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방인'의 도전은 무리였는지 모르겠다. 아주 옛날 언젠지는 기억에 없지만, 읽으려다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제 다시한번 도전을 해보려 마음먹었는데, 그 망서림과 두려움 때문일까, 어제는 책과 거리를 두었다. 대신 성경을 몇장 읽었다. 나는 늦게, 90에 이르러서 공부에 도전하는 분들을 대하면 정말 존경스럽다. 젊어서 공부하지 못했던 한이 얼마나 크면 그런 도전을 할수있는지,,,. 시간은 충분하다 하더라도,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건 누구나 도전할수있는 문제가 아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내 자신의 문제를 어찌 극복할수 있는지가 제일 궁금하다. 때론 내가 점심을 먹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 상황에서 공부가 말이 된다고 생각할수도 없다. 어제는 큰아이가 이미 T를 입고 있는대도 찾았다. 못찾아서 흰색 T를 꺼내 놓았다. 중학생이 되엇다고 들떠서인지 펜티바람으로 있어서 내가 챙겨서 입힌게 (태권도장 도복중 하나)그 옷이었는데도 ,,, 내가 그렇다. 그런데 얼마나 초롱초롱하면 90에 공부에 도전을 할수있는 것인지,,,.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은게 뭐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가보고 싶은곳도 없고, 먹고싶은것도 없다. 만일 다시 시작할수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내가 선택할수 있는 것이라면, 사진작가는 어떨까 싶지만,,,. 예전에는 그런 직업이 있는줄도 몰랐고, 어떤 자격이나 여건이 필요한지는 전혀 모르지만, 세상을 떠돌며 사진을 찍고, 글도 쓰고,,, 판타지를 너무 많이봤나,,,ㅎㅎㅎ. 누구도 어떤 만족도 이룰수 없는 도전의 세상에서 단 한번도 제대로릐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떠나는데 어찌 후회가 없겠는가. 한번뿐인 사람의 인생인데 말이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힘껏 살아보길 바라고 있다. 역량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가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것도 어렵다. 여기저기 걸치는게 많아서다. 간밤엔 꿈에서 며늘을 보았다. 팔리지도 않는 옷장사! 옷무더기를 보면서 내가 느낀것은 공포같은 두려움이었다. 한낱 개꿈이지 무슨 의미가 따로있을리 없지만 내가 본 며늘의 미소는 미소가 아니었다. 어쩌면 꿈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수도 있다. 내가 며늘에 대해 평소에 갖고있는 느낌 그대로 일수도 있다. 사실 복과 화는 동전의 양면이 맞다. 이것이야말로 선택아닐까. 나는 내가 선택할 기회는 없었다고 인정하고 있지않지만, 나는 내가 선택했을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결혼만해도 그렇다. 나는 남편 등에 빨대를 꽂고 어머니와 함께 빨수있게되길 바라는 마음이 없었을까. 남편을 발판삼아 위로 도약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을까. 서울이라는 낫선 타향에서 단연코 우뚝 서볼요량으로 남편을 원하지는 않았는지를 말이다. 그런데 정작 남편은 스스로의 삶을 유지할만한 깜량도 안되는 무능자였다. 말하자면 썩은 지프라기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감하게 내던질 용기라도 있었어야지, 너무놀라고 당황해서 어찌할바를 모르고 절망해버린 꼬락서니라니, 한심한것은 나였다. 결국엔 내 무덤 내가 팠다. 누구 탓이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선택한게 아니라니. 시골에서, 바람만 가득 들어서 세상물정이라고는 몰랐던 철없는 소녀의 실패가 80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면 그건 문제도 큰 문제이기는 하다. 아, 그럼에도 이처럼 여기까지 이른것은 은혜임이 틀림없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단 한번도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하더라도, 인생은 인생이다. 소풍이 누구에게나 즐거운것은 아니다. 잔치가 누구에게나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 그런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