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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웃는 늦깎이 작가
강병철(소설가)
1.
스무 해쯤 지났을까,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된 기억일 수도 있다. 공주 터미널 ‘커피나무’ 카페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그와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겨우 몇 차례 스친 인연뿐이므로 안면 인식의 기억조차 가물가물한데 얼떨결에.
“……황선……만.”
무심히 부른 이름이 딱 맞았던 게 천만다행이다. 동시에 눈빛에서 흐르는 이슬의 폭포를 아주 잠깐 만나는 찰나.
‘함께 가고 싶다.’
그 문장으로 심장을 겨눈 표창의 직감을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년 후 내가 <충남작가회의 > 회장으로 지명되면서 그가 사무국장이 되었으니 그 순간적 예감이 딱 들어맞은 것이다.
(처음 써보는 모자가 아닌데도) 회장이라는 자리에 임하면서 막상 암담했음을 밝힌다. ‘신동엽 시인 30주년 추모 행사’를 기획해야 되는 상황이라 더 조급해졌을 수도 있다. 전국의 모든 작가들이 ‘충청도로 가유’ 하며 우르르 모여드니 장소 섭외와 인력 배치, 경비 배당에서 무대 세팅까지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나는 출석 체크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바지사장 역할에만 충실했다. 배당된 성명서 문장이나 뜯어고치고 추모 산문집(시집은 이정록 시인)을 기획하며 핸드폰 숫자판을 눌렀을 뿐이다. 원래 얼굴 바탕이 조금은 착해 보이는 편이므로 그저 순수 인품 하나로 버텨야 하는데, 이 인품이라는 게 누군가 뒤를 받쳐 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우수수 털린 나목(裸木)으로 남을지 모르는 조급증 형국에서 그에게 재빨리 몸을 의탁했던 기억이 오래도록 생생하다. 그가 현직 사업가이기 때문에 복잡한 현안을 잘 풀어갈 거라는 기대감도 조금은 있었고 또 그게 들어맞았다. 내가 쓴 성명서는 당연히 다른 사람이 읽었으며 덩치 큰 뭉텅이는 그가 집행했는데.
그는 유순한 몸이지만 통이 크고 카리스마가 강했다. 「준법정신」의 문장처럼 ‘덜덜거리는 오토바이 불빛 하나면 어디든 못 갈 데가 없다’는 식의 저돌적 돌파 스타일이었다. 일거리가 떨어져도 당황하지 않았고 불똥 떨어진 발등의 사태에서도 늘 웃으며 진한 술자리 마무리로 털어내곤 했다. 그렇게 생글생글 웃는 상남자에게 사무국장의 직함을 맡긴 채 나무늘보처럼 의지하려던 순간.
2.
그가 말했다. 대학 시절 이후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소설 쓰지 않는 인생’을 생각해본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는 고백이다. 가슴이 싸-하게 내려앉은 이유는 그가 사업가로 쟁쟁 달리는 현장임을 알고 있었고 예나 제나 ‘사업하는 소설가’ 정보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업 규모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김종광 소설가 왈 ‘<어린이 재능 개발> 사장’으로 칭해서 막연히 끄떡끄떡했을 뿐이다.
게다가 철저한 이타적 사업가였다. <신동엽 추모제>에서 충남 사무국장에게 배당된 공식 추진비를 즉석 반납하면서 다섯 명의 활동 작가를 더 수용하는 바람에 배부르게 일을 추진했던 편안한 기억도 있다. 그렇듯 자본가(?)와 러닝메이트가 되면서 주머니 두툼한 술자리처럼 편안한 안도감을 주었다. 아무튼 회장과 사무국장의 임기를 마친 지금은 그도 소설가이고 나도 소설가이다.
첫 출산물 『내가 뭐 어때서』에는 10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준법정신」,「내가 뭐 어때서」,「도둑의 조건」,「노인을 찾아서」,「김 사장」,「해 뜨는 집」,「우정의 거처」「주연 배우」,「너무나 오래된 책」,「인형 뽑기」인데 10편 모두 대개 호흡이 길지 않으며 주로 운동권 캐리어를 겪은 장년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등장인물이다. 소소한 이해타산으로 끈을 풀고 당기며 갈등을 겪긴 하지만 아주 불쾌할 정도는 아니니 그저 등받이에 기대어 편안하게 책장을 넘기면 될 듯도 하다. 먼저 「준법정신」의 후반부를 보면.
