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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경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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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46) ]
20250203
마흔여섯 번째 이야기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
저 같은 농땡이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을 자주자주 보세요.]
(※) 부처님 방법
[그리고 내 마음에서 뭔가 일어나면 반드시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반응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조견(照見) 하세요.]
[그리고 내 마음의 것들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 수행이란 내 마음을 보는 거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
(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
《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제목 : 鏡虛和尙이 漢岩스님에게 준 餞別辭
余 性好和光同塵 掘其泥而 又喜乎曳其尾者也 只自跛跛挈挈 送過了四十四介光陰 偶於海印精舍 逢着遠開士 性行質直 學問高明與之同寒際 其相得世 日夕治行相送 其煙雲朝暮 山海遠近者 盡不無攪動近送之懷 況浮生易老 勝緣難再則 其怊悵話別之心 當復如何哉 古人云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吁 微遠開士 吾孰與爲知 所以構着其一絕荒辭 以爲日後 不忘之資也
捲將窮髮垂天翼
謾向搶楡且幾時
分離尙矣非難事
所慮浮生杏後期
ㅡ♡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경허화상이 한암스님에게 준 전별송
나는 천성이 인간세상에 섞여 살기를 좋아하고 겸하여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스스로 절룩거리며 44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우연히 해인 정사에서 원개사(遠開士)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성행(性行)은 순직하고 학문이 고명하였다.
함께 추운 겨울을 서로 세상 만난듯 지냈는데 오늘 서로 이별을 하게 되니 아침저녁의 연기 구름과 멀고 가까운 산과 바다가 실로 보내는 회포를 뒤흔들지 않는 것이 없다.
하물며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을 다시 만나기 어려운즉 이별의 쓸쓸한 마음이야 더 어떻다고 말할 수 있으랴.
옛 사람이 말하기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진실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하지 않았던가,
슬프다 은밀스런 원개사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知音)이 되랴!
그래서 시 한 수 지어서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하노라.
북해에 높이 뜬 붕새같은 포부 변변치 않은 데서 몇 해나 묻혔던가 이별이란 예사라서 어려울게 없지만 뜬 세상 흩어지면 또 언제 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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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이 경허에게 답장)
霜菊雪梅綫過了
如何承侍不多時
萬古光明心月在
更何浮世謾留期
서리국화 설중매는 겨우 졌는데
어찌하여 오랫동안 모실 수가 없을까요
만고에 빛나는 마음 달이 있는데
뜬 세상 뒷날 기약 부질없습니다
(주석)
한암 스님은 이와 같은 경허화상의 전별사(餞別辭)를 받아 보고 다음과 같은 시한 수로 답을 하고 이별을 아쉬워했을 뿐 경허 화상을 좋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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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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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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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스승인 경허선사와 제자인 한암 스님과 주고받았던 편지 내용인데요.
그런데 오늘 내용은 저로서는 참으로 해석하기가 민망한 평소와는 달리 전혀 경허선사답지 않은 편지 내용이 나와서 저는 적잖이 당황을 했었는데요?
그런데 어제 일요일 저와 같이 하고 있는 도반 분 이야기로는 불교계에서는 이미 오늘 내용을 많이들 알고 있다 하더라고요?
저는 불교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 이번에 처음 알았고요?
아무튼 오늘 내용은 경허선사가 견성을 하고 파계를 한 후 절을 떠나 함경도로 잠적을 하고 그동안 수행을 전혀 안 했는지 평소와는 전혀 다른 경허선사답지 않은 편지 내용인데요.
아니면 술을 워낙 좋아하셨던 분이라 함경도로 잠적을 한 후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감상에 젖어서 이런 편지를 썼는지도 모를 일이고요?
왜냐하면 오늘 내용은 그동안 저희가 봐왔던 경허선사의 모습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글을 쓰면서 많이 망설였답니다.
그리고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썼다가 다시 지우고 썼다가 다시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글귀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그래도 한국 불교 근대사에서 수행자들에게는 스타 중에 대 스타가 경허 선사인데..
