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말들이
저마다의
생을
살고
돌아오고 있다
그 말들을
받아적는다
2026년 6월
김제숙
나물을 무치며
어김없이 돌아오는 식욕을 세워두고
텃밭에 자라고 있는 시간을 훑어다가
날것의 숨을 죽여서 저녁 찬을 만든다
잎사귀로 위장한 모호한 욕망이나
웃자랴 가지 끝의 잡념을 떼어내고
한 자밯 생의 자락을 오늘도 데쳐낸다
한 술의 허기를 묵묵히 다독이는
하루치 노동으로 또 하루를 덧대며
온전한 직립을 향해 무릎을 일으킨다
그믐에서 보름 사이
순식간에 딸깍, 스위치가 꺼졌다
구백 톤 파편 속에 일상이 묻혀버렸다*
막장이 막장이 되어버린 밥을 캐던 일터다
두 눈을 감고도 훤히 알던 길인데
더 깊은 어둠으로 어둠을 덮어야 할지
한 모금 단맛 커피로 두려움을 속인다
생의 빛나는 함의에 내 몫은 없는가
죽음이 차라리 풀기 쉬운 방정식일까
매몰된 생존의 거처를 묻고 또 묻는다
그믐이 지나면 어김없이 보름이 온다
위대한 우주의 순환에 온몸을 맡기자
저만치 빛이 보인다, 스위치가 켜진다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 매몰 사고(2022.10.26)
손을 얹는 일
당신의 손 위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홀로 오래 외로웠던 마음이 건너간다
비로소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묻는다
물속에 뿌리 두고 자라는 맹그로브
가끔씩 스며드는 바람이 길을 낼 때
물 위의 가지와 잎들은 뿌리의 안부 살핀다
안부를 묻는 일이 왜 그렇게 힘들었나
포개어 잡은 손이 가면을 벗긴다
오늘 밤, 꿈도 없는 잠에 빠질 것 같은 예감
예문에 대한 예의
의도하진 않았지만 길을 헤매곤 하는데요
사람 숲에 갇혀서 허둥대곤 하는데요
난해한 말의 바다에서 덤벙대곤 하는데요
한 생을 산다는 건 하루를 사는 거죠
청춘은 성급한 걸음 중년의 맹렬한 걸음
잠시만 멈춰주세요 호흡을 다독여요
오늘은 내일의 전조, 친절한 예문이죠
건성 대충 말아요 다정하게 대해줘요
예문에 정성을 쏟아요 본문이 잘 읽혀요
김제숙 선생님!
본문이 잘 읽히도록 예문에 정성을 쏟습니다.
예문에 대한 예의 출간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