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세마대의 번개팅 -1
최의상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수원시외버스 대합실에
서울에서, 탄천에서, 상주에서, 수원에서 달려온 문인들의
이름은 홍주섭시인, 조선형시인, 김연숙시인, 최의상시인입니다.
번개처럼 모인다 하여 [번개팅]이라 함 처럼
불시에 원근불문하고 4월25일 오후 3시 정각에 만났습니다.
반가움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저 그냥 반가웠습니다.
독일에서 고향이 그리워 조국으로 날아 와 문경아래 상주에서 버스를 타고 온
김연숙 시인을 만나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비오는 수원에서 오산의 독산산성을 향하여 달렸습니다.
빗물이 흐르는 차창 너머로 푸른 초여름의 산야가 비에 젖는 사이로 질주하여
목적지 독산산성 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禿山城洗馬臺山門 一柱門을 지나 45도 이상의 가파른 산속 구불구불한 길로 1km이상
오르면 주차장이 있어 차를 주차하고 60도 이상 가파른 길로 500m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하자
김연숙 시인은 다리도 아프고 몸도 아픈 상태라 걸을 수 없다하여 홍주섭시인의 차로 백제 고찰 보적사
주차장에 올랐습니다. 걸어서 정상의 세마대에 오르니 사방은 안개구름으로 가득하여 수원과 동탄과
오산의 고층빌딩 숲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구름 속에 있으니 신선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오산의 독산산성은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산상에 축성된 테뫼식 산성입니다.
일반적으로 독산성이라 불린다. 사적 제140호인 이 산성은 축조연대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당초 백제가 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백제가 축성하고 사용했다면 성내에서 유물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 유물을 발견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후 통일신라시대와 고려 때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도 추측일 뿐이다.
독산산성의 성돌 모양이나 축성기술 등을 보면 서울의 호암산성이나 아차산성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때 백제 또는
신라 때 축성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근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성내에서 유물을 찾는데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 성의 규모는 다른 지역의 산성규모에 비하여 보통크기이다(산성비교표 : 따로 붙임). 성곽의
길이는 1,100M이며, 암문을 포함하여 5개의 문을 가지고 있다. 성 안에 세마대(洗馬臺)와 보적사(寶積寺)가 있다.
세밀하게 조사한 것은 아니나 성이 협축식으로 축성되어 그 모습을 오래 유지하고 있는 듯싶다.
정상에는 세마대(洗馬臺)가 있습니다. 이 세마대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가등청정이 불리한 위치에서 고전을 하고 있을 때 잠시 후퇴하며
"저 산성의 지세를 보니 참으로 치기 어렵게 되어 있구나. 그러나 사방이 바위 뿐이니 저 산성에는 분명 물이 없을 것이다.
군사를 뒤로물리고 조선 군사들의 물과 양식이 떨어질 때를 기다리자. 양식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니,
며칠만 포위하고 있으면 저절로 무너질 것이다." 군사를 뒤로 물리고 근방의 지세를 자세히 살핀 가등청정이 이렇게 말했다.
가등청정의 관찰은 적중하였다. 하루종일 싸운 조선군사들은 목이 말랐다. 그러나 사방이 바위뿐인 산성엔 군사들이 목을
축일 충분한 물이 없었다. 군사들이 물이 없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권율 장군은
"염려할 것 없다. 나에게 계책이 있으니 왜적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말과 쌀을 대령시켜라."고 하였다.
부하 장수는 대장의 명령에 어리둥절하였지만 명령에 따라 말과 쌀을 가장 잘 보이는 산성 꼭대기에 옮겨다 놓았다.
"말을 그곳에 매어 놓고 말등에 쌀을 끼얹어라. 멀리서 보면 마치 말에게 목욕을 시키는 것 같을 것이다. 왜적들에게 물이
그만큼 충분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권율 장군의 말을 듣고 부하 장수들은 비로서 그 계책을 깨달을 수 있었다. 군사들은 신이 나서 말등에 쌀을 퍼서 끼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솔을 가지고 말등을 긁어 주었다. 한편 군사를 멀리 후퇴시키고 성을 포위하여 조선군의 물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던
가등청정도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말을 목욕시킬 정도로 물이 많다면 저 바위 "꼭대기 어딘가에 샘이 있는 모양이다.
샘이 있다면 아무리 포위하고 있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돌아가자. 여기서 오래 지체하고 있다가는 한양이 위태할지도
모른다."
결국 가등청정은 군사들에게 퇴각령을 내렸다. 왜적들이 물러간 것을 확인한 권율장군도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고 판단, 군사를
거느리고 산성을 나왔다. 후일 다른 왜장이 독산성에 들어가서 샘터를 찾아 보았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샘터가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왜장은 근처에 사는 백성을 잡아다가 물었다.
"이곳에는 샘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말을 끌어다 놓고 쌀로 목욕을 시키는 것처럼 했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왜장은 가등청정이 권율 장군의 지략에 넘어간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곳은 뒷날 권율 장군이 말을 목욕시켰다고 하여 세마대(洗馬臺)라고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다음 번개팅을 기약하고 부슬비 내리는 독산산성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