괜히 이런 분에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그렇잖아도 불교계에서 밉상을 받고 있는 저로서는 경허선사까지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건방지게 평을 했다가는 댓글로 쌍욕들이 올라올 것이 뻔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 경허선사이기도 해서 솔직하게 글을 쓰자니 그것도 거시기하고 그렇다고 말을 돌려서 쓰거나 거짓으로 글을 쓰자니 그것도 거시기해서 참으로 이번 내용은 저로서는 해석하기가 난처한 내용이 나왔구나 했었는데요.
그래도 경허선사에게만큼은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러나 제자인 한암 스님도 경허의 이런 편지를 받아보고 매몰차게 밖으로 밀어내는 모습을 보고 저도 솔직하게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요.
이런 저의 마음을 이해하시고 이번 글을 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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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용에서 제가 느낀 마음은 아무리 경허선사처럼 확철대오를 했어도 본성 자리를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하면 다시 삼천포로 빠지고 만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저도 만사를 제쳐두고 혼자서 방을 얻어놓고 수행정진에 매진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수행자들의 삶은 항상 혼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행은 둘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자기 수행은 자기가 해야지요.
솔직히 저는 그동안 경허스님의 몇몇 일화를 보면서 "경허스님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것들을 느끼고는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세속에 아직은 미련이 남아있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포착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행자로서 특히 깨달은 사람으로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경허스님은 너무 등한시한 면이 없지 않았고요.
그리고 파계를 하고 잠적을 할 당시에도 여기서는 차마 그것까지는 말씀드리기가 민망하지만 아무튼 그런 것도 제자들에게 모범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내용을 보면서 스승과 제자로서 이보다 더 애틋한 내용이 또 있을까 싶었는데요.
[애틋하다] 란 뜻은?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탄다는 뜻이잖아요?
경허선사와 한암 스님의 마음이 이랬을 거라는 것입니다.
저도 그중에 하나이고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한데요.
"선사는 산에 있을 때 빛이 난다"
라고요?
그러나 경허스님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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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간단히 간추려 보면 이런 내용이랍니다.
경허는 지금 한암과의 이연에 있어서 작별을 고하고는 있지만 다시 인연을 이어나갔으면 하는 마음의 편지 내용이고요.
그리고 한암은 지금 스승과의 인연을 매몰차게 끊어내는 답장 내용이랍니다.
저도 만약에 이런 편지를 받았다면 100% 한암 스님처럼 했을 것이고요.
"정신 좀 차리십시오. 스승님?"
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애틋하다란 표현을 썼던 것인데요.
왜냐하면 지금 경허와 한암은 서로를 아끼고 존경을 하고는 있지만 이별을 고 할 수 박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갈 길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경허는 세상 밖으로 한암은 수행처로 말이지요.
아무튼 경허선사가 제자들에게 끝에 보인 모습들은 결코 좋은 모습들은 아니셨는데요.
이 또한 경허의 도력(道力/마음의 힘)의 일부이니 만큼 수행자들의 길이란 결코 만만하지 않은 것만큼은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내용을 보면서 한암 스님의 마음이 많이 돋보였는데요.
그동안 보아왔던 여러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한암 스님의 마음이 많이 돋보였답니다.
스승인 경허보다도 말이지요.
6,25 때 사찰 일화도 그렇고 후 공부에 해당하는 수행에만 매진한 모습도 그렇고요.
그러나 이런 면에서는 스승인 경허는 제자인 한암보다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경허스님의 공덕은 이 땅에 다시 법맥을 이은 공로나 한암과 같은 걸출한 선지식을 배출한 공로는 경허선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인데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그 길을 일러주는 사람들조차 전혀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다들 고인이 되신 분들이라 뭐라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저는 오늘 이 두 분이 주고받은 글귀를 보면서 참으로 애틋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럼 어떤 내용들이 있기에 제가 이러는지 같이 보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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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전별사(餞別辭)란?
[‘잔치를 베풀어 작별(作別)한다.’는 뜻으로, 보내는 쪽에서 예(禮)를 차려 작별(作別)함을 이르는 말]
이라는 뜻인데요.
말 그대로 애틋한 마음으로 서로 작별을 고하는 편지라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어느 날 경허가 한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인데요.