“아니, 왜 남의 집 나뭇가지들은 자르고 그러셔요?”
“예? 제가 어제 이 집을 샀어요. 그런데 왜 그러셔요?”
아뿔싸! 민호가 슬라브집을 저 측백나무 집에 팔아넘긴 것이다. 내게는 땅을 팔라는 둥, 집을 사가라는 둥 하면서도 한쪽에서는 저렇게 수작을 부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나는 불현듯 화가 치밀었다.
“아, 그 집은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살려고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준법정신」 33쪽
맹지(盲地)로 통하는 길목을 원래의땅 주인이 갑자기 가로막으면서 벌어진 이 시비(是非) 내용은 여기저기 벌어지는 실제 사태이기도 하다. 묵시적으로 통용되던 통로를 느닷없이 막으면서 법리와 관행적 인정의 간극이 충돌한 것이다. 그렇게 ‘막자’와 ‘다시 뚫자’의 다툼이 이어지다가 양쪽 집안의 차세대 핏줄들까지 원병으로 등장하여 논쟁이 더해지면서 나사 바퀴처럼 물려들어간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제3의 인물이 토지를 구매하는 엉뚱한 반전으로 결미를 맺는 쓸쓸한 소품이다. 이문구 소설의 배경이 설핏 겹치기도 하니, 맞다. 그를 따르는 숨결만 느껴져도 절반의 성공이다.
그런데 그는 사업가의 신분으로 왜 하필 소설이란 복잡한 장르를 선택했을까. 소설의 호흡이란 게 기본적으로 긴 지구력의 문장이니 시간 배당부터 걸림돌이 됨을 알고 있기에 더 아리송하다. 내가 만나는 소설가들은 대개 전업 작가가 아니면 교직에 있으면서 방학 정도를 틈을 내어 원고지에 몰입하는 경우이다.
그러니까 시는 직관과 감성의 소산이므로 전광석화 같은 스피드가 통할 수도 있다. 일상의 스크린을 ‘매의 눈’으로 포착하는 갈고리 감각이 자산이 되며 그때부터 문장작법의 손기술도 필요하다. 의인화된 사물을 만나 타자와 자아의 위치를 재빨리 바꾼 다음 합체와 해체를 반복하는 능력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소설가는 기본 체질부터 다르다. 지적 능력은 물론 물리적 힘까지 겸비해야 하니 천재성과 노가다 근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작업이다. 누가 더 질기게 자판을 두들기느냐를 집요하게 따지는 엉덩이 싸움이 막판 승부를 결정지으니 뭐 하나 놓칠 수가 없다. 또 있다. 죽어라 쓰고 또 써서 원고지 분량을 채워도 이게 독자의 손에 쥐어지느냐 마느냐의 엄청난 장벽이 남아 있다. 글도 좋아야 하고 운때도 맞아야 하며 자가 발전의 기획력도 요구된다. 시인처럼 ‘내 시가 최고야’라고 주장하며 블라인드를 재빨리 내릴 수도 없는 처지여서 더 그렇다. 소설이란 게 대개 손바닥 펴듯 객관적 견적이 빠드름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은 첫 작품 『내가 뭐 어때서』가 출간되었으니 그의 고백이 팩트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최초의 ‘사업하는 소설가’ 황선만 작가가 되었다.
3.
스무 살 이후 일기를 매일 썼다니 본디 펜과 한몸으로 합체된 운명까지는 맞다. 학생운동 시절에는 대자보도 엄청이 붙였으니 문장작법의 숙련과정도 마친 상태이다. 그러다가 4학년 때 응모한 단편 「뗏목처럼」으로 대학문학상에 당선된다. 로자 룩셈부르크로 서두를 여는 변혁운동이 줄거리인데, 심사위원 교수님 왈.
“우리가 한 젊은이를 책임지지 못할 길로 안내했네.”
