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마을 겨울의 짧은 해가 서산을 넘으려 할 때쯤에야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집에왔다 마당에 들어서니 집 안 가득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며칠후 할머님 생신이라고 어머님이 술조사꾼 몰래 윗방에 단지를 들여놓고 담근 술인데 어제부터 술 냄새가 방 안 가득하더니 오늘 부엌으로 내다 거르고 계신다
책보를 풀어 마루에 던져놓고 부엌에 들어가니 커다란 양푼에 술지게미에 사카린을 타서 누나 형 동생들 둘러앉아서 퍼먹고 있다 나도 숟가락을 들고 대들어 퍼먹으니 달콤하고 씁쓰레한 것이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배고파 출출한 판에 배부르도록 온가족이 실컷 퍼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기에 멀건 죽보다는 훨씬 좋다 온가족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곱기도하다 불룩 나온배를 안고 일어서니 몸이 비틀 넘어질 것 같다 방으로 들어오니 아버지도 술에 취해 주무시고 계신다 하늘이 빙빙 돈다 방바닥이 울렁울렁 움직인다 그냥 쓰러졌다
얼마를 정신없이 자다보니 속이 울렁이며 토할 것 같다 앙금엉금 기어 문지방을 간신히 넘어 마당에 나와 억억 토해냈다 아 .돈다 하늘이 돌고 땅이돈다 집이 돌고 커다란 살구나무가 돈다 배속 가득한 것을 토해내고 다시 엉금엉금 기어 들ㅇᆢ오니 한방 가득 아버지 엄마 형 동생 모두가 서로 엉켜 곯아떨어져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나도 다시 깊은 잠에 빠저들었다
몸을 마구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아직도 몽롱한 정신으로 방안을 둘러보니 아뿔사 동생들의 입 앞엔 술 냄새가 지독한 술지게미가 한 사발씩 쏟아져 있다 잠들어 누운 채로토한 것이다 모두 깨워 간신히 일어나 아침밥도 못 먹고 그냥 책보를 등에 둘러메고 학교를 갔다 학교 가는 길이 아직도 빙빙 돌고 얼굴이 달아 오른다 첫 수업 시간 숙제 검사를 한다 술지게미에 취해 숙제를 했을 리 없다 안 해온 사람 자진해서 앞으로 나오라는 선셩님의 호령에 비틀대는 몸으로 나가니 눈을 휘둥그레 뜨신 선생님이 이 녀석 왜 그래? 하시더니 술 냄새가 풍풍 풍기니 다짜고짜 이 자식 술 쳐먹었네? 하며 들고 있던 몽둥이로 내리친다 대가리에 소똥도 안 떨어진 자식이 숙제도 안 해오고 아침부터 술 처먹었다며 화가머리 끝까지 나셔서 사정없이 두들겨 패니 비틀거리는 내 몸은 쓰러지고 말았다 왜 술을 먹었느냐는 다그침에 술지게미를 먹고 이렇게 됐다는 말을 듣고는 몹시도 미안혀 하신다 점심시간 선생님의 부르심에 숙직실로 불려가니 납작하고 이쁜 도시락을 펴서 내 앞에 내밀어주시며 먹으라 하신다 하얀 쌀밥에 계란후라이 무우 장아찌가 들어 있는 맛있는 도시락에 괞찮습니다라고 한 번 사양한 끝에 달려들어 허겁지겁 퍼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