요점만 간추려보면 이렇답니다.
★
[나는 천성이 인간세상에 섞여 살기를 좋아하고 겸하여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내용은 경허선사의 솔직한 말이기도 하답니다.
왜냐하면 경허 자신의 삶이 인간 세상과 섞여서 사는 것을 워낙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내용들을 들으면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이 이런 내용들을 들으면 "이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가급적이면 세상과 섞이는 것을 극히 멀리하게 되고 제자들이나 키우는 것을 낙으로 삼게 된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물론이고 옛 어른들도 깨닫게 되면 혼자 산에 많이 계셨던 것이고요.
그러나 경허는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아니, 정 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잠적을 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러나 경허 자신이 지금 말을 했듯이 꼬랑지를 진흙 가운데에 끌고 다니기를 좋아했습니다.
그 꼬랑지가 어떤 꼬랑지인지는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것이고요?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부처님처럼 있던 꼬랑지(가족)들도 떼어내기 마련인데 경허는 오히려 정 반대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특히 깨달은 사람들은 가급적이면 세상과 너무 섞여서 살면은 절대로 안 된다 하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아직은 [연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살]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서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말은 점잖게 말하면 스스로가
"나는 인연을 못 끊고 살았다"
라는 뜻으로 경허가 한 말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일반 사람들은 왜 사람들과의 인연을 멀리하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 사람들 이야기랍니다.
이 설명까지 다하자면 또 글이 길어지기 때문에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만
인연이란 막 쌓게 되면 그런 것들이 다 과보로 이어지게 되고 과보로 이어지면 결국은 고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요.
이러한 과정을 십이연기법(十二緣起法)이라고 하기도 하고요.
아무튼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이 법과 연관이 없는 사람들과는 인연을 거의 끊고 살게 된답니다.
여기에는 가족들도 포함이 된답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친인척들은 저보고 왜 그렇게 매정하냐고 그러지만 매정한 것이 아니라 수행자들의 삶 자체가 그렇답니다.
이것은 출가를 하고 안 하고는 조금도 관계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출가라는 단어가 나오기 훨씬 이전 생부터 수행자들의 삶은 늘 이래왔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번 생에는 뒤늦게 그 길을 찾아서 가는 것뿐이고요.
여러분들도 입장만 다를 뿐이지 다 마찬가지랍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저는 제 수준에 맞게, 경허스님은 경허 수준에 맞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은 각자의 수준에 맞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 길을 가고 있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진실)
그렇다고 혼자서 수행을 한다고 인상을 팍팍 쓰면서 세상과 등을 지면서 산다는 것은 아니고요.^^
제 말은 세상과는 정당한 거리 두면서 그저 세상을 비추어보면서 티 안 나게 자기 공부나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허스님은 너무 깊이 세상 속으로 들어간 것이고요.
그러나 경허 스님도 이번 생을 기반으로 다음 생에는 분명히 다시 바른길을 잡아 나갈 것입니다.
이번 생에 경허 스님이 할 일은 이 법을 이 땅에 다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함이었고요.
문제는 그 후대 사람들이 지금처럼 다시 개판으로 만들어 놓아서 그렇지요.
이렇게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정당한 거리를 두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경허선사는 너무 지나치게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고요.
이렇게 되면 어렵게 증득한 마음이 깨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제 말이 아니라 부처님이 사리불에 하셨던 이야기이기도 하답니다.
아직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요.
그래서 제가 항상 말씀드리는 이야기이지만 깨닫고 나서의 후 공부가 깨닫기 전의 전 공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방심해도 한방에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뭐든지 끝마무리가 가장 어렵고 주의가 필요하잖아요?
이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경허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함경도로 가려면 혼자 갔어야지, 인간 세상에 섞여서 살려면 혼자서 섞여서 살았어야지 왜 자기 말대로 꼬리를 달고서 다니기를 좋아했느냐? 이 말입니다.
이것이 경허선사의 한계였다는 것이고 지금 경허는 이 이야기를 제자에게 지금 에둘러서 편지로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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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스스로 절룩거리며 44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우연히 해인 정사에서 원개사(遠開士)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성행(性行)은 순직하고 학문이 고명하였다.