쓸쓸히 볼펜이나 두들기던 그 표정대로 가난한 작가로 살아가며 평생 문장과 씨름할 뻔도 했다. 그런데 졸업 후 첫 삽을 뜬 사업 공간이 자꾸 확장되었으니 웬일일까,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랄 판이 되었으니, 운명이다. 게다가 도깨비밥풀처럼 달라붙는 소설 문장이 당최 떨어지지 않으니 어느 게 샛길인지 분간이 안 될 때도 있다. 「우정의 거처」에도 그런 갈등의 흔적이 얼핏 보이는데.
“상진이하테 전화하지 마라. 아마 진수나 인호가 나왔으면 녀석도 이 자리에 같이 있을걸. 너나 나나 설주나 뭐 특별히 별 볼 일 없잖니. 상진이도 이제 조직 속의 인간이야. 앉을 자리와 누울 자리를 볼 줄 안다고!”
정말 그럴까. 나는 헷갈렸다. 덕배가 술이 과한 것은 아닐까. 우리의 우정이 그토록 얇았단 말인가. 아니 우정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존재했던 것일까. 헝클어진 생각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우정의 거처」187쪽
등록금 투쟁, 대자보 싸움, 총장실 점거의 회상부터 소설의 문이 열린다. 통일과 해방 그리고 세계 평화까지 혼신으로 감당하려 했던 그 시대 울울 젊은이들의 사연이다. 그랬다. 민주화 투쟁의 대열에 끼어 머리띠만 동여매면 웬만한 게 용납이 되던 그런 시국이 실제로 있었다. 그래서 장년의 몸이 된 지금도 ‘민주주의와 빵과 통일과 사랑’을 떠올릴 때마다 심장박동이 두근두근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둥지 안의 식솔이 늘어나더니 어느덧 혁명가들의 몸이 쇠하는 만큼 소시민으로 변하는 것이다. 지위와 자본에 따라 축적된 등급이 다르게 평가되면서 벌어진 틈새가 점차 커진다. 힘들게 이루어진 의기투합도 사랑과 배신의 점철로 마감되기도 하니 그게 ‘약진된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그리고 옛 동지 덕배네 노래방에 갔다가 그의 아내로부터 한 방 먹는 적나라함이 이 단편의 마지막 장면이다.
계산대는 비어있었고 샌드위치 패널로 칸막이를 한 벽면에는 광고지를 붙였다 뗀 자국이 실밥 풀린 옷감처럼 드러나 있었다. 그때, 어딘가 청소를 마치고 나오는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늙은 여인이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휴, 또 헬레레하게 마셨구먼. 열 시까지는 들어와야 할 거 아냐! 제일 바쁜 시간에 나 혼자 두지 않는다고 다짐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 당신 말 믿다가 내가 생으로 늙어!”
- 「우정의 거처」, 188쪽
그는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그가 거리에 나설 때만 해도 작금의 촛불시위처럼 우아한 배경과 질서정연한 행렬이 아니라 그야말로 목을 내걸고 싸우는 가열찬 투쟁이었다. 곤봉과 최루탄의 아스팔트 오픈 게임을 치르다가 아차, 연행이라도 되면 개새끼처럼 두들겨 맞기도 했다. 70-80 선배들의 칠성판 알몸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어금니 갈아마시던 그 연장선이다. 저항도 격렬해서 돌멩이와 화염병이 방어 무기의 전면에 등장했다. 맞은 만큼 튕겨 나오는 스프링 논리가 그것이다.
그렇게 굳건하던 ‘뜨거운 함성’이 등이 굽고 이빨 틈새가 벌어지면서 옛 동지들의 신뢰에 금이 생기기도 하니, 야속한 세월 탓이다. 권력과 자본의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고 더러는 모든 끈을 놓친 채 불평쟁이 신세로 자리매김되기도 한다. 누군가 악수를 청하면 속셈부터 헤아려야 하니 나이를 먹을수록 ‘껴안을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는 것이다. 그나마 그의 문장은 운동권 이후의 사각지대를 다루었으니 조금은 다른 표현이랄까, 「해 뜨는 집」이 그 경우인데.
