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고선웅)
고선웅 연출가
연극 연출이다. 피치 못할 상황에 부딪힌다. 배우는 이러자, 나는 저러잔다. 스태프는 이쪽, 나는 저쪽이다. 관객의 취향과도 왕왕 충돌이다. 하, 난감하다. 끝내 떠오른다, 그렇다면.
'그렇다면'은 드라마틱하다. 문제 내지 골자를 파악했으니 그다음으로 가겠다는 의미다. 나를 둘러싼 남의 액션에 대한 판단은 끝났고 나의 리액션 차례라는 뜻이다. 궁지에 몰려서, 내지는 쌍방 관점 차가 커서 어떻게든 정리하자고 할 때도, '그렇다면'만 한 게 없다.
무엇보다 '객'에 대한 인정이 있다. '객'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에 대하여 억지 부릴 의도가 없다는 뜻이 담겼다. 쿨하다. '그런데'는 아직 따져보고 재는 중이다. 그런데 '그렇다면'은 다 헤아렸으니 이쯤에서 결정하고 앞으로 가잔 의미다.
결정 장애는 치명적이다. 각 전문가가 맞물려 촘촘하게 돌아가는 중에 스케줄이 밀리거나 헛수고로 기력을 낭비하는 까닭이다. 협업에서는 어떤 결과를 그때그때 뽑아내지 않으면 그다음이 안 풀린다. 그래서 '그렇다면'은 매듭을 짓거나 협의를 끝낼 때 이롭다. 집중력, 논쟁의 활력도 생긴다.
그런데 '그렇다면'의 다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의 선택 때문에 종종 사달이 나니까. '그렇다면'의 다음에 긍정을 쓰면서부터 나는 톡톡히 재미를 봐왔다. 대체로 막혔던 일이 술술 풀렸다. 결별 절차를 밟거나 내 주장으로 고집을 피울 때 결과는 별로였다. 물론 어느 쪽이 더 맞는지 그때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러자'고 했을 때 팀워크가 생겨서 불화를 뛰어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어느 시절인들 안팎으로 온전했으랴. 하지만 사태를 잘 따져 보면 그 안에 대략, 답이 있다. 각자도생이 능사는 아니다. 피아간 집중하고 잘 들여다보면 보인다. 기왕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났더라도 일단 넘어가자. 다음을 모색하자. 그게 상책이다. 시비는 나중에 따지자. 지체할 겨를 없이 우린 바쁘다. ‘그렇다면’을 두고 여럿의 지혜를 모으는 게 맞는다. 지금? 암만 봐도 딱 그럴 때다.
첫댓글 결정 장애.^^
우선 나부터
그리고 마리아 언니. 어디선가 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