함께 추운 겨울을 서로 세상 만난듯 지냈는데 오늘 서로 이별을 하게 되니 아침저녁의 연기 구름과 멀고 가까운 산과 바다가 실로 보내는 회포를 뒤흔들지 않는 것이 없다.
하물며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을 다시 만나기 어려운즉 이별의 쓸쓸한 마음이야 더 어떻다고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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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절룩거리며 44년의 세월을 보냈는데~"란 경허 자신이 44년을 별의별 일들을 다 겪으면서 지내왔다는 뜻이고
그리고 중간 내용들은 이렇게 지내왔다는 뜻이고
그런데 문제는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경허선사 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믿기지 않는 대목이었는데요?
경허선사의 이러한 글들을 보고 저는 많이 당황했었답니다?
일반 사람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이 들으면 바로 답이 나오는 얘기라 그런 것인데요.
예를 들면
"하물며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을 다시 만나기 어려운즉 이별의 쓸쓸한 마음이야 더 어떻다고 말할 수 있으랴"
라는 말을 경허선사 입으로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믿기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이런 내용들이 그냥 평범한 마음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 귀에는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경허?" 하는 이야기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허는 지금 확철대오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 입에서?
덧없는 인생이 있고 없고?
늙음이 있고 없고?
좋은 인연이 있고 없고?
다시 만남이 있고 없고?
어려움이 있고 없고?
이별의 쓸쓸한 마음이 있고 없고?
하는 말 따위를 경허 입으로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그냥 범부나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랍니다.
혹시 경허가 아마 모르긴 해도 술에 취해서 감상에 젖어서 쓴 글이라면 모를까 맨 정신으로 이런 글을 쓴 것이라면 경허는 지금 본성 자리가 완전히 깨진 상태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왜냐하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러한 잡다한 마음들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무슨?
덧이 있고 없고?
늙음이 있고 없고?
좋은 인연이 있고 없고?
다시 만남이 있고 없고?
어려움이 있고 없고?
이별의 쓸쓸한 마음이 있고 없고?
와 같은 것들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한암 스님의 답장도 스승인 경허를 밖으로 내치는 편지를 썼던 것이고요.
저부터라도 아무리 스승이라 해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경허가 한암에게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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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이 말하기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진실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하지 않았던가,
슬프다 은밀스런 원개사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知音)이 되랴!
그래서 시 한 수 지어서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하노라.
북해에 높이 뜬 붕새같은 포부 변변치 않은 데서 몇 해나 묻혔던가 이별이란 예사라서 어려울게 없지만 뜬 세상 흩어지면 또 언제 보랴]
(라는 말을 하면서 경허가 한암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내용을 보면서 경허의 많은 제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암을 많이 인정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는데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봐왔던 다른 제자들과는 내용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경허의 마음 상태는 계속해서 질퍽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확철대오를 했다는 사람 입에서..
"진실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
이 내용은 한암을 인정하고 있는 내용이라 얼마든지 확철대오를 한 사람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슬프다" 느니?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하노라." 라느니?
"북해에 높이 뜬 붕새 같은 포부 변변치 않는"이라느니?
"이별이란 예사라서 어려울 게 없지만"이라느니?
"세상 흩어지면 또 언제 보랴" 라느니?
와 같은 내용들은 확철대오를 한 사람 입에서는 나올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 아니랍니다.
그 자리에 무슨?
"슬픔" 이 있고?
"뒷날" 이 있고?
"서로 잊지 말자"
는 것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 무슨?
"붕새와 같은 포부" 가 있고?
"이별" 이 있고?
"어려움" 이 있고?
"세상 흩어지면 또 언제 보겠느냐?"
와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이 다 마음에 걸려있으니까 하는 이야기들이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 이번 글을 보면서 경허선사가 함경도로 꼬랑지를 달고서 잠적을 한 후로는 마음자리를 완전히 잃고 말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는 것인데요.)
아무튼 경허가 제자 한암에게 주주 걸걸 푸념까지 늘어놓으면서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뜻으로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하노라.]