인사가 끝나고 의례적인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성진이 나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우리 동아리 북소리의 이야기는 과거가 됐지만 저희들끼리는 작은 실천이라도 하려고 관심을 갖고 있어요. 지난달에는 우리가 운영한 야학이 있었던 산동네에 연탄 배달을 직접 했지요. 아직도 리어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산동네 마을이 있더군요. 모두가 바빠서 비록 소수가 참여하긴 했지만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순간 인수는 호응의 눈빛을 보았다. 술기운 탓인지 가슴에서 무언가 치밀어오르는 기운이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얼굴이 붉게 물들면서 눈빛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해 뜨는 집」, 163쪽
이제는 실용적 몸으로 변신한 ‘젊은 날의 혁명가’들이 난세의 시국을 회상하는 초로의 풍경이다. 총무를 맡은 인수가 식당 수소문 중에 학창 시절 추억이 서린 ‘해 뜨는 집’으로 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얼떨결에 만들어진 술청이 무르익으면서 불쑥 등장한 달동네 연탄 배달 기획에 일단 동참을 결의한다. 그러나 강력히 주장하던 대기업 과장 기철이 형이 막상 약속한 날짜에 나오지 않았고 판사 출신 로펌 변호사 강선진의 핸드폰도 불통이 되었다. 그래도 약속을 지킨 몇 사람의 의지로 약속된 배달작업을 간신히 마치긴 했는데.
정치권에 진입한 은사 김동현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성진의 모습에 모두 어리둥절하다. 고급 식당인 진주성으로 옮긴 건 차치하고라도 연탄 배달에 동참하지 않던 사람의 공치사가 주제로 등장했으니 나머지 벗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외롭게 부르는 「사노라면」의 끝 어절 ‘내일은 해가 뜬다’의 콩나물 대가리가 쓸쓸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4.
그가 지금도 이따금 더듬어 살피는 그 오일장은 난전 펼치던 어머니의 흔적에서 비롯된다. 고구마 대야가 너무 무거워 모친 머리에 이고 갈 수 없어서 소년은 열두 살부터 시장 심부름을 책임져야 했다. 자전거 짐받이에 싣고 난전 자리를 잡아주는 것이다. 고구마 줄기와 옥수수, 깻잎 같은 엽록소가 소꿉장난처럼 펼쳐지던 그 좌판 자리가 유년의 터전이었다. 자리다툼은 기본이고 흥정이든 싸움이든 모든 과정이 소년의 몸에 기록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는 선거 때 오뎅이나 먹으며 시장 골목에 등장하는 정치인을 외면한다. 그 대신 짯짯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대파를 들고 싼 가격을 칭찬하는 위정자들의 표정도 놓치지 않고 적어놓는 습(習)의 체득이다.
그렇다. 가슴에 담는 기록이 진한 소설적 배경이 된다. 장항선 하행 어디쯤 소재한 대천사람답게 기차역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버릇도 그 연장선이다. 기차를 놓치게 되면 침착하게 인파의 표정, 옷맵시나 물건 꾸러미를 주목할 수 있으니 오히려 체감 학습이 되는 공간이다. 세상을 버거워하는 표정에 시나브로 비장미 색채를 덧씌우면 그게 소설의 뼈대를 이룬다.
그 보령은 『만다라』 김성동 선배의 고향이며 우리들의 롤 모델인 『관촌수필』 이문구 선생이 거처하셨던 공간이다. 망자가 된 두 선배 모두 동족상잔의 상흔으로 평생을 보낸 시린 배경이다. 또 있다. 생계형 작가인 후배 김종광 소설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가 거(居)하는 서해를 떠올리면 잦아들던 주기(酒氣)에서 혈관이 물씬물씬 솟으며 시나브로 소매를 당기고 싶은 느낌이 생긴다.
지금은 ‘천보당 금은방’을 접은 채 전업 작가로 변신한 『하늘에서 75센티』와 『순비기꽃 언덕에서』의 안학수, 서순희 부부가 좌장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삽화를 그린 김환영 화백이 등장하고 미륵 같은 아우 황선만 소설가가 물주를 자청하며 동참할 게 확실하니 아, 설레는 풍경이다. 충청도 아낙네 사투리 원본을 구현한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의 박경희 시인 그리고『내 안에 갱도가 있다』의 송계숙 시인의 화사한 표정들을 도마에 올리며 무르익는 술청의 표정은 얼마나 아늑할까.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흐느적거린다면 소설가가 아니다. 「내가 뭐 어때서」가 바로 그 신산의 질곡 문장인데.
