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련(정민)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학자
조지훈의 시 ‘낙화’ 중,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에서 처음 ‘우련’이란 단어를 만났다. 시 속의 시간은 무너지듯 꽃이 지는 늦봄의 새벽 아침이다. 주렴 밖으로 듬성듬성 보이던 성근 별이 스러졌다. 밤새 울던 귀촉도의 울음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터오는 먼동에 먼 산의 그리메가 성큼 앞으로 다가선다.
꽃이 진다. 촛불을 끄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날이 밝았으니 촛불을 끄자가 아니라, 꽃이 지니까 촛불을 끄자고 했다. 그다음에 나온 말이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이다.
꽃 지는 그림자는 진 꽃잎의 그림자일까? 꽃이 지고 있는 나무의 그림자일까? 시인은 똑 부러지게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그림자가 뜰에 어려서 하얀 미닫이 문종이에 붉은빛이 '우련' 비친다. 우련 붉은빛은 어떤 느낌의 붉은빛인가?
그 말이 궁금해 사전을 찾아 보니, 형용사 '우련하다'의 부사형 표현이다. 우련하다는 '형태가 약간 나타나 보일 정도로 희미하다' '빛깔이 엷고 희미하다'라는 설명이 나오고, 북한에서는 '나타날 듯 말 듯하면서도 분명하다'로 뜻을 매겼다. 우련은 큰말이고, 작은말은 '오련'이다.
우련과 오련, 그리고 아련은 다 비슷한 과에 속하는 단어들이다. 추억은 아련해야 그립고, 빛깔은 우련할 때 애틋하다. 오련은 양성적이어서 우련보다 빛깔이 한층 환해지는 느낌이다. 우련하다는 말에는 우리다, 우려낸다는 단어의 느낌도 끼어든다. 진 꽃잎의 진한 빛깔이 창호지의 흰빛에 체가 걸러져서 슬쩍 번진 봉숭아 물처럼 잦아들어야 조지훈 시인이 붙잡아낸 '우련'이 된다.
소설가 최명희는 '혼불'에서 "치자 물 오련한 항라와 청홍 갑사, 연두 숙고사, 연분홍·옥색의 모시 조각들"이라고 썼다. 비단에 붉은 치자 물을 들이면 약간 바랜 듯한 붉은빛이 오련하게 밴다. 창호지에 돋은 우련 붉은 빛깔과는 비슷한 듯 다르다.
나이가 들어가니 저를 드러내는 강하고 진한 색깔보다, 한결 뉘어 우련하고 오련한 빛깔이 좋아진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것도 좋지만 아련하고 아득한 것에도 자꾸 마음이 간다.
첫댓글 '우련' 아름다운 언어를 배워봅니다.