라고 경허가 제자인 한암에게 부탁을 하면서까지 편지를 보냈지만 제자 한암의 답장 내용은 거부를 하는 답장을 보냈다는 것인데요.
스승에게 섭섭하고 안타까워서 애가 타는 마음으로 아주 애틋한 마음으로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 한암은 경허의 이런 마음 상태를 저처럼 알아차리고 있었을 것이고요.
[霜菊雪梅綫過了
如何承侍不多時
萬古光明心月在
更何浮世謾留期
서리국화 설중매는 겨우 졌는데,
어찌하여 오랫동안 모실 수가 없을까요,
만고에 빛나는 마음 달이 있는데,
뜬 세상 뒷날 기약 부질없습니다.]
라는 편지를 스승인 경허에게 답장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답장을 해석해 보면..
★
서리국화 설중매는 겨우 졌는데
(이 말은 "제가 겨우 스승님 덕분에 설중매처럼 강했던 마음이 지고 본성 자리를 깨우쳤는데"라는 뜻이랍니다. 설중매를 선문식으로 표현하면 강한 깃대가 꺾였다는 뜻이고요.)
★
어찌하여 오랫동안 모실 수가 없을까요
(그리고 이 말은 어째서 지금은 스승님을 오랫동안 모실 수가 없을까요?라는 뜻이고요. 정말로 이 대목은 스승에 대한 마음이 애절하고 애틋하지 않던가요? 혹자들은 한암이 경허를 버렸다고도 하는데요? 절대로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이쪽 세계에서는 자신을 깨우치게 한 스승을 버린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
만고에 빛나는 마음 달이 있는데,
(이 말은 "만고에 빛나는 본성 자리가 있는데.."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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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 세상 뒷날 기약 부질 없습니다.
(이 말은 현재가 중요하지 스승님과의 뒷날에 기약은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대답은 아주 정확한 대답이었고요. 그리고 저는 경허가 이 대목을 보고서 아주 흐뭇해했을 거라고 보고 있답니다.)
★
그리고 해설자 이야기가?
[한암 스님은 이와 같은 경허화상의 전별사(餞別辭)를 받아 보고 다음과 같은 시한 수로 답을 하고 이별을 아쉬워했을 뿐 경허 화상을 좇지는 않았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쉽게 말해 스승인 경허와의 인연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참고)
참고로 제 경우를 예를 들어 보려고 하는데요.
제 경우는 2016년 여름에 밑창이 빠지는 체험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불교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2년 정도는 이것이 뭔지도 모르고 지냈다고 했고요?
그리고 한 스님을 만나고 "나도 혹시 된 것 아니야?" 했었고요.
그리고 그 후로 구담 스님을 만나고 나도 이 일을 본격적을 해보자 했었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기왕 하는 김에 좀 더 넓은 곳으로 나가서 해보자 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고 지금도 다른 나라 스님들과 어울리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인데요.
이러는 와중에 2020년쯤에 험프리 내에서 장시간을 악동들 세명이 하도 거시기 하게 굴기에 얘네들은 안되겠다 싶어서 몇 번 푸닥거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있었던 일이랍니다.
이 사람들을 좀 혼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니까?
갑자기 막 마음에서 예전처럼 전투력이 솟구쳐 오르는 거예요?
저는 이때 정말이지 깜짝 노랗답니다.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4년 동안 아주 마음이 고요했던 상태에서 갑자기 마음이 불타오르기 시작하는데 그 기분이 어땠겠어요?
대략 6시간가량 그랬던 것 같은데요?
이때 저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답니다.
"혹시 이러다가 정말로 옛날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아니야?"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6시간가량을 아무리 내 마음을 안정시켜보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감당이 안 됐답니다.
그때는 수행 방법도 거의 모를 때였고 이런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기껏 해봐야 처음에 마음을 비웠던 식으로 해보았지만 이것도 무용지물이었고요.
그런데 6시간 후쯤에는 다시 마음이 사그라들면서 그 후로는 이런 일은 없었는데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아.. 내 마음이 완전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답니다.
이때부터 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다시 수행 방법들을 찾아다니기 시작을 한 것인데요.