아니, 아니다. 느티나무를 사진에 담고 싶다. 눈 녹은 느티나무를 사진에 담는 것이다.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겠지만, 사진가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그 느티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방금 전에 흰 눈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최고의 자태를 자랑했던 나무였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어떻고 빛나지 않으면 또 어떤가. 성호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빨리 보고 있었다.
- 「내가 뭐 어때서」, 63쪽
사진작가 하나가 눈 내리는 풍경에 흠뻑 빠지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소외 현장의 다큐 전문가 성호가 합세해서 우연한 기회에 토박이 광부 출신인 달수, 영덕 등과 협동조합 프로젝트에 응모하면서 의기투합하는 줄거리이다. 시의원인 이숙자, 김만덕 등을 만나면서 통로를 뚫은 다음 성호가 직접 나서서 서류 작성까지 힘쓴 덕분이다. 그러나 선정에 통과되는 과정에서 몇 차례의 복마전을 거치다가 결정적으로 원조 토박이들로부터 배반의 아픔을 겪게 된다.
성호는 절망을 품으면서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움직이는 길목마다 펼쳐지는 수채화 풍경을 하염없이 감싸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행간이 독자들께서 따로 주목해야 할 장면이다. 낭만과 사랑 그리고 배반의 상처까지 넉넉하게 품어주는 겨울 풍경들을.
“그래도 저 여배우가 주연 배우에요. 선인 대 악인에서 선인 역할을 맡지 못했을 뿐이지, 인기가 얼마나 높아졌는데요. 요즘 광고 여러 편 찍었어요.”
“그래? 하긴 그래! 주연 배우를 해야지. 악역이면 어때? 일단 좋은 자리에 앉으면 이름을 얻게 되지. 그게 바로 돈 버는 자리이고 말이야. 선거도 그래. 이겨야지. 방법이나 수단이 어디 따로 있겠어? 일단 그 자리를 앉고 봐야 돼.”
지란은 가슴 한켠이 뜨끔했다. 남편과 드라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낮에 있었던 6반 자모회 풍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연 배우」, 212쪽
초등학교 교실의 자모회장 추대를 자천타천 기대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해 머리 싸매는 장면이 보이니 그게 소소한 갈등이다. 주인공인 지란도 군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남편의 물밑 작업의 일환으로 좌충우돌에 섞인 것이다. 그러나 긴장이 흐르는 비하인드(behind) 역학관계 사연 역시 사소한 이득을 위함이다. ‘선거 결과가 승리냐, 패배냐’는 별론으로 치더라도 그 사연은 독자들의 묵은 경험들을 오버랩시키며 쓸쓸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정도이다.
한가지, 작가가 마지막까지 사건의 결론을 내리지 않고 출구를 슬쩍 비켜서 열어놓는다는 점도 특이하다. 흔히 소설에서 요구하는 명징한 결미란 게 대개 기승전결의 형식 구성일 뿐이지 인생과 소설 모두 적확한 결말이란 게 없는 게 정답이다. 「주연배우」에서도 “그래, 인생이 연극과 같은 거야. 다음 주에 우리 동네 군민회관에 연극 공연이 있다던데, 거기나 한번 가볼까.”하면서 두루뭉술 빠져나갈 뿐이며 또 그게 편안한 결말이 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17권의 마지막은 식민지의 8.15 해방 공간으로 막을 내리고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는 여옥의 정신질환으로 마감될 뿐 그 후 벌어지는 지난한 사연은 모두 생략된다. 다른 작가 역시 죽음이나 화해 더러는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으며 또 그게 가장 편안한 구성이다. 그런데 황선만은 또 하나의 출구를 열어놓으며 독자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타법을 구사한다. 그래서 이시백 소설가는 그의 글을 ‘달항아리를 닮았다’고 슬쩍 훈수를 놓는다. 소소한 일상을 일관된 흐름으로 올려놓는 편안한 균형감을 일컫는 말이리라.
