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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라고 평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사대부(士大夫)는 유학을 학문적 바탕으로 삼아, 그 경륜을 정치 현실에서 펼쳐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대부들에게 있어 자신의 수양과 학문적 기초를 닦는 과정인 ‘수기(修己)’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며, 그것이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에서 정치에 투신하여 사람들에게 베푸는 ‘치인(治人)’은 역할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학문적 수양을 닦는 과정에서 흔히 ‘사서삼경(四書三經)’으로 대표되는 유학의 경전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용(中庸)>은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로, 분량이 많지 않지만 대단히 까다로운 경전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먼저 조선시대의 사상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학문적 지표로 삼았던 ‘성리학(性理學)’에 대한 간략한 이해가 필요하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유학의 학파 가운데 특히 ‘성리학(性理學)’을 중시했는데, 이는 ‘인간 본성의 이치(性理)’를 탐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 본성의 이치를 탐구하기 위해 ‘이(理)’와 ‘기(氣)’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송나라의 주희에 의해서 정리된 학문적 체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주희를 높여서 부르는 ‘주자에 의해 정리된 학문’이라는 의미로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하며, 주희 이전의 정이와 정호 등의 학자와 병칭하여 ‘정주학(程朱學)’이라 칭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 본성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도(道)’를 탐색하는 것으로 보아 ‘도학(道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체로 연구자들의 견해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들은 모두 ‘성리학’을 달리 부르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중용>을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이라 칭하고 있지만, 실상 유가의 경전인 ‘사서삼경’ 가운데 어느 것을 들더라도 이러한 수식어가 통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사상사는 유학의 경전에 기초한 논리적 토론에 입각하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정치사와 문학사에서도 공히 통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비록 <중용>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으나, <시경>이나 <논어>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서술한다고 해도 이 책의 흐름이나 결론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7세기 후반부터 전개되었던 이른바 ‘예송논쟁’은 단순히 왕의 상복을 입는 기간을 정하는 문제였지만, 이로 인해서 서로 다른 당파 사이의 정치적 투쟁으로 비화되었다. 이 역시 유학의 경전에서 근거를 찾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논쟁이 거대한 정치 투쟁으로 비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여러 번을 읽었지만 <중용>은 내용은 간단하나 이해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책이다. 저자 역시 ‘프롤로그’에서 그러한 점을 자세히 언급하며, 조선시대의 학자들에게 이 책의 해석이 왜 중요했는가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행스럽게도 <중용> 자체를 해석하는 것이 아닌, 그 책이 조선시대의 사상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탐색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주희가 주석하면서 정리한 <중용장구집주>의 해석만을 묵수하는 입장과 그에 관해서 다른 해석을 추구하는 학자들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조선시대 사상사의 흐름을 집어내고 있다.
조선시대 주류를 형성했던 사대부들에게 있어 주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으며, 주자의 해석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바로 유학의 정도를 해치는 무리라는 뜻의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유가 경전의 주자 해석에 대한 절대적인 태도는 조선시대 전반기에는 상대적으로 그리 견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7세기 무렵에 이르면 그 영향력은 극대화되어, 경전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문제들을 어느 정도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모두 5개 항목으로 구성된 이 책의 목차는 대체적으로 조선시대 사상사의 흐름을 좇고 있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 ‘성리학의 시대가 열리다’에서는, 조선에서 성리학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당대 학자들이 <중용>을 인식하는 태도 등에 대해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중용은 조선을 어떻게 바꾸었나’라는 두 번째 항목에서는, 당시의 당쟁이 유가의 경전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로 연결되었던 상황 등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 번째 항목에서 ‘불완전하고 열린 텍스트’라는 관점에서 ‘중용은 어떤 책인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경전의 권위를 넘어선 독자적인 해석’이라는 네 번째 항목에서, <중용>에 대해 주자의 학설과는 다른 독자적인 해석을 제출했던 윤휴와 이익 그리고 정약용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용의 본질에 한 걸음 더’라는 항목으로 통해서, 이른바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선도했던 정통 주자학자로서의 정조와 이와는 다른 입장을 개진했던 조익과 정제두의 <중용>에 대한 해석을 비교하여 논하고 있다.
조선시대를 연구하면서 항상 느끼고 있는 바이지만, 당대의 학자들이 주자를 숭앙하는 태도는 정말이지 놀랄 정도이다. 어떤 학문 분야이든지 한 가지 학설만을 고집한다면 학문적 발전은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사문난적’으로 몰려 어려운 처지에 놓였지만, 당대의 주류적인 학설에 맞서 연구를 통해 새로운 학설을 제출했던 이들의 학문적 태도는 본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 <중용>을 읽을 기회가 온다면, 이 책을 통해서 중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염두에 두고 살펴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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