이때부터 남방 불교 스님과도 어울리면서 수행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고요.
대념처경도 남방 불교 스님들이 소개해 줘서 그때 알았답니다.
제가 하도 "수행 방법" "수행 방법" 그러니까 남방 불교 스님들이 내준 것이 대념처경 이였으니까요.
이때부터 수행에 관계되는 것들은 모두 파고들면서 참으로 많이 배운 것들을 지금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는 수행 이야기들인데요.
저는 이때가 제 고비였다고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불교에서는 마구니의 장난이라고도 하고 기독교에서는 사탄의 시험이라고도 한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여러 번 사탄에게 시험을 당하셨거든요.
부처님은 자료를 찾아보면 더 많았고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경허선사는 이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셨던 것 같아서 서랍니다.
그럴 수 박에요?
그 당시에는 누구 하나 이러한 것들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경허 혼자만 달랑 깨닫고 보니까 누가 옆에서 이럴 때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랍니다.
오죽하면 '오도송'이 [의발을 누구에게 전해 줄까..?] 했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글을 보면서 옛 어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이런 분들의 경험담이 없었다면 아무리 깨달았어도 방향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용을 보면서 제가 느낀 점은 아무리 깨달았어도 방심을 하면 절대로 안 된다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오늘 경허 선사의 편지 내용을 보면서 충격을 받으신 분들도 없지 않으실 것인데요.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답니다.
왜냐하면 이쪽 세계에서는 아주 흔한 자연스러운 일들이니까요. (진실)
왜냐하면 이 법은 지금 한 생에만 해당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렸지만 이 법은 수십수백 억겁을 거치면서 아주 점진적으로 한 단계 한 단계씩 한발 한발씩 올라서는 그런 법이 이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경허스님도 분명히 다음 생에 어디에선 가는 다시 이 법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때에는 지금 생보다는 훨씬 더 나은 조건에서 쉽게 이 법을 다시 깨닫고서 그다음 단계를 향해서 정진해 나아갈 것이니까요.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이번 생에 경허선사는 그래도 아주 모범적인 수행자 쪽에 속한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당 훈장으로 소일을 하셨지 최소한 지금 어른들처럼 무당 짓으로 밥벌이를 하지는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요? ^^~
이런 이야기는 이 법을 모르는 분들은 잘 믿지를 않기 때문에 잘 하지 않는 이야기인데요?
그러나 경허선사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김에 제 경우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달마대사만 해도 경허선사처럼 술도 좋아하셨고 했었지만 자기 제자에게 살해를 당하는 경우도 과거 생에는 이주 많았답니다.
과거 생에 수행자들은 대부분이 산이나 들에서 혼자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호랑이나 늑대 등에게 잡아먹히는 수행자들도 아주 많았었고요.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제 경우는 아주 먼 과거 생에 수행을 하다가 욕정을 못 이기고 아녀자들을 검탈 하는 경우도 아주 많이 있었답니다.
왜냐하면 외로움을 타는 아녀자들이 산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었거든요.
그때는 도력(마음의 힘)이 약했을 때라 홀라당 넘어갈 수 박에 없었었고요.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수행자들의 삶은 항상 빡빡했기 때문에 제 경우는 과거 생에 이 법을 깨닫고서 점쟁이도 여러 번 했었던 경우랍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과거 생에는 이 법을 깨닫고서 지금으로 하면 무당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이런 곳에서 빠져나오는 대에만 또 수십 억겁을 그런 곳에서만 머물러 있었던 경우도 있었고요.
그래서 진짜 무당들도 본래는 과거 생부터 수행자로 지내오다가 잘 못 빠져서 저러고들 있다 하는 것인데요.
한번 이런 곳에 잘못 빠지게 되면 정말이지 최소한 수십 억겁은 제 옛 과거 생처럼 그냥 허송세월을 보내게 된답니다.
그러나 경허 선사는 그런 경우는 아니라는 것이고요.
그런데 누구나 다 이런 과정들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진실)
부처님도 이러한 것들을 과거 생에 다 거치셨고,
저도 물론 다 거치고 있는 중이고요.
