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나물을 한상 가득채운 카톡을 받고서도 아무련 감동도 없었다. 어쩌면 잊을게 너무 많았던 세월속에 묻혀진 것중에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보름달은 떴으려나,,, 맑은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종일 밖엘 나가보지 않았으니까. 나는,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는 일마저 없다면 몇일이고 집콕이 일상이 되었으리라. 은둔생활이 별거일가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아마도 먹거리를 구하려는 일 아니면 집안에서의 일상이 불편하거나 하진 않는다. 잠을 자고싶으면 자고, 배곺으면 먹고, 이런것도 사람사는 거라고 할수 있다면 말이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상이다.. 이런 저런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이야말로 그냥 인생 아닐까 싶다. 더 나은 인생과 더 못한 인생이 따로 있을까만 헛되고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인생의 모습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헛된줄 알면서도 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일장춘몽이란 말이 있는데도, 끊임없이 헛되이 바라보는 것도 어리섞어서겠지만,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불나방을 보면서, 그 헛된 몸짓에 전율하면서도, 왜 온전히 그만두지 못하는 것일까. 왜 자꾸만 눈이 돌아가고 힐끔거리는 것일까. 인생들이 다 그런것일까. 소설속에도, 판타지 영상속에서도, 탐욕은 끝이없다. 내것이 아닌것을 욕심내는 탐욕과 욕망으로 끝내는 멸망을 부르고 파멸에 이르는 인생들 얘기가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지금 나는 어떤가. 참으로 건강하다고 말할수 있는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부려운 순간이 있었다. 또 누가 부려웠더라? 이정도면 내가 얼마나 밑바닥까지 와있는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않을까 싶다. 충분하다고, 이만하면 됐다고, 이런 고백들이 거짓이었을까. 두발로 걷고, 스스로 숨쉬고, 내가 나인것을 알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음을 감사한다는 말이 정말이지 입에발린 거짓이엇단 말인가. 깜량이 안되었다. 두달란트, 다섯달란트 받을 깜량이 아님을 나 자신이 더 잘알고 있다. 그리고, 이 게으름에서 벗어날 아무련 노력도 없었다. 내안에 나를 가두고 있는게 누구가 아니라 스스로 였다. 아니, 모르겠다. 세상이 무섭고 두려워서 스스로를 가둘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는 울타리가 있었다. 할아버지 어머니는 나의 든든한 울타리였다. 결혼이란 이름으로 그 울타리에서 벗어난 순간, 나는 허허벌판에 홀로 서있는, 느낌이었다. 아직 철없고 어린데, 의지할곳이라고는 없는 버림받는 느낌이라니,,, 울수도 없었다. 그냥 이를 앙당물고, 눈을 치뜨고, 마음을 굳게 닫아걸고, 그리고 견디었다. 견디다보면, 누군가나를 구원해주리라 믿었을까. 골목에 웅크리고 앉아, 서러운 가슴을 견디며 누군가 손잡아 주기를 얼마나 바랐지만 누구도 손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남편이 있었지만 남편은 내 남편은 아니었다. 나는, 한번도 남편있는 여자처럼은 아니었다. 남편있는 여자,,, 보호받고, 사랑받고, 존중받고,,, 이런게 남편있는 여자의 모습이라면 말이다. 그렇다. 나는 이제 영영 잊혀질 순간에 와있다. 언제고 떠날 각오도 되어있다. 그런데 왜 또 기억되길 바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