5.
대학 졸업 후 보령신문 기자를 하면서 그가 사회의 첫발을 디딘 지역 운동은 시민운동으로 명함만 바뀐 채 아직 진행 중이다. 그때부터 술자리 전전하던 벗들은 여전히 함께 달리거나 소식을 나누는 중이다. 서순희, 안학수 부부나 사립중학교 분필쟁이 서병수 훈장, 작가 김종광 등의 글지들을 이틀이 멀다하고 만나서 술독을 비운 이력이다. 그러다가 서른 즈음에 참여연대를 만들다가 밥벌이 겸 학원강사도 잠깐 하게 되는데.
신작로 보습학원에서 사회과 강사인 복영숙을 만나 결혼을 한 게 ‘신의 한 수’이다. 사내 연애로 학원을 나오면서 과학실험 프로그램으로 업종을 바꾼 것이다. (아들딸 3남매를 낳아 21세기 애국자의 표상이 된 건 따로 논할 부분이고) 얼떨결에 과학 눈높이 강사를 했는데 어럽쇼, 순식간에 수강생이 몇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일거리가 또 일거리 뭉치를 끌고 가니 퇴근할 때까지 신문 조각 하나 살필 시간조차 없이 업무에만 쫓겼다. 10평짜리 사무실이 20평으로 늘었다가 3년 후 76평으로 늘었으니 공간 자체를 통째로 옮겨야 했다.
이번에는 기자재 납품과 쇼핑몰을 시도하였다. 대전, 세종, 광주, 제주 등에서 ‘방과후 강사’를 운영하며 컨설팅까지 시도하니 사업의 덩치가 자꾸 커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운동의 차원으로 도움도 줄 겸 한쪽 발만 슬쩍 걸쳤는데 나중에는 시민교육 강사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센터가 된 것이다. 물론 그의 소설에 그런 스토리는 아직 없다.
그동안 승용차 속에 담겨있던 열탕 같은 뜨거운 열기가 얼굴로 확 달려들었다. 미숙은 그 열기를 피하면서 조수석 다이어리와 곗돈 장부를 던져놓았다. 그런데 아차 싶었다. 엘(L)자 파일 속 서류를 모두 꺼내 보았다. 없었다. 분명히 아까 근옥에게서 이번 달치 곗돈 오만 원을 받아서 끼워두었는데 없다. 현기증이 날 것만 같은 도로 위에 풀이 죽은 노인의 얼굴과 고향 마을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 계실 아빠의 얼굴이 함께 보이는 듯했다. 오후 두 시를 넘긴 아스팔트는 최고조의 복사열을 뿜어대고 있었다.
「노인을 찾아서」112쪽
승용차 트렁크 옆에 무심히 던져둔 채 자리를 비운 사이 미숙의 박스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일용잡품 몇 개와 다이어리 그리고 곗돈 5만 원이 들어 있으니 뭐 치명적인 분실까지는 아니다. 그래도 경찰과 함께 CCTV에 찍힌 폐휴지 줍는 노인을 찾아 나서긴 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가정사가 만만찮은 노인이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결국 고물상 폐품을 뒤져 일용품과 다이어리를 찾고 안도에 젖는데, 아차, 5만 원 곗돈이 비어있음을 나중에야 발견한다. 괜찮다. 그 인과관계를 꼬치꼬치 규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연이다. 오후 두 시 아스팔트 복사열에 몸을 맡겨 땀을 푹신 뺀 다음 모두 잊으면 다음 일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다음에 나오는 「김 사장」의 사유도 그렇게 풀기를 바라며.
돈을 벌었으면 세금을 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해온 민호에게 필재의 부가세 3천이라는 말은 놀라웠다. 도대체 매출이 얼마길래 그토록 세금이 많이 나오는 것인지 가늠이 안 됐다. 그런데 필재의 음성은 더 높아졌다.
“도대체가 이 정권은 어떻게 된 것이지? 세금은 이렇게 존나게 많이 뜯어가면서도 재난지원금은 겨우 백만 원밖에 안 준다는 게 말이 되냐? 말이 돼?”
