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누구누군가를 빼고는 모든 아이들에게 공부는 힘든 과제가 아닐까. 아무리 힘들어도 안하면 안되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더이상 즐거운 일상이 아니라 어쩌면 지옥일수도 있다. 지금 초등학교에서는 공부못하는 아이들을 대놓고 구박하거나 하지는 않게되었지만, 공부못하는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이 행복할수 없는것도 당연하다. 초등학교야 그럭저럭 지낼수 있었지만 중고등학교 장장 6년을 지옥이 되게하지 않으려면 어느정도 따라갈수는 있어야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공부가 다는 아니라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던가 하는 말은 말 장난일뿐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래도 공부잘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게 현실이다. 말로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해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앞이 깜깜한 아이에게 재촉만 한다고해서 될일이 아니다. 손잡아주어서 일일이 함께 집어 나아가야 한다. 손잡아서 끌어주고 밀어주는 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가 필요한것 아닌가. 선생이 왜 있겠는가. 방임이 무슨 최상의 선문답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듣기는 했지만 그건 괴변이다. 아무나 따라해서는 안되는 큰일날 괴변이다. 방임이라니. 이건 아동학대다. 아이는, 자식은 반듯이 올바른 휸육이 따르지 않으면 안되고, 부모는 적절한 책임을 해야한다. 물론 나같은 사람이 할얘기는 아닐수 있다. 나 야말로 입에 풀칠하는 일이 최 우선이었으니까 아이들 공부를 살필 여유도 능력도 없었다. 아니, 아들도 마찬가지 일것같다. 아이들에게 맛있는거 먹이고 좋은걸 입히고, 것멋으로 싸매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보인다. 기껏 문제지를 사다 안기는게 다였다. 그래놓고는 공부에 성의가 없는 아이들을 놓고 한숨을 쉬고있다. 아들의 한숨소리에 나는 또 가슴이 무너저 내리는 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애들 머리는 또 어찌그리 긴지, 눈을 찌를 기세다. 안경까지 끼고있는 아이가 머리카락 때문에 눈을 치뜨는 모습은 ,,, 그만 두자. 내가 보물 1호라고 이름붙인 내 사랑하는 아이를 험담하는게 옳지는 않아서다. 마음이 무겁다. 내가 수학을 영어를 가르킬수는 없다. 나는 그저 밥을 해주는 소임을 다할 뿐이다. 나는, 나름 귀칙적이거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아이들의 모범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정말 내 생각을 알까는 의문이다. 확신 전혀 없다. 내가 아들집에 육아와 생활 도우미로 있게된게 10수년이다. 며늘은 정말 1도 감사가 없을까? 물론 생활비를 받고 있다. 내 일상을 모두 쏟고 있었으니까 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듯이 며늘도 그런것일까. 몸이 아프다거나 볼일이 있다고 거르는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어린이 집으로, 학교로, 때론 병원으로 급하게 달려갔던 것도 언제나 나였다. 그게 당연한 일이지 감사할일은 아니란 것이라면 정말 할말이 없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공부까지 잘 한다면 내 어깨가 으쓱했겠고, 교만이 하늘을 찔렀을까. 하나님, 내 교만이 뭐 대수라고 아이들을 힘들게 하려하십니까. 이땅의 인생들은 공부를 잘해야 즐겁고 행복할 기회가 많음을 알고 계시면서요. 우수한 성적으로 여유롭게 살아가게 하여주시면 좋겠습니다. 평탄한 길 되게 하여주십시요. 용기내어 끝까지, 넉넉하게 살기를 원합닌다. 지지궁상으로 밑바닥을 헤매는것은 저로 족합니다. 그리고 지금 몇대가 냉대를 받았으니 이제는 빛을 발할때도 되지않았나요? 양할머니, 어머니에 이어서 저까지 장장 3대입니다. 숨을 쉬고 살았다는게 은혜였어요. 이제는 당당하게 힘을내서 빛을 발하게 해주십시요. 공로없습니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은혜에 의지하여 부탁드립니다. 들어주십시요.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주님, 살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아멘 아멘. 무거운 마음으로 힘든 마음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