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풍전등화 앞에서 시를 쓴 적 없다. 사즉생의 눈으로 세상을 본 적 없다. 변방의 병사는 시를 쓰는데 시는 왜 전장으로 나서지 못하는가. 빙충맞은 내 시의 쭉정이들이 하릴없이 세상을 떠돌게 될 것이다.
백련재에서 쭉정이 원고들을 읽고 또 읽는다. 슬프다.
2026년 봄
박명숙
시각적 심상
립스틱의 새 촉이 마른 입술에 닿는다
날카로운 빛을 받은 위험한 입술 두 장
거울 속 낯선 얼굴이 사랑에 닿질 않는다
대숲에서
여기에서 저기까지, 마디에서 마디까지
죽을 힘을 다해서 대나무가 달린다
바통을 으스러지게 손에 쥐고 달린다
한 마디 넘기고 또 한 마디 받으며
허공의 빈 트랙을 숨가쁘게 이어 달리며
바통은 손아귀마다 철통같이 달아오른다
트랙이 몸을 엮어 숲으로 휘어질 때까지
몰아치는 바람 속을 뼈대로만 내달린다
마침내 창공을 가르며 바통을 던질 때까지
빈집
언제나 비어 있는 내 몸을 빌려 드릴게요
튼튼히 열려 있는 몸채를 노크하세요
당신의 살과 피로 지은 작은 집을 잊지 마세요
죽음이 질긴 삶을 들라거릴 때마다
죽음에 안겨 살기로 수시로 다짐하면서
떠도는 당신 그림자 빈 몸 가득 기다릴게요
바늘의 필적
내 말을 밟지 말아요 부러뜨리지 말아요
침묵에도 바늘이 필요한 시간이니
내 입은 내가 꿰맬게요 슬픔도 맡겨주세요
뜯어진 슬픔들을 궁지로 몰지 않을 게요
마음도 뚫리지 않도록 솔기를 이어가며
말 없는 말의 필적을 땀땀이 돌려드릴게요
박명숙 선생님!
바늘의 필적이 세상 밖으로 나옴을
축하, 또 축하합니다.
카페 게시글
회원신간
박명숙 시조집《바늘의 필적》2026.05.22.고요아침
김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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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
26.07.08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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