부가가치세라는 것은 간접세로 소비자가 물건 살 때 내는 동인데 사업자가 추후 모아서 내는 것이니 어쩌니 하면서 말하려던 민호는 입을 다물었다.
-「김 사장」, 138쪽
퓨전 술집 ‘그리운 바다’의 사장 김민호의 캐릭터도 그런 부류이다. 귀향 후 벌인 사업이 그럭저럭 운영되다가 코로나 정국을 만나 침체에 시달리는 영세업체이다. 그러다가 호프집 사장 필재네 가게 문 앞에 늘어선 배달 라이너 오토바이를 보며 놀란 것이다. 이상하다. 학창 시절에는 민호가 필재보다 훨씬 모범생이었는데 사회생활은 성적순이 전혀 아님이 증명되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의기소침할 정도는 아니므로 웬만한 건 접어둔 채 파이팅해야 한다. 일찍 출근한 여직원 미진 씨를 보며 ‘각자도생 안 할랍니다’를 외치며 끝을 맺으니 신산의 일상을 헤쳐가는 넉넉함이 서리는 문장이다.
6.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 지면 관계상 여기서 인용하지 못한 「도둑의 조건」,「너무나 오래된 책」,「인형 뽑기」등의 올려놓고 또 한 잔 걸판지게 벌여야 할 것 같다. 얼큰하게 달리다가 욱하게 되면 ‘사건을 더 깊게 파고 막판 뒤집기라도 들어갔어야지’ 하며 강짜를 부릴지도 모르겠다. 21세기 중반에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쓰레기가 책’이라는 소리를 들은 후유증으로 생긴 초조한 표정의 발로일 수도 있다.
때로는 더 낮고 느리게 임하자고 주문할 수도 있다. 이따금 내가 운동권 캐리어의 작가들에게 느린 템포의 걸음을 조심스럽게 당부하던 그 습(習)이다. 작가는 몸이 아니라 문자를 통하여 세상에 동참하는 것이니 그게 무기가 된다. 거리를 둔 객관적 포커스와 디테일한 눈매가 정의로운 돌멩이보다 더 질기게 오래갈 수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술잔이나 따라주며 넉넉하게 웃어줄 것이다. 항상 그랬다.
내가 고교교사를 퇴임하기 직전이니 6년 전쯤 어느 날이었을까, 서해안 소도시 대산읍 어디쯤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에도 그렇듯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아마도 주민자치위원회, 사회적 기금 활용 등에 대하여 강연하러 오가는 뒤끝에 나를 호출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심히 카페에 간 내가 공간을 꽉 채운 주민들을 보며 당황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객석의 청객들이 황선만 강사의 나머지 이삭 줍는 얘기를 듣기 위해 오그르르 따라 들어온 것이다. 후일담을 더 듣고 싶어 하는 주민들을 뒤로 한 채 그를 끄집어온 게 오래도록 미안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건 그렇고.
자, 드디어 늦깎이 작가의 첫 출산물이 나왔다. 그리고 그는 지금 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를 돌파하며 긴 호흡의 장편소설을 구상하는 중이다. 나 역시 그의 도약을 기대하지만 ‘너무 서두르지는 마시라’는 느린 행보의 권유를 조물락거리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실용 작업을 어느 정도 누리셔도 되며 그게 황선만 작가의 자양분으로 쌓이게 될 것이다. 그 이력만 견적으로 펼쳐도 물레방아 사태로 철철 넘치고 있으니 아직은 축적의 시간이 맞을 수도 있다. 물론 그의 첫 소설집 하나로 배부른 작가가 절대 아닌 저 푸른 항해로 나가는 거선의 심장이 되기를 전폭적으로 기대하면서.
강병철
소설집『비늘눈』『엄마의 장롱』『초뻬이는 죽었다』『나팔꽃』『열네 살, 종로』발간, 장편 성장소설 『닭니』『꽃 피는 부지깽이』『토메이토와 포테이토』『해루질』발간, 시집『호모중딩사피엔스』『사랑해요 바보몽땅』『다시 한판 붙자』등 발간, 산문집 『어머니의 밥상』『작가의 객석』등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