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
오늘도 분주하게 열심히들 뭔가 하는것 같은데
합동으로 망신살 뻗힐 일들을 꾸미는것 같다
지도자란 분들이 머리가 텅텅 비었으니
졸지에 폭망하는것 당연하지..
오합지졸烏合之卒 , 乌合之卒 , wū hé zhī zú 까마귀 오 · 모을 합 · 갈 지 · 군사 졸
뜻
까마귀를 모아 놓은(것 같은) 병사. 까마귀 떼와 같이 조직도 안 되고 훈련도 없이 모인 무리라는 뜻으로, 어중이떠중이를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한(漢)나라 말년, 왕망(王莽)이 한의 황위를 찬탈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신(新)을 세운 후, 과도한 개혁 정책을 펼쳤다가 실패해 사회가 혼란에 빠져 들자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한 왕조의 핏줄인 유연(劉縯)과 유수(劉秀) 형제들도 한 왕조의 부흥을 내걸고 군사를 일으켰다.
이들은 각지에서 왕망의 군대와 도적 떼들을 격파하고, 경제(景帝)의 자손인 유현(劉玄, 경시제(更始帝))을 옹립함으로써 한 왕실을 재건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전히 군웅들과 도적 떼들이 웅거하였으며, 각 지방에서는 장군들이 군사를 일으켜 지방정권을 장악하고 군수나 현령 등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변숭(樊崇)이 이끄는 적미군(赤眉軍, 아군을 식별하기 위해 눈썹에 붉은 물감을 칠했기 때문에 ‘붉은 눈썹을 가진 군대’라는 뜻의 적미군이라 칭했다)과, 하북에서 요동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왕랑(王郞)의 세력이 가장 컸다. 왕랑은 원래 일개 복술가에 불과했지만 자신의 인망을 높이기 위해 전한 시대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輿)를 칭했다. 백성들은 그 말을 믿고 왕랑을 따랐으며, 그를 천자로 추대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기주(冀州, 하북의 중남부, 산동의 서쪽, 하남의 북쪽 일대)와 유주(幽州, 북경, 하북 북부, 요령 일대) 일대는 모두 왕랑에게 항복한 상태였다.
당시 하북성 상곡(上谷)의 태수였던 경황(耿況)은 왕망에게 벼슬자리를 받은 터여서 마음이 몹시 불안한 상태였다. 그런데 때마침 유수가 경시제의 명을 받들어 왕랑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21세의 아들 경엄(耿弇)을 유수의 휘하로 보냈다. 경엄이 유수를 찾아가는 도중, 왕랑이 한나라 성제의 아들 유자여를 사칭하고 한단(邯鄲)에서 스스로 천자라 칭하며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엄의 부하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왕랑에게 귀순하자고 공모했다.
「그러자 경엄이 칼자루를 굳게 잡고 엄숙하게 말했다. “자여(子輿, 왕랑)는 도둑일 뿐이고 병졸들은 모두 항복한 포로들일 뿐이다. 내가 장안(長安)에 도착하여 나라에서 조직한 어양과 상곡의 군대를 이끌고 태원, 대군에서 수십 일만 왔다 갔다 하면서 경기병으로 기습하여 까마귀를 모아 놓은 것 같은 무리들을 깔아 버리면 마치 마르고 썩은 것들이 부러지듯이 될 것이다. 너희가 상황을 알지 못하고 그에게 간다면 머지않아 멸족의 화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손창과 위포 등은 왕랑에게 가 버리고 말았다. 경엄은 이들을 붙잡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유수에게 달려갔으며, 유수의 휘하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후한(後漢)의 개국 공신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후한서(後漢書) 〈경엄전(耿弇傳)〉》에 나오는데, 까마귀를 모아 놓은 것 같은 무리들이란 말에서 ‘오합지졸’이 유래했다. ‘오합지중(烏合之衆)’이라고도 한다.
용례
초등학교의 농구팀을 맡게 된 박 코치는 저런 ‘오합지졸’을 거느리고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글: 김성일(金聖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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