여러분들도 물론 지금 이러한 것들을 거치고 있는 중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진실)
그리고 누구나 깨닫게 되면 이러한 사실들을 다 알게 된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깨닫게 되면 참회를 하게 되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자기가 했던 짓들을 다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깨닫게 되면 지난 일들을 참회하느라 울고불고하는 것이고요.
그러고는 두 번 다시는 그러한 길을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을 하면서 이번에는 정신 바짝 차리고 정진을 하게 되는 것이랍니다.
경허선사도 그러한 과정에 있는 것이고,
저도 그러한 과정에 있는 것이고,
달마대사도 그러한 과정에 있는 것이고,
육조 혜능도 그러한 과정에 있는 것이고,
부처님의 여러 제자들도 지금쯤 어느 곳에선가 이러한 과정에 있는 것이고요.
그것도 자벌레 저럼 아주 조금씩 조금씩 한발 한발씩 말이지요.
그래서 누구나 수십수백 억겁을 거쳐 오면서 한 단계 한 단계식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이 길이니 우리는 물론이고 경허 선사도 이렇게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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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작년 4월 말에 올려드렸던 [자벌레] 이야기인데요.
경허선사나 우리나 누구나 다 자벌레처럼 한 뼘 한 뼘씩 수십수백 억겁을 이 길을 가고 있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이런 수행자들의 내용은 화성유품(化城喩品)과 약초육품(藥草喩品)에 아주 자세하게 비유로 나와있고요.
그러니 다시 한번 [자벌레] 이야기를 상기해 보자는 뜻에서 지난 글을 참고로 올려드려보겠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지난 글)
https://m.cafe.daum.net/119sh/XASd/248?searchView=Y
(자벌레 동영상)
https://youtube.com/shorts/xS2iCLExNGg?si=uUTmCmYaZuYkeK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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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아무쪼록 우리들도 한치의 방심도 없이 열심히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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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깍두기 》 ㅡ (신설^^)
부처님이 하셨던 위파사나 한문으로 하면 조견오온(照見五蘊) 방법을 아주 초 간단하게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너무 쉬운 방법이라 여러분들도 잘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대로 따라 했더니 너무 신기하게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답니다.
저도 직접 해보고는 많이 신기해했었고요.
다른 어려운 단어들은 다 집어치우고 이렇게 해보십시오.
(1)
일단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셔야 한답니다.
화가 일어나든, 괴롭든, 두렵던, 무엇에 쫓기고 있던, 즐겁던..
무엇이든지 좋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내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질 때에 알아차리는 연습을 완벽히 해두십시오.
(이것이 안 되어있던 지 놓치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음)
(2)
그리고 두 번째로는 내 몸(오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예를 들면 심장, 가슴, 육근(근육), 신경, 감정, 감성, 생각 등의 오온들을 알아차리십시오..
(3)
그리고 사실은 내 마음이 아니라 내 몸(오온)에서 이러한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졌던 것이구나?
하는 것을 자기 관찰을 통해 완벽하게 알아차려 보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몸(오온)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무상(곧 변한다) 한 것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 직접 경험해 보십시오.
여기서 체험이란?
어? 아까는 몸(오온) 이 지랄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변해서 고요해졌네..?
어라? 몸(오온) 이 안정이 되니까 내 마음도 안정이 되었네..?
여기까지만 부처님처럼 가 보십시오.
물론 이 방법도 부처님께서는 방편이라 하셨답니다.
그리고 오직 이 길밖에는 없다고도 말씀을 하셨고요.
나머지 내용들은 그때 가서 제게 질문을 주시면 알려 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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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동영상)
경허선사 참선곡 (鏡虛禪師參禪曲) Chamsungok - KyoungHerSunsa ~종성(鐘聲) 묘봉스님 -
https://youtube.com/watch?v=C31Mafm9CMw&si=azaZT5AZHS7fXS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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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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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길요_()_
고맙습니다..스님..😃🙏🏻
날씨가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꼭 성불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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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고맙습니다..수효님..😃🙏🏻
날씨가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꼭 성불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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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성주님..😃🙏🏻
날씨가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꼭 성불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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