와 같이 명백하게 지도함에도 번거로움이 없으니 이 모두 범부를 고쳐서 성현이 되게 하는 지름길이 되는 도리이다.
어떠한 사람들인들 분이 없으리오.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귀천과 남녀노소가 모두 성불할 수 있는 분이 있도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본성)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중생의 마음에서 부처의 마음으로 되돌리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뜻입니다.
아주 찰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금 경허 선사 말씀처럼 안으로 돌이켜 보기만 하면 바로 그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 자리인데 일반 우리들은 의식이 밖으로만 향해 있기 때문에 중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우리는 지금도 의식이 밖으로만 향해 있지 않던가요?
여러분들도 자주자주 의식을 밖이 아닌 안으로도 돌려보십시오.
지금 보고 있는 바로 그 자리를 말이지요.
바로 그 자리가 본성(부처)의 자리랍니다.
경허선사 말씀처럼 우리들 자신이 범부라는 생각을 고쳐먹고 우리들 자신이 그 자리가 부처라는 것을 먼저 믿어야 성현이 되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부처다"
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야 빨리 성현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래야 우리 모두 남녀노소 누구나 성불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
[슬프다!
머리 깎고 먹물옷을 입음은 마땅히 무엇을 하려 함인가?
눈이 빛에 끄달리면 아귀의 몸을 받고 귀가 소리를 좇으면 아비지옥에 들어가며 빛과 소리에 취해 떨어지면 짐독을 넣은 술에 침몰되어 망상의 함정속에 빠져 혼미하여 깨어나지 못하고 오늘도 이러하고 내일도 또 이러하다가 섣날 그믐날이 닥치면 머리와 이마가 터지는 듯하고 간장이 잘라지는 듯 손과 발을 잡아빼는 듯할 때에 그 슬프고 두려움을 끓는 물에 떨어진 게와 같으며 그 아픔을 참는 것도 마치 거북의 가죽을 산채로 벗기는 것과 같나니 정신은 혼미하여 내가 천상으로 가는지 지옥으로 가는지 상상하여 헤아릴 수가 없으니 슬프고 애석하다.]
(경허 선사가 오늘은 그냥 넘어가나 싶었는데요?
역시나 오늘도 출가자들에게 쓴소리를 하고 계시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출가자들이 얼마나 못난 짓들을 많이 했으면 경허 선사께서 끝까지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시나 싶을 정도인데요?
지금 이 말씀은 먹물 옷을 입은 모든 출가자들은 "마땅히 무엇을 하려고 출가를 했느냐?" 이겁니다.
출가를 한 이유가 수행을 하려고 출가를 했느냐? 아니면 천도재나 제사나 명패 봉안과 같은 무당 짓들을 하려고 출가를 했느냐? 이겁니다.
이러한 곳에 눈이 끌려가면 아귀의 몸을 받게되고, 귀가 소리를 좇으면 아비지옥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또한 빛과 소리에 취해 떨어지면 짐독(맹독)을 넣은 술에 침몰되어 망상의 함정 속에 빠져 혼미해 져서 깨어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계속해서 지금 최고 어른들처럼 그런 짓들을 하게되면 오늘도 이러하고 내일도 또 이러하다가 섣날 그믐날이 닥치면 머리와 이마가 터지듯 해서..
간장이 잘라지는 듯 손과 발을 잡아빼는 듯할 때에 그 슬프고 두려움을 끓는 물에 떨어진 게와 같게 된다는 뜻입니다. (끓는 물 즉 지옥과 같은 마음으로 떨어진다는 뜻)
그 아픔(끓는 물)을 참는 것도 마치 거북의 가죽을 산 채로 벗기는 것과 같나니 정신은 혼미하여 내가 천상으로 가는지 지옥으로 가는지 상상조차 헤아릴 수가 없으니 슬프고 또 애석하다는 뜻입니다.
출가자들이 지금 어른 들처럼 자꾸 그런 짓들을 하면 말이지요.
한마디로 말해 천도재나 제사나 명패 봉안 같은 곳에 끌려다녔다가는 마음이 지옥 불에 떨어져서 한심하고 또 한심한 신세로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실제로도 그러하고요.
다른 말들은 다 집어치우더라도 무당이나 되려고 출가를 한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
[돌이켜 생각하건데 예전 성현들은 임종할 적에 앉아서 벗어버리고 서서 가되 열린 문을 나가듯이 쉽게 하였다.
계선사는 주장자를 짚고 천화하고 불인장로는 혼연히 한번 껄껄 웃고 가고 혹은 젓가락질 하다가 멈추고는 가고 발을 펴고 입적하며 거꾸로 서서 입적하니 몇 자 몸의 입적이지만 이 모두 자성을 반조하여 참구해서 정혜를 온전히 익혀 극치에 이름이로다.]
(참으로 멋진 옛날식 표현이 나왔는데요.^^
지금 이 말씀은 옛 성인들께서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모두들 자성을 반조하면서 죽었다는 뜻입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돌이켜 보는 것을 놓치지 않고 죽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이렇게 본성 자리를 반조를 하면서 죽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는 수행자 중 하나인데요.(진실)
그리고 제 경우는 죽을 때를 대비해서 예행연습까지 해두고 있는 경우랍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제 경우는 기왕 하는 김에 건강검진을 할 때에 마취를 하고 위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동시에 같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얼마 전에도 했었고요.
이때 마취를 할 때에 본성 자리를 보면서 잠에 드는 연습을 꼭 하는 편이랍니다.
죽을 때에도 이렇게 하면서 죽으려고요. 🪷👍🏻(진실)
★
[슬프다 옛 사람이라고 어찌 지금 사람과 다르겠는가.
동산화상이 이르기를 "가사 아래서 사람 몸을 잃음이 제일 괴로움이라." 하였으니 가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에 슬프다 한것이 네 번이라 한됨이 바다와 같음을 누가 알겠는가.
승화상인에게 써 주노라.
경허 서]
(그렇습니다.
옛사람하고 지금 사람하고 다를 바가 뭐가 있겠어요?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들이지요.
동산 화상이 이르기를 "가사 아래서 사람 몸을 잃음이 제일 괴로움이라."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가사 아래 즉 깨닫지 못하고 죽으면 제일 슬프고 괴롭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죽음이 즐거운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특히 가사 옷을 입은 출가자가 수행을 게을리해서 깨닫지도 못해 죽음을 앞두고 두러움과 고통 속에서 죽는다면 이보다 더 슬프고 가련한 것이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깨닫게 되면 정 반대랍니다.
왜냐하면 생과 사는 본래 하나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경허선사 말씀은 가사를 입은 출가자가 깨닫지를 못해 이런 괴로움들을 어떻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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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꼭 성불하고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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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경허)>
제목 : 경허와 그 제자들|대선사 경허와 제자 수월, 혜월, 만공, 한암 스님의 이야기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MSpqtxTqRR4?si=X-1PHB6LR_AdiX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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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_()_
고맙습니다.🪷🙏🏻
늘 부처님의 마음이 법우님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기를 기원들입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고맙습니다.🪷🙏🏻
늘 부처님의 마음이 법우님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기를 기원들입니다.🪷🙏🏻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_()_
고맙습니다. 스님..😃🪷🙏🏻
늘 부처님의 마음이 